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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섬 : 나의 투쟁 4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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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젊은 거장인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자신의 유년기를 소설로 담았다. 나의 투쟁 4 유년의 섬은 그 이전의 저작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꾸민다. 1권은 아버지의 죽음, 2~권은 연애와 결혼과 같은 어른의 세계에 주목했다면, 이번 책은 그의 순수하고 힘이 넘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았다. 덕분에 다른 책을 읽지 않아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뮨재 없었다. 오히려 어른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유년의 삶을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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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삶에 대한 그의 묘사는 노골적이라고 할 만큼 사실적이다. 유약하다고 할 만큼 눈물을 자주 흘리고 양심의 가책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서 어리숙함을 볼 수 있다. 그리곤 어린 시절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의 행동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젠 종교에 심취해 을 근절하고자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포르노 잡지를 보고, 어떨 땐 바위섬에서 불장난을 하거나 지나가는 자동차에 돌을 던져 차를 망가뜨리는 위험한 장난도 서슴지 않다. 여성스럽고 섬세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무대에서 락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들은 유년이기에 가능했던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보는 것 같았다. 스테인드글라스 마냥 다양한 색채를 보여주는 것이 유년의 삶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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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유년기의 삶이 항상 낭만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의 적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존재는 동양 고유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노르웨이는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일어난 다른 유럽국가보다도 빠른 시기인 1913년에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그 국가조차도 가부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아버지는 폭군 그 자체였다. 그는 아버지를 증오했다. 아버지는 집 안에서 자신이 세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화부터 내고 보았다. 그는 여러 금기 사항으로 자식들을 통제하는 엄격한 가부장적 인물이었다. 칼 오베는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상한 우유를 억지로 마셨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아버지도 같이 우유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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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우유가 상했잖아! 에잇!”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어쩐 일인지 아버지의 눈빛은 내가 짐작했던 것처럼 화를 내는 눈빛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눈빛은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맞닥뜨렸을 때 볼 수 있는 의아함과 놀라움을 담고 있었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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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가 부모로서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아들이 왜 상한 우유를 참고 마셨는지 생각했어야 했다. 그는 아들이 자신의 눈치를 극도로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반성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행동을 고치고 억압과 강압이 아닌 사랑으로 자식을 보듬어줬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멍청했다. 그는 아들의 입장을 헤아리지도 못한 채 행동을 고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생각하지 못함이 불러놓은 악이란 말인가? 그나마 다행인 건 칼 오베는 가부장을 재생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식들을 사랑한다. 아이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행히 자식은 아비를 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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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바쁠 대학교 3학년, 지금의 삶을 챙기느라 바쁜 나머지 과거의 일을 다시금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이미 의미를 상실한 것만 같은 유년의 삶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어렵다. 그때 그 시절 난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봤지만, 단지 깨져버린 유리조각 마냥 굴러다니는 파편만 남아있다. 그것들을 모으면 아름답게 꾸며진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 수 있거나 괴이한 작품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본래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르는 유년의 삶은 극단의 대칭이 이뤄진 천칭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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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유년의 삶을 떠올려봤다. 그다지 기억나는 건 없다. 기억난다고 해도 추억거리라고 할 만한 건 극히 일부만 남았다. 난 칼 오베와 상당히 닮아있다. 성격은 유약했고 잘 울었다. 소위 비행 청소년들의 손쉬운 표적이었고, 폭력에도 쉽게 노출되었다. 지금은 그다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들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는 건지,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지워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다만 알 수 있는 사실은 그 경험이 모든 극단을 피하고 중용을 지키고자 하는 나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폭력을 동원하는 행위 대부분에 거부감을 느낀다. 친구 중 몇몇은 이런 나의 가치관에 답답해하고 나를 회색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난 이런 내가 싫진 않다. 부족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겪어오며 만들어진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칼 오베가 아버지를 통해서 아비의 역할을 깨우쳤던 것처럼, 나 또한 폭력의 위험성을 그들로부터 배웠을 뿐이다. 