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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가을 국민서관 그림동화 184
케나드 박 글.그림, 서남희 옮김 / 국민서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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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을이라..
이 동화는 아이들에게 가을이 가져다주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암시하네요.작가의 계절을 표현하려했다는 그림처럼 아이의 산보에서 가을을 기다리는 즐거운 심정을 느낄수 있네요.
가을의 분위기가 시골풍경의 그림에 묻어납니다.느리고 여유로운 수채화와 크레용의 필치로 이 작가의 그림에서 아이들그림책의 삽화에 이토록 다양한 기법이 있다는 걸 알았네요.파스텔과 수채화의 기법으로 정감있는 화면을 만들어내네요.
낙엽과 단풍지는 자연을 보고나서 어린이에게는 새로운 활기가 느껴집니다.집에서 놀때와달리 자연과의 환경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네요..작가가 한인 2세여서인지 다소 동양적인 담채화풍의 화풍과 수채화의 원색이 묘하게 어울리네요.
그림의 배경이 시골인지 나무외에도 산과 들의 은은한 색으로도 차 있네요..개를 데리고 걷는 산보길...
그림은 갈수록 더 아름답고 정감깊게 돌아갑니다.
가을날 오후 기다리던 소풍같은 산보를 할 수있다면 애들에게 그런 선물이 없지요.주인공인 아이는 자연을 보고나서 새로운 활기가 느껴집니다.집에서 놀때와달리 자연과의 교감은 계절이 만든 풍경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네요
먹이를 찾는 여우와 , 나뭇가지위의 대벌레와 휘적이는 가을나비들, 도토리를 떨어뜨리는 다람쥐와 굴을 파는 산토끼, 남쪽으로 가려고
높은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서 신나게 활기찬 아이의 기분이 느껴지네요..단풍에 물들어가는 나무와 익어가는 열매들 마지막 향을 흩날리는 꽃들의 질감이 서로 다른듯 표현한 수채화기법이 특이하네요.
동화는 그런 아이들에게 자연과의 유대를 암시하네요...평범한 자연속의 일상이 아름답네요.
다양한 그림기법으로 가을에대한 아이의 동경과 즐거움을 귀엽게 형상화했네요.그리 요란하지도 않고 작자의 화려한 원색과 다채로운 그림이 너무 예쁘네요.어쩌면 아이들의 성장에 자연과의 교감이 인격의 형성에 필수적인것인지도 모르겠군요.유아시절부터 대한민국의 과외에 찌든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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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을 위한 변명 - 혁명가 정도전,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하다
조유식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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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그는 대단한  천재임이 틀림없다.불씨잡변부터 경제문감,각종병서에 이르기까지,.토지제도를 개혁하여 유민을 안정시킨다는건 그시대 어느통치자도 생각지 못했다.대개의 통치자가 사욕을 채우거나 국고만을 생각하여 민중에 대한 수탈만을 추구한 것에 비하면 그는 지배층에서도 질적으로 다른 인물임이 틀림없다.
그런 그가 왜 역성혁명을 -한마디로 쿠테타를 일으켜 왕조를 건설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먼저 그의 출신을 생각해봐야한다.그의 아버지는 중앙에서 벼슬하여 형부상서를 지낸 고려말의 벼슬아치였지만 어머니는  노비의 피가 섞여 있었다.아내도 출신상의 약점으로 과거에 합격하고도 관직에서 불이익을 겪었다. 이때 그는 권문세족들의 전횡과 그에  못지않게 불교가 국가 경제를 저해하고 민생을 황폐하게 하는 해악으로 보게 되었다. 이는 사원경제의 팽창과 타락(장생고부터 고리대까지), 백성이 불교에 귀의하여 군역을 기피함으로 인한 조세수입의 궁핍과 부역의  부재로 나타난 국가재정및  존립의 위기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부와 권력을 독점한 권문세족들로부터 전답 등의 농토는 실제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부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권문세족들의 분노를 샀다. 또한 그는 사찰경제의 확장과 문란이 고려 정치 경제 사회의 폐해가 극심함으로 불교의 폐단을 시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배척을 주장하였다.

사실 정도전이 아니라도 일찍부터 사원의 팽창이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관점은 중국의 남북조시대 주무제때부터 존재했다. 당의 현종도 승려들을 환속시키는 조치를 여러번 한 적이 있다.불교신자인 정도전이 이를 주장할만큼 고려말의 사원의 폐단은 극심했다.
당연히 여말의 혼란상에서 그는 유배와 파직 ,배척에 시달렸다. 결국 그가 주창한 것은 새왕조의 창립이었다.

