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해즈빈
아사히나 아스카 지음, 오유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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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앞부분을 읽는 동안은, 꽤 잘 나갔던 커리어 우먼이 결혼을 계기로 직장을 그만두고 누군가의 아내로서 집안에 갇혀 지내는 주부의 우울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우울한 해즈빈>>은 어렸을 때부터 한 길밖에 모르고 오로지 그 길만을 향해 달려왔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어느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해즈빈 (has been)....." 과거에는 한 이름 날리던 사람. 그리고 이젠 한물간 사람."...46p

어렸을 적, 그 어느 분야에서건 한 인물 할 것 같다는 소리를 안 들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던 우리는 점점 자라면서 모두 비슷비슷해지고, 어느 한 부분에서는 남들보다 뒤쳐지는 느낌에 뒤쳐지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며 아둥바둥 살고 있다. 우리야말로 미스터, 미세스, 미스 해즈빈이다.  

리리코는 겉으로 보기에 정말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도쿄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한 외국계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으며 변호사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그 남편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부인을 100% 신뢰하고 사랑해준다. 게다가 시부모님은 교양있는 분들이시고, 시어머니는 귀찮을 정도로 아껴주시고, 챙겨주시고, 배려해주신다. 그야말로 완전!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어떤 삶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없다. 리리코가 그렇다. 그녀가 살아온 방식은 "자존심" 이었다. 남들보다 초라해 보이거나 뒤쳐져 보이는 것이 용납되지 않고, 남들 보란듯이 한발 더 앞서나가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공부나 성적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던 그녀가 인간 관계, 특히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뜻대로 되지가 않는다. 리리코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사회에서 자꾸 밀려나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에 그녀는 너무나 괴롭다. 

많은 여성들이 사회 생활에 실패해서 도피처로 "결혼"을 꿈꾼다. 나의 경우는 하나하나 간섭하시는 부모님에게서 벗어나고픈 생각뿐이었다. 빨리 내 가정을 가지면 더이상 간섭을 하지는 않으시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이었다. <<우울한 해즈빈>>에서처럼 "결혼"이나 "육아"는 절대로 도피처가 될 수 없는데도 말이다. 

리리코가 부모님에게 자신의 상처를 터트리는 장면이...그래서 많이 공감이 되는 것 같다. 융통성을 가지고 여러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리리코가, 마치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어서.... 마냥 무기력해지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이 답답한 생활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닮아서... 그녀가 마치 나처럼 생각된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 리리코의 미소는 잘 와닿지가 않는다. 왠지 그냥 좀 찜찜한 느낌... 리리코를 통해 나를 투영해 보던 소설의 마무리가 시원~한 결말을 내주기를 바랐던 것은 너무 큰 기대였던걸까? 앞으로 리리코가 어떤 삶을 살 지는 나의 몫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인지.... 확실히,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되기는 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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