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수도원을 찾았을 때 신부님이 마당까지 마중을 나오셨지요. 길 끝에 온통 흰 사람이 서 있었어요.
제가 길을 다 걸어 앞에 도착할 때까지 저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으셨어요. 보통은 괜히 이쪽저쪽을 한 번씩 보게 되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우리는 멋쩍어져서요. 한 사람을 오래 응시할 수 있으려면 마음이 단출하고도 단단해야 할 거예요. 그때 당신의 모습은 네귀를 조약돌로 단정히 누른 백지 같았어요. 이후 저는 누구를 기다릴 때면 그 잠잠한 시선을 떠올리며 자세를가다듬습니다. 펄럭이지 말자, 다짐하면서요.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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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팍하리만치 도도한 정념은, 지금에 대한 완전한 몰두에서 만들어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는 것도, 자신을 해하는 것도 그렇다. 뜨거운 존재들이 견디고 있는 것은 ‘지금‘이라는 시간이다.
나는 그들 앞에서 얼마쯤 열등하고 어정쩡한 사람이다. 내게는 뜨거움이 부족하다. 늘 지금을 건너 서늘한 미래에 더 오래 시선을 둔다. 탄 나무의 흉터와 8월끝에 나란히 누워 죽은 매미 두 마리와 불꽃보다 더 높은 공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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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의 연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그 사람들인지 ‘나인지 제가 한 건지, 아니면 ‘우리들인지 ‘다른 사람들인지 알자고 토론할 생각은 없어요. 언제나 우리니까요.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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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말은, 그가 힘주어 말했다.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억되거나 발견되는 거야. 내가 어떤언어를 간절히 원했던 순간을 기억하거나, 그 간절함이 생겨나는순간을 발견해서 내 말로 삼는 거지. 그러니까 내 말들은 어원을 잃는 법이 없어. 최초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그 위에 다른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말 속에 삶이 깃드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때로는 뜻을 알 수 없는, 그저 표현으로 먼저 생겨난 말도 있고, 가끔 아주 외설적인 말도 튀어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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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란 게, 하고 그가 말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그동안 난 쉴새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해왔는데, 그 말을 사실 나도 듣고 있었던 거지. 그런 의미에서 말은 순수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되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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