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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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무엇이고 벌은 무엇인가,

혐오를 드러낸 세계고전문학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심리소설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지음, 홍대화 옮김, 열린책들 펴냄​​​

 

 

 

 

한 인간의 '죄'와 그에 따른 '벌'을 도서 제목에 직관적으로 드러낸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로쟈는 왜, 하필 도끼로 왜, 하필 전당포 주인을 살해했을까? 라스꼴리니꼬프는 왜, 전당포 주인을 <이>라고 여겼을까.

 

 

 

 

 

​혐오, 살인, 혁명, 고립, 사랑, 자유

 

 

 

소설 "죄와 벌" 초반, 라스꼴리니꼬프는 마치 ​개인적 영달을 위해서 범죄를 계획했다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이것은 작가가 놓은 덫일 뿐 진실은 그와 달랐음이다. 더 많이 용기를 내어 일을 감행하는 사람만이 사람들 눈에는 옳아 보이는 거야.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하는 자만이 그들의 입법자가 되고, 더 많은 일을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 그 누구보다도 옳은 사람이 되는 거야!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눈먼 사람들만이 그것을 모를 뿐이지!

 

 

사회적 모순을 깨뜨리기 위해 라스꼴리니꼬프는 응징의 대상을 정한다. <이>로 표현되는 전당포 노파다. 전당포 주인은 돈을 구하기 위해 그나마 지니고 있던 것을 들고 온 사람들에게서 악착같이 착취하기를 거리끼지 않는다. 남의 고통을 빨아 자신의 살을 채우는 셈이다. 로쟈는 조롱의 빛을 내비치는 노파의 눈동자에 잠시 흔들렸지만 결국 그녀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이 기준을 세운 '선'을 실행한다. 에이, 이봐, 자연을 변화시키고 조정하는 것은 인간이야.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돈까지 다 내주던 로쟈. 가난에서 탈출할 출구를 초인이 됨으로써 찾고자 했던 로쟈. 그러나 로쟈의 선택은 뜻밖의 변수로 어그러진다. 이러한 상황은 가진 게 없는 자가 사회를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한 노릇임을 극명히 보여준다. 로쟈는 기생충 같은 존재인 전당포 주인을 처단하였으나 '초인'이고자 했던 그의 원대한 구상은 <이>에게 역시 고혈을 빨아먹히고 있던 그 여동생을 연이어 도끼로 내리치는 뜻밖의 상황으로 산산조각나고 만다. 진정한 '죄'를 짓고 만 것이다. 바로 그때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그런 공포를 체험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신의 손아귀에서 무사할 수 없음이다.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로쟈의 마음은 지옥이요 꿈에 시달리며 이미 벌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그가 초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받음으로써 벌을 받고 더 나아가 자유를 강탈당함으로써 벌은 그 정점을 찍는다. 정작 로쟈가 불쌍히 여겼던 소냐는 어떠한가. 오히려 자신의 상황을 꿋꿋이 버텨내는 강인함을 보이고,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갇혀 강 건너를 바라봐야 하는 '벌'을 받는 이들에게는 자애로운 모습으로 마치 구원자, 성모 마리아 같은 인생을 구현한다. 누구는 살아야 하고, 누구는 죽어야 한다고 심판할 권리를 누가 내게 주었나요? 그녀는 끝까지 신을 믿고 따르기를 선택했고, 마지막까지 로쟈에 대한 마음을 지킴으로써 진정한 사랑을 실천한다. 그녀의 선택이 오히려 사람들을 구원하고 스스로도 구원받았음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며 내가 궁금했던 몇 가지는 그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살짝 훑음으로써 해결되었다. 이를테면 로쟈는 왜, 부엌에서 간단히 챙길 수 있을 법한 칼을 제쳐두고 굳이 도끼를 무기로 선택했을까 같은 의문 말이다. 그러다 또 다시 진정한 논쟁거리일 수 있는 의문이 하나 생긴다. 한 사람의 돈을 빼앗아 훗날 전 인류와 공공의 사업을 위해 쓰이도록 자신을 헌신하겠다는 라스꼴리니꼬프의 결심은 진정 정당한가?

