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곡자
귀곡자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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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동양에서는 수사학이 발달되지 않았다고 그런다. 공자를 필두로 한 유가사상은 말하기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이다. 공자가 중시하는 것은 말보단 행동이다. 유가 사상에서 봤을 때 말하기란 본이 아닌 말로 견주했고,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유가는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면서도 형식을 존중하는 모순적인 학파다. 유가가 존중하는 형식은 바로 인과 예다. 그들이 생각했을 때, 인과 예는 형식이 아닌 인간의 본성, 즉 선한 관점에서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본이었다. 그러나 도가를 비롯한 다른 학파에서는 유가의 그 인위적인 예를 가식으로 견주하기도 했다. <사기> 열전에서 노자가 공자에게 타박을 준 것도 이러한 부분이다. 유가가 지양했던 형식은 바로 말하기다. 실제로 <논어>에서는 얼굴빛을 꾸미고 말을 교묘하게 하는 것을 극도로 부정했다.


말이라는 것은 되도록이면 말하기보단 짧고 간결하게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라고 설파했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런 유가 사상의 창시자인 공자. 그도 상당히 말을 잘 하는 선비였다. 동양 어느 경전에 봐도, 좋은 말은 죄다 공자가 다 했다. 그러면서 후학에게는 말을 절제하라는 부분을 보며, 서양의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관계도 생각났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기존의 소피스트들과는 다르게, 수사학을 돈을 받고 가르치진 않았다. 그는 극도로 수사학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런 소크라테스 역시도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뛰어난 수사력을 가진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이다. 동양의 성현과 서양의 성현은 그렇게 닮아있었다.


유가가 국학으로 채택되며 동양에서는 어마 무시한 권위를 가지게 됐다. 공자의 가르침은 그대로 동방 여러 국가에 퍼져나갔고, 공자의 이념대로, 대체적으로 말에 대해서 절제하고 침묵하는 것을 최상의 미덕으로 여기게 됐다. 반면 서양에서는 이색적이다. 플라톤은 자신의 대화편 <고르기아스>에서 올바른 수사학에 대한 부분을 고찰하고 있다. 더 나아가 대화편 자체가 소크라테스의 수사학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수사학을 발전시킨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맡는다. 그는 논리학의 시초인 <오르가논>을 제작했으며, 그 이래로 서양에서는 수사학이 굉장히 발달하게 된다. 동양과는 참으로 다른 부분이다. 서양인들의 관점은 말이라는 것은 또 하나의 검이라고 생각했다. 검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법이다. 그들은 그 위험한 검(수사학)의 위험성을 숙고하며 잘 휘두르는 법을 생각했다.


그래서 동양에는 수사학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유가가 공인되기 이전 춘추전국 시대에는 다양한 제자학파가 발달했는데, 특히 이 수사학과 외교학에 관련된 학파가 바로 '종횡가'이다. 그리고 종횡가의 대표적인 이론이 담긴 책이 바로 <귀곡자>라는 텍스트다.


어찌 보면 당시 전국시대의 중국은 지금 무한 경쟁 사회와 비슷하다. 구직자들은 구직을 위해 이 기업 저 기업에 원서를 내고 적절한 타이밍에 연봉 협상을 통해 이직을 하는 것이 보편화된 현대. 그 시대 중국도 마찬가지다. 선비들은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군주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자신이 선택한 군주가 그릇이 아니라면 배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고대 사회. 두 사회는 지극히 닮아있다. 그것은 시대가 난세였기 때문이고, 그 난세를 틈타 능력이 있는 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시대가 바로 중국의 전국시대다. 선비들 역시 이러한 마음가짐이니,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약소국을 정벌하고, 자신의 세를 넓히기 위해 군주들은 뛰어난 인재들을 많이 받아들여야만 했고 시험해야만 했다.


<귀곡자>는 이 시기, 떠도는 유세객들에 의해 정립된 이론이었다. 당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선비는 군주에게 알현하여서 빼어난 말 솜씨로 군주를 사로잡아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느 기업이나 직장에 취직되기 위해 자소서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시절 유세객들이 취직(?) 하기 위해서는 군주의 독대를 감수해야만 했다. 올바른 계책이 있더라도, 그것을 잘 못 포장하여 내뱉었다간 그대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유세객들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집성한 학파가 바로 종횡가이고 그 종횡가의 대표적인 경전이 <귀곡자>라고 할 수 있다.


