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뇌 - 인간의 뇌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프랜시스 젠슨.에이미 엘리스 넛 지음, 김성훈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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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사용할 뇌의 기틀을 잡아줄 잠깐 동안의 기회를 놓칠 것인가


10대는 온통 늘 이상한 생각에 빠져 있고 공부하기는 싫어하고 유혹에는 쉽게 빠지는 흔히, 좌충우돌 시기라고 말한다. 철없는 세대로 비춰지고 사고만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불과 우리도 몇 년 전, 몇 십 년 전에 그 세대를 겪었지만 왜 10대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이를 뇌과학적으로 풀어낸 ≪10대의 뇌≫라는 재미난 책이 있다.


p.9

오랫동안 인간의 뇌 발달은 주로 1~3세, 혹은 3~7세에 거의 완성된다고 간주돼왔기 때문에 ‘10대의 뇌’는 학계에서도 깊이 연구되지 않았던 주제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통해 10대의 뇌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공부를 하는 시기가 따로 있다고 말하면서 10대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10대의 뇌는 정확하게 연구·분석되지 않았다. 그저 철없는 행동이라며 그들을 이해하기보다 크면 안 그럴거야는 식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렇지만 이는 급속도로 발달되어서 생긴 일시적인 혼란이 만든 행동일 수 있다.


p.26

아이가 반항하고 더욱 심각한 문제로 빠져들게 하기보다는 이렇게 해로울 것 없는 일들로 실험해볼 수 있게 놔두는 것이 좋다. 작은 전투에만 급급하다가 전쟁 전체에서 지고 마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실험이 필요하고,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아이들이 그런 실험을 장기적인 부작용 없이 무사히 치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최근에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가 굉장히 유행하고 있다. 많은 유행어를 파생시키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뛰어난 작품 구성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상위 1% 교육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공부로 무조건적인 성공을 바라는 부모님 생각에서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는 기계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욱 그들을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두려 하고 더 이상의 일탈을 허락하지 않는다. 책은 그런 교육 방법보다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 있음을 말해준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강제적인 수단이 아닌 10대들이 공부하기 좋을 게 만들어주는 것, 열까지 세는 준비하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p.113 

10대들은 다중과제에 능숙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냥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언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도록 격려해주어도 다중과제에 관여하는 뇌 영역으로 혈류를 증가시키고, 그 영역을 서서히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중략) 지도를 말로만 끝내지 말고 글로도 적어주자. 그리고 한 번에 4~5개씩 지도하려고 하지 말고, 한 번에 1~2개 정도만 지도하자. (중략) 이런 것을 정기적으로 하면 자녀들이 스스로의 뇌를 훈련시킬 수 있다.


책은 뇌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10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점이 재밌다. 시놉스 등 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나왔던 용어들이 등장한다. 그냥 머리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10대들의 감정적인 행동들은 과학적으로 접근하면서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수면과 범죄사이의 상관관계부터 시작하여 10대들은 왜 술을 마시면 해로운지, 왜 감정적으로 취약하여 짜증을 잘 내는지, 왜 그들에게 수면은 중요한지 등 우리가 쉽게 궁금증을 가졌던 부분들도 이 책에서 그 답을 얻어낼 수 있다.


p.321

부디 이 책이 당신의 자녀가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아니며, 다만 아직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못한 발달의 결정적 단계에 와 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이 점을 당신이 분명하게 이해하고 자녀에게 더욱 잘 설명할수록 자녀의 10대 시절이 좀 더 순탄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별에서 온 아이가 아닌 사랑스러운 10대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건 어떨까? 가까이에 있는 10대가 아니라 바로 어릴 때 철 없다고 느꼈던 내 행동도 한 번은 되돌아 보는 기회도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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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든든한 내 편이던
박애희 지음 / 걷는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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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 밤, 하루의 무게를 감당하며 오늘을 보낸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드라마가 기억을 더듬어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할 때면 더욱 더 어머니의 생각은 더욱 커진다.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은 그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더욱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방송 작가인 박애희 작가가 쓴 이 책은 추운 겨울 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전해주면서 마음 속 온도를 따스히 높여줄 것이다.


p.31

자식을 키우고 보니, 부모는 자식 앞에서 한없는 약자란 생각이 든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약자니까.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화난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속상할 딸의 마음이 더 신경 쓰이는 것. 자신의 분노보다 아이가 받았을 상처가 더 쓰린 것. 그게 부모고 엄마다. 그래서 엄마들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속사포처럼 쏟아 내다가도 이내 돌아서서 속엣말을 한다. 화내서 미안하다고.