 

 

초인이 되고자 했던 몽상가 라스꼴리니꼬프는 나폴레옹을 흉내내 공공의 적을 없애고자 하였으며 이를 이루었으나 끝내 감옥에 갇히고 만다. 신을 부정하던 로쟈가 감옥의 문이 닫힌 후 소냐의 복음서를 바라보며 앞으로의 7년을 7일로 생각할 준비를 갖추며 자유를 갈망하는 장면에 대한 감상은 내 마음에만 간직하기로. 이제 새로운 이야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작품이 나온 당시의 사회 배경을 알지 못하면 문학작품에 숨은 의미를 제대로 짚어낼 수 없음을 절감하게 해준 세계고전문학. 혐오에서 시작해 사랑과 자유에의 갈망으로 끝을 맺는 도스토옙스키의 심리소설 "죄와 벌"이다.

 

 

 

리딩투데이 함유도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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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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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죄와 벌 상,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심리를 다룬 범죄소설


​​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아 내 인생을 망쳤다는 적반하장식 범죄자 전주환의 계획범죄에 새삼 이렇게 무서운 곳에서 살고 있는가, 하는 한탄이 공포감에 묻어 나온다. 문득 모든 범죄는 결핍과 감정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의 부족은 그 충족을 위해 노력하다가도 고무줄이 생명을 다해 끊어지듯 어느 순간 넋을 잃게 만든다. 감정의 결핍과 과도함은 또 어떤가. 모자라도, 차고 넘쳐도 이 역시 어떤 계기가 되곤 한다. 이를테면 범죄 같은 것 말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두 개 모두에 휘둘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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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지음, 홍대화 옮김, 열린책들 펴냄

언제부터인가 라스꼴리니꼬프(로쟈)는 긴장과 초조 상태에 있는 우울증 환자처럼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가 '그것'을 계획한 또 하나의 동기였다. 그런 일을 저지르려고 하면서, 이토록 하찮은 일을 두려워하다니!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다만 겁이 나서 사람들은 모든 일을 망치는 것이다. 로쟈는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지 꼽아본다. 새로운 한 걸음, 자신의 새로운 말, 이것을 제일 두려워한다.

라스꼴리니꼬프의 어머니인 뿔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아주 감성이 예민했지만 거부감을 줄 정도는 아니었고, 소심해서 어느 부분까지는 양보를 잘하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많은 것을 양보하여, 자신의 소신에 맞지 않더라도 많은 점에 동의할 수 있는 여인이었다. 그렇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이 지닌 정직함과 원칙, 최소한의 소신을 저버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로쟈의 여동생 아브도찌야 로마노브나(두냐)는 키가 크고 놀랄 정도로 늘씬한 몸에, 동작 하나하나가 강하고 자신감에 넘쳤으며, 부드러움과 우아힘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무슨 소용이람, 그들의 주머니는 비어 있었고 이로써 굴욕을 참고 견뎌야 했다. 그리고 가족의 경제적 자유를 위한 두냐의 희생은 로쟈에겐 트리거가 되었다. 모든 일은 자기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거의 뜻밖으로 약간은 우연하게 그렇게 일어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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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어야 할 지경의 가난은, 그런 극빈은 죄악입니다.

사회적 필요악 같은 존재들이 노력없이 편하게 사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던 로쟈에게 선술집에서 만난 퇴역관리 마르멜라도프의 푸념은 불쏘시개가 된다. 두냐가 사기꾼 같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승낙할 수 없는 로쟈는 마침내 계획범죄를 실행한다. 그는 자신의 범죄가 들통나지 않도록 살인에 쓸 흉기를 훔치기로 한다. 이미 소름돋는 계획범죄인 셈이다. 마치 전주환이 경찰 수사 교란 목적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에 GPS 조작 앱을 설치하고 심신미약 등을 주장하려는 의도로 정신과를 찾아 진료를 받는 치밀함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 행보다. 장갑과 위생모까지 주문한 전주환처럼 로쟈는 원래 계획과는 약간 빗나갔지만 결국 도끼를 훔치는 데 성공한다. 

