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계보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헤시오도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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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존은 힘겹고 비참하다. 이를 전제로 헤시오도스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경고를 한다. 인간들은 땀 흘려 농사 짓고 배를 타고 장사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었다. 그 어느 날부터? '그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다.

“헤시오도스는 그 원인을 인간들에 대한 신들의 시기심에서 찾는다. 인간들은 분수 이상으로 잘살고 싶어 하고, 그래서 신들이 그들의 삶을 고단하게 만든다는 것. 신들은 인간적 존재와 신적 존재의 차이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간들에게 운명을 개선할 기회가 생기면 신들이 그들에게 새로운 고통을 부과하여 이를 상쇄(相殺)한다. 헤시오도스는 이러한 생각을 인류의 옹호자인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로 표현한다. 신들과 인간들이 재물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을 속여야 했고, 그래서 신들은 화가 나서 양식을 감춰버렸고, 인간들은 힘들게 양식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제우스는 불도 감춰버렸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지상으로 갖고 내려와서 인간들이 고도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벌로 제우스는 판도라라는 가장 뻔뻔스럽고 교활하고 멋있게 치장한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온갖 다른 악(惡)을 인간들에게 내려 보낸다.(<신들의 계보> 591~612행 참조)" _『신들의 계보』 (천병희 옮김), <헤시오도스 작품의 이해> 중 정리.


신들의 시기심 발동, 인간적 존재와 차이를 유지하고 싶어

제우스가 이처럼 여자를 매력 있게 만든 것은 인간들이 "모두 자신의 재앙을 껴안으며 마음속으로 기뻐하게"(「일과 날」 58행) 하기 위해서였다. 「일과 날」은 프로메테우스와 관련된 기술을, 90행까지는 「신들의 계보」를 따르는데, 이후부터는 독창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 정확한 번역은 '판도라의 항아리'다. 제우스는 필멸의 인간들에게 불의 힘을 주지 않았다. 이제 프로메테우스는 불(火光)을 훔쳐내어 인간들에게 선물한다. 제우스는 그 대가로 인간들에게 재앙을 마련하셨으니, 이름난 절름발이(헤파이스토스) 신이 크로노스의 아드님의 계획에 따라 '얌전한 처녀와도 같은 것'을 흙으로 빚었던 것. 「신들의 계보」에는 '얌전한 처녀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 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판도라'라는 이름은 「일과 날」(47~105행)에서 등장한다. 판도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과 날」은 자세하게 기술한다. 제우스의 명에 따라 헤파이스토스는 곧바로 '정숙한 처녀를 닮은 것을 흙에서 빚어냈고'(71행) 아테네는 그녀에게 허리띠를 두르며 치장해준다.


'얌전한 처녀와도 같은 것'(신들의 계보)은 판도라(일과 날)
"……그러나 그녀의 가슴속에 아르고스의 살해자인 심부름꾼은/ 거짓말과 알랑대는 말과 교활한 기질을 만들었소./ 요란하게 천둥 치시는 제우스의 뜻에 따라, 신들의 전령은/ 안에다 목소리를 넣고는 이 여자를 판도라라고 이름 지었으니/ 올륌포스의 집들에 사시는 모든 신들께서 빵을 먹고 사는/ 인간들에게 고통이 되도록 그녀에게 선물을 주셨던 것이오." -「일과 날」 77~82행
판도라가 신들이 인간(들)에게 준 선물이라면 그 판도라, ‘그녀에게 선물을’ 주었다는 것(82행). 고로 선물의 주인은 판도라이므로 판도라가 개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녀에게 준 선물’이 그녀에게 부여한 여러 권능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든 제우스가 보낸 선물은 '상자'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항아리(pithos), '판도라의 항아리'(천병희의 번역)다.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의 아내가 된다. 그런데 제우스가 보낸 선물을 받은(택배를 수령한) 사람은 에피메테우스였다. 사전에 제우스의 의중을 간파한 프로메테우스는 동생에게 어떤 선물도 받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하지만 동생은 형과는 대조적으로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형 프로메테우스(사전에 생각하는 자)의 주의를 무시했고, 재앙을 당한 뒤에야 그런 줄 알게 된다.

 

'상자'가 아니라 항아리(pithos), '판도라의 항아리'다.
이들 형제의 출생(「신들의 계보」 511행 전후를 정리)은 이렇다. 복사뼈가 예쁜 오케아노스의 딸 클뤼메네와 이아페토스 사이에서 아틀라스(1,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가 태어났다. 클뤼메네는 또한 거만한 메노이티오스와 '꾀 많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프로메테우스(2-1)와 '얼빠진 에피메테우스를'(202) 낳았다. 에피메테우스는 빵을 먹고 사는 인간들에게 처음부터 재앙이 되었다. 만들어진 처녀를 그가 처음으로 제우스에게서 아내로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신들의 계보> 507행~514행) 제우스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프로메테우스가 속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얼빠진' 에피메테우스라는 틈새를 이용한 것이다. '호기심'이 많은 판도라는 그 항아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서 애를 태웠다. 집안 곳곳을 뒤져 항아리를 찾아낸 그녀는 마침내  뚜껑을 열고야 만다.
"그러나 여자가 두 손으로 항아리의 큰 뚜껑을 들어 올려 그런 것들을/ 모두 내보내니, 인간들에게 그녀는 큰 근심을 안겨주었던 것이오./ 오직 희망만이 거기 부술 수 없는 집 안에, 항아리의 가장자리 아래 남고 밖으로 날아가지 않았는데,/ 그러기 전에 여자가 항아리의 뚜껑을 도로 놓았기 때문이오." -「일과 날」 94~98행

 

무엇이 판도라로 하여금 항아리 뚜껑을 열게 하였을까?
'판도라'라는 이름도 그렇고,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에만 등장하는 '판도라의 항아리' 관련 부분이다. 항아리에서 튀어 나온 것은 인간의 육체를 괴롭히는 온갖 질병들이었다. 또한 인간 정신을 괴롭히는 불안, 걱정, 질투, 원망, 복수, 집착 등등이 줄지어 나왔다. 그리고 항아리에는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를 희망만이 남았다. 그날 이후 인간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이전까지 인간의 종족은 '지상에서 재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힘겨운 노고도 없이, 인간들에게 죽음의 운명을 가져다주는 병(病)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희망'에 대한 해석도 분분한데, 희망만이 항아리에 남았다는 것은, 희망이 우리한테서 멀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며 고통을 완화해주는 진정제 노릇을 한다는 것, 번역가(천병희)의 주석이다.

