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순간의 위로

AROUND TRAVEL - 외롭지 않은 순간들, 평범한 여행의 기록 ㅣ Around Travel 1
어라운드 편집부 엮음 / 어라운드 / 2015년 2월

  나는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다. 여행보다는 오히려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더 편하고 기대되는 사람이다. 내 발로 직접 걸어다니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사진과 경험에 감탄하는 편이 훨씬 더 편하다. 여행을 가보려 하면 돈이 없거나, 뭔가를 알아보기에는 게으르고, 어찌하여 계획을 잘 세운다 싶으면 출발하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집에 내려와 지내고 싶어 시작한 일은 벌써 1년을 훌쩍 넘겼다. 아이들과 지지고 볶다 이제 그만두게 되면서 내 스스로는 만족스럽고 마음이 편했다. 아직도 마무리하는 단계로 일을 하고 있지만, 어서 쉬고 싶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집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머저리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정해지지 않은 채 그만두려니 주변의 사람들이 불안해했다. 그들의 걱정 어린 말들이 내 안에 걱정을 슬그머니 놓고 간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다음 단계가 얼마나 멋질지 설명하지 않고도 만족스러웠는데, 그  말들에 마음이 외로워졌다. 마음을 쓰면서도 걱정을 늘어놓지는 않는 것. 딱 그 정도의 거리라면 우리는 외롭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라운드>라는 잡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런 시간을 지나며 읽게 된 한 사람의 글 때문이었다. 본인은 어떻게 불리기를 원하실 지 몰라도 어라운드의 여러 에디터 중 한수희 작가의 글이었다. 글이 잘 쓰여진 것은 물론이고 그가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의 느낌이 따듯하고 친숙하게 느껴졌다. 본인의 경험으로 책과 영화 속의 인물들과 ​본인의 글을 읽을 독자들을 이해하면서도 잔소리하지 않는 글들. 그래서 이 책을 찾아 읽게 됐다. '외롭지 않은 순간들'이라는 부제가 마음에 콕 박혔다.

  여행의 이유는 참으로 다양한 것 같았다. 사진을 보고 반하거나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서, ​엄마와의 추억을 쌓기 위해서, 혹은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서, 심지어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동안 여행에 가진 내 생각이 너무 단순했구나. 그 시간에서 우리는 나와 다른 곳의 상황에서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익숙한 것들이 멀어진 곳에서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하듯 살아가라는 말은 그런 의미리라. ​우리는 모두 이 곳, 이 시간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여행자들이다. 고통이나 기쁨이 지속되지 않음을 알고, 그저 순간의 감흥을 놓치지 않는 것. 익숙하다는 착각에 빠져 지나친 것들을 다시 새로이 보는 것.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 곳을 떠날 사람처럼 아쉬워하며 사소한 기쁨을 누리는 것. 여행하듯 살아가라는 말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다양한 여행의 이유 중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 몇 번 없는 여행의 경험들을 생각해보면, 그 절대적인 수는 적어도 그 안에서 누리는 감흥은 대단했다. 나는 작은 것에 쉽게 감동받는 사람이고 그것으로 변화되는 사람이다. 여행에 있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함께하는 사람인데, 감동을 누릴 줄 모르거나 가리는 것이 너무 많은 사람과 함께한 여행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더 발견하는 여행이다. 내가 있고 싶은 장소, 원하는 삶, 함께하고픈 사람을 더욱 알게 되는 여행.

  ​모두가 헤매고 있던 사람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채 몸을 맡긴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서 저마다의 것들을 얻었다. 그들의 짧은 글을 읽으며 그런 위로를 얻었다. 외로움이 드는 순간에 그것을 잠시 접어두고 다음을 찾아나서면 얻게 되는 새로운 만남들. 지금의 나는 나의 선택이 만족스럽다. 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서면 다시 새로운 문을 만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는 나의 선택이 만족스럽다. 시간이 걸린다 해서 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문들이 어딘가에서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나와 잘 어울리는 문을 발견했을 때, 내가 다른 이들의 시선때문에 여는 것조차 포기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