​​

라스꼴리니꼬프는 도끼로 전당포 여주인을 내려치고 허겁지겁 물건을 훔친다. 그리고 재수없게도 그 장면을 목격한 여주인의 동생에게도 도끼를 휘두른다. 생각으로만 머물렀던 것을 행동에 옮김으로써 로쟈는 마침내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그는 마치 정신분열을 앓는 사람처럼 몸져 눕는다. 범죄는 항상 병을 수반한다는 주장을 하셨더군요. 그런데 이 사건, 정말 일어난 걸까? 혹시 그의 무의식 속에서만 일어난 시뮬레이션은 아닐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만... 신기루 같은 것은 꺼져 버려라. 괜한 공포도 환영도 썩 꺼져 버려라...!

​​




방세를 지불하지 못해 집주인을 피해 다니는 일상을 지내던 로쟈는, 두 개의 선택을 마주한다. 가족의 목구멍에 들어갈 음식을 구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몸을 팔아야 하는 소냐의 선택과 가족의 앞날을 위해 사기꾼 같은 남자와의 결혼을 결심한 두냐의 선택이다. 죽느냐 사느냐로 이어질지도 모를 현실을 극복하려는 몸부림과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꾀하는 방편은 닮아 보이지만 다른 종류의 문제겠다.

원치 않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좌절하던 로쟈. 도스토옙스키의 범죄소설 "죄와 벌"의 상권 초반 '인생은 날아가버려라!'라고 분노하던 로쟈는 후반에 가서는 '내겐 인생이 있다!'고 급선회한다. 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음을 절감한 로쟈는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이제 어떻게 행동할까. 상권 후반부부터 급격한 심리전이 펼쳐지는 "죄와 벌". 긴박감을 안은 채 하권으로 달려가본다.

 

 

리딩투데이 함유도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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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E. M. 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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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코믹소설 |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E.M.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이터널북스 펴냄





1930년! 울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인 이 시대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제목에 1930이 붙었을까 싶어 검색을 해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12년, 중화민국 민국 19년, 일본 쇼와 5년, 응우옌 왕조 바오다이 5년... 정말 오래전이구나 싶은 때 김좌진 장군이 암살당한 해라는 문구가 들어온다. 더 훑어보니 E. M 델라필드가 일상을 적어가던 그 해,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이번에 서거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26년생이니 어쩌면 델라필드는 여왕보단 언니로서 동시대를 살아냈겠다.





속이 부글거린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질러서라기보다는

지적인 저술가들이 우리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할 만큼

모든 인간이 고만고만하다는 우울한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나'가 모든 인간이 고만고만하다고 느낀 것에 한편으론 위로를 삼는다. 그래서 당시의 이달의 책 선정에 대해 '나'가 느낌을 적은 부분에 공감을 구십구 개 날린다. 백 개를 안 날린 이유는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는 것이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처럼 말이다. 그러고 저러고를 떠나 억압받고 남편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고 알고 있던 그 시절, 나름 권위 있는 선정작업에 대해 까다롭게 굴 줄 아는 '나'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이 나라나 저 나라나 부모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반적인 현상은 비슷한가 보다. 우리도 모임을 가질 때마다 내 아이는 연타석 펀치를 날리며 열심히 깎아내리고 남의 집 자식은 세상 둘도 없이 손 갈 데 없는 엄친아로 만들지 않던가. 이런 걸 미리 깨달아 교정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나의 일기장에도 저런 이야기가 버젓이 자리잡았겠다. 아, 서툰 엄마들 같으니^^









일기 형식으로 쓰인 코믹소설 "어느.영국 여인의 일기, 1930"을 읽으며 내내 '인간미란 뭘까?'를 생각해봤다. 세상에 인간관계만큼 힘든 일이 있겠나 싶을 만큼 소설 속에는 다양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더욱 다양한 속마음과 반응과 겉마음, 즉 응대가 나온다.