난 이렇게 만들어진 나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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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칼 오베와 달리 내 유년기에 아름다운 스테인그라스를 남겨준 부모님의 사랑에 깊은 은혜를 느낀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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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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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그를 논란의 중심에 있도록 만든 악의 평범성이 처음 언급된 책이기도 합니다. 그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유명합니다. 아이히만은 1939년에 전쟁이 발발하자 유대인 이주를 담당하는 제국중앙보안본부에서 근무했으며 강제이주를 위한 방안을 구상했습니다. 유대인 집단 학살인 최종 해결책을 효과적으로 이뤄졌고 덕분에 수백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은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에서 나치는 유대인의 법적 인격을 파괴했고, ‘도덕적 인격을 뿌리 뽑았으며, 인간의 저항 능력을 박탈함으로써 개성자체를 말살했습니다. 유대인은 나치에 의해 인간이기를 포기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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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은 단지 상급자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변명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가 형량을 줄이고자 하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렌트는 달랐습니다. 역사의 객관적인 법칙을 찾기보다는 개별적 사건의 보편적인 의미를 밝히고자 한(이야기하기 방법) 아렌트는 그의 증언과 삶을 통해서 한 가지 치명적인 교훈을 찾았습니다. 바로 말과 사유를 무시하는 무시무시한 악의 평범성이란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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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에게 악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평범한 악을 일으킨 무사유는 무슨 의미인가요? 기존 철학적 전통은 악의 근원을 자만심과 질투심, 증오심, 탐욕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그 그곳에서 비롯된 악을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며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과는 다른 초월적인 악마성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렌트가 마주한 것은 기존의 악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천박했습니다. 틀에 박힌 기계적인 사고, 정형화되고 상투적인 문구밖에 사용할 줄 모르는 아이히만은 멍청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의 악은 근본적 동기에서 일어나는 악이 아니었습니다. 무사유에서 비롯되고 멍청할 뿐만 아니라 그 동기 자체도 진부하기 그지없는 악은 최종해결책(유대인 학살작전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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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는 진리를 찾고자 하는 지성적 활동과는 다릅니다. 사유를 나와 나 자신의 소리 없는 대화라고 정의한 아렌트는 사유가 언어를 매개로 진행된다고 말합니다. 나와 내 친구는 대화를 통해 우정을 재확인합니다. 고독 속에서 이뤄지는 사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유는 (현상에서의)나와 (정신에서의)나 사이의 대화이며 친밀감과 우정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나와 나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다를 경우 자기모순이 발생합니다. 그 예가 양심의 가책입니다. 하지만 이 양심의 가책마저도 없다면? 자기모순 자체를 폐기하고, 나와 나 자신과의 대화 자체를 단절시켜 상대방을 이해하고 연민하며 동정하는 모든 과정 자체를 포기한다면 어떨까요? 친구 둘이서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를 건전한 우정이라 볼 수 없듯이, 나와 나 자신의 자기모순 과정을 버리고 폭력을 지향하는 것은 참된 우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와 대화하지 않는 무사유이자 악의 평범성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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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찬주 전 대장의 발언을 통해 그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악을 보았습니다. 자기와 병사의 관계를 마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비유하며 불공정한 명령을 정당화했습니다. 자신의 처가 저지른 폭력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변명했으며, 군의 위계질서를 들먹이며 갑질을 합리화했습니다. 종국에는 삼청교육대가 지닌 이유도 모른 채 군인권센터장인 임태훈씨가 그곳에 가야 한다고 말하며 논란만을 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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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이 군대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느냐.”는 임태훈씨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멍청하기 짝이 없습니다. 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이 난민일 필요는 없으며, 여권을 옹호하는 사람은 여성일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군인의 권리를 말하는 사람은 군인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임태훈 소장은 아렌트의 의미에서 사유하는 인간입니다. 그는 입대하지 않았으면서도 성소주자와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군인들의 인권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는 나와 나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군인들의 처지를 생각했고, 비난에 대해 정치적 행위로 응수하는 인간입니다. 반면 박찬주 전 대장은 삼청교육대가 초래한 악행을 고려하지 않으며 군인이 사용할만한 상투적인 언어를 사용해 사유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그의 사유를 장악한 것은 20세기 군부독재 시절에나 어울릴 질서이며 반공 이념입ㄴ다. 사유하지 못하는 사람이 정치영역에 들어선 순간 공적영역은 파괴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정치영역은 무사유적 인간의 등장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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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정치영역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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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 - 정치의 존재이유는 자유다 인문고전 깊이읽기 9
홍원표 지음 / 한길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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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구성