흔히 부모님은 자식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어릴 때는 크게 사고치는 것 없이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잘 성장하고 컸다. 그렇게 말을 잘 듣는 아들이었지만 취직할 무렵, 부모님과의 큰 갈등이 생겼다.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셨다. 오히려 무슨 바람이 들었을까 걱정을 많이 하셨을 것 같다. 한 번의 말대꾸도 하지 않았던 아이가 말 대꾸를 하기 시작했고 부모님은 그럴수록 더 이해하지 못하셨다. 고집을 꺾지 않은 나를 두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말하셨지만 결국은 걱정된 마음에 독립할 때 혼자 살 때 부족한 게 없을 정도로 모든 걸 다 챙겨주신 부모님이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은 다 그런 것일까?


p.47

남편을 만나기 전 몇 번의 연애를 했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엄마에게 내 연애에 관해 얘기한 적이 없다. 물론 남자 친구들 얼굴도 보여 주지 않았다. 내 사생활에 대해서는 조금의 간섭도 받기 싫은 결벽증 같은 게 있었다. 부끄럽기도 했고.


부모님에게 웬만한 건 솔직했지만 (힘든 걸 얘기한 것 빼고) 연애에 대해 얘기한 적이 별로 없다. 저자도 그랬던 것일까. 왠지 말했지 말했다간 걱정하시고 말 그대로 간섭 같은게 이뤄질까봐 싫어서 말했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다 그런 것일까?


p.135

나는 부모님이 나 때문에 상처받을 거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부모님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어도. 사랑하는 만큼 부모한테 잘하는 딸이라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중략) 아빠의 마음은 돌아보지 않은 채 잘한 일만 내세우며 떠들었다. 잘못한 일도 많겠지만 그런 기억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중략) “나는 너한테 상처 안 받는 줄 아냐?”


명절이 다가오고, 이 책을 읽을수록 부모님을 더욱 생각하게 했다. 드라마 작가, 라디오 작가인만큼 그 글이 조금 더 서정적인 마음으로 잘 다가왔다. 불과 얼마 되지 않아 있었던 부모님과의 좋았던 날들, 안 좋았던 날들이 생각나게 하고 그럴수록 더욱 만날 수 있는 명절이 기다려지게 만든다.


p.243

엄마와 내가 나눌 수 없는 시간을 지나오며 조금은 서러웠고 때로는 외로웠다. 하지만 나는 하나씩 배워 나가는 것도 같다. 부모를 잃는다는 것은, 칭찬과 보살핌을 바라며 응석을 부리던 아이의 마음을 보내고, 누군가 없이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키는 법을 다시 한 번 깨우치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홀로서기의 시간을 통해, 어른다운 어른으로, 한 사람의 엄마로, 오늘도 성장하는 중이다.


언젠가 나도 부모님의 입장이 되겠지. 흔히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야 이해한다고 한다. 과연 나는 얼마만큼 훌륭한 자식이었냐고 말했을 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자식 된 도리로 조금 더 부모님에게 잘해야지, 안부도 알려드려야지 하는 생각, 어머니의 사랑을 느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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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내가 좋다 - 불친절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혼자살이 가이드
게일 바즈-옥스레이드 외 지음, 박미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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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위해 사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혼자 사는 건 과연 외로운 것일까? 혼자 산다는 건 과연 완전하지 못한 것일까? 이제 1인가구는 4명 중 1명일 정도로 주변에서 쉽게 볼 정도로 많아졌고 앞으로도 더욱 증가할 것이다. 1인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도 많이 출시되고 문화 또한 바뀌고 있다. ‘나 혼자 산다’라는 티비 프로그램이 많은 공감과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1인 가구, 특히 1인 가구 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이 책 또한 그러한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혼자인 내가 좋다≫를 통해 어떻게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지 노하우를 배워보자.


p.7

이 책을 보고 있는 당신은 혼자 살고 있는가? (중략)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삶을 만들어갈 기회를 잡았으니 말이다. ‘정상’이라는 말을 들이밀며 결혼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불안하고 확신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겁먹거나 흔들리지 말자. 우리는 ‘비정상’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조금 ‘다르게’ 살아갈 뿐이다.


