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말은 못해도…….  그것이 무엇일까? 사랑한다는 것은……. <뤼시스>와 <이온>과 <테아이테토스>, 플라톤의 대화편 셋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어 보았다. 굳이 핵심어를 하나 제시하라면 '잡은 물고기'다. 이것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셋이 묶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뤼시스/라케스/카르미데스-초기 대화편들』이다. 셋은 초기·중기·후기로 나뉘는 플라톤 대화편들 중 '초기'에 해당한다. 또한 인간이 갖춰야 할 탁월하고 훌륭한 자질, 곧 미덕(arete)들을 다루는데, 복잡하지 않게 설정한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 <뤼시스>는 우정을, <라케스>는 용기를, <카르미데스>는 절제가 무엇인지 탐구한다.

 

'잡은 물고기'란 말이 떠오르면 그 사랑은 끝난 것
"생각보다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은 어렵지 않다."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중기와 후기의 대화편들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지, 이들 대화편 어느 것도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논지를 파악하기란 녹록치 않다. 그것이 플라톤 대화편들을 읽는 재미이기도 하지만, 하나도 빼놓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읽노라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회의감에 빠지곤 한다. 주석을 빠짐없이 읽어도(그러면 그럴수록)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남아 있다. 기본적으로 플라톤은 어렵고, 그의 문장은 난해(난삽 難澁)하기에 겪는 문제이다. 그렇게 열심히 '학구열'을 불태운 독서를 했음에도, 다시 집어 들면 처음 접하는 것처럼 텍스트는 늘 낯설게 다가온다. 시 삼백편이 사무사다.
쉽지는 않겠지만, 철학 전공자들의 이해와는 다른 사변적인 얘기를 하려 한다. 세 대화편 중 <뤼시스>에 관해 그것도 '모든'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한다. 거의 대부분의 대화편들이 본 대담을 전후하여 그 대화를 진행하게 된 배경을 제시한다. 일종의 '설정'이다. 이는 토론주제와 연관되어 있으며, 때론 억지스러운 점이 드러나지만 소크라테스라는 인간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기록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설정이며 등장인물(대담자들)의 선정에 이르기까지 '구성'을 살피면, 그리스 비극(장르)처럼 하나의 극적인 상황이 부여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화편 자체가 시민 교육을 위한 또 하나의 매체임을 알 수 있다. 너무 어렵지 않게 적절한 주제의 대화편을 고르고, 이를 각색하면 한 편의 훌륭한 연극으로 무대에 올리는 일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대화편 자체가 시민교육을 위한 또 하나의 매체

특히, <뤼시스>의 주제는 우정(友情: philia 필리아)이지만, 이 단어(개념)는 사람과 사람 사이, 곧 관계에서 대단히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오래 전에 살핀 바 있다). 다만 천병희는 <뤼시스>에서 'philia'(필리아)를 우애(友愛)로, 'philos'(필로스)를 ‘친구로’옮긴다. 그리스어 '필리아'는 '우정(友情)', '우애(友愛), '친애(親愛)’ 나아가 연인 사이의 '사랑'의 의미까지도 모두 가지고 있다. 플라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니코마코스 윤리학)에 'philia'는 전가의 보도라고 할 만큼 저술 전체에서 핵심개념으로 사용된다. 해서, 번역가에 따라 해당 우리말을 선택해야 하지만, 고민이 깊어, 천병희는 '우애'를, 강상진·김재홍·이창우(『니코마코스 윤리학』)는 '친애'를 채택했다.

 

 