 

우리와 늘 함께하며 고통을 완화해주는 진정제, 희망
그렇다면 이 에피소드에서 저마다 어떤 실수를 저질렀을까?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죄를 응징하기 위해, 그가 아끼는(챙기는) 인간들에게 위해를 가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는 사람 앞에서 늘 약자이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가장 아픈 곳을 저격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사전에 당부하였으나, 그런 동생을 끝까지 챙기지 못한 실수를 했다. '에피메테우스'는 형과 비교하여 슬기롭지는 않으나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행동하고 '나중에 생각하는' 스타일일 뿐이다. 물론 '사전에 생각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신중함은 실수를 줄인다. 그러나 실행하기 전에 너무 머뭇거리다가 결정적인 기회(의 시간 '카이로스')을 놓칠 수도 있다. 이처럼 두 형제의 이름에는 상호보완하라, 곧 협동(協同)하며 살라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다면 판도라는? 판도라는 왜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을까? 'WHY?'에 알맞은 단어가 <일과 날>의 원전번역(텍스트)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정황상 해석하는 데 등장하는 단어는 '호기심(好奇心)'이다.

 

'프로..'와 '에피..' 서로 기대며(사람人) 협동(協同)하며 살라
헤시오도스는 기원전 700년경에 작품활동을 하였다. 기원전 2세기 알렉산드레이아에서 활동한 아테나이 출신 대학자 아폴로도로스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 신화>(천병희,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숲))에 '판도라'라는 이름은 단 한 번 등장한다. 프로메테우스에게는 데우칼리온이란 아들이 있었다. 데우칼리온은 '신들이 최초의 여인으로 만든 판도라'가 에피메테우스에게 낳아준 딸 퓌르라와 결혼한다. 제우스가 대홍수를 일으켜 청동의 종족을 멸하였을 때, 프로메테우스의 조언에 따라 방주를 만들어 이들 부부가 살아남는다.(『그리스 신화』 1.7.2.) 헤시오도스보다 최소한 900년쯤 후에 집필된 아폴로도로스의 책에서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의 아내, 퓌르라의 어머니 정도로 '1)신들이 만든 2)최초의 여인'이지만 담담하게 소개될 뿐이다. 그러니까 「일과 날」에서와 같은 디테일은 없다.

 

[프로메.. 아들 데우칼리온과 판도라의 딸 퓌르라 부부. 대홍수 생존자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제우스의 지시에 따라 헤르메스는 그녀의 가슴속에 '거짓말과 알랑대는 말과 교활한 기질'을 심는다. 판도라가 항아리를 연 것은 이 세 가지 기질 가운데 어느 것 때문일까? 그 마음을 '호기심'이라고 해석하는데, 굳이 하나를 선택한다면 '교활한 기질'이지 싶다. 그런데, 「일과 날」에서 제우스가 헤르메스에게 명령하여, "그녀 안에 개의 마음과 교활한 기질을 넣게 하셨소."(68행)와 같은 언급이 있다. 개의 마음과 호기심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살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서 사는지, 하루 두세 끼니 식당에 앉아 메뉴를 고를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먹고살려고'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는 또 다른 차원이다.

 