 

한길사의 인문고전 깊이읽기시리즈 중 아렌트는 아렌트 사상의 핵심을 가장 깔끔하고 정교하게 설명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의 저자이자 아렌트 권위자이신 홍원표 교수님은 아렌트 정치사상에서 자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중점으로 저술하셨습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계기로 사유하지 않음이 초래한 악의 평범성, 그리고 파괴된 정치영역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활동적 삶에서 정신의 삶으로 관심 분야를 넓혔으며, 사유하는 능력의 정치적 성격을 부각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아렌트의 작업을 통해서 홍원표 교수님은 아렌트 사상을 잇는 외올실정치적 사유로 보았습니다. 이 책은 말하는 능력에서 비롯된 사유능력이 정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다원적 세계를 유지하여 전체주의 공포를 해소하고자 한 아렌트의 사상적 노력이 무엇인지, 최종적으로 정치의 존재 이유인 자유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이렇듯 제1장에서는 정치적 사유에서의 사유의 의미를 파악하고, 2장 활동적 삶에서는 인간의 조건과 조응하는 노동, 작업, 행위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행위를 발현할 수 있는 공공영역이 소멸했다는 점을 말한 뒤, 인간소외의 문제점을 직시합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활동적 삶이 이뤄지는 현상세계와 구분되는 정신세계를 분석하고, 이곳에서 이뤄진 정신의 삶을 서술합니다. 정신의 삶인 사유, 의지, 판단은 인간의 자아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언어를 매개로 나와 나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의미를 추구하는 사유, 정신활동에 머물지 않고 각기 다양한 상황에서 적절한 행위를 선택하고 추진하는 의지, 과거에서 의미를 회복하게 하고 과거를 넘어선 확장된 정신으로 나가게 하는 판단 작업을 통해서 현상세계에서 정치영역을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을 역설합니다. 4장 새로운 시작에서는 인간의 조건에서 핵심이라 볼 수 있는 탄생성, 즉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인간은 탄생을 통해 세계에 우연히 등장하게 되었고, 언어 행위와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작입니다. 5장에서는 자유를 정치의 존재 이유로 규정합니다. 새로운 시작에서 제시되었다시피 인간은 자신만의 정치적 사유를 근거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실천할 수 있을 때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즉 새로운 시작은 이사야 벌린이 구분한 자유 개념 중 적극적 자유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흔히 주류 정치학인 자유주의가 표방하는 자유 개념은 ‘~으로부터의 자유즉 간섭으로부터의 자유인 소극적 자유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아렌트는 인간의 자유를 새로운 시작, 즉 자신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정치적 자유를 보았기 때문에, ‘~로의 자유자기 결정권이란 의미에서의 적극적 자유를 추구합니다. 전통적으로 적극적 자유는 공화주의 이론가들의 자유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인간 개념을 물려받은 한나 아렌트는 정치에서의 적극적 자유를 회생하여 공화주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이후 6장에서는 정치에서 정당한 권력은 오직 민주주의적 가치를 기반으로 시민의 동의에 있다고 말합니다. 권력자의 자의적인 힘, 즉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규정한 독재자들의 힘은 폭력으로 해석하며 시민적 힘인 권력과 구분합니다. 7장에서는 혁명의 폭력적이고 정치적 속성을 부각하며, 정치영역을 새롭게 만들어낸 미국의 독립혁명 정신을 강조합니다. 8장에선 우연성을 담보로 한 정치적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에, 책임과 용서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9장에서는 인간 소외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사랑으로서 후마니타스를 제시하고, 10장을 통해 정치영역을 훼손하고 인간소외를 악화하는 이데올로기와 거짓말 정치를 경고합니다.

 

2. 책의 특징

 