정리하면, <뤼시스>는 우정에 대해 토론하고 있지만, 연인 사이의 사랑의 문제도 포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유명한 대화편 『향연』처럼 사랑 그 자체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는 않지만, 분화되기 이전의 'philia(필리아)'를 다루고 있기에, 여러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확대해석해도 무방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연상의 ‘연인’(사랑하는 사람)이 연하의 ‘연동’(사랑받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 마음을 얻고자 하는 남성들 간의 동성애(오늘날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_쉽지 않은 언급이다)가 곧 '사랑'으로 등식화되어 있다. 이 점에 대해서 그냥 남녀 사이의 사랑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뤼시스>에서 훌륭한 연애상담자로 '자리매김'한다. 주제가 이러하다보니 소크라테스를 제외한 등장인물들(대담자)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philia(필리아)는 우정이면서 사랑, 분화 이전의 관계 언어
힙포탈레스는 10대 후반의 부잣집 아들이고 크테십포스는 그와 또래인데, 둘은 동성애에 관심이 많다. 이들이 동성애와 관련하여 (좀 이른 나이인 듯하나) '연인'의 입장이라면, '연동' 쯤에 해당하는 두 인물이 더 등장한다. 13세쯤 된 메넥세노스와 또래인 뤼시스다. 힙포탈레스는 뤼시스를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인데, 뤼시스는 크테십포스의 사촌이기도 하다. 둘이 사촌간이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크테십포스는 그 자신 동성애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뤼시스를 향한 힙포탈레스의 태도에는 비판적이다. 대화편 도입부에서 또래인 두 사람, 힙포탈레스와 크테십포스의 미묘한 '갈등'이 흥미로우며,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상태를 엿볼 수 있어, 새롭다.
소크라테스는 연애상담 전문가답게 힙포탈레스가 "사랑하고 있을뿐더러 사랑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본다. 하지만 그는 더욱더 얼굴을 붉힐 뿐, 수줍어서 나서지를 못한다. 크테십포스가 이런 친구를 마구 나무라는데, 하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뤼시스를 향한 사랑타령을 하는(힙포탈레스를) 것을 지켜보기 민망할 지경이라면서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이 친구 아직 사랑을 모르는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그가 뤼시스라는 이름을 귀에다 쏟아붓는 바람에 귀머거리가 되다시피 했어요. 그리고 그가 술이라도 마시면 우리는 이튿날 아침에 깨어서도 여전히 뤼시스라는 이름을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니까요."(뤼시스: 204d)

구구절절, 예를 들지 않더라도 사랑에 빠진 이의 상태가 어떠한가, 이처럼 적절한 묘사가 또 있을까? 그 대상에게는 직접 나설 용기가 없고, 그러니, 그 표현할 길 없는 마음을 곁의 친구에게 끊임없이 쏟아내는 것인데…….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알리고 공감을 얻고자 하는 '과시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맞아 맞아'' 그래 그래'라고 '좋아요!' 하나 꾹 눌러주면 될 것을. 여기까지는 '그렇고 그런'이라고 치자. 문제는 다음이다. 대화보다도 더 끔찍한 상황은 따로 있단다.

"(대화는) 그가 시와 산문을 지어 우리에게 쏟아부을 때 비하면 약과예요. 그러나 최악은 그가 괴상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소년을 칭송하고, 우리는 그런 노래를 들어야 할 때지요. 그런 그가 지금 선생님께서 그 이름을 묻자 얼굴을 붉히는데요."(뤼시스: 204d)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덤으로 누구나 시인이 된다. 

구체적으로 누구냐 등등(사랑에 빠진 사람들 주위에서 이런 걸 좀 물어줘야 한다),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받는 힙포탈레스. 다른 것은 다 인정하면서도 "연동에 관해 시를 짓고 산문을 쓴다는 것은 부인"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그 마음을 드러내거나 전하기 위해 글을 쓰는 일. 돌아보면 유치찬란한 것일지 몰라도, 그것이 작가의 글쓰기에 시작이었다는, 유명작가들의 인터뷰나 자전적인 기록에서 가끔 보곤 한다. 크테십포스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고자질을 한다. 힙포탈레스는 "노파들이 읊어대는 이런 이야기와 그 밖에 그와 비슷한 수많은 이야기를 시나 산문으로 지어서는 우리더러 들으라고 강요해요."라고.
이쯤에서 소크라테스는 이것은 연동을 얻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인데, 그러한 연시나 연서가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곧 "자네의 노래들은 자네를 칭송하는 승리의 송가"가 될 것이라며, 훌륭한 조언을 한다.

"연애 전문가는 연동을 손아귀에 넣기 전에는 연동을 찬양하지 않는다네, 장차 일이 어떻게 될지 염려되니까. 또한 잘생긴 소년들은 누가 칭찬하고 추어주면 자만심에 차서 점점 도도해진다네.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밀당 얘기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사냥꾼이 사냥감을 놀라게 하여 잡기 더 어렵게 한다면  "그는 형편없는 사냥꾼"이란 대답을 받아낸다. <뤼시스>의 다음 이야기는 직접 확인하시라.