날마다 노동하는 인간과 호기심이 부른 ‘희망’은 연결고리가 튼튼해
판도라의 항아리(인간의 것으로)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는 '희망'은 인간이 오늘날' 날마다 노동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과 연결고리가 있는 듯. 노동하는 인간으로 살아가자, 노동의 신성함이 「일과 날」의 주제인 점에서, 그렇다. 비록 필멸의 인간이지만 "신들과 한곳에서 태어나" 신적인 혜택을 누리던 인간들이 '추락하여' 오늘날까지 노동하는 인간으로 살게 된 것은 판도라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도 하겠다. 제우스의 기획으로 판도라의 마음에 심어진 것인지, 그와는 별도로 인간 본성으로 있던 것이 발현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판도라의 '호기심'은 희망을 낳았는데, 그 희망이 때로는 ‘희망고문’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 없는 이~ 발(출근)길. 또 다른 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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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는 여인(궁녀)의 구강 구조까지 클로즈업을 하는 등 표음문자이자 '설형문자'인 한글의 창제원리를 디테일하게 소개한다.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을 영화를 통해 대중들이 알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나름의 역할을 한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 한 편의 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고, 사실이 그렇다. 천만관객 국내 영화가 너무 많아서인지, 이 영화의 관객이 채 100만을 넘지 못하는 현 상태가 아쉬운 이유다. [영화 <나랏말싸미>(THE KING'S LETTERS, 2018 제작, 2019.07.24 개봉, 954,800명(2019.08.31, 영진위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01. 말은 있는데 문자가 왜 없을까, 한글창제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주의(主義)는 프레임(frame)이 그렇듯, 맹목적일 때 고착화될 때 위험해진다. 항상 예외는 있는 법이고, 세월이 흘러 한때 사론이 정론으로 자리바꿈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主義)는 주의(注意)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이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이것만은 우리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세 가지 정도를 꼽으라면 그 첫째가 한글이다. 셋 중 하나로 조선후기에 시작된 민화(民畵)를 꼽기도 한다. 일본의 강점에 의해 조선이 근대화된 것이 아니라, 상인세력들의 급부상과 양반계급의 몰락 등 자발적인 근대화의 싹을 '민화'의 제작과 거래, 소유 등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광화문 한복판에 세종대왕상이 서 있는 것은 타당하다. 세종대왕이 주도한 한글창제는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며, '민족주의'를 얘기할 때, 제1근거가 된다. 그런데, 왜 한글을 창제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결과적으로 애민(愛民)에 따른 훈민(訓民)의 필요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왕조의 4대 왕에 이르러 왜 갑자기 이런 사업이 추진된 것일까? 그 계기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거창한 이유가 아니고 (어쩌면 사소한) '호기심'의 발로라고 본다. 말은 있는데 왜 그 말을 기록할 문자는 없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사소한 호기심은 문자혁명을 이룩했다.
조선창업 프로젝트를 주도한 정도전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 공정하게 경쟁하고 건강한 갈등이 있는 그런 나라를 꿈꾸었다. 한쪽으로 치우침으로써 권력이 남용되는 것을 경계한 것. 세종대왕은 아버지 태종과는 다른 방식으로 왕권 강화책을 도모하는데, 창제한 한글은 결정적인 무기가 된다. 중앙집권의 강화, 민심을 왕정에 반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말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문자의 발명이었다. 특권(양반)층이 반발하는 것 또한 당연했다. 한글 창제와 반포를 두고 왕권과 신권이 극렬하게 신경전을 벌인다. 이 영화에서도 세종대왕이 왜 한글을 창제할 생각을 하게 되는지, 그 출발이 '호기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에피소드(잘 기억나지 않는다)를 부각시켜야 했다.
철학이든 과학이든, 하드웨어이건 소프트웨어이건 새로움 또는 새로운 것의 창조는 이 호기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불편함의 발견인데, 이 발견이 곧 호기심이고 호기심 때문에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이 호기심을 억누르지 않고 그 궁금증을 풀었을 때, 발명품이 탄생한다. 한글의 탄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종대왕 제위 시에 현대의 과학에 힘입은 발명품처럼 그런 새로운 창안 품들이 속속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두루 감안할 때, 세종대왕은 호기심이 무척 많은, 그러나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실천적으로 결과물을 낸 과학자이자 언어 철학자가 된다. 이 영화의 영어명은 <THE KING'S LETTERS>다. 난독증도 아니고, 한글의 실체, 한글이 가진 힘을 제대로 홍보한 영화가 역사왜곡 논쟁의 거미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올해 아니 내년쯤의 한글날 TV영화로 방영하는 1순위 영화가 될 것인데, 새삼스럽게 불필요한 논쟁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호기심’에 대해 살핀다.

 

#2. ‘지혜 사랑’(철학) 원천은 호기심, 당대 현실에 대한 실망감에서 시작

"플라톤과 그를 따랐던 많은 철학자에 따르면,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철학의 원천은 호기심입니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왜 전지전능한 신이 있는데도 악이 있는지, 무엇이 선을 선으로 만드는지 궁금해 합니다. 심지어 아이들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스벤 브링크만 지음, 다산초당) 29면
덴마크 사람. 철학 강연으로 유명하며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벤 브링크만의 ‘강의록’(책) 중 일부다. 철학은 우리가 1)지닌 개념을 검토하고, 2)더 명료하게 질문하고, 3)보다 더 정확하게 대답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 그런데 철학이 호기심에서 시작된다는, 플라톤 철학의 출발점과는 좀 다른 관점이 있다. 현대 철학자 사이먼 클리츨리의 의견인데, 철학이 ‘실망감’에서 나왔다는 것. 우리 마음에 있는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는 실망감'이 정치철학에 대한 필요를 낳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열망을 낳았다는 것이다. 한편 크리츨리는 철학은 ‘신이 없다는 실망감’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폭력적이며 불공정한 세상'에서는 선이 끝끝내 승리할 때가 드물고, 악인이 행복하게 살기도 합니다."(앞의 책)
그렇다면 플라톤에서 전환점을 맞이하는 철학의 출발점이 '호기심'이란 것과, 현대 정치철학의 출발점이 '실망감'이라는 의견은 상호 충돌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학교에서 배웠거나 인터넷에서 읽었거나 역사적 인물로서의 소크라테스도 좋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에서, 크세노폰의 진솔한 회상에서 만나는 보다 진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떠올려도 좋다. 그는 호기심이 많았고, 그것을 억제할 수가 없어 아테네 시내를 어슬렁거린다. 그리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지성들, 권력을 쥔 정치가들,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예술가들을 만나 공개토론을 진행했다. 논쟁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인 양, 그의 분주한 행보는 호기심의 발로였다. 그러나 당대의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초기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철학자라면,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현실(정치를 포함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실망감'에서 (플라톤이) 철학하고 교육효과를 늘리려 집필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있었고, 당대에도 직접 혹은 간접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소피스트(연설가들)들이 있었지만, 서양철학의 진정한 출발은 소크라테스-플라톤이라도 보는 데 이의는 없을 듯하다. 서양철학의 전통은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고, 때로는 동양의 사상과 교류했다. 철학자를 뜻하는 영어 'philosopher'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플라톤)는 '지혜 사랑'을 직접 언급한다. 철학자들에게는 있지만 소피스트들에게는 없거나 결여되어 있는 것, 그 차이를 설명하면서다. 최근 발간된 『철학의 역사』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의견을 발견한다.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중시하는 지혜란 단지 어떤 대단한 인물이 참이라고 말해주었다는 이유로 믿는 게 아니라 논쟁하고 추론하고 질문하는 데에 바탕을 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지혜는 수많은 사실을 아는 것이나 어떤 일을 하는 법을 아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의 한계 등 우리 존재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날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가 한 것과 거의 흡사한 일을 하고 있다." -『철학의 역사』12~13면, 나이절 워버턴, 소소의책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거의 대부분이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당수는 자문자답, 대답하기 위해 스스로 하는 질문이다. 질문은 관심, 질문은 문득 고개를 쳐든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앞서 사이먼 클리츨리의 의견(철학은 실망감에서 출발한다)은 소크라테스 시대에 이미 시작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새로운 관점에서 아테네를 바라보았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하기에 미워할 수도 있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아테네 정치가들(실력자들)이나 명망가들, 투표권을 가진 시민의 상당수에게 소크라테스는 존재 자체가 불편함이었다. 사형판결로 자명했고, 자살과도 같은 것이었다. 세계의 실재에 대한 객관적인 앎, 과학의 출발점도 호기심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당대의 아테네 시민들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아테네 시내를 배회하는 소크라테스를 불편하게 여겼을까? 호기심의 어두운 면이 있다.