<귀곡자>를 보는 키워드는 다양하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읽으면서 4가지 관점에 입각하여서 책을 독해했다 하나하나 서술해보자면,


첫 번째 이 책은 앞서 말한 대로 동양의 수사학의 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귀곡자>의 가장 핵심은 바로 말하기다. 유세객의 입장에서 자신의 주군에게 취직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환심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런 환심을 사는 것으로 시작하여, 군주의 마음을 얻는 법, 그리고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 법, 심지어는 상대의 모략을 읽고 제거하는 법, 등등을 서술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유가의 사상과는 전혀 상반되는 현실 중심적 논리에 입각한 사상이다. 이 사상과 같은 계보에 있는 제자백가는 법가와, 병가라고 할 수 있겠다. 군주의 현실적 사상이 법가, 군인의 현실적 사상이 병가라면, 이 종횡가는 문인의 현실적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이 책은 약자가 강자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처세술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이 유세객들이 유세를 하는 대상은 바로 모든 것을 가진 군주다. 군주는 자고로 힘이 강하고, 모든 권한을 가진 반면, 유세객들은 지금 말로 하자면 직업이 없는 백수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말 한번 잘못했다간 힘의 논리에 의해 바로 유세객이 칼을 맞을 수 있는 경우도 많았기에, 그들은 극도로 신중하고 생존을 위해, 힘을 가진 군주를 살살 굴리는 방법을 연구했었다. 사실 이 부분은 그들의 목숨과도 직결되는 부분이라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같은 현실론적 사상이더라도, 법가가 종횡가를 극도로 꺼리는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겠다. 법가는 군주의 절대주의를 신봉하는 사상이고 종횡가는 신권에 대한 부분이 있으며, 심지어 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갈아치우는 방법과, 혁명을 해서 군주를 끌어내는 대목도 있으니, 왕조국가가 보편화된 동양에서 군주의 입장에서는 종횡가가 썩 미덥지 않은 점도 이해가 갔다.


특히 유가 입장에서도 위계질서를 강조하고, 어쨌든 군주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이념이 있는지라, 같은 이단이더라도, 법가보다 종횡가를 더욱더 싫어했었다. 그래도 법가와 유가는 사상이 달라도 군주에 충성을 다한다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에, 반역과 택군을 논하는 종횡가 이론을 꺼려한 점도 이해가 간다. 이 부분은 이 책의 해설 부분인 '법가와 종횡가의 충돌 : 한비자 독살 옥사 사건을 중심으로' 이 대목을 읽으면서도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세 번째는 바로 도가 계열과 음양학 이론이 스며든 부분이다. 사실 전국시대에 주목받은 현실론적 사상인 법가, 종횡가, 병가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도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 귀곡자에서는 음양가들의 이론들도 보인다. 책은 생각보다 자세한 부분을 이야기하기보단 추상적이고 큰 틀을 제시하는데, 이 부분은 손무의 <손자병법>과도 일맥상통한 서술법이었다. 그 추상화 이론에 중심에는 음양학적 이론이 담겨 있었던 점도 눈에 들어왔다.