이런 응대가 나올 만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나'의 주변에는 여러 유형의 여자가 등장한다. 나는 소중한 친구인 시시와 로즈를 통해 자신의 속물 근성을 인정한다. 좋은 의도로 뭔가를 행하지만 항상 2% 부족해 기분 상하게 하는 프랑스인 마드무아젤과는 갈등도 겪지만 제법 잘 지내는 편이다. 한편, 남의 사정 따윈 안중에도 없기에 남의 기분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산통을 깨곤 하는 거만한 대부호 레이디 복스는 나에겐 마치 암초 같은 존재. 그런데 이상도 하지, 나는 마뜩잖은 레이디 복스의 초대를 받아들인다. 대체 왜? 우리가 위선이라는 도덕적 일탈을 하는 이유는 주로 상대의 눈치 없는 고집 때문이 아닐까? 툭하면 뭔가가 고장났다며 주인을 닦달하는 주인인 듯 주인 아닌 주인 같은 요리사, 늦은 시각의 초대에 '아이고 아니에요' 하고는 냉큼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수다쟁이 목사님 아내, 남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게 마치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블렌킨솝 부인과 그녀의 딸 바버라, 나름의 경쟁자 앤젤라, 쬐끔 과격한 페미니즘으로 모두를 좌불안석하게 하는 미스 팬커튼, 그리고 한창 사춘기인 나의 아들 딸과 <타임>만 읽어대는 남편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 많은 관계 속에서 '나'는 중심을 잡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겠지. 지금 여자들의 입지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고 억압받는 삶이 마치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던가. 그에 비추어 보자면 당시 여인들의 위치란 왠지 상상 가능한 범위랄까. 가부장적인 남편에게는 순종하고 맘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계속 꿍얼꿍얼 잔소리를 하고 돈에 쪼들리면서도 하인들 부리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집안에 신경 쓸 일이 끊이지 않으면 인간적인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만 지금은 그걸 바로잡을 새가 없다.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고전이지만 놀랍도록 현대적인'이라고? 생계형 작가였던 E. M 델라필드의 자전적 소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에 붙은 수식어가 어쩜 이리 딱인지. 그녀의 삶은 마치 익살을 툭툭 내던지듯 한다. 소심하지만 절대 소심하지 않은 척 구는 1930년의 영국 여인의 생활이 눈에 보이듯 그려지니 이를 어쩔. 집으로 가서 거울을 보는 순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깨닫는다. 파티가 끝난 뒤의 모습이 시작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삶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 잘 모르겠다.




양육과 부엌일 말고는 아무 데도 관심을 갖지 않는 가축 같은 삶을 사는 건 직무 유기라는 사실을 모르겠어요? 쎈 언니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소설이라기엔 기차, 편지, 엽서, 초대, 구근식물, 찻주전자, 벽난로, 무도회... 아날로그 감성 돋는 소재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일종의 코믹소설. E.M. 델라필드의 자전적 소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이다.






#어느영국여인의일기1930 #EM델라필드 #이터널북스 #코믹소설 #자전적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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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괴 1 - 산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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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산괴 1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MBC 라디오의 최상일 PD를 비롯해 여러 PD가 돌아가며 연출하는, 우리나라 토속민요 발굴조사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 짧은 시간 마치 광고처럼 소리를 들려주고 '어느 지역에서 불린, 어떤 내용의 소리다'라는 소개가 뒤따른다. 짧은 시간밖에 들을 수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나름의 향수를 자극당해서였을까. 오히려 아쉽고 더 듣고 싶어 했던 그 프로그램. 라디오랑 멀어지면서부터 듣지 못하게 됐지만 그 취지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멋지다.




산괴 1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김수희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펴냄​







매일 걷던 길이 갑자기 묘하게 달라 보이는 때가 있다. 달라진 것 없을 그 거리에서 긴장감이 흐른다 싶은 순간, 퍼뜩 정신을 차린다. 방금 전 나와 내 주위를 스쳐간 건 과연 무엇일까. 홀린다는 게 이런 걸까. 가만히 발걸음을 멈추고 있었는데도 그 찰나 어디론가 다녀온 기분, 무언가를 만나고 온 느낌... 마치 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것 같다. 혹시 여우에 홀렸나!