올해 퇴임하신 홍원표 교수님은 아렌트 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많은 아렌트 저서들을 번역하신 한나 아렌트의 전문가이십니다. 교수님께서는 최근 아렌트의 유작이자 미완의 저서인 정신의 삶: 사유, 의지를 번역했으며 거기에서 중심 개념인 정치적 사유를 통해 아렌트 사상을 외올실로 잇고자 하십니다. 다른 서적을 확인해보면 대부분 아렌트의 정치사상을 인간의 조건에서 제시된 활동적 삶, 혹은 사유를 악의 평범성에 한정 지어 소개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 이후 관심 분야를 사유하는 정신의 삶으로 옮겼으며, 사유하지 않고 저지르는 활동들은 정치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간의 조건아렌트는 노동, 작업, 행위라는 활동적 삶이 균형을 이뤄지는 경우에만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노동이란 가치만이 중시되고 다른 활동은 터부시되고 있습니다. 결국, 아렌트는 현대사회를 노동하는 동물의 승리로 규정하며, 활동적 삶만 가지곤 공적 영역을 재활성화할 수 없다고 간접적으로 인정합니다. 인간의 조건말무리에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활동적이며, 그가 혼자 있을 때 가장 외롭지 않다.”라는 카토의 말을 인용하여 사유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활동적이라는 정신의 삶의 기초적 구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유하는 사람이 가장 활동적일 수 있을지 둘째 치더라도, 활동적 삶과 정신의 삶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요? 활동적 삶은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현상세계에서 이뤄지며, 정신의 삶은 저 너머의 세계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의 삶이 단지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홍원표 교수님은 아렌트의 시적 은유를 강조합니다. 아렌트 책을 읽어보면 정신과 현상의 심연’ ‘어두운 시대그리고 사유는 카드게임과 같다라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도처에 있습니다. 아렌트가 어린 시절 시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아렌트는 자신의 저작 곳곳에 시적 은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홍원표 교수님은 은유 정신의 삶과 활동적 삶을 잇는 징검다리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은유를 활용한 이야기하기서술 방법을 통해서 아렌트는 역사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도출합니다. 전체주의를 어두운 시대라고 표현하고 베트남 전쟁을 위기라고 표현한 것이 바로 그 예입니다. 역사로부터 도출한 보편적 의미를 통해서 정치적 행위, 실천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긍정했습니다. 아렌트는 은유와 정치적 사유를 자유로운 대화와 소통이 이뤄지는 공공영역을 강화하고, 우정의 대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인 후마니타스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이처럼 홍원표 교수님은 아렌트의 사상적 족적을 후기 저작인 정신의 삶의 사유를 중심으로 아렌트의 사상을 서술한다는 점에서 가장 아렌트를 철저히 해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렌트의 사상은 쉽게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아렌트의 청사진을 정치적 사유란 외올실로 잇기 때문에 아렌트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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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진실 - 우리는 어떻게 팩트를 편집하고 소비하는가
헥터 맥도널드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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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들어진 진실

2016년 옥스퍼드사전이 선정한 세계 단어는 ‘탈진실(post-truth)’이다. 탈진실이란 “진실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대중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는 현상”을 말한다. 즉 명확한 사실 전달보단, 정치와 경제 이익을 위해 조작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Facebook, 유튜브와 같은 SNS는 개개인의 물리적 거리를 해소하여 모든 것을 탈(脫)거리화 했다. 덕분에 무분별한 정보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직간접적으로 다가온다. 더는 진실과 거짓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다. 사실(Fact)은 사람들 입맛에 맞춰지고, 가짜는 진실이란 탈을 쓴다.

가짜조차 완전히 가짜라고 말할 순 없다. 각 개인은 생물학적 본능이나 사회적 배경에 의해 각기 다른 렌즈를 갖는다. 이 렌즈는 객관적 현실을, 주관적인 것으로 둔갑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현실’ 속에서는 일종의 ‘확증편향’이 자리 잡는다. 확증편향이란 새로운 진실이 기존의 사고방식과 일치하면 잘 받아들이고, 이와 대치되면 저항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내 의견은 자신의 신념과 받아들인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다. 진실이 나의 소신과 대치될 때는 버려지며, 거짓된 정보라 하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면 수용된다. 즉 팩트에서는 여러 진실을 끌어낼 수 있으며, 각기 다른 진실은 서로의 목적에 의해 수용된다. 『만들어진 진실』은 진실이 하나뿐이라는 편견을 걷어내고, ‘경합하는 진실’이 만들어낸 각기 다른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경합하는 진실이 만든 조작된 현실을 진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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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팩트와 경합하는 진실

2016년 유니세프는 전 세계에서 1년도 살지 못한 채 죽은 아이들이 대략 420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많은 사람은 많은 아동이 쉽게 목숨을 잃고 그 수가 400만 명이 넘어선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 통계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아동들의 생존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또 다른 진실이 숨어있다. 15년도에는 440만 명이, 그리고 14년에는 450만 명의 아동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1950년에는 1,440만 명이 사망했다. 단 하나의 수치만 놓고 봤을 땐, 그것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그 수치를 관련 있는 다른 수와 비교하면 정반대의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즉 420만 명이란 수는 1,440만과 비교했을 때 현격히 적다.

