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비룡소 클래식 42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트로이 하월 그림, 원재길 옮김 / 비룡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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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추억 중 굉장히 크게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빨간 머리 앤"이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챙겨보던 애니메이션이었고, 앤의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때 처음으로 완간 된 10권의 책을 만났다. 친구들과 한 권씩 나눠 산 뒤 번갈아가며 읽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바람에 마지막 10권을 읽지 못했지만 이미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내용 뒷부분(엄마가 된 앤의 모습)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아마 중학교 올라가기 전 마지막 낭만과 행복이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앤에게 빠져들었을까...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나와 너무나 다른 성장 환경,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했는데 아마도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재잘대고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고, 감정 표현에 전혀 어색해하지 않으며 마음껏 표출하는 그녀의 성격이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오랫만에 완역 <빨간 머리 앤>을 읽었다. 10년 전 쯤 아이와 함께 읽었었는데 그때 읽었던 책은 완역이 아니어서 줄거리 읽듯 읽어서인지 옛 추억을 떠올릴 수는 있었지만 예전의 감동이 다시 찾아오진 않았다. 오히려 얼마 전에 읽었던 <빨간 머리 앤 나의 딸 그리고 나>가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떠올리게 하고 좀더 깊이 있게 읽는 기회였다.

 

비룡소 클래식의 <빨간 머리 앤>은 아이들이 읽기에도 조금 부담스러운 두께이다. 하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전혀 지루함 없이 아무 일도 못하고 빠져들 것이 뻔하다. 빠른 스토리 전개도 그렇지만 마릴라와 매슈처럼 앤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사랑스러운 소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상에 빠져 해야 하는 일마다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지만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이 아이를 말이다.

 

"감정에 잘 이끌리는 앤으 성격으로는 오르내림이 많은 인생살이를 겪어 내기 무척 힘겨우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마릴라는 앤이 고생한 만큼 큰 기쁨으로 보상받으리라는 사실은 잘 알지 못했다."...332p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는 동안 앤 셜리의 성장이 느껴지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보통 성장 소설이라고 하는 책을 읽을 때 주인공이 정말 성장한다고 느끼기보다는 그렇다고 주입되는 경우가 많은데, <빨간 머리 앤> 속 앤의 성장 변화는 아주 뚜렷하게 느껴진다. 작가의 치밀한 인물 묘사와 앤의 끝없는 대사 속에서 그녀의 생각이 성장하는 것을 직접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저 철부지로만 보였던 앤은 어느새 자신을 키워준 마릴라를 책임지고 보호해줄 만큼 성장한다. 그 와중에 자신이 실수하며 배웠던 모든 것들을 바탕으로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앤이 부모님에 관해 마릴라에게 말하는 부분을 무척 인상깊게 읽었다. 또 어른들의 장단점을 평가하며 자신이 커서 아이들을 대할 때 어떻게 말하는 부분도 말이다. 아마 어린 시절엔 앤의 사건 사고와 길버트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 읽었다면 이제는 엄마로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읽게 되는 것 같다. 나도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책은 정말 대를 거쳐 읽게 되고, 스스로도 평생을 거쳐 읽게 되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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