네 번째는 어쨌든 이 책은 현대적인 가치로 환원하여서 볼 때 협상과 외교학에 여전히 유효한 이론들이 많아 보였다. 좀 얕은 처세적 관점의 대목들도 보였지만, 의미가 남다르게 온 부분도 많았다. 몇 가지 구체적으로 언급해보면, 본경내편 후반부 전부를 언급하고 싶다. 5. 비겸 -띄우면서 마음을 얻어라, 7. 췌정 - 전체 국면과 속셈을 읽어라, 8. 마의 - 부드럽고 은밀하게 다독여라, 9. 양권 -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라, 11. 결물 - 이로우면 속히 결단하라. 이 대목들이 인상적이다. 협상과 외교학에 가장 돋보이는 것은 책략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동양의 책략 이론들을 정립한 이론서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책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본경내편이다. 본경 1편에서 11편까지가 책의 가장 핵심을 다루고 있고, 본경외편과 잡편들은 논고가 난잡한 부분들이 보였다. 해설에서도 확연히 문체가 다른 것으로 봐서 후대의 첨삭이 보이는 부분이라고 했는데, 확실히 본경내편에 비해 흥미가 떨어졌다. 특히 잡편은 상당히 음양학적 지식이 많이 가미되어 좀 뜬구름 잡는 느낌도 많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예전부터 조용히 탐독했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중학교 때로, 공자에 대한 사상을 검색하다, 종횡가를 알게 됐고, 특히 병법서들을 탐독하다가 손빈의 스승인 귀곡자를 보고 검색하여 <귀곡자> 전문을 해석한 문서를 얻었다. 그래서 인쇄하여 흥미롭게 읽었다. (당시 번역 텍스트가 전무했었다.) 사실 텍스트는 상당히 적다. <손자병법>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적은 양의 텍스트라서 마음에 들었다. 당시에는 <귀곡자>를 아는 사람이 극소수였다. 동양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금서였기 때문이었는데 최근에는 종횡가에 대한 이론이 많이 소개되고 있고, <귀곡자> 역시도 번역본이 세 권이나 나온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 번역본을 구매했었다. 관심이 가던 책인데, 예쁜 단행본으로 나오니, 소장하고 싶어서였다. 다만 이 신동준 역본의 <귀곡자>는 581쪽으로 상당히 두툼하다. 사실 원문 번역으로 치면 A4용지 6장 내외로 출력할 수 있는데, 상당히 역자가 예시를 많이 들고, 주석을 본문과 합쳐서 편제하여서 쪽수를 많이 잡아먹은 느낌도 들었다. 인간사랑 동양고전에 대해서 한 가지 말을 하고 싶은 점은, 간혹 신동준 역본의 번역서에 국내 최초 완역본이라는 타이틀을 자꾸 사용하는데, 이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국내 최초 완역본은 2007년도에 나온 학민사에서 나온 책이다. 다만 이 책은 상당한 오역이 있는 책이지만 최초 완역본은 이 책으로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2009년에 나온 지만지 시리즈의 <귀곡자>도 괜찮은 것 같다. 학민사 책 보다 가독성도 좋았던 것 같았다. 지만지 시리즈는 특이한 고전을 편역하여 전집을 내는 출판사인데, 이 <귀곡자>는 완역으로 냈었었다.


이 번역본의 불만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예시 사례가 너무 길다. 사실 고전 본문은 1/3밖에 되지 않고 예시가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누군가에겐 구체적인 사례가 좋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책 부피만 차지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이전 번역본들의 사례와 중첩된 부분들이 많아서 흥미를 못 느끼는 점도 있겠지만... 두 번째는 주석의 처리다. 각주나 미주로 좀 처리했으면 좋을 부분들을 본문 밑에다가 그대로 처리하고 있으니 뭔가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한자 주석의 경우는 본문 어디서 이 한자가 사용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작은 번호로 처리를 좀 해 줬으면 싶다.


책 본문의 다소 번잡한 예시는 아쉬웠지만 책의 부록, 종횡가에 대한 고찰과, 법가와 종횡가의 충돌, 귀곡자와 종횡가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좋았었다. 신동준씨는 기존 학설에 동의하기보단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을 하시는데, 그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그 부분도 구체적으로 쓰고 싶지만 지면이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한다.)


노회한 정객 헨리 키신저는 이 책을 항상 침대에서 탐독한다고 전해진다.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동양 최초의 수사학, 기원전의 수사학과 책략의 고전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겠다. 어느 분들을 이 책을 보면서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보시는 분도 많은데, 의외로 별거 없다는 소리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지금 현대의 수사학 이론이나 현실적 관점과 별다른 차이가 없기에, 그저 그런 책이네,라고 치부할 법도 하겠다. 그러나 무서운 점은 이 책은 기원전에 만들어진 책이다. 어쩌면 이 책이 익숙하게 보인다는 것은 현대나 기원 전이나 인간의 심리나 책략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다는 점을 반증하는 예가 아닐까 싶다. <귀곡자>는 그런 인간 본성적인 심리를 최초로 고찰한 책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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