이 자료는 팩트다. 2016년에 440만 명이 죽었다는 것도, 그 수가 계속 줄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료를 근거로 제각기 다른 판단을 내린다. 어느 시민단체는 유아의 사망률을 더욱 낮춰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며, 어느 정치인은 충분히 줄었으니 그 예산을 다른 곳에 투자해야 함을 역설(力說)할 수 있다. 이 중 누구도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단지 자료를 근거로 자신이 믿는 진실을 만들었다. 이 진실이 바로 ‘경합하는 진실’이다. ‘경합하는 진실’이란 팩트에서 여러 진실을 끌어낼 수 있고, 그 진실에 합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경합하는 진실은 자신이 지각하는 현실을 구성하며 자신의 모든 선택과 행동을 결정한다. 정보 발언자들은 자신들의 렌즈를 이용해 자료를 편집했다. 진실의 일부 만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지지자들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였다. “노련한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현실을 재구성하기 위해 온갖 분야에서 편집된 진실이나 숫자, 스토리, 맥락, 바람직함, 도덕성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진실’은 완전무결할 수 없다. 그 진실은 ‘부분적’이며, 정보 제공자의 ‘주관성’에 의존하고, 목적에 의해 ‘인위적’이다.

저자 헥터 맥도널드는 경합하는 진실을 근거로 하여 정보를 생산하는 자들을 3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옹호자’는 건설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합하는 진실 중에서 정확한 현실 인식을 만들어낸다. 악의는 없지만 경합하는 진실 중에서 의도치 않게 현실을 왜곡하는 사람은 ‘오보자’이다. 그리고 사회에 치명적인 해악을 제공하는 사람은 ‘오도자’이다. ‘오도자’는 자신의 진실이 잘못된 현실 인식을 만들어낼 것을 알면서도 추진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팩트에 근거한 거짓말을 자행한다. 저자는 오도자들이 진실을 편집하는 31가지 방법을 나열한다. 즉 오도자들이 우리를 속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완벽히 소설로 쓰인 가짜뉴스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팩트가 왜곡된 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에 ‘노련한 사람’들은 확증편향에 빠져있는 평범한 이들의 성향을 꿰뚫고 있다. 우린 부처님 손바닥 위라는 다소 비관적 전망으로 빠진다. 오도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정확한 현실 인식을 추구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더군다나 누가 옹호자이고 오도자인지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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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와 진리의 불편한 관계

오도자는 잘못된 현실인식을 만든다. 따라서 우린 그들이 제시한 진실 전반을 도덕적으로 비판하고 싶어 하고, 인간 사회에서 작동하는 도덕적 진리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인간의 독창적인 공간인 ‘정치’는 진리와 조화되지 않는 관계이다. “거짓말은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와 함께 존재해왔다. 진실은 정치적 덕목으로 간주된 적이 없었으며, 거짓말은 정치적 거래에서 정당화가 가능한 도구로 늘 간주 되어왔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브렉시트 찬성파들은 이민자 유입 문제, EU 분담금인 3억 5,000만 파운드만을 부각하면서, 대중을 브렉시트로 이끌었다. 여기엔 영국이 EU에 잔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단일시장을 통한 경제 협력, 학술교류, 연구기금 지원, 투자 안정성 확보 및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독립 억제는 배제되었다. 가짜뉴스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이후로 미국의 모든 상황이 나빠졌다고 말하며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그는 난민과 이민자가 미국 사회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그들의 퇴출을 주장하고 있다. 『만들어진 진실』에서 언급한 트럼프의 거짓말을 적기엔 여백이 부족할 지경이다.