역성혁명에 필수적인 것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이념과 힘이다. 먼저 이념은 민생을 구제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어야하고   백성을 끌어들일 수 있는 논리가 더  우월하다. 다음으로 힘은 병력이거나 사람이다. 대체로 혁명이라면  여기에는 많은 백성의 희생이 수반되었기에  그러므로 정도전도  혁명의 방식 중에서 백성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군사의 동원이 가장 좋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도전이 이성계와 결합한 것은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이성계의 인성을 믿은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북면병마사인  그가 가진 병력 때문이었다

1383년, 조선의 건국은  사실상 성공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성계의 혁명 성공에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한 두 인물이 바로 정도전과 이방원이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 중 어느 하나가 없었더라면 이성계의 혁명은 실패했을 것이다.

  토지개혁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정도전의 개혁은 놀라운 일이다...이는 주나라를 정치모델로 하여  신권정치를 꿈꾸었던 정도전의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몫이다. 이방원정도전을 제거하게 된다..이방원정도전의 운명을 완벽하게 갈라 놓은 것은 다시 요동 정벌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될무렵 명나라도 주원장이 독재를 강화하고 있었다.정도전을 포박하여 압송하라는 명나라의 요구를 묵살하고 강행한  요동정벌및 사병혁파로  다시 운명의 저울은 방원에게 기울었고 이로써 이방원정도전의 모든 관계가 파탄났다.

 정도전과 이방원은 조선을 건국할 당시에는 뜻을 함께 했던 동지였으나, 새왕조에 대한 이념이 달라서 적이 되고 말았다. 정도전은 방원을  동지로 여기고 자신을    창업(創業)과, 수성(守成)의 주인공이라고 여겼지만   이방원의 생각은 그의 역할은  주군에 대한 신하의 본분에 그쳐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는 세자책봉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나서 그들은 정면 충돌하고 만다.

 이성계는 강씨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 하여 (이는 삼봉의 뜻이기도 했지만,) .장성한 아들들의 분노를 샀고  이러한 결정에 가장 크게 반발한 이가 이방원이었다.  결국 이방원이 정도전, 남은, 방번, 방석을 제거 하고  이방원이  실권을  장악함으로 조건은 완전히 군주독재의 전혀 다른 왕조로 변질되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왕조의 역사를 살펴볼 때, 피보다 더 진한 것은 부모자식간에도 형제간에도 공유할 수 없는 권력이었다.

 결국 정도전은 역적으로 몰려  살해되고 시신이 저자거리에 효수되는 운명을 겪는다 . 아들들까지 자살 , 살해되고 멸문지화를 입은 그의 가문이  사면되고 복권된 건 먼 훗날의 일이다.

그가 꿈꾸던 주나라왕조 재상중심의 국가가 섰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또 달라졌을까...분명한건 고인 물은 썩고 부패한 권력은 무너진다는 것이다..후대에도 경국대전을 비롯한 조선의 통치기반은 정도전의 사상위에 입각해 재도화된 많은 일들이 남았다.태종을 비롯한 역대 조선의 군주들은 그를 역신으로 몰아 죽이고도 머리만큼은 이용한 것이다.아쉬운 점이라면 그토록 천재적인 두뇌로 백성을 생각한 정책들이 군주독재의 수단으로 전략한 것이 애석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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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한시 -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붙잡다
이우성 지음, 원주용 옮김, 미우 그림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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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는 흔히 따분하다고 여긴다. 끝없이 반복되는 충효의 유교적 논리 ..나도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이책은 그 옛날 선인들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그들의  애틋한 감정을 시로 남겼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어쩌면 요즘 신세대같이 직선적인 표현보다 더 은유적이고 온화한 듯한 시들이 더 애로틱하고 낭만 적인 것이 아닐까?

  고대의 시들이 더 자유분방하고 감각적인 것인 아마 유교적 통치관념이 정착되기전이라 그런 듯 싶다. 먼저 설요의 시를 보자.