 

#3. 수다에는 수다 자체 못지않은 큰 악덕이 따르는데, 호기심이다.

플루타르코스(기원후 50년 이전~120년 이후)의 철학에세이 「수다에 관하여」에서는 수다와 관련된 호기심의 실체가 드러난다. 수다에는 수다 자체 못지않은 큰 악덕이 따르는데, 호기심이란다. 수다쟁이는 (무엇이건) 말을 많이 할 수 있기 위해 많이 듣고 싶어 한다는 것, 세상사 이것저것, 근동의 장삼이사에 대해 필요 이상의 호기심을 갖고, 필요 이상의 호기심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 가짜뉴스가 판치는 작금의 세상은 또 어떠한가!
"그들은 특히 자신의 수다에 새로운 소재를 공급하기 위해서 비밀스러운 또는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려고 꼬치꼬치 캐묻고 돌아다닌다. 그들은 얼음을 손에 들 수 없으면서도 놓으려고 하지 않는 어린아이들과도 같다. 그러므로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다쟁이는 남의 비밀을 가슴에 품지만, 그곳에 간직하지 못하면 마치 뱀에게 물리듯 그 비밀에 물리고 만다고. 동갈치나 독사는 새끼를 낳다가 터져 죽는다는데, 비밀도 입 밖에 나오면 누설자를 파멸케 하기 때문이다." -『수다에 관하여_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12장 508c~d
앞서 수다쟁이는 "말을 많이 할 수 있기 위해 많이 듣고 싶어 한다"고 했다. 상대방의 의견을 귀를 기울이는 '경청'은 그 자체로는 훌륭한, 특히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미덕이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하려고 듣는, 곧 정보수집 차원에서 ‘엿듣거나’ ‘캐묻는’ 경청은 지양되어야 하는데, 그 동력이 호기심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인용에서는 수다쟁이의 호기심보다는 비밀을 간직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폐단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과도한 호기심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사형된다. 이후 500년이 지난 기원후 100여 년 무렵, 플루타르코스는 수다 관련 글을 썼다. 그런데 이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그리스(아테네)의 황금시기에 쏟아진 저작들과 작품들도 두루 읽고, 사례를 수집하여 집필했음을 인용과 주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소크라테스를 플라톤처럼 '섬김' 수준으로 보기보다는 그냥 당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게 소크라테스는 어떤 사람으로 보였을까, 호기심이 발동한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할 뿐 아니라 곳곳에서 이야기좌판을 펼치는 수다쟁이, 성가신 존재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보통 사람들로서는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며, 이것저것 관심사가 아닌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대화를 엿보았다면 그랬으리라. 소크라테스 자신이 '캐묻지 않은 삶을 살 가치가 없다'(<변론>)고 재판과정에서 당당히 밝혔다. 그간의 삶이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죽어 저세상에 가서도 이런 철학의 방법론을 고수할 생각이라고. 소크라테스의 수다는 제자 플라톤에 의해 정리되고 보완됨으로써, 서양철학의 아침 해, 둥근 해로 떠올랐음에도 말이다. 플루타르코스는 같은 책에서 '수다'라는 고질적인 병에서 벗어나는 처방을 한다. 여기에 거론되는 소크라테스를 보면, 소크라테스를 그렇고 그런 수다쟁이쯤으로 폄하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호기심은 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50%의 확률로 잘못 그리고 과도하게 작동하면 수다쟁이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하는 등,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갖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허기나 갈증을 느끼지 않는데도 먹거나 마시도록 유혹하는 먹을거리와 마실 거리를 피하라고 권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수다쟁이는 가장 마음에 들거나 평소 지나치게 심취하는 화제는 조심해야 하며, 그런 화제에서는 밀려오는 말의 물결에 완강하게 저항해야 한다." -『수다에 관하여_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22장 513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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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세트 - 전7권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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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인접한 해안에서 간척사업으로 농지(논)를 만들거나 야산을 개간하여 농지(밭)로 만드는 일은 차라리 쉽다. 용도에 따라 구획을 정하고, 쓸모에 따르는 정리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요즘처럼 중장비를 쓸 수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논밭은 농기계들이 드나들 농로가 확보되지 않아 어려움이 적지 않다. 농업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로 기계영농  의존도가 날로 커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널직한 농로와 수로 확보를 위한 경지정리가 필수이고, 해마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기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논들을 정비하는 경지정리가 곳곳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자연 지형에 순응하여 만들어진 논들은 그 넓이를 실측하는 일이 싶지 않거니와, 장방형의 새로 구획된 논들은 무지 넓다. 새로 간척한 땅의 논들은 경비행기로 농약과 비료를 살포할 정도이니 오죽하겠는가. 때문에 경지정리 결과 논 하나를 두세 농가가 그 안에 새로운 경계를 만들 분할경작을 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논을 사고파는 일이 경지정리 과정에서 이뤄진다. 이를 전담하는 공사가 있지만, 국가와 지자체 차원에서 나서지 않으면 불가능한 대역사가 겨울 논들의 경지정리다.

