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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두 번째 밤 ㅣ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2
김보람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적잖이 실망스러웠습니다.
공포라는 소재에 대해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이 단순히 불쾌하고 껄끄러운 묘사만 늘어놓으면 되는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작품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특히 두 번째로 수록된 '구조구석방원'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하필 순서도 두 번째여서 거기서 그냥 다 포기하고 싶었네요.
공포 문학 역시 문학이라면, 그리고 개중에서도 쓰기 까다로운 단편이라면 거기에 맞는 구조와 짧은 분량 안에서 독자들을 납득시키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 기본적인 고심은 치워두고 '공포 단편이니까 일단 무섭기만 하면 되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글 전체의 완성도는 아랑곳하지 않은 작품이 너무나도 많네요.
심지어 그 '무섭다'라는 것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나 전하려는 메시지를 우선하기에 급급해서 공포 문학에서 공포마저 빠진 작품들이 수두룩하고요.
다행스럽게도 개중에 좋은 작품들도 없진 않았습니다. 옛 설화와 포크 호러를 적절하게 조화시켰으며 확실한 이야기의 마무리를 보여주되 불길한 여운까지 잊지 않은 '아기 황제',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독특한 발상으로 마지막까지 단번에 읽어내려갈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여준 '처형학자'. 이 두 작품이 인상깊었고, 유이하게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느꼈네요.
이외의 다른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평균에서 평균 이하의 재미와 퀄리티를 보여줬으며, 특히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두 번째로 수록된 '구조구석방원', 그리고 첫 번째로 수록된 '점'이 나쁜 의미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공포의 근원이라고 짚어낸 건 좋았지만, 그럴 거면 제대로 했어야죠. 밑도끝도 없이 그냥 등장인물들을 불길함이라는 이름의 믹서기에 던져넣고 시원하게 갈아버리더군요.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공포 장르에서의 '미지'도 잘 생각해보면 알듯말듯한 여지는 주는 게 좋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이야말로 공포의 크기를 불려주는 양념 아니겠습니까.
'구조구석방원'은 당초에 '습격당할 것을 걱정하는 현실적인 공포'를 메인 소재로 잡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걸 지나치게 강조하려다 보니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무리한 전개가 남발되었고, 더 최악인 점은 결국 마지막에 등장한 진정한 공포는 지금까지 언급했던 것과 전혀 상관없는 초자연적이고 뜬금없어서 추측도 할 수 없는 어떤 존재였다는 겁니다. 일관성이라도 있었으면 조금 나았을 텐데.
'점'은 작품에 귀신이 등장할 뿐이지 사실 홍수나 화재, 지진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재난물과 다를 게 전혀 없습니다. 주인공 부부에게 벌어지는 일에서는 어떤 의지도 느껴지지 않고(그 묘사의 불쾌함과는 별개로) 그저 범람하는 강물처럼 묵묵하게 인물들을 집어삼키고 나는 자연현상이노라 할 뿐입니다. 그 와중에 격화되는 주인공의 히스테리나 주변인물들과의 마찰을 진정한 공포로 생각하고 쓰신 거라면, 유감스럽게도 실패입니다. 그냥 불쾌하기만 할 뿐이었어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공포 문학도 문학입니다. 문학이라면 의당 독자들로 하여금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매력적인 소재와 '와, 궁금하다. 이 다음엔 어떻게 되지?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이야?'라며 파고들게 하는 몰입감,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납득이 가도록 잘 펼쳐서 거둬들이는 올바른 구조가 필요합니다.
명색이 한국 공포 문학의 단편선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나온 책에, 저 요소들의 전부는 커녕 두 가지조차 채 겸비하지 못한 작품들만이 수두룩하다는 건 참으로 유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