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동안의 과부 2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입에 착착 달라붙지 않는 제목이다. 영어 제목(A widow for one year)은 그들에게 어떤 느낌일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어 제목으로는 느낌이 영~ 어정쩡하다. 읽는 내내 알지 못했던 이 제목의 의미는 두 권째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 멋들어진 소설이 가진 조금은 이상한 제목과는 달리, 각 소제목들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잘 지어져있다. 사실 작가 "존 어빙"은 제목을 무척 잘 짓는 작가가 아닐까?  아니면 제목을 짓는 데 무척이나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작가임에 틀림없다.(주인공 루스의 대화를 통해 나타난 것처럼..)

내가 처음 이 소설의 내용을 접한 것은 2년 전 영화를 통해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킴 베신저의 바람난 가족>이라는 터무니없는 제목(문소리의 바람난 가족이 유행을 했다나 뭐라나..)으로 극장 개봉 없이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영화의 원제는 <The door in the Floor>이고 한국어로 옮기자면 <마룻바닥의 문>(소설 속에도 등장한다)이다. 예술적이면서 가슴 아픈 영화가 될 뻔했던 이 영화는 제목때문에 버림받은 느낌이다. 이 영화에서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다코타 패닝의 동생 엘르 패닝이 등장한다는 것과 늙었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킴 베신저의 우수에 젖은 눈빛, 극 중 아버지인 테드의 그림책 <마룻바닥의 문> 애니메이션..이다. 

"자기가 태어나고 싶은지 잘 모르는 어린 꼬마가 있었습니다. 엄마도 아이를 낳고 싶은지 잘 몰랐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그림책은 메리언과 테드의 사랑하는 아들, 토마스와 티모시가 자동차 사고로 숨진 후에 만들어진다. 깊은 슬픔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 때, 테드의 계획 하에 태어난 "루스"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총 3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1958년의 여름과 1990년 가을 그리고 1995년의 가을이다. 1958년 여름은 루스가 네살 때이며, 여러가지 사건들 끝에 메리언과 테드는 헤어지게 된다. 이 때 루스에게 남는 것은 오빠들의 부재를 견디지 못한 엄마에게 자신은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검지 손가락 끝 유리에 베인 상처뿐이다. 1990년 가을이 되면 루스 뿐만 아니라 엄마 메리언 그리고 메리언의 어린 연인이었던 에디까지(등장인물의 대부분이) 소설가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쓴 소설의 제목 뿐만 아니라 소설의 상세한 내용 혹은 제 1장 전부가 소설 속에서 인용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소설 속의 소설" 플롯을 갖게 된다. 작가 존 어빙이 이렇게 그들의 소설을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그들 각자가 자신의 소설을 통해 각자의 아픔을 치유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들의 삶과 정체성, 성격, 생각까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은 매우 특이한 체험이다. 나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그들 자신의 사건들을 읽으며 그들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쓴 소설을 읽으며 그들을 알아간다는 느낌. 이렇게 복잡하고 치밀한 구성을, 존 어빙은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 감탄스럽기만 하다.

작가가 존경스러워지는 부분은 그뿐만이 아니다. 앞에서 아무렇지고 않게 읽었던 내용이 뒷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복선이 될 때,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테드는 루스의 영감을 받아 <누군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라는 그림책을 쓰게 되는데, 먼 훗날 루스는 이런 소리를 본인 스스로가 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직면한다. 

"두더지 인간은 붉은 방의 거울을 모두 훑어보며 천천히 일어섰다. 살인자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루스는 잘알았다. 그것은 누가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였다. 남자는 바로 그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살인자는 숨을 참았고 씨근거림을 멈추었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던 것이다. 남자의 코가 씰룩였고, 루스는 두더지 인간이 자기를 찾으려고 코를 킁킁댄다고 생각했다." ...106p

등장인물 대부분이 작가이므로 작가들의 여러 생활들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어떤 식으로 소설을 구상하는지, 어떤 팬들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어떤 한 팬(팬이라 할 수 있을까?)의 악담대로 결혼 4년만에 과부가 된 루스는 그가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나서야 비로소 아들 둘을 잃은 엄마가 왜 자신을 멀리하려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그녀의 시련은 그녀의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조금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작가의 목소리였다. 이 책은 1인칭도 아니고 3인칭도 아니다. 아니, 처음엔 3인칭 시점이라 생각했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아니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독자에게 책 내용을 들려주는 듯이... 마치 나는 작가이므로 내용을 다 알고 있으니 당신들에게 미리 얘기해주지..하는 느낌? 나중에 책을 다 읽고 찾아보고 나서야 그것이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작가의 문체나 시점도 그랬고, 소설 속의 소설이나 그림책 내용들(하나같이 대충 만들어진 것이 없다)도 모두 재미있었고,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모두 애정이 갔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내용을 여러가지 장치들로 잘 버무려놓은 존 어빙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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