모처럼 온라인서점에 왔다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의 플라톤전집 '세트'가 나왔음을 알았다. 지난 4월 하순이던가, <플라톤전집2>와 <플라톤 전집7> 간행으로 사실상 플라톤전집이 완역(완간)되었고, 주요 일간지들에 실린 인터뷰를 읽고 소개한 기억에 있어 반가웠다. 하지만 전7권이나 되는 전집 세트가 발간되기까지 시일이 좀 걸릴 것이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세트 완간이 이뤄졌다. 그리고 문득, 앞서 기술한 경지정리가 한창인 겨울 들판의 논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전체가 신규번역이거나(전집7), 수록된 8편 중 3편(에우튀프론/에우튀데모스/메넥세노스)이 신규번역인 전집2는 큰 고민없이 전집의 일부로 펴낼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2012년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향연> <파이돈> 등을 묶은 플라톤 대화편 첫 권을 출간한(플라톤전집1에 해당) 이후 신규 번역원고가 들어올 때마다 몇 편씩 묶어 간행된 천병희의 플라톤 대화편 단행본이 한두 권이 아니다. 거기다 양장본들이니 재고 부담도(반양장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완역을 했고, 마지막 번역까지 책으로 간행되어 플라톤전집을 완간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집 '세트'로 단장하는 일은 물심양면으로 겨울논들의 경지정리 못지 않은, 또 나름대로의 고민을 안은 '사업'이지 않았을까? 여느 때보다 출판시장이 위축된 사정을 감안하면 물심양면 더욱 그렇다. 천병희 선생의 플라톤 대화편들이 간행될 때마다 빠짐없이 구입해서 읽은 필자로서 '전집 세트' 제작 과정을 복기(復棋)하듯 살피는 것이다.

생각보다 일찍 전집 세트가 출간된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고민의 흔적을 엿본다. 물론 기존 독자들은 억울함이 없지 않다. 새롭게 장정된 전집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어렵게만 느끼던 플라톤의 대화편들 상당수를 천병희 선생님 덕분에, 출판사의 끊임없는 투자 덕분에 읽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제 새롭게 플라톤의 세계에 진입하는 한국어 독자들에게 전집 세트 발간은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독서의 모든 시작과 끝은 텍스트 자체의 독해(와 해독)에 있다. 신비평이 지향한 작품 자체에 집중하시오, 와는 다른 의미이지만, 텍스트 자체를 읽으면서 그 행간의 의미까지 읽을 수 있다면, 번역서에서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한겨레>인가 완간기념 인터뷰에서 “끝까지 읽도록 쉽게 번역하는데 공을 많이 들였죠.”(기사 제목)라고 번역가가 밝혔듯이, 천병희의 번역이 난해하기로 소문난 플라톤과 한국어 독자들이 친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위작으로 확정이 되었거나 위작 논란 중인 작품들,  '서한집' '용어해설' 등 대화편으로 볼 수 없는 것들까지 수록한 전집7권을 제외하면 플라톤의 대화편은 6권에게 걸쳐 25편쯤 되는 것 같다. 전집7에 실린 <알키비아데스1.2>와 <힙피아스1.2>를 각 편으로 치거나 한 편으로 보거나, 7권의 다른 대화편들을 고려한다면 이 전집에는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최소한 28편 이상 수록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대화편 수를 헤아리다 보니, 28이란 숫자가 새롭게 다가온다. 천병희의 원전번역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그리스와 로마의 영웅 5인씩만 선정) 첫 꼭지는 '뤼쿠르고스 전'이다. '영웅전'의 저자는 뤼쿠르고스 가장 큰 업적은 원로원 창설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스파르테의 원로원이 왜 28명이 되었나, 그 근거를 이전 저작들에 인용하며 고증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원로원 의원의 수가 28명이 된 것은(왕으로 옹립한 어린 조카가 자신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할까봐 떠난 여행에서 돌아온) 리쿠르고스와 함께했던 30명 가운데 2명이 겁이 나서 계획을 포기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스파이로스에 따르면 원로원 숫자는 처음부터 28명이라는 것(2명의 왕을 포함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는). 플루타르코스는 이에 대해 의견을 덧붙인다. "28은 7에 4을 곱한 수인 데다 그 구성 성분의 합(合)과 같으며, 6다음으로 완전수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라고. 28의 약수 중 28을 제외한 나머지 약수 1, 2, 4, 7, 14의 합이 28이라 완전수라는 것.

어쨌든, 최근 영화 <나랏말싸미>에 훈민정음 자음과 모음 총수를 28개로 확정하는 과정이 나온다. 조선 태조(1395) 때 제작한 <천상열차분야지도 天象列次分野之圖>에 28수의 대표 별자리로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의 세계를 담았다는 데에 기인하는 것, 그런데, 조선 초기인 대토 5년(1396년)부터 도성의 4대문(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 등을 열고 닫을 때 종을 울렸다. 사대문을 여는 새벽에 치는 종을 '파루(罷漏: 33회)'라 하고 저녁 종을 '인정'이라 하는데, 인정(人定)은 밤 10시경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28번 타종했다. 불과 1년 전에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완성되었다는 점과 뭔가 연관이 있는 듯하다. 글이 길어지므로, 어쩌면 더 근원적인 의미를 지니는 불교(사찰)에서 새벽예불 전에 28회, 저녁예불 때는(오후5시) 33회 타종하는 것과도 연관이 깊을 것인데, 이하 생략,