우린 거짓말을 자행하는 정치가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고자 한다. 그리고 정치에서 올바른 진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 거짓말은 도덕적 결함과 큰 관련성이 없다는 의견을 견지한다. 새빨간 거짓말부터 시작해 국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동기는 나쁘지 않은 거짓말’까지, 정치는 거짓말과 함께 움직인다. 그 이유는 정치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린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불신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거짓을 말한다면 자신은 완전한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의견이 ‘확증편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란 점을 쉽게 입증할 수 없다. 그리고 진리는 ‘경합하는 진실’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거짓말에서도 그것이 완전히 가짜라고 확신할 수 없다. 실제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벌어졌다. 영국은 EU에 많은 분담금을 지급하지만, EU 내에서 목소리는 적은 편이다. 멕시코에서 유입되는 이민자 문제도 미국엔 골칫거리다. 단지 정치 지도자들은 난민과 이민자라는 ‘상상의 적’을 만들거나 진실의 다른 측면을 생략했을 뿐이다. 우린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도 올바른 것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터무니없이 제한되어있다.

“하늘에서 진리는 하나이지만 지구에서 진리는 여러 개다.” 난민은 인권 영역 안에 있지만, 그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는 정치가 결정한다. 지구 온난화를 다루는 문제, 경제 문제, 노동 문제 등 인간 사회를 결정짓는 모든 문제는 정치영역에서 다뤄진다. 이 영역에서 의견은 어느 정도 거짓을 품는다. 브렉시트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정치적 진술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끔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진실을 양보해야 한다. 여기에 거짓이 섞인다. 하지만 그 거짓은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향을 제공하며, 사람들의 행동 방향을 결정한다. “거짓말하는 능력과 사실을 변화시키는 소질, 즉 행위 하는 능력은 서로 결부되어 있다.” 만약 어떤 정치인이 진리만을 말한다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이야기할 뿐 바뀔 수 있는 현실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440만 명의 아이들이 죽었다는 통계는 우리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가정은 정치적 의견에 달려 있다. 통계에 대한 해석은 예측과 과장, 그리고 거짓이 섞여 있다. 거짓말과 정치는 서로 불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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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치를 파괴하는 거짓말

이렇게 말을 하니 마치 정치 활동에서 모든 거짓말을 긍정하는 것만 같다. 정치에서 거짓말은 당연하기 때문에 브렉시트에서 국민에게 오도된 진실을 제공한 정치인들이나, 트럼프의 백인우월주의적 사고 전반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규탄하는 일부 극우 진영의 입장조차도 정당한 정치적 의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당성을 따지지 않는 의견은 존중받을 수는 없다. “그것은 많은 사람이 관여된 사건이나 상황과 관계한다. 그것은 증인들에 의해 확립되고, 증거에 의존한다.” ‘만들어진 진실’은 명확한 근거를 기반으로 한다. 역사적 사실이 그 예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으로 조선이 식민지배 당했다는 사실은 반박될 수 없는 역사이다. 식민지 시절이 어땠는지에 대해 여러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지배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6.25 전쟁에 대한 평가는 있을 수 있어도, 북한의 남침은 부정될 수 없다. 즉 자명하지 않은 진실이라 하더라도 부정될 수 없는 사실이 있으며, 그 부분에 대해서 비판적 인식을 견지해야 한다. 만약 반박될 수 없는 사실이 거짓으로 조작된다면 정치적 행위로 인정받을 수 없다. 이 거짓은 정치영역에서의 모든 의견을 변형하는 폭력 수단이다.

아렌트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기밀문서인 <펜타곤 문서>를 통해 새로운 거짓을 이야기한다. <펜타곤 문서>에는 전문가들이 정보와 사실을 축적하여 진실을 밝히기보단 의회를 기만하고 허위 보도를 통해 전쟁을 선전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란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들은 최강이란 이미지에 힘입어 자신들의 권력에 심취했으며, 이 이미지가 소위 ‘문제 해결사’들의 분석 결과라는 신빙성이 작용해 반박 불가능한 진리가 되었다. 하지만 기만전술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렸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확신했던 전문가들처럼, 기만은 자기가 만든 이미지를 스스로 확신하게 하고, 사람들을 조작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그것은 기만의 자기기만이며 현실 세계를 외면하고 자기 거짓말에 스스로 속는 것이다. 현실을 외면한 논리는 정치를 훼손하는 선전도구가 되며, 다른 이들의 의견을 배제한 독단적 논리가 된다. 그 논리는 결국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부메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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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옹호자들의 진실, 그리고 매력적인 진실