문득 눈앞에 무언가가 스치고 그것을 좇는 형국일 때도 있다. 하지만 나 말고는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오로지 나에게만 펼쳐진 순간이다.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무언가가 뒷덜미를 잡아끄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서두르는 발걸음을 자꾸 잡아채는 느낌에 무섭기도 하다. 가위에 눌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이 이러할까. 때로 높은 데서 떨어져 정신을 잃었다가 그 쇼크로 무언가를 보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귀신이 보인다거나 불빛이 아른댄다거나.... 누구도 보지 못하는 것들을 경험하는 것이다.









옛날 옛적, 산촌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고, 밤이면 섬뜩할 정도로 어두웠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깊은 숲은 그야말로 짐승, 그리고 우리가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미지의 존재가 지배하는 장소 아니었을까. 인간의 나약함은 겸손과 좌절을 동시에 알아챘을 것이다. 긴긴 밤 어둠과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인간들은 지붕 아래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읊조리는 '옛날 옛날 한옛날에'는 그렇게 시작되었으리라.




일본 전역을 방랑 취재하는 프리랜서 카메라맨 다나카 야스히로는 이것을 지나치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흐지부지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작은 에피소드들은 그렇게 수집되기 시작했다. 그가 민화의 원석들을 발굴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득한 옛날, 우리네 삶의 현장에서 산이 빠질 수가 없다. 불을 때기 위해 땔감을 하고,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물과 음식을 얻을 수 있었던 곳, 산. 우리네 삶에 그만큼 가까웠으니 그와 관련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산더미일 터.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후손에게도 '옛날 옛날 한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설화가 되어 주겠지. 누군가의 노고로 수집되어 두고두고 전해질 산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다나카 야스히로의 "산괴 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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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지원도서*

#산괴 #다나카야스히로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산에얽힌기묘한이야기 #여우  #산괴물 #산골실화 #산사람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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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
닐 올리버 지음, 이진옥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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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 고고학자 닐 올리버,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닐 올리버 지음, 이진옥 옮김, 윌북 펴냄





와, 정말 마음에 드는 책, 퐁당!

제목에 왜 끌리고 그러냐 싶은 참에 사냥꾼이라는 단어가 눈에 쏙 들어온다. 사냥꾼이라... 김텃밭이 자주 말하곤 하던 남자들의 사냥꾼 본능 뭐 그런 걸 다룬 이야기일까, 추측해본다. 적어도 400만 년, 여러 종류의 인간이 살았다고 알려진 그 시간 동안 우리 조상들은 사냥꾼으로 살아왔으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뇌는 사냥꾼의 소프트웨어로 구동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언제나 더 많은 것, 다른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할지 모르는 것을 찾아 헤맨다. 우리는 언제나 탐색하고 사냥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의 가지치기를 피하지 못한 모든 고인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마주쳤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잠깐, 마주쳤다고? 이 말은 인류의 서로 다른 종이 동시대에 한곳에서 함께 살았다는 말? 다른 고인류들처럼 호모 사피엔스 또한 탐험가였고 방랑자였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중동으로, 아시아와 호주, 아메리카 대륙으로 뻗어나갔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는 왜 유럽을 코앞에 두고도 건너가지 못했을까? 아마 그곳에 이미 다른 종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마침내 호모 사피엔스는 수천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동 거리를 늘려 마침내 유럽에 입성했고 다른 종들이 선점한 것이 아닌 틈새시장을 노려 해양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해안을 따라 전진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뉴브 회랑을 따라 북서쪽으로 향하던 호모 사피엔스는 우연히 네안데르탈인과 마주했을 것이다. DNA 분석 결과로 보자면, 두 종은 짝짓기를 하기도 했으며, 유럽인은 4퍼센트의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천 년 뒤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고, 우리는 게놈 안에 그들의 메아리를 담고 있다. 