얘기가 길어졌다. 플라톤전집이 완역되어 세트로 제작된 일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주머니가 헐거운 청년 독자들에게는 부담스럽지 않을까, 한다. 무엇보다 책의 장정이 고급스러워지고 두꺼워지면, 가격만이 아니라 혹시라도 있을 오류를 수정하거나, 표현을 더 다듬는 일이 더뎌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테아이테토스>나 <향연>과 같이 반양장으로 저렴한 가격에 플라톤의 대화편들의 낱권들을 펴내는 일, 이 출판사의 푸른시원 시리즈도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계속 나왔으면 좋을 듯하다. 낱권들의 쇄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보다 매끄러운 번역으로 수정하는 일이 계속되고, 전집의 낱권들이 쇄를 거듭할 때에 반영되면 좋지 않을까, 반가움에 이런저런 생각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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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장르'라는 말이 태어난 영화 <기생충>을 개봉일(5월 30일)에 봤다. 이틀 뒤 지인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금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이라고. 감상평을 듣고 싶었으나 하루를 참았다.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역사를 쓴, 칸느영화제의 그랑프리_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때문일까, 좋은 작품이기는 한데, 내게는 개운치 않은 뭔가가 남은 작품이었던 것, 그렇게 열심히 관련 기사를 읽은 것 같지는 않은데,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내가 극장을 나선다는 지인에게 보낸 문자는 다음과 같다. '스포일러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약점'.

 

스포일러주의보 발령! '스포일러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약점'

이 영화의 감독도 영화제 현장에서 세 개의 언어로 스포일러 주의를 당부했다 하고, 귀국 후 인터뷰에서 그런 당부를 잊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기존 영화 문법의 모범답안을 뛰어넘는 플러스 알파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칸느영화제를 의식하고 제작한 것은 아닐 테지만 결과적으로 칸느영화제 수상을 위한 영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칸느 영화제 수상작들을 살펴보면 나름대로의 흥행과는 반비례하는 독특한 특성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영화를 보면 재미 삼아, 또는 나의 대중성 인지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흥행 예측을 해보곤 하는데, 수상 효과가 적지 않게 작용하겠지만, 그런 사실을 배제한다면 ‘대박’까지 기대하기는 좀 힘든 영화가 아닐까! 한 편의 영화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그런 기준으로 볼 때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앙금처럼 남았다. 해서 개봉중인 다른 영화 한 편(<악인전>)을 극장을 옮겨가면서까지 관람해야 했다. 그리고 이 글은 어제 조조(5000원이란 착한 가격 덕분에)로 한 차례 더 <기생충>을 보고서 쓰고 있다(그게 뭐지? 스포일러 때문에 훗날 쓰기로 한다).

 

이틀 만에 한 차례 더 본 영화,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앙금처럼 남아
내가 혹은 우리가 한 편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팝콘영화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그렇게 분류되는 영화들은 작품성이란 측면에서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한 편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너무 진지하고 고단한 삶에서 잠시 떠나 있고 싶은 소박한 바람, 영화 한 편을 보는 동안이라도 현실을 잠시 잊고 싶은 그런 어루만짐에 대한 기대, 이것을 거의 모든 영화들이 지향하는 '대중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이에 있다. 그러니까 '봉준호 장르'는 문제소설이라고 하듯 문제(예술)영화와 대중영화라는 '사이' 어딘가에 있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한 편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니지 않을까?

이승우는 문고판으로 펴낸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에서(<저 아래층에서 끌어올려라>) 얘기한다. "소설은 대체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면 어쩐지 허전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쨌단 말이야? 하는 질문과 맞닥뜨리지 않겠는가"(책 146면)라고, ‘그래서 어쨌단 말이야?’라는 핀잔을 듣는 소설은 지표수의 물론 만든 맥주와 같다는 것, 그는 '지하 150미터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로 만든' 맥주의 히트 사례를 예로 들면서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필요하다면 신화를 활용하고 상상력을 풀(full)가동할 것, 상징과 은유를 적극 활용한 소설로 다양성과 개성을 확보할 것을 주문한다.


"만일 그들의 사랑이 현실(지상)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한 주인공들의 지하(비현실)에 대한 꿈꾸기나 신화 속 인물에 대한 동일시의 과정을 보여준다면 소설은 달라질 것이다. 층이 생기니까. 그 내부의 깊은 층에서 끌어올리려 한다면 메타포나 상징은 지표면의 그렇고 그런 사연들에 대한 및을 비춘다." (책 146면)

 

 

주인공들의 지하(비현실)에 대한 꿈꾸기나 신화 속 인물에 대한 동일시 과정을…….

 -작가는 소설 작법을 다룬 이 책에서 몇몇 작가들의 작품을 제시하지만, 인용한 부분의 사례로 그의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이 대표작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또 하나의 예를 든다면 2015년(39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숨 작가의 중편소설 「뿌리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대칭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로 인식의 지평을 넓힌 혹은 연장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에서도 인간이 나무로 변신하는 모티브 못지않게 지하(뿌리)의 세계가 신화적인 상상력을 자극하여 새로움을 창조한다.

-오디비우스의 『변신이야기』는 그러한 일이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오래된 상상력 사전이라고 할 수 있으면, 이런 관련성은 다른 글에서 이미 살폈다.  

 

 

 

 

신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변신이야기』, 가장 오래된 상상력 사전

시간(서사)과 공간(묘사)은 소설에서나 영화, 모든 이야기의 기본 구성요소다. 우리 삶의 전제다. 봉준호의 <기생충>은 좋은 소설(이야기)에 대한 이승우의 주문에도 A플러스 학점을 받을 만큼 모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반지하-지상이라는 현실 속 공간에 대한 설정, 그것은 또한 상상력의 영토를 확장이며, 동시에 인간들의 빈부 차이(계급갈등)에까지 연결되고 있다. 이 점이 돋보인다.

