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지젝
켈시 우드 지음, 박현정 옮김 / 인간사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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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슬라보예 지젝을 알게 된 계기는 철학에 있어 변증법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였다. 근현대 철학을 배우면서 변증법은 피할 수 없는 사고의 틀이었고, 이런 변증법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슬라보예 지젝이기 때문이다. 지젝에 관심을 가지며 그의 글을 검색하여서 읽었는데, 내가 읽었던 글은 영화에 대한 글이었다. 그 글에서 느껴지는 박식한 세계관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이후 지젝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경제학 저서를 뒤지면서였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을 공부하고, 공산주의 사상이 현대에는 어떻게 계승됐고 발전됐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나는 과거에 만났던 지젝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두 번의 만남을 통하여, 나는 지젝의 철학에 궁금증이 생겼지만, 물리적 시간의 한계와 나의 게으름을 핑계로 만남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이렇게 개론서를 통하여 지젝의 관념을 처음이자 본격적으로 접하게 됐다. 

한 철학자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그 사상가의 철학을 정리하여 쉽게 풀어쓴 개론서로 만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공부하려는 철학자의 사상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또 한가지 방법은 바로 개론서 없이 원전 번역된 글을 직접 접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매우 거칠고 힘들지만, 타자의 도움 없이 나만의 주관적인 관념으로 철학자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 방법 모두 좋은 방법이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그 철학자의 저서를 나만의 관념으로 독해하여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이 책은 지젝의 대표 저서를 차례대로 잘 정리한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기존의 개론서가 가지는 성격과는 조금 다른데, 지젝의 사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 나름대로의 주관을 개입하여서 해설을 시도하고 있었다.

책은 솔직히 어려웠다. 아무리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인물의 철학이라 하더라도, 철학이라는 장르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더구나 나는 근대철학자들의 저서를 아직까지 섭렵하지 못했으므로, 오늘날 현대 철학자라 할 수 있는 지젝의 사유를 이 책을 통하여 온전히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철학이란 장르가 그렇다. 철학은 이 땅을 살아온 선각자들이 행했던 사유의 집합이자 연속체다. 그렇기에 플라톤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비판적으로 계승됐고, 이런 고대철학은 중세의 신학 철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신학 철학에 반발로 이성을 중시한 근대철학이 들어섰다. 데카르트의 관념론은 칸트와 헤겔을 통해 이어졌고, 이런 헤겔의 변증법은 지젝의 철학적 사유의 핵심이 됐다. 이뿐 아니라 지젝의 철학에는 순수 철학과 관념론만 내포한 것이 아니다. 그의 철학에는 라캉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 역시도 포함됐으며, 마르크스의 정치 경제학적 요소도 포함됐다.

수학을 배울 때 곱하기 나누기를 모르면 인수분해를 할 수 없듯, 이 책 역시 개론서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 헤겔의 변증법과, 라캉의 정신분석학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헤겔에 대해서는 깔짝거려본 경험이 있고, 풍문으로 알고 있는 잡지식이 있지만, 라캉은 나에게 매우 생소했다. 지젝은 라캉을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철학적 이론을 전개하고 있으므로, 라캉의 이해 없이 지젝을 이해하기란 너무도 어려웠다. 물론 책 앞에는 라캉에 대한 기본적인 부분을 기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책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라캉에 대해 알고 난 뒤에 다시 재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통해 만난 지젝의 세계관은 매우 넓었다. 저서를 통해 본 그의 사유는 굉장히 넓고 깊었다. 보통 철학자는 한 분야에 몰두하여 집중적으로 사고하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정치, 경제체제, 문화, 영화, 혁명, 경제 등등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유를 전개하고 있었다. 한 인간이 다방면적인 사고를 통해 비치는 세계를 이토록 명료하게 정의하고 정리할 수 있다는 것에서 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의 글은 매우 논쟁적이고 도발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숙한 진지함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유머러스한 비유와 해학적인 풍자를 통하여 청중에게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였다. 또 인상적인 것은 그토록 방대하고 견고한 자신의 세계관을 스스로 비판하고 붕괴하여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의 철학을 스스로 비판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젝은 이런 사고과정을 통하여 스스로의 관념을 확장시켰다. 나는 이런 그의 비판정신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광대한 그의 사고, 그 사고로 형성된 지젝만의 세계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렵기도 어려웠지만, 같은 인간이지만 이토록 넓은 세계를 구축한 그가 부러웠다. 어려운 그의 세계관에 모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의 철학적 사유의 폭을 보며, 나의 인식의 빈약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나의 세계관은 지젝의 세계관에 비해 허술하고 좁으며, 깊지 않았다. 물론 넓고 깊고 튼튼한 것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그의 세계로 인해 정신적인 자극을 받은 것임에는 틀림없다. 철학의 목적은 무엇일까? 인간은 왜 타자의 깊은 사유와 세계를 배우고 받아들이며, 비판하는 것일까? 그저 타인의 사유를 수동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목적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지젝의 완고하면서 단단한 세계관과 나의 빈약한 세계관이 충돌했다. 그 충격으로 인해 나의 세계관과 관념은 박살 나고 일그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좁았던 내면은 붕괴했고, 이전의 영역보다는 좀 더 크게 사유하기 시작하고, 좀 더 넓은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사유와 사유의 충돌, 그리고 그 여파로 인한 내면적 갈등, 그리고 이어지는 내면의 성장. 이것이야말로 철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이 아닐까?

  그래서 나의 내면은 이 책을 통해 좀 더 넓어질 수 있었다. 책의 어려운 내용을 모두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독서를 통해 이러한 목적의식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큰 소득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번에 다시 읽을 때에는 지금처럼 불편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편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내면과 세계가 성장했다는 증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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