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
이광수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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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공격적인 책이었다. 저자 이광수 교수는 설화와 허구가 뒤섞인 허왕후 이야기에 대해 가차없었다. 특히 그가 비판하는 논자들에 대해서는 실명과 그의 저작들을 거론하여 날을 세웠다. 가끔 읽는 이도 부담스러워지긴 했으나 저자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로 한국에서 ‘인도에서 온 허왕후‘이야기를 주도한 인물은 한양대 고고학 교수 김병모였다. 물론 <삼국유사>를 통해 접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피상적인 것이었다. 그의 화려한 언론플레이를 통해 비전문가들은 허왕후가 어떠한 이유와 경로를 통해 가야에 오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주장에 허구가 많다. 두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하나, 그는 허왕후가 고대 인도의 아유타국(아요디야)에서 왔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의 인도에는 아유타국이 없었다. 둘, 수로왕릉의 쌍어문이 인도와의 교류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수로왕릉의 쌍어문은 그려진지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쌍어문은 불교만이 아니라 힌두교에서 주로 사용하며 인도 전역에서 사용된다(아유타국만 아니라). 심지어 동남아 국가에서도 그려진다고 한다.

김병모 교수에게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허왕후 설화의 최대 작사가는 사원이었으며, 그 다음은 양천 허씨 가문이었다. 먼저 전자는 사찰 비즈니스를 위해, 후자는 가문의 현창을 위해 설화를 날조하고 왜곡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있는 신화의 전부다. 아니 지금도 그 신화는 확장되고 부풀려지고 있다. 허왕후가 인도에서 올 때 파사석탑을 가져왔다거나, 오빠(혹은 남동생) 장유화상을 데리고 왔다거나, 아들 열 둘과 딸 둘을 낳았다거나, 그중 딸 하나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을 지배했다거나, 남방불교를 가져왔다거나, 아들 중 두 명은 허씨 성을 쓰게 했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후대로 갈수록 설화에 살이 덧붙여져 그녀는 신비로움이 더해지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양상의 허왕후 이야기가 국경을 넘어서까지 왜곡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십 수년 전부터 허왕후 설화는 한국에서 인도로 수출되고 있다.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두 나라 정부(혹은 두 이익세력)는 허왕후 설화를 매개로 자신들의 정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이용했다. 아울러 사이비역사학이 창궐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화는 장구한 시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장이다. 신화는 특정 시대의 사람이 어떤 시건을 두고 비이성적으로 해석해놓은 이야기들을 모은 것이다.˝ 따라서 신화의 역사화는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단군신화나 고구려건국신화는 쉽게 믿지 않으면서 허왕후와 관계된 설화는 큰 의심없이 받아들인 경향이 있다. 저자는 이를 한 학자와 황색언론(조선일보) 탓으로 돌린다.

이 책을 읽으며 역사학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역사의 역할이 무엇일까?

단! 이 책이 완벽한 해설서가 되지는 못한다. 그것은 한국고대사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관련 사료가 너무 없기 때문에 저자의 추론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글을 읽다보면 저자의 합리적인 듯하지만 무리한 추론도 제법 나온다. 그것은 사이비역사학자들와 사찰 설화에는 더 강하게 나타나는 듯하다. 명료한 대답을 내놓기 힘든 한국고대사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진 제목
1. 허왕후와 김수로왕
2. 김수로왕릉(납릉)의 쌍어문
3. 파사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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