  예쁜 풀의 꽃다움이여 향기로움을 생각하나니 아아, 어찌하리, 이 젊은 청춘을 ...이시는  당나라에도 알려진 시라는  데 청춘의 애끓음을 나타내고 있다.7세기 여승 이었던 그 녀는 열다섯에 아버지를 여의고 출가 6년 수행후에도 애끊는 감정을 버릴 수 없었다.21세에 반속요를 지으며 환속하여 곽원진의 연인으로 지냈다는 얘기도 전해지는데 연인인 곽원진의 출현에 설레이는 마음을 엮은 시는 솜사탕 같은 연애 편지로 느껴진다.

 남정네들도 여인의 마음을 빌어 사랑을 노래했다.

 임제의 無語別서 보면  이별의 슬픔을 애잔하게 표현했는데 결구의 '이화월(梨花月)'이란 표현은 애상적인 분위기를 만들며,임과 이별한 주인공의 슬픈 심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서글픈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여기서 작자는 일반 적 사대부들과 달리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낭만주의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남녀간의 사랑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간직할 수밖에 없던 시대상을 그려낸다.그는  조선 중기의 뛰어난 시인으로서 시풍이 호방하고 명쾌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여인의 섬세한 감정표현에도 능했다.

 

 이달의 錦帶曲贈孤竹使君 ;비단띠 그대에게 선물하고 싶지만-을 보자 .

서얼 출신의 가정교사인 그에게도 정인이 있었나보다 . 고죽 최경창이 영암군수로 있을때 방문한 이 달이 관기에게 자주색 치마를 사주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이 시를 지었다한다.이 시를 접한 최경창은 "손곡의 시는 ​한 자가 천금이니 감히 비용을 아끼랴"하며 한 글자에 비단 세필 값을 쳐 주었다한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는 애인에게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드나보다.

 그의 제자인 허난설헌의 시는 청아하면서도 외로움이 묻어난다. 그녀의 연밥따는 아가씨(采蓮曲) 에서는 그나마 밝은 사춘기소녀같은 감성이 남아있었다.드물게 그녀의 시가 밝다.

 조선 시대 남녀차별이 뚜렷한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마음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초가을 맑은 하늘이  파랄 때  연잎 사이로 꽃이 우거진 곳에 혼자서 타는 작은 쪽배 매어두고 연인을 기다리는 아가씨는 막상 연인이 보이지만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사랑의 정이담긴  연밥만 따서 슬쩍 던져두고는 달아난다. 혹시 누가 그걸 보았을까 혼자서 반나절 동안 혼자 부끄러워한다는 마지막 절에서 처녀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여성이 제한 된 공간에 갇혀살던 조선 시대 사랑을 고백한 뒤 부끄러워하는 아가씨의 수줍음과 서정적 자아의 기쁨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하지만 다른 시에서는 명나라사신들이 선계의 시라고 극찬했더라도  도교적이면서도 현실도피적인  여인의 외로움과 섬세한 감정이 여실히 표현된다. 다른 이에게 주려거든 차라리 버리세요雜詩 보면 바람둥이인 남편을 못미더워하고 불안한 아내의 마음이 드러난다.실제로 그녀의 결혼생활은 불우했다.

  사대부들과 달리 이 책에는 기녀시인들이 쓴 시가 많다. 매창 .이옥봉등등..그러나 가장 먼짓 한시의 여류시인은 황진이다 .그녀의 시들을 보면 정말 조선시대의 여인인가 싶을 정도로 자신감에 차고 활기차다.

                                                                                                                                       


   添却一人魂 (첨각일인혼)을  보면 그녀에게 반한   남자가 마음은 아름다운 여인을 따라가는데 이 몸은 부질없이 홀로 문에 기대어 있네는 한마디로 그녀에게 구애하는 시이다.

이에 따른 ​황진이의 답은 나귀는 수레가 무거워졌다고 칭얼대는데 한사람 영혼이 더 실린 탓일세 라고 답하여 자신도 그에게 마음이 있음을 적극적으로 나타낸다.

사랑에 빠진 마음을 알고 그를 받아들이는  정말 멋진 여인이랄밖에..그런 그녀에게도 외로움이 있었다.

詠半月 반달을 노래함을 보자 ,맨 마지막구가 여자의 외로움-자신을 암시한다고 생각되지않나요? 기녀라는 신분에 매여 결국 남정네들에게 술과 웃음을 팔아야하는 처지..결국 연인들은 떠나가고 혼자 남은 명기..

 또한  冬之永夜를 보면 동짓달의 차갑고 깜깜한 밤은  애인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라고나 할까........