 

사냥꾼은 사냥감을 놀라게 하지 않아, 사랑의 기술
이제 플라톤의 대화편 <이온>이다. <이온>은 『이온/크라튈로스』(천병희, 숲, 2014년 10월)에서 처음 (원전)번역이 되었고, 근래에 『고르기아스/메넥세노스/이온』(박종현, 서광사,2018년 12월)이 출간되었다. 가장 짧은 대화편이지만 던지는 메시지는 만만치 않다. 이른바 창작에 관련하여 ‘영감론(靈感論)’이 처음 등장한다. 시인은 신들린 상태에서(영감을 받아) 작시(作詩)하는 만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리 한다는 것이다. <이온>에서 소크라테스는 서사시를 음송하는 직업을 가진 이온을 만나, 전달자인 당신만이 아니라 그 훌륭한 서사시를 지은 사람(호메로스)조차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어떤 (신적인) 도움을 받아 굿판의 무당처럼 뭔가에 씐 상태에서 작품을 쓴다는 것이다. 국내 가요사만 봐도, 늘 새롭고 보다 훌륭한 곡을 쓰기 위해 대마초와 마약 등을 창작의 방편으로 복용했다가 고생한 뮤지션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정말 훌륭한 작품은 '영감론'에 의지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앞서 <뤼시스>에서 살핀 사랑에 빠진 사람이 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그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로) 광적으로 몰두하는 글쓰기의 경지가 있지 않나, 그렇게 <뤼시스>와 <이온>은 연결된다.

 

뭔가에 씐 상태에서 작품을 쓰는 시인, 사랑하는 이도

이제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 어렵기로 악명 높은 <테아이테토스>로 가자. 『테아이테토스』(정준영, 이제이북스, 2013년 11월)가 첫 원전번역이고, 그 다음이 번역가 천병희가 작업한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에 수록된 <테아이테토스>다.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테아이테토스/필레보스/티마이오스/크리티아스/파르메니데스』(천병희, 숲, 2016년 5월)] 그리고 천병희는 『테아이테토스』(숲, 2017년 6월)만 독립시켜 반양장으로 펴냈다. 이 대화편은 한마디로 ‘무지의 지’를 깊이 살피는데, 궁극으로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주요 논지 가운데 하나를 변론하다.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대화편이지만, 읽는 이가 천재가 아닌 한, 그때그때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만이라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명한 새장 속의 새 비유가 그렇다. 새(비둘기) 사냥에는 두 가지가 있단다.

 

"하나는 소유하기 전에 소유하기 위해서 하는 사냥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한 뒤에 이미 소유한 것을 붙잡아서 손안에 갖기 위해서 하는 사냥" -<테아이테토스> 199d, 천병희, 위 반양장)

 

여기서 새(비둘기)는 '지식'의 은유(비유)다. 한 차례 습득한 지식이 기억의 저장고(새장)에 머문다고 하여 그것은을 '안다'고, 곧 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반문이다. 그렇거늘 맘에 드는 책을 구입해서 내 서가에 꽂아놓았다고 그것이 나의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을 읽고 뭔가를 얻어낼 때 비로소 그것은 나의 지식이 된다. "소유한 것을 붙잡아서 손안에 갖기 위해서 하는 사냥"이 곧 독서다. '책은 곧 지식'이라는 등식에 의거, 비약해서 설명해본 것이다.

 

소유한 것을 붙잡아 손안에 갖기 위해서 하는 사냥 혹은 사랑
연애상담 전문가 소크라테스가 연인에게 연동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수 설파한 바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토록 뭔가에 씐 것처럼 열정에 들뜨고, 훌륭한 작가를 만들어놓기도 하는 사랑, 그러나 그 열정이 식었을 때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지 않던가? 결혼은 과연 시작인가? 얼기설기 바느질한 느낌이 있지만,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너무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읽기보다는 우선 친해졌으면(philia) 하는 마음에서 '소프트' 한(정말 그런가?) 글 하나를 정리해보았다. '잡은 물고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사용하는 쪽이나 받아들이는 쪽이나, 둘 다 문제가 있다. 사랑에서 '잡은 물고기'라는 비유가 등장할 때, 그 사랑은 이미 회복 불가능 상태에 이르러 있는 것이다. 사랑을 얻기까지도 '툴'이 필요하지만, 그 사랑을 '관리하는'데에 필요한 사랑의 기술이 있고, 그제야 사랑은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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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3-28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imeroad 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플라톤의 작품을 읽었을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timeroad 2019-03-28 19: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늘 안개가 걷히지 않은 산길을 걷는 기분이라서, 좀 쉽게 몇 가지 이야기만 하고 싶어서요.

ransky 2019-05-11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는 연애상담 전문가라니!
진작 상담을 받을껄!

timeroad 2019-05-12 00:39   좋아요 0 | URL
분화 이전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얘기한 듯, 어쨌든 요즘 얘기하는 사랑 포함이라. 책 한 권 분량으로 넘치는 얘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