혼자 사는 가구를 조금은 독특하게 살아가게 보기도 했었다. 나 역시 부모님의 품에서 독립해서 산 지 3년차가 다 되어 가는데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외롭지 않아?’ ‘먹는 건 잘 챙겨먹어?’ 라는 질문이다. 걱정하는 마음이 이해되는 한편 나는 외롭지 않고 좋은데, 혼자 살면 진짜 좋은데라고 부정하기도 한다. 처리해야 할 일을 혼자서 잘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 불편함은 없다. 이제껏 선택한 것 중 정말 잘한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바로 나 혼자 사는데 위한 행복한 선택이다. (매달 나가는 비싼 월세는 논외)


최소한 1인용 삶을 꾸리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작을지언정 필요한 건 똑같이 있어야 한다. 관계, 돈 관리, 공간 등 고민을 오히려 더 많이 해야 할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런 고민하고 머리 아픈 1인 가구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친절한 안내서이다. 특히 인상 깊은 문구가 있다. ‘고민 안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민을 지금 바로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엄청 고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허비하면서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고민을 제때하면서 해결해 나가면 되는 것을. 빅토리아의 사례와 함께 자기 관리, 생활의 팁이 잘 담겨 있다.


p.50

다시 땅을 딛고 일어서려면, 먼저 내가 넘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마침 가던 길이 고르지 않았을 뿐이다. 흙을 털어내고 일어서면 그만이다.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자기 위로를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결국 혼자서 사는 이유도 있고, 그 선택도 나 자신이 했다. 그래서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졌다고 느껴질 때면 때론 외롭고 힘들 때도 있다. 털어내면서 일어나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p.289

혼자서도 당당히 일어서려면, 나라는 존재부터 잘 알아야 한다. 어떤 행동과 습관이 목표 달성을 돕는 지, 방해하는지 파악하라. 자신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개선할 방법을 모색한다. (중략) 처음엔 싱글 라이프가 여러 옵션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젠 최고의 선택이라고 자부할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욕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인생을 펼칠 수 있으니 말이다.


더 이상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나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려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더욱 나 자신의 브랜딩이 중요해지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확실히 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나 자신에게 훌륭한 주문을 걸고 필요한 조언을 이 책을 통해 얻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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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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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죽음 직전까지 침묵했던 ‘데드키’의 진실은 무엇일까?


1978년 겨울, 오하이오주에는 폐쇄된 은행,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가 있다. 은행 안에는 많은 부유층이 이용하고 많은 귀중품을 수탁한 대여금고가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파산한다. 1,300개의 금고는 그렇게 잠들었고 20년이 지나 건물이 매각되면서 그동안 숨겨져 있던 비밀 이야기가 금고와 함께 열린다.


p.14

그녀의 두 눈은 엄청난 크기의 다이아몬드들을 보고 왕방울 만해졌다. 이건 이제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야. 그녀는 그가 여러 차례 했던 말을 조용히 뇌까렸다. 아무도 이걸 애타게 찾지 않는단 말이지. 이게 여기에 있다는 걸아는 사람조차 없어. 그녀는 다이아몬드를 만져보기 위해 무릎을 꿇으며 떨리는 손을 뻗었다.


은행을 터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도 많이 나온 장면이다. 가까이 있으면서 자주 가는 어쩌면 우리에게 친숙한 은행이지만 그 안에 담긴 비밀스러운 곳을 담아내는 건 수수께끼 풀 듯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게 진행된다. 1978년에 있는 베아트리스와 1998년 아이리스가 시간 속을 교차한다. 


그러나 흥미롭게 전개될 것 같은 이야기는 탐욕과 맞물려 거대한 음모에 빠지게 된다. 2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각각 시간과 전공을 가지고 있는 그녀들이다. 특히 아이리스의 전공은 구조공학자가 되어 숨겨진 공간을 찾아나가는 것은 미로를 찾듯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p.457~458

“저, 마스터키 같은 것이 있지 않나요? 은행들이 마스터키를 보관한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어요?” 은행원은 한 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이제 ‘데드키’는 없어요. 그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정책에 위반되니까요.”

“‘데드키’라고요?” “미안하지만, 이건 이 자리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군요.” 은행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그것들을 ‘데드키’라고 부르죠?”

“금고가 여러 해 동안 이용되지 않으면, 우린 그걸 ‘죽었다’고 해요. 우린 데드키를 이용해 죽어버린 금고를 열고 자물쇠를 바꾸곤 했어요. 당연히 짐작하겠지만, 드릴로 구멍을 뚫는 건 엄청난 낭비이니까요.” “대여금고가 자주 죽나요?” “깜짝 놀랄 정도로 자주요.” 