현대사회에서 정치영역의 파괴로 이어진 거짓말은 사실의 범람에서 비롯된다. 넘쳐흐르는 정보와 사실들을 수용하기엔 인간의 범위는 매우 한정됐다. 더군다나 인간의 확증편향과 일반화의 오류, 체리피킹 등은 합리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들며, 타인이 의견을 제시할 권리마저 부정한다. 동질적 집단 사이의 결속력이 강화되고 타인의 의견을 배척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붕괴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폭넓고 다각화된 정보를 수용하라고 요구하긴 어렵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삶을 유지하기에도 벅찬 사람들에겐 시간적 여유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정보를 편향적으로 얻는 것은 촉박한 시간 속에서 최소한의 정보를 얻기 위한 현대인의 생존전략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오도자들의 정보를 제한할 법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들의 주장은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어서 성급한 법 제정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난 이 책임을 옹호자(advocate)에게 맡기고자 한다. 옹호자는 건설적인 목표를 위해서, 정확한 현실 인식을 만들어내는 진실을 추구한다. 그들은 오도자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그들은 정치영역을 복원하기 위한 공적 행위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진실이 우리 눈에 띄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정보는 우리가 쉽게 노출되고 기억에 남을 만큼 충분히 인상적이어야 한다. 정치에서 네이밍이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새로운 이름은 새로운 진실이다. 정치에서 네이밍은 결국 프레임 싸움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언어에 작용하는 프레임은 결국 사람들의 인식을 뒤바꾼다고 말한다. ‘오바마케어’와 ‘저렴한 건강 보험법’은 서로 같은 법안임에도 사람들은 ‘오바마케어’를 더욱 싫어했다. 사람들은 ‘오바마케어’가 정부 주도로 자유와 생명이라는 도덕적 영역을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명칭이 달라지면 일반적으로 그 지시물도 달라진다. 레이코프는 나의 가치와 목적에 맞는 프레임을 재구성해야 함을 역설한다. 극우 진영이 사용하는 기본적인 프레임을 파악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프레임을 재구축한다고 해서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부대의 전향을 기대할 순 없다. 이미 그들은 극단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있어서, 그들을 전향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큰 의미가 없다. 옹호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아직 정치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은 대다수의 중간자다. 그들은 정치적 입장에 대해 확증편향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정보의 매력에 따라 자기 견해를 바꿀 수 있는 유연한 사람들이다. 진실에 대해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프레임을 재구축하여 그들에게 정보를 노출 시켜야 한다. 낙태 금지 운동이라는 명칭보단 생명 지지 운동이 훨씬 큰 호응을 얻는 것처럼 자칫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제공하는 프레임보다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고 그들에게 유익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정보세력의 비대칭성은 상호 대등한 정치적 세력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는 대등한 의견 교환이 아닌 한 세력이 주도로 하여 오도된 진실로 폭력을 집행할 배경을 마련한다. 프레임은 이미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거짓을 담보한다. 하지만 거짓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정당화된 진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거짓이란 이유에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진실은 어떻게 이용하느냐 따라 건전한 사회를 건설할 수도, 자기기만의 칼날이 될 수 있다. 오도자의 정보편집기술을 깨우치고, 옹호자가 활동할 수 있는 정치 공간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지지층을 끌어모아 대등한 세력을 만드는 것, 이것이 건설적 사회를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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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스 정의론 -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원칙 리더스 클래식
황경식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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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후에 겪어야 할 지적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읽은 책이다. 2학기 학부 수업 중 존 롤스의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를 공부하기 때문에 준비운동이 필요했다. 「정의론」은 교수님이 인정했을 정도로 난해하기 짝이 없는 책이다. 정의론에 조금 쉽게 다가가고자 고른 책이 바로 황경식 교수님이 쓴 「존 롤스 정의론」이다. 황경식 교수님은 「정의론」 번역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롤스의 철학을 깊게 이해하고 계신다. 그분이 직접 정의론 해설서를 출판하셨으니 믿고 읽어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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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수년 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서점가를 장악했다. 미국에서는 고작 10만 부 남짓 팔리는 정도였으나 대한민국에서는 유독 크게 인기를 끌면서 100만 부 이상을 돌파했다. 많은 사람은 정의를 물었다. 기득권은 자신이 가진 이익을 놓지 않으려 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원한다. 하지만 금수저들의 금빛은 점점 화려해지는 데 반해 흙수저들의 운명은 가혹하기만 하다. 운동장은 기울어지고 있으며, 기득권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화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가 과거에 저질렀던 행위, 불법은 아니었지만 정의롭다고 말하기 어려운 그런 행위가 왜 비난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은 부정의함에 대해 특히 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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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스승이자 ‘정의’ 문제에만 파고든 ‘단일 주제의 철학자’인 존 롤스는 다소 급진적이라고도 느낄 수 있는 정의론을 펼친다. 우리 사회는 의무의 연속이다. 우린 타인에게 물리적 심리적 부채를 갖고 있다. 그 부채는 나 자신의 지속과 발전을 요구할 권리임과 동시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에 대한 의무로 이어진다. 만약 부채를 무시하고 개인의 지속과 발전이 사회의 그것과 평행선을 긋는다면, 개인은 사회에 의무를 다하지 않는 유아독존(唯我獨尊)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 존재는 우리와 함께할 수 없다. 그는 합의 사항에 따르지 않고, 사회 유지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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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둔 자유방임적 사회는 자연적 운(재능)과 사회적 운(부)을 방치하여 행운아와 불운아 사이에 심연을 만들었다. 대안으로 제시된 자유주의 사회는 사회적 이익과 불이익을 조정하여, 동등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유사한 기회를 얻도록 만들었다. 이 사회는 편향된 이득을 얻는 기득권을 배제했다. 복지 사회와 유사하다. 하지만 자유주의적 평등체제는 사회적 요인만 제한하는 데 성공했지, 자연적 자질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롤스는 반문한다. 자연적 자질에서 오는 차등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로버트 노직은 나에게 주어진 능력에 대한 권리가 없다고 해서 사회가 그것을 공유할 권리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사회가 자연적 불평등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사회일 뿐이며 결과적 불평등이 초기 조건으로 주어진 불평등의 함수에 불과하다면 도덕적 주체로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점을 어디에서 발견할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p56


