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내 실수(나는 실수인지 몰랐던 말 몇 마디)로 인해 우리집은 풍비박산이 날 뻔했다. 아빠와 엄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셨고 나는 나대로 나 때문이라는 자책감에 매일을 울며 보냈다. 친구들에게 상담할 때도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이혼하시게 되면 어떡하냐고 매 쉬는 시간마다, 점심 시간마다 질질 짜며 응석을 부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어이없이 그 상황을 조금은 즐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족이 아닌, 드라마틱한 사건이 벌어지는 가정 속에 있는 자신이 소설이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던가 보다. 그리고 나의 그러한 터무니없는 행동 밑에는, 아마도 우리 엄마와 아빠는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지 않았나...싶다.

하지만 그 가정이 정말로 깨어졌더라면 나는 지금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이에게 - 그 아이가 어리건, 다 자랐건 - 부모의 이혼은 너무나 큰 슬픔이며 어쩌면 이겨낼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위녕의 생각처럼 아이보다 "엄마"와 "아빠"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부모가 이혼을 했건, 하지 않았건 아이도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같아서 부모가 기뻐하면 아이도 기뻐지고, 부모가 슬퍼지면 같이 슬퍼하기 때문이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 그건 대개 엄마가 불행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가 불화하는 집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도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건 엄마가 불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이 세상에서 엄마라는 종족의 힘은 얼마나 센지. "...56p

<<즐거운 나의 집>>은 19살, 위녕의 이야기이다.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아빠와 함께 살다가 아빠가 재혼을 하시면서 새엄마와의 갈등을 못 이겨 할머니댁에서 몇 년을 지내고, 20살이 되기 2년 전 친엄마와의 생활을 하게 된 위녕의 이야기. 위녕에겐 성이 다른 남동생이 둘이나 있다.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라는 사회의 이목과 어린 시절 새엄마와 아빠에게 받았던 상처를 보듬고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조금씩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위녕과 엄마의 대화를 쫒아가며 나는 나와 내 딸의 대화를 생각한다. 엄마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위녕의 모습이 잔소리할 때 한숨을 쉬며 살짝 고개를 흔드는 7살짜리 내 딸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나도 위녕의 엄마처럼 꼭 필요할 때에, 위로와 사랑과 위안을 줄 수 있는 친구같은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그 위로와 사랑에는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인생의 멘토같은 멋진 말들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엄마는 그걸 운명이라고 불러........ 위녕, 그걸 극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걸 받아들이는 거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큰 파도가 일 때 배가 그 파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듯이, 마주 서서 가는 거야."...178p
"집은 산악인으로 말하자면 베이스캠프라고 말이야. 튼튼하게 잘 있어야 하지만, 그게 목적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게 흔들거리면 산 정상에 올라갈 수도 없고, 날씨가 나쁘면 도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떠나는 곳, 그게 집이라고. 하지만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고,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서 결코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삶은 충분히 비바람 치니까, 그럴 때 돌아와 쉴 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271p

집은 바로 그런 곳인 것 같다. 바깥 세상 그 어디보다 편한 곳, 두 발 뻗고 조용히 쉬고 싶은 곳, 언제든 어느 때이든 돌아오면 반갑게 맞아주는 가족이 있는 곳! 

고양이 코코와 둥제 아빠의 죽음을 연달아 겪으며 이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 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위녕은 살아가는 법, 맞서는 법, 용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완전하지 않은 자신이 보기에도 완전하지 않은 어른을 이해함으로서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선 위녕이... 정말 잘~ 컸다는 생각이 든다. 즐거운 나의 집을 찾고, 가족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후에 비로소 완전해진 가족의 한 일원으로서 세상과 맞서기 위해 또 다른 도전을 하는 위녕이 참으로 대견하다. 

나도 엄마로서 "즐거운 나의 집"을 잘 만들어갈 수 있을까. 약간은 엉뚱하고 망가지기도 잘 하는 위녕의 엄마처럼 나도 완벽한 엄마와 아내가 아니지만, 언제든 돌아오고 싶은 집이라고 우리 가족들이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니 그러기 위해서 우선 나 자신부터 사랑하고, 나 자신부터 행복해져야겠다고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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