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을 끼고 있는 빌라는 만족스러웠다. 햇빛이 넉넉했다. 이사를 잘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빛이 잘 드는 조건만 만족스러운 게 아니었다. 창틈으로 투과되는 청량한 공기는 ‘관악산 공기청정기’를 돈도 안 내고 맘껏 사용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커가고 병설 유치원에 합격하면서,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겨났다.

유치원 등, 하원을 시켜야 할 텐데 걸어서 20분 거리,

더 큰 문제는 급경사를 오르락내리락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르락 내리락 반복해”(리샹, <회상>)라는 가사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이가 하나라면 어떻게든 급경사를 감당할 수 있겠지만, 세 살 된 둘째까지 데리고 유치원을 오가는 일이 만만찮았다. 엄마의 허벅지는 날로 튼튼해졌다. 결정적 문제는 무릎이었다.

 

 

아이를 안고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엄마의 무릎이 제대로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사를 다시 고민해야 했다. 지도를 또 펼쳤다. 유치원 반경 5~20분 거리가 후보지였다. 약간의 거리가 있더라도 지금 사는 집만큼의 급경사만 아니면 됐다. 신혼 반지하에서 처음 탈출했을 때 세웠던 ‘산 주변 공기 좋고 햇볕 잘 드는 곳’이라는 이사의 대원칙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유치원에 가까우면서도 산에 인접한 곳으로 후보군을 좁히고 나니 생각보다 몇 군데 되지 않았다. 최적의 후보지에 위치한 아파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돈이었다.

 

 

돈이 한참 모자랐다. 과다한 대출을 피할 수 없었다.

전세를 알아보러 다녔다.

전세를 구해도 구해도 안 되던 어느 날,

‘차라리 매매로 돌아가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세금도 없는 무슨 매매?’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지만 매매가 가능한지 대출을 한번 알아나 보자 싶었다.

 

 

 

주택금융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부지런히 보금자리론 대출 한도를 계산했다. 당시 2016년 초 기준으로 계산해보니 대출 70%를 꽉 채우면 간당간당하게 매매할 수 있겠다 싶었다. 1년 반쯤 뒤에 단행된 2017년 ‘8․2 부동산 대책’이 만약 그때 시행됐더라면 나는 매매에 필요한 돈을 대출받는 것이 불가능해 전세를 택해야만 했을 것이다.

 

다주택자들, 강남의 집값을 잡는다고 세운 정책에 나와 같은 불가피한 이유로 매매를 알아봐야 하는 사람 역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생계형 매매’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책을 만들 때 모두를 만족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겠지만, 한 사람의 피해자라도 줄일 수 있도록 치밀한 대책이 필요하다.

 

돈을 벌기 위해 살지도 않을 집을 두세 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주거는 돈이다.

 

반면 나 같은 사람에게 주거는 생활공간이자 생존 공간이다.

 

주거 공간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으면 날마다 땡볕에 한 아이를 안고,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무릎이 나가도록 급경사를 오르내리며

유치원 등, 하원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거는 생활․생존 공간이다.

 

 

 

5화에서 계속됩니다.

 

* 위 내용은 <나의 주거 투쟁>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나의 주거 투쟁>

김동하 지음 / 궁리 펴냄 / 2018년 6월 18일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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