여성과 남성에겐 차이가 있다. 누군가는 이 차이를 근거로 남성과 여성의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현대 사회의 직업은 성별에 따른 차이(가령 근력)를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 남성이 하는 일도 충분히 여성이 할 수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사회적 공간이 자연적 능력을 근거로 하여 차별과 제약이 생긴다면 그 사회는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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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가 제시한 정의로운 사회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정한 기회균등과 관련된 광범위한 기회 체계를 인정하고, 사회적 출발점과 자연적 자질에 있어서 어느 정도 차이와 다양성을 용납한다. 두 번째는 이 노력 이후에 비 자유방임적 방법으로 그 최종 결과를 사회 성원 중 최소 수혜자의 관점에서 재조정하는 것이다. 이 ‘민주적 평등체제’는 자연적 운과 사회적 운을 완화하고 최소 수혜자를 최우선 배려하는 사회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정의로운 사회는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이의 ‘공동선’을 위해 자연적 사회적 여건을 활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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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는 사유실험을 실행한다. 인간이 출신 배경, 가족 관계, 사회적 지위, 재산 상태 등 자신의 위치나 입장을 전혀 모른다는 ‘무지의 베일’ 뒤편에서 인간은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사람들은 무지의 베일 때문에 재능과 능력, 인종, 젠더 등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원초적 입장’이다. 롤스는 원초적 입장을 통해 합의한 결론이 정의를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내린 원칙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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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원칙: 평등한 자유의 원칙
각자는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자유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위한 체계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제 2원칙: 차등의 원칙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다음과 같은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편성되어야 한다.
a) 정의로운 저축 원칙과 양립하면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득이 되고
b)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직책과 직위가 결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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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는 결과의 평등을 말하지 않았다. 인간에겐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긍정했다. 롤스는 다양한 삶의 양식과 가치관들은 상호 보완적이며, 그 가치관을 지키면서 다채롭고 풍성한 문화를 만들고 향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롤스는 평등이 아닌 자유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강제에서의 자유를 의미하는 소극적 자유주의였다. 최대한 개인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 그리고 그 기준을 최소 수혜자로 세울 것을 이야기한다. 그는 정치에서 소외되는 약자를 신경 썼으며, 정치적 도덕을 이야기한다. 정의로운 사회라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그러나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모델을 구축하는 데 있어 롤스의 정의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롤스의 철학에 한 걸음 다가가도록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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