이 같은 우리의 기억, 지구의 기억을 좇다 보면 우리는 수십억 년 동안 지구에 살았던 수많은 생명이 남긴 존재의 작은 흔적들을 발견하곤 한다. 그런데 보라, 책이나 편지 일기 문서 묘비명 등 문자로 적힌 이야기들은 정보를 담고 있음에도 글쓴이의 관점에 따라 쉽게 왜곡되기도 한다. 그에 반해 고고학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것들, 말이 없는 사물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무덤, 건축물, 예술품 등 공들여 제작되었거나 배치되었다가 버려졌거나 우연히 사라진 것들의 의미를 찾는다. 혹은 누군가가 일상생활 중에 남긴 무릎과 발가락이 닿았던 자리 같은 무심코 남겨진 무엇, 누구에게 보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수천 년 후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되는 무언가도 있다. 마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멈춰 섰던 360만 년 어머니의 발자국처럼. 백조 날개 깃털 위에 놓여 있는 어린이의 유골 옆에서 발견된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의 유골처럼. 유리구슬이나 목걸이 진홍색 옷 등과 함께 발견된 8세기 소녀의 무덤처럼...





내가 지금 하는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어떤 사소한 행동이나 몸집 역시 미래의 어떤 시간에서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발굴'될지도 모를 일. 우리는 우리가 기억될 것인지 잊힐 것인지 선택할 수 없고, 어떻게 기억될지는 더더욱 그러하다. 지난 것들의 의미가 예전의 그들이 아닌 나에게 달렸듯이 지금 것들의 의미는 나 아닌 미래의 다른 이들에게 달렸다.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가 마치 고고학자가 쓴 "데카메론" 같다는 추천사를 보자니, 이런 감상이 어떻게 나왔을까 궁금했다. "데카메론"이라? 무슨 의미냐 들여다보자니, 으음... 그렇군. 옛사람들의 삶과 희로애락이 담긴 책의 이야기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때문...이란다. 혹시 우리는 지금 위로가 필요하고 치유가 절실한가! 그리고 이러한 비유는 좀 더 감성적이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과학책을 읽으면서 시적 갬성을 느끼게 되다니!





우리 안에 그토록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우면서도 아름답다.

먼 훗날 혹시라도 지구의 생명체가 거의 전멸할 일이 발생하고 어쩌다 살아남은 혹은 새롭게 진화한 종류의 인간이 지구 탐사를 벌이다가 무덤을 발견하면 온갖 의미가 덧씌워지지 않을까. 그런데 요즘처럼 화장문화가 일반화되면 나중 인류는 거기서 무엇을 캐내야 할까. 쓸데없는 오지랖 한 자락이더라도, 나는 죽음의 순간 화장을 고수하던 내 생각을 조금 고쳐먹게 되었다. 누군가 나의 죽음을 깨워주기를, 나의 흔적에서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주기를! 





나는 답을 찾고자 이 책을 썼다.







번화한 도시에서 지치고 좌초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땅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자연으로 걸어 들어가 잃어버린 연결 고리를 찾는다면, 거기서 영혼을 치유할 약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성공적으로 생존함으로써 자연의 시험을 통과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시험대에 올라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닐 올리버. 그의 경고는 우리가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우리가 젖은 흙냄새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맞혀보시라.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혹은 "코스모스" 혹은 "총균쇠" 혹은 "이기적 유전자" 같은 오라를 뿜어내는 이 책. 사냥꾼과 어부의 삶을 지나 농부로서의 삶으로 나아간 인류에 대해, 사납고 혹독한 세상에서 고단한 삶을 견디며 가족을 이룬 인류의 사랑과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문학 추천도서다. 닐 올리버, 당신을 만나 행복했어요. 우리는 이제 누구와 공존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만드는 닐 올리버의 인류사, 과학과 문학적 감성이 어우러진 따뜻한 속삭임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꼭 읽어보자. 강추!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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