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끼나와 이야기 - 또 하나의 일본
아라사끼 모리테루 / 역사비평사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다음주에 있을 오키나와 여행을 위해 급히 읽었다. 그것도 책을 산지 무려 17년만에. 내 게으름이 가장 큰 원인지지만, 나름 좋은 책을 일찍 사뒀다라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ㅎㅎㅎ

오키나와, 즉 류큐 왕국은 고대 한반도와 직접 교류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고려시대까지 그 흔적은 많지 않다. 오히려 조선 시대에 조공을 바쳐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조선에게는 중국만이 있을 따름이지 류큐같은 오랑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류큐와 직접 교류를 한 나라는 역시 중국과 일본이었다. 중국과는 조공 외교를, 일본과는 경제.문화적 교류를 이어왔다. 그러다 17세기 경 일본 사츠마번의 침략으로 대등한 교류는 끝나고 일본에 종속되기 시작했다. 이는 메이지유신과 함께 더욱 심해졌다. 결국 일본의 작은 현이 되어 태평양전쟁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본토를 위한 전쟁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한 오키나와의 인적, 물적 피해는 막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오키나와를 미국에 일임하고 나몰라라 했다. 미군정은 오키나와 미군 기지를 동아시아 반공의 보루로 삼아 여러 미군 기짇들을 건설했다. 본토의 외면 속에 오키나와인들의 피해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이만전만 아니었다. 결국 오키나와인들의 줄기찬 투쟁 끝에 1972년 오키나와는 미군정에서 일본의 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것은 또다른 시작을 의미했다. 일본의 0.6%에 해당하는 땅에 재일 미군기지 전용시설 75%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키나와 문제는 또다른 차원의 해결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눈을 국내로 돌리면 오키나와 문제가 결코 일본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을 동등한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주둔군 지위협정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런 점에서 오키나와는 우리가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오키나와 여행을 준비하다 잔뜩 비장함만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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