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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 사진관 - 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네오픽션 / 2011년 11월
평점 :
고등학교 졸업앨범은 짧지 않은 내 인생에서 없애고 싶은 1순위 목록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 사진 찍기를 싫어했다. 치아교정기를 끼고 범생 포스 풍기는 두꺼운 안경을 쓴 모습에, 내 스스로 적잖이 실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의 내 얼굴은 소녀와 소년 사이, 소녀와 여성 사이에 끼인 채 어딘지 모르게 위태해 보였다. 명문대 입학은 꿈도 꿀 수 없는 성적표를 손에 쥔 소녀에게 미래는 결코 핑크빛이 아니었다. 졸업앨범 속 나는 울고 있었다. 물론 진짜 울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시절을 20년 전으로 흘려보낸 내 눈에는, 찡그린 19살의 소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고 볼에는 눈물길이 그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 속의 소녀는 울고 있었다.
독특한 취향을 가진 괴짜 부모님 덕에 폐점한 낡고 오래된 고구레 사진관으로 이사 온 16살 소년 에이이치가, 고등학교 졸업앨범 속의 내 사진을 봤다면 아마도 사진 속 소녀가 울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의 이상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심령사진의 비밀을 밝혀줬듯이 그때의 내가 사진 속에서 울고 있는 이유도 밝혀줬을지도 모른다. 미야베 미유키의『고구레 사진관』(전2권)은 고구레씨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도는 사진관으로 이사 온 에이이치가 우연히 심령사진에 얽힌 비밀들을 풀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설정만 봐서는 미미여사의 새로운 소설은 고스트 헌터식의 공포 소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유령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진관’의 기능에 맞춘 심령사진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 소년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디딤돌 삼아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정리하면 이 책은 가슴 따뜻한 이야기에 약간의 미스터리를 섞은 성장소설이다. 심령사진 역시 흔히들 알고 있는 유령이 찍힌 사진이 아닌, 피사체의 마음이 찍혀있거나 피사체와 관련된 이들의 슬픔이 형상화된 사진들이다.
일순 사진에 마음이 찍힐 수 있을까에 의문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내게 사진은 과거의 모습을 확인시켜주기에 앞서 그때 가졌던 내 마음을 상기하게 만드는 단서와 같았다. 과거의 시간 속에 봉인한 기쁨과 슬픔, 증오의 감정들이,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사진으로 인해, 때로는 몇 년 만에 펼쳐본 낡은 책에 책갈피처럼 끼워진 사진 때문에 아무 예고 없이 현재의 시간 속에서 되살아났다. 이 같은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본 이들이라면, 사진에 찍힌 것은 젊고 촌스러운 자신의 과거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그때 찍힌 것은 우리들의 마음이었다. 다만, 그 마음이 시간 속에서 아름답게 퇴색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는 자신으로 인한 누군가의 슬픔과 분노, 원망으로 사진이 흉측하게 늙어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 소년이 의뢰받은 사진들도 그런 것이었다. 전2권에 걸쳐 총 4개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는데, 소년은 괴짜 부모님만큼이나 괴짜 취향의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심령사진이라 불리는 이상한 사진에 얽힌 슬픈 비밀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에이이지 가족의 슬픔도 수면 위로 드러난다. 에이이치에겐 후코라는 여동생이 있었다. 그러나 에이이지가 10살 때, 4살배기 후코는 바이러스성 감기에 걸려 돌연 죽음을 맞이했다. 그 당시 막내 동생 피카는 두 살이었다. 후코의 죽음은 6년이 지났어도 에이이치 가족에게는 결코 과거가 될 수 없는 현재진행형 슬픔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에이이치가 고구레 사진관을 전혀 개조하지 않고 이사 왔기 때문에 심령사진 사건에 얽혀 들어가는 것만 같다. 그러나 평범했던 소년이 심령사진의 비밀을 밝히는 이유는 여동생 후코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때문이다. 고구레씨의 유령이 출몰한다는 괴담이 헛소문이라고 단정하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태도 역시 같은 이유로 해석된다. 슬픔이 너무 크면 사람들은 그 슬픔을 모른 척하며 무의식에 봉인해 두기도 한다. 소년은 화재로 몰살한 한 가족의 사진에 찍힌 공중에 붕 떠 있는 여자의 우는 얼굴을 통해, 내면에선 여전히 자신도 울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첫 번째 사건이기도 여자의 우는 얼굴 사진은, 종교 문제로 이혼할 수밖에 없던 여자의 슬픔이 이혼한 남편의 가족 모임 사진에서 생령의 형태로 찍힌 것이다.(생령이란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이 유체이탈 해 현실에 나타난다는 일본 전통 괴담) 여자는 종교문제로 인한 시부모와의 갈등으로 어쩔 수 없이 이혼했지만 누구도 원망하려 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혼한지 얼마 안돼서 남편을 포함한 남편 일가족이 화재로 죽자, 이혼으로 인한 자신의 슬픔과 분노를 표출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다. 그녀는 전 남편의 영정 사진 앞에서도 울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 친척에게서 발견된 사진에서 여자는 유령의 모습으로 울고 있었다. 여자의 우는 얼굴은 에이이치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했다. 여동생이 죽었지만 그 슬픔을 가족 앞에서 표현할 수 없었던 소년의 불안한 내면은 여자의 우는 얼굴에 포개진다.