영화의 주요 공간인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의 저택이라는 공간의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부엌 창고에서 지하의 세계로 ‘내려가는’ 혹은 ‘떨어지는’ 계단에 주목한다. 잘 다듬어진 잔디 정원은 '그렇고 그런' 풍경일 수 있지만 지상층과 2층(이상) 공간들은 실제 집의 구조보다도 넓고 쾌적한데, 지하의 세계와 극적 대비를 이루는 설정으로 읽힌다. 어쨌든 영화 <기생충>은 서사를 제외하고도 공간에 대한 묘사(세트 설정과 세팅)만으로도 상당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하와 반지하 그리고 지상, 현실 공간에 대한 설정, 빈부 갈등에까지 연결

"아무리 튼튼한 담론이라고 해도, 아니, 튼튼할수록 더욱더 스스로 몸을 해체하여 다른 몸으로 변신하여야 한다."(이승우 같은 책, 141면)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지하(저승)를 통치하는 은둔의 신 하데스가 딱 한 번 직접 등장할 법한 사건이 벌어진다. 제우스의 재가로 올룀포스의 신들까지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그리스연합군과 트로이아군)에 가세하여 총력전이 벌어지는 20권에서다. "좀 조용히 살게 해주면 안 되겠니?" 요란한 지상의 전투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저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참전하는 것(여기까지),

 

*영화 <기생충>에서 펼쳐지는 지하의 세계에 대한 설정은 (특히, 3월에 개봉한 <어스US>를 비롯 지하세계를 다룬 영화들이 적지 않지만) '한국적인' 현실성이 겸비되면서 관객을 새로운 차원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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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19-06-0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이승우) <시간이 만든 소설, 공간이 만든 소설> 마무리 부분에서 이 글의 제목을 차용했다. ˝안개나 비고 그냥 내리지 앟는다. 현실 속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소설 속에서는 내릴 만할 때 내리고 표현할 이지가 분명할 때 내린다. 그것들이 만드는 분위기와 이미지가 소설의 몸을 이룬다. 때때로 공간이 곧 캐릭터라고 말해지는 것은 이런 경우다 ˝(153면)
 

2017년에 제작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Roméo et Juliette>(독일, 감독 위르겐 플림)은 2018년 5월에 개봉되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현재 무대에 올라 공연중(2019.03.02~2019.06.30, 서울 종로구, 명작극장)이다. 연극으로 영화로 책으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함께 잘 알려진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원형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수록된 「퓌라무스와 티스베」다.
[자세한 이야기는 필자의 리뷰: '변신이야기'와 '이솝우화'에서 만나는 뽕나무와 오디, 참고].

필요시 클릭, https://blog.aladin.co.kr/791561146/8257185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의 원형은「퓌라무스와 티스베」
19세기 근대 역사학자 랑케는 로마 문화를 호수로 비유하면서 고대의 모든 역사가 로마라는 호수로 흘러들어갔고, 근대의 모든 역사가 로마의 역사에서 다시 흘러나왔다고 말했다.(위의 책 옮긴이 서문) '흘러들어갔고' 앞에는 '그리스문화'가 자리할 것이다.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의 원형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는 믿음에는 숱한 균열이 생겼지만, 그래도 남녀 혹은 여남의 사랑이 완전하고 안전한 것이기 위해서는 결혼이란 제도가 필요하다. 다만 결혼이 사랑의 새로운 시작이기를 바랄 뿐. 어쨌든 결혼은 당사자들만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관계 맺음이다. '때문에' 서로 눈이 맞은 연인들이 숱한 장애물을 넘고 넘어 결혼에 이르고, 그 사이에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다.

 

랑케, "고대의 모든 역사는 로마라는 호수로 흘러들어갔고,

근대의 모든 역사가 로마의 역사에서 다시 흘러나왔다."

이것은 실화다! 한국의 섬이란 섬을 두루 여행하며 글을 쓰는 강제윤 시인은 섬을 탐사하는 동안 수집한 신화와 전설들을 들려주는데, 다듬으면 보석이 될 원석의 발견과 유포라고 할까? '섬'이라는 고립성 '덕분에' 그러한 이야기가 탄생하고,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당신에게, 섬』(꿈의지도, 2015)에는 신화와도 같은 현대의 실화가 등장한다. 제주 서귀포 가파도라는 섬 이야기(「가파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김동욱 전 이장님의 사랑 이야기다.
그에게는 두 살 아래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이 고등학교를 서울로 갔다. 방학 때마다 고향에 와서 놀이 삼아 물질을 했는데, 어느 날 물속으로 들어간 뒤 나오지 않았다. 여동생의 해녀 친구는 해녀대장이던 자기 어머니에게 구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다들 외면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을 건져 주면 죽은 사람에게 남은 숨을 다 줘 버리기" 때문에 "다시는 해녀 노릇을 할 수 없다."는 오래된 믿음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장님 집안은 여동생의 친구네 집안과 원수가 되었다. 여동생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진 친구를 위로하고 달래는 동안 이장님과 여동생의 친구는 연인 사이가 된다. 그러나 결혼 허락은 떨어지지 않고, 이장님은 유랑의 길을 떠나 객지에서 살아간다. "귀신이 세 개 들어도 남녀 간의 사랑은 못 말린다는데 내가 졌어." 그렇게 10년 만에 이정님은 결혼 허락을 받는다.(책 172~174면 요약) 강제윤 시인은 '사랑은 힘이 세다'며 실화 소개를 마무리한다.
어쨌든 한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해피엔딩이다. 그는 가파도를 떠나 몇 달씩 떠돌다 돌아와 살기를 반복했다. 제주도 한 읍의 사무실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집을 떠나 유랑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야만 하는 선택, 문득 이 이야기를 읽으며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이것은 실화! 서귀포 가파도 이장님 부부의 '로미오와 줄리엣'
"형에 대한 내 감정은 날로 사나워졌다. 그녀에 대한 말 못할 사랑이 간절해질수록 형에 대한 미움도 커졌다. 나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결코 허물이 될 수 없다는 명제에만 편집적으로 집착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은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나아가 바람직한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나는 사랑의 보편성에 매달렸다. 하나의 관념, 또는 추상화된 사랑을 붙잡고 늘어졌다."

