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지음, 이재형 옮김 / 부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가벼운 소설에 지친 이들에게 권한다"...라는 문구가 나를 유혹했다.  우아한 겉표지에 그려진 여인의 얼굴은 "어디 한번 읽을테면 읽어 봐.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겠어?"라는 느낌으로 나를 도발한다. 다른 어느 나라 소설보다 프랑스 소설이 내게 주는 느낌은 모두 특별했고 신비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안이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 문장에서 다음 한 문장으로 넘어가기가 힘겹다. 아주 이해하지 못할 말들은 아닌데 한데 뭉쳐 있으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처음엔 "번역에 문제가 있나?"하고 생각했다가 "나...바보인가?" 싶다가..."이 작가 왜 이렇게 꼬였어?"로 결론을 내린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모두 이해하려 하다가는 도저히 이 책을 읽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별 수 없다. 하나하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읽고 보는 수 밖에... 어찌보면, 내 생각은 적중한 것 같다. 이 비비 꼬인듯한 문장력에 비해 내용은 정말 단순하다.

"그녀의 길지 않은 손가락은 뜨개질 연습을 할 때면 열에 들뜬 듯 움직였다. 그 손놀림은 그녀와 거의 따로 노는 듯 보였지만, 그녀 안에 존재하는 섬세함과 육중함의 통일성을 깨뜨리지는 않았다. 그녀가 하는 일은 그 어떤 것이든 곧장 이런 조화, 이런 통일을 이루었다. 그때 그녀는 구성과 세부가 그 모델을 마치 몸짓 속에 박아 넣은 것처럼 비치는 그런 풍속화 가운데 한 폭이 됨직했다. 이를테면, 틀어올린 머리를 매만질 때 머리핀을 입으로 무는 그 자세! 그녀는 ’속옷가지를 맡은 하녀’, ’물 나르는 여인’ 또는 ’레이스 뜨는 여자’였다." .....12p

작가가 <<레이스 뜨는 여자>> 뽐므를 묘사한 부분이다. 얀 베르메르의 작품 <레이스 뜨는 여자> 의 주인공과 뽐므는 이렇게 연결된다. 겉모습도 동글동글하고 속도 동글동글할 것 같은 여자, 뽐므(사과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얀 베르메르의 <레이스 뜨는 여자>

하지만 뽐므, 그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파스칼 레네는 뽐므의 주변 인물에 대한 설명은 해주지만, 뽐므 자체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그저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혹은 그녀에게 일어나는 일들로 추측해볼 뿐이다. 그녀는 매우 평범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평범하기에 유별나다. 친구 마릴렌과,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유일한 사랑인 에므리와의 관계에서 그녀는 너무나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한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뽐므를 보며 나를 떠올리기도 한다.

"뽐므가 자신을 스스로 방어했더라면, 그녀가 가시 돋친 말을 몇 마디라도 하거나 비록 억제된 것일지라도 울음을 터뜨렸더라면, 아마도 에므리는 그녀에게 다른 결말을 안겨 줬을 터였다. 그는 그녀를 좀 더 높게 평가했을 것이다(그녀는 그와 좀 덜 다른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두 사람의 이별을 중요한 어떤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며, 적어도 뽐므는 격심한 고통이라는 거룩한 마음의 양식을 갈무리했을 것이다." ....123p

내가 뽐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작가도 하고 있다. 이렇게 파스칼 레네가 직접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소통의 부재"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뽐므 자신은 매우 평범한 여자이지만 그 누구와도 재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그녀는 조금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자신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제 때에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 또한 용기라는 것을....

마지막 이재형 번역가의 말을 통해 파스칼 레네가 일부러 이런 문장들을 만들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나, 이 책 제대로 읽은 게로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안심. 확실히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몇 개월 후에 다시 이 책을 손에 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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