따뜻한 이불은 미래에 다가올 임과의 행복한 밤을 기대하는 희망시이다. 지금은 비록 동짓달처럼 막막한 시간이지만 이 시간을 잘라 간직해 두었다가 님과 함께 할 봄밤이 되면 시간을 더 잡아끌기위해  이어 붙이겠다는  사랑시이다.그녀의 애틋한 그리움이 동짓달 춥고 기나긴 밤과 따뜻한 봄날 아쉬운 밤을 대조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잘 드러아름다운 시이다.


  한시라고 딱딱한 유교의 덕목만 있지않았다는 걸 새삼 발견한다.그 옛날에도 고대인들이 지금같은 감정이 있었고 또 표현도 맛갈스럽게 했었다.아마 이 시들은 지금으로치면 TOP 10에드는 최신유행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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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생각
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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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역적인가 아니면 현실주의자인가? 이것은 근래에 자주 쟁점이 되어 온 문제다. 역사의 심판이 결정할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그의 성장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양반이었으나  적자도 아니고 장자도 아니었다. 그는 제처소생이었고 그나마 권문세가라고는 하지만 북인이 대거 정계에서 밀려난 후 요절한 부친때문에 스승 이달과  외롭게 자란데다 장차 관직에 나가서도 지지하는 막강한 세력도 없었다. 그런 그가 재상까지 된 것은 광해군에게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외척이나 지지당파의 배경도 없이 세자로 옹립된 광해군에게는 험난한 여정이 쌓여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세자인 광해군에게 대리청청을 맡기고 피난길에 올랐다. 말하자면 궂은 일은 아들에게 떠맡기고 자신은 보신만 꾀한 것이다. 게다가 권력의 중앙에서 시기질투로 이순신 같은 명장을 하옥, 파직시킨 것을 보면 절대군주제가 군주 자신을 의심 많게 하고 외롭게 하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현명한 군주는 아니었다. 또한 무책임한 면이 많다.

그러나 광해군은 대리청청된 왕자로 전난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며 궁중 깊숙한 곳의 다른 왕자들과 다르게 피폐한 민생을 보았다. 그가 대북파의 지지를 받아 왕권을 강화한 것이나 전후의 복구대책사업을 벌인 것은 권력유지를 위한 왕권강화의 일환이었으나 한편으로 그의 현실적인 상황파악도 드러나 있다.

그때문에 그는 현실에 불만이 많았던 허균을 등용했을 것이다.그는 천재시인이면서도 서얼금고나 전란후 사회의 모순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현실성을 고려한다면 광해군과 허균은 절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청과의 중립외교나 대동법시행등 광해군은 집권초에 사회의 모순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결국 그들의 관계는 역적이라는 이름아래 파탄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허균이 반역자로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  형제를 죽이고도 정권을 유지하기위해 수많은 옥사를 일으킨 만큼 광해군은  절대군주를 부정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그는 권력다툼에서 살아남기 위해무슨  일이든 해야했다.  그러니 홍길동전과 같이 새로운 이상향을 꿈꾸는 허균에게 전제왕권은 한계가 있었다.

 한편으로 광해군이 거대 토목공사를 벌여 과시하고싶은 군주의 이중성 콤플렉스를 드러낸내는 마당에 그들의 밀월관계는 결국 깨질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의  그의 급진적인 실리외교에 기인한  서인들과의 반목에서  허균도 고립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대가 용인하지 않았던 이단아 ,인간으로 허균의 이면을 다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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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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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쉽게 풀어 쓴 책이라 생각된다.   딱딱하고 어렵다고 느껴지는 작가의 글이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않다. 저자가  정통사학을 전공한 사람인 탓인지 통속적인 문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나 접근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저자는 역사가의 현재 문제의식과 그의 가치관은 결국 다음세대의 미래전망과 직관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습성상   인간은, 비록 풍지평파가 있었더라도,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발전해왔고, 그러한 진보의 여행 자체가 인간이  이성을 지닌 존재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며 과거에서 배운다. 따라서 미래에도 인간의 역사는 더욱 이성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진보할 것이다.,  현재의 사회가  장래에 더 민주적이고 더 평등한 사회로 진보해갈 것이라는 작자의 신념이 매우 명쾌하다. 민주주의의 기수처럼.. 인간 개개인의 판단이 과거에 대한 역사의 인식을 결정한다고 작자는 주장하고 있다....역사는 돌고돈다고 한다. 개인의 도덕성도 역사에 영향을 끼친다는 새로운 주장이 신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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