이런 식으로 주인공 소년은 괴짜 친구들과 조숙한 천재소년인 막내 동생 피카와 함께 억지로 의뢰 받은 심령사진 사건에 찍힌 누군가의 슬픔과 원망을 정화해 나간다. 여기서 정화는 사진에 찍힌 슬픔의 당사자들의 이야기나 사연을 에이이치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상처와 원망이 옅어진다는 의미다. 아픈 자신을 돌봐주느라 엄마가 누나인 후코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 그때 누나가 죽었다고 믿는 피카의 죄책감과 후코를 잃고 친척들과도 연락 끊고 사는 부모님의 아물지 않은 상처도, 고구레 사진관으로 이사 온 뒤로 에이이치의 망막에 선명하게 찍히기 시작한다. 웃고 있지만 속으론 울고 있는 가족의 얼굴을 보면서 에이이치는 가족의 또 다른 의미와 그 슬픔을 감싸 안는 방법도 서서히 알아간다. 무엇보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응어리진 상처도 함께 치유해 간다. 성장은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설사 그 슬픔이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가족의 죽음일지라도, 그것을 삶의 의지로 재해석할 때 내면의 성장은 따라온다. 소설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을 비교해보면 소년이 얼마나 훌쩍 컸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한 기억 때문에 자살중독증에 걸린 부동산 직원 가키모토 준코와의 첫사랑과 갑작스런 그녀와의 이별도 받아들이는 소년의 모습에서, 읽는 이는 슬픔이 타인의 슬픔과 만날 때 옅어진다는 삶의 지혜를 자연스레 배운다.
고구레 사진관을 무대로 한 미미여사의 소설은 기존에 나온 그의 소설과는 분위기가 180도 다르다. 여전히 몰입도 높은 이야기로 읽는 이를 흥분시키지만, 살인 같은 자극적인 소재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귀신도 없다. 고구레씨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뚜렷한 결말을 짓지 않고 있다. 죽은 이가 우리 곁에 언제나 함께 있음을 믿고 싶은 이들에게 죽음이 이별의 다른 말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선에서 마무리 된다. 그 대신 귀신의 원한보다 깊은 슬픔을 가진, 그래서 더욱 가슴 따뜻하고 사랑스런 사람들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심령사진의 비밀을 푸는 주인공 에이이치에게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이나 형사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장르소설의 긴장감을 유지해 나간다. 반면 중일전쟁과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사진사 고구레씨의 삶을 에이이치가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에 함몰되지 않고 이어지는 개인의 역사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준 이유임을 알 수 있도록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이는 미미여사의 이번 작품이 단순히 주인공의 내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자신에게 이입해보는 과정을 유도해 읽는 이의 내면까지 성장시키는 소설임을 말해준다.
어쩌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된 사진 속에 담긴 우리의 얼굴은 웃고 있어도, 실상은 울고 있는 모습일지 모른다.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리 대답할 것이다. 그 사진이 진실로 아름답고 기쁜 추억의 사진이라며 책상 서랍이나 보지 않는 책 속에 그렇게 오래 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 사진에는 자신에게 이별의 상처를 준 누군가의 웃는 얼굴이,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의 얼굴이, 혹은 죽어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누군가의 얼굴이 담겨 있을 것이 분명하다. 장난스레 말한다면 성형수술하기 전의 과거의 못난 얼굴이 사진 속에서 지금의 자신을 비웃듯이 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년 전의 졸업앨범 속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혹시나 지금은 웃고 있는지 궁금해, 오랜만에 셀카를 찍어본다. 사진 속의 나는 20년 전의 내가 아닌데 여전히 울고 있다. 분명 웃는 얼굴로 찍었지만 당사자인 나는 알 수 있다. 지금의 내게도 미래는 아직 핑크빛이 아니다. 그렇다고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우물 같은 슬픔에 갇힐 생각은 없다. 이 슬픔이 지금의 나를 살게 만드는 삶의 의지로 재해석되기에 말이다. 지금도 성장 중임을 확인하고 싶어 사진에 찍힌 내 슬픔을 가만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