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백년손님 - 벼슬하지 못한 부마와 그 가문의 이야기
신채용 지음 / 역사비평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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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손님이라 불리는 ‘사위‘는 늘 그렇게 편하기만 자리는 아니다. 처가에 가면 딱히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기 일쑤지만 그것 역시 고되다. 비록 며느리의 역할에 비하면 쉬운 일일지 몰라도.

신분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조금 다른 역할의 백년손님이 있었다. 왕의 사위 즉 ‘부마‘였다. 원래 부마란 임금의 수레를 모는 말을 담당하는 관직이었다. 그런데 그 관직을 주로 공주와 혼인한 사람이 맡게 되면서 부마라는 명칭이 왕의 사위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듯이 부마 역시도 다양한 인간상들이 존재했다. 연산군의 음행을 부추겼던 임숭재가 있었던 반면 숙종의 신임을 듬뿍 얻은 효종의 부마 정재륜이란 이도 있다. 대체로 이들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전문 역사가들은 인지하고 있겠으나 대중에게는 생소한 존재들이다. 나 역시도 현재 거주하는 곳에 살지 않았다면 인근에 있는 동래 정씨와 정재륜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저자는 부마에게 눈길을 주었을까?

사실 왕실의 종친들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자손들도 4대가 지나야만 양인으로서 과거 응시가 가능하다. 반면 부마의 경우 본인을 제외하면 누구든 관직에 나아갈 수 있다. 본인 역시도 왕실의 친척으로 궁궐 출입이 가능했으며 종종 정치에 개입하여 여러 상황들을 조성하였다. 결국 부마와 그의 가족들은 왕의 측근이 될 가능성이 큰 존재들이었다. 실재로도 그랬고.

위에 소개한 정재륜의 경우 효종의 부마였으며, 현종의 매부이자 숙종의 고모부였다. 그는 적절히 정치에 개입하여 숙종의 뒤를 봐주었으며 청에 대표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 그의 무덤이 수리산 자락에 있다. 그는 슬프게도 아내 숙정공주가 24살에 죽었지만 자신은 일흔을 넘게 살았다. 재혼도 못했고, 아들도 없었으며, 양자도 일찍 죽었다.

부마는 왕에게 궁궐을 나간 대군들보다 가까운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이들을 무관심하게 버려둘 수는 없어 보인다. 역사를 정치사 위주로만 보는 단점이 생길 수도 있으나 이 주제는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데 의미가 있다.

내용을 떠나 이 책의 기획이 마음에 든다. 이런 시각을 가진 이들의 저작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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