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이유정 푸른숲 작은 나무 13
유은실 지음, 변영미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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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멀쩡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이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도, 집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일부분이다. 작가 유은실님은 아마도 세상의 모든 문제가 있는 어린이들에게 "우리는 모두 같다고, 누구나 문제가 한가지씩은 있으니 안심하라고..." 알려주고 싶으셨나 보다. 

<<멀쩡한 이유정>>에는 한두가지씩 어려움을 갖고 사는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할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 : <할아버지 숙제>이 될 수도 있고, 학원에 다녀야하는 짜여진 스케줄 속의 갑갑함 : <그냥>이 될 수도 있으며, 방향치에 길치 : <멀쩡한 이유정>도 될 수 있다. 그뿐이랴.... 너무 가난하여 자장면 한 번 먹어보지 못한 것 : <새우가 없는 마을>이나 세상에 대한 불공평함을 토로하는 것 : <눈>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숙제>



멋지고 용감하신,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는 할아버지를 두지 못해서 부끄러운 것은 아이들 탓이 아니다. 게다가 친할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외할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있었다는 "진실"을 아이들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엄마의 도움으로 경수는 할아버지 두 분이 겪으셨던 일 중에 객관적인 사실들만을 추려서 숙제를 아주 끝마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경수는 우리 할아버지들 말고도 훌륭하지 못한 할아버지들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냥>은 학습지와 학원이 너무나 싫은 9살 진이의 이야기다.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가 계시는 동안 진이는 더 좁고 불편한 고모네 집에서 지내게 되는데, 진이는 이곳에서 밀린 학습지와 학원 걱정없이 마음껏 탐색하고 생각하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어느 하루의 외출을 통해 진이가 어떤 것들을 느끼고 마음이 더욱 성숙해져 가는지 잘 알 수 있는 단편이다. 좁고 불편한 고모네 집이 그 어떤 집보다 넓고, 그 마을 전체와 하늘까지 다 고모네 집처럼 느끼는 이유는 그만큼 고모가 진이의 게으름도 한번쯤 눈감아주고 아이의 감성을 이해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멀쩡한 이유정>은 엄청난 길치에 방향치이다. 4년이나 다니는 학교도 새로 이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동생을 따라 등교하는 아이. 유정이는 친구들이나 선생님들, 혹은 친구 엄마들에게 이런 사실을 들킬까봐 전전긍긍이다. 하지만, 어느날 동생이 먼저 집으로 가버리고, 유정이는 몇 십분이나 걸려 아파트 안에 들어선다. 그래도 도저히 자신이 사는 집 102을 찾을 수가 없다. 그 순간 학습지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 "아파트 단지를 십 분째 헤매고 있었거든."(...89p) 어른도 자신과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을 유정이는 알았을까? 

<새우가 없는 마을>에서 기철이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생활 보호 대상자여서 여태껏 "진짜 자장면" 한 번 먹어본 적이 없다. 이 단편에서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가 참 재미있다. 할아버지도 손자에게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숨기려고 하고, 손자는 그걸 알면서도 반쯤은 속아넘어가 준다. 꼭 먹어보고 싶다는 손자의 바램을 들어주려고 할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그럼에도 왕새우를 사기 위해 할아버지에게는 너무나 벅찬 관문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할아버지로서는 가슴을 칠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왕새우가 있는 마을에서 살라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약속은 가슴이 찡~하도록 아픈 약속이다.

<눈>은 세상에 불공평한 것들이 가득하다고 믿는 영지의 이야기. "우리 영지는 불공평해서 억울한 게 많습니다. 우리 영지가 세상을 공평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133p)라는 엄마의 기도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깜찍한 아이다. 눈만큼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다고 생각했는데, 옆 건물 옥탑에 사는 여자 아이가 장갑도 없는 것을 보고 영지는 눈 또한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려는 것 같다면 하나님을 방해하기로 하지만,  결국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장갑을 아이에게 던져준다. 하얀 눈 위에 떨어진 분홍 장가이 그림 같았다는 영지의 표현.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이다. 



5편 모두 나만 힘들고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 힘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누구나 자신만의 컴플렉스가 있으니 안심하라고. 조금씩 다를 뿐이지 우리 모두는 같다고. 감동적이고 따뜻한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고민을 했던 아이들은 큰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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