데드키의 존재는 이름처럼 유쾌하지 않다. 대여자가 대여금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이용하지 못하게 되면 은행은 데드키를 이용해서 죽은 금고를 연다. 만능키라는 말이 있을텐데 왜 데드키라 칭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은 이 곳. 비록 금고는 죽었지만 거기에 있는 재물을 둘러싼 욕심과 이와 관련된 비리와 같은 부정부패,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을 기반으로 한 감정묘사는 잘 그려져 있다.


574의 존재는 무엇일까? 그렇게 반전은 숨어있다. 두꺼운 책이지만 다른 책보다 집중도 있게 읽어가면서 어느 순간 빠져 있는 나를 볼 수 있다. 특유의 스릴러가 가지는 맛과 함께 무엇이든 열 수 있지만 그것이 모든 것의 만능은 될 수 없는 데드키의 존재,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인간의 심리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재미있는 스릴러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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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의 시대 - 일, 사람, 언어의 기록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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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의 시대≫는 그 언어의 기록이다


책의 제목을 듣고 어떤 내용을 담은 책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다만 문자와 관련된 책일까라는 은연한 느낌은 풍긴다. 그렇다면 과연 훈이라는 개념은 무엇이고 도대체 책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리송한 책 제목과 달리 ≪대리 사회≫에서부터 지금의 책 ≪훈의 시대≫까지 김민섭 작가가 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명확했다. 


p.9

‘훈’이라는 개념은 본문에서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요약하자면 ‘규정된 언어’다. 변화를 원하는 한 개인을 가로막는 것은 그를 공고하게 둘러싼 언어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외우고 노래해 온 익숙한 훈들, 그러니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든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든가, 하는 수사들은 개인을 시대에 영속시키는 동시에 끊임없이 지워내 왔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말을 사용을 금지시키려는 강압적인 일본의 정책이 있었다.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우리말과 정신을 말살하려고 했고 자신들의 사상을 주입시키려 했다. 그만큼 언어는 단순히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을 떠나 그 나라의 문화이자, 얼이자 정신이었다.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우리 주변에 가지는 언어의 기록들이었다.


훈계, 훈시, 훈육, 훈화, 훈련, 가훈, 교훈 등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우리는 ‘훈’으로 시작하는 것들을 많이 접하고 자랐다. 책에서는 그런 ‘훈’을 다음과 같은 의미로 정의했다. 집단에 소속된 개인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의 언어, 지배 계급이 생산, 해석, 유통하는 권력의 언어, 한 시대의 욕망이 집약된 욕망의 언어로 보았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으로 집단의 목적을 정의했고 그것을 통해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쳤다.


p.37

예컨대 국가의 경우는 ‘한국인’, 기업의 경우는 ‘○○맨’, 학교의 경우는 ‘○○’인 하는 방식으로 개인이 스스로를 규정하게 만든다. (중략) 조회 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거나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학생은 자랑스러운 ‘○○인’인 동시에 다시 그 가치를 가진 개인으로 환원된다. 그러나 모든 개인이 그런 영광의 순간을 통해 조직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조직은 그 현장의 언어를 개인이 온몸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청한다. 그것이 가장 쉽고 명확하게 한 조직 안에 개인을 귀속시키기 때문이다.


바른 것을 강조했지만 그 안에는 숨겨진 바람이 담겨 있었다. 특히 남고, 여고의 교가를 형태소 분석을 통해 관찰하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여고의 교가 경우 공부하는 학생의 본질보다는 어진 어머니, 바른 여자가 되자는 의미가 많이 담겨있었다. 교가 말고도 단체, 회사에서 ‘훈’이 포함된 것에서 무심코 넘어갔던,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것들에서 우린 나의 본질보다 사회가 바라는 표본상이 되어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p.244

한 개인이 가진 사유하는 힘은 그 누구도 검열하고 통제할 수 없다. 어느 공간에서 타인의 몸으로 존재하며 제한된 말을 하게 되더라도 자신의 사유를 지켜낸다면 그 공간에서 대리인간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편해하고 물음표를 가져야 한다.


시작하는 시대가 흐르면서 한 쪽으로 치우쳐진 것들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자신을 사유하는 힘으로 온전히 자신을 그려나갈 수 있을 때라는 것이다. 누구의 대리인도 아니고 어떤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 우리는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내 주변을 둘러싼 훈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것을 지배하고자 했던 언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 언어의 힘과 다양성, 작가의 면밀한 관찰력이 잘 담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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