_이승우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문학동네, 2014, 발표는 2000년) 61면

 

어느날 문득 형의 애인을 사랑하게 된 동생이 겪는 번민인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도의적으로 힘든 사랑, 이 소설의 내레이터인 '나'의 사랑은 처절한 비극의 씨앗이 된다. '나'는 자신의 사랑을 다스릴 수 없어, 가출을 하고 수년 동안 객지를 떠돈다. 나와 형과 형의 연인 사이의 삼각 관계는 이 소설의 사랑 이야기 중 '메인'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가 사랑한 '그분'의 사랑도 있다. 그래서 장편소설 제목이 '식물들의 사생활'('들의')이다. '나'는 가출하면서 사진가를 꿈꾸던 형의 촬영장비 일체를 팔아넘기고, 그 안에 든 필름 때문에 형은 강제징집을 당하고, (당국자들의 고의적인 행위로) 지뢰에 두 발목이 잘려 장애인이 된다. '동물'의 세계에서 '식물'의 세계로 진입한 것. '한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좌절된 사랑의 고통을 식물적 교감으로 승화해가는 과정을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풀어낸 작품'. (더 이상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듯) 어쨌든 이승우는 『식물들의 사생활』로(프랑스 등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가 '한국 작가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 지목할 만큼 찬사를 받았다.

 

'한국 작가 중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 가장 높은 작가'로 주목받아
"매끈한 나무줄기가 날씬한 여자의 나신을 연상시켜" 형은 취한 것처럼 말했다. "정말 황홀한 것은 흰 꽃이지. 5월이니까 조금 있으면 꽃이 필 거야.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때죽나무의 흰 꽃들은 은종 같아. 그 아래 서 있으면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지." 그의 목소리가 깊은 바다에 떨어지는 닻처럼 어두운 숲속으로 유영해들어갔다.  _같은 책, 47면

이승우의 작품들에는 서양의 신화들이 배경에 깔리곤 하는데, 그가 '노벨문학상 수상이 유력한 한국 작가'라는 기대를 모으는 것과 연관이 있다.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대체로 수상작이 결정되기에 하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이승우의 소설들에 그리스-로마의 신화들이 이야기의 원형으로 차용되고 변주된다는 점이 그들의 '공감을 이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펼치는 사랑론이 소개된다(75면). 하지만 소설 전반에 걸쳐 주요한 뿌리가 신화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천병희, 숲, 개정판 2017.10. 초판 2005. 3.)에 소개된 「월계수가 된 다프네」 이야기다.
'활의 신' 포이부스(아폴론)은 쿠피도(에로스)가 활을 구부리는 것을 보면서 비웃고, 쿠피도는 앙갚음으로 화살 두 개를 쏜다. 하나는 사랑을 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불지르는 것. 쿠피도는 사랑을 쫓는 화살을 페네오스의 딸인 요정 다프네를, 다른 화살로 아폴로를 쏘아 그의 뼈와 골수를 꿰뚫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시작! 쿠피도의 복수는 잔인하다. 쫓고 쫓기는 사랑의 공방전이 펼쳐지고, 막다른 골목에 이른 다프네는 아버지 신(페네오스의 강물)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그 자리에서 한 그루 나무로 변신한다.

 

『식물들의 사생활』의 밑그림, 『변신이야기』중「월계수가 된 다프네」

그녀의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짓누르는 마비감 같은 것이
사지를 사로잡았다. 부드러운 가슴 위로 엷은 나무껍질이 덮였고,
머리카락은 나뭇잎으로, 그녀의 두 팔은 가지로 자랐다.
방금 전까지도 그토록 빠르던 발이 질긴 뿌리들에 붙잡혔고,
얼굴은 우듬지가 차지했다. 빛나는 아름다움만이 남아 있었다.  _『변신이야기』, 550~552행

             VS

그래도 포이부스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나무줄기에 오른손을 얹어 그녀의 심장이
새 나무껍질 밑에서 아직도 헐떡이는 것을 느꼈고,
나뭇가지들을 인간의 사지인 양 끌어안고 나무에 입맞추었다.
나무가 되어서도 그녀는 그의 입맞춤에 움츠러들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대는 내 아내가 될 수 없으니,
반드시 내 나무가 되리라. 월계수여, 내 머리털과 내 키타라와
내 화살통에는 언제나 네가 감겨 있으리라"  _위 같은 책, 553~559행


신화에서 소설에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사랑, "사랑은 하는 것"
쿠피도의 복수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 변신 이야기에서 '사랑은 하는 것'임을 추출할 수 있다. 『식물들의 사생활』에서도 나의 형의 연인인 순미를 향한 사랑, 아버지의 '그분'에 대한 사랑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폴로의 사랑을 닮았다. "그가 수집한 변신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식물의 숫자보다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좌절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소설, 146면)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칸느영화제)을 받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으니 이 정도)임을 입증하였다고 할까. 신화는 동서양이 닮아있다. 그럼에도 세계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신화나 그들의 정신세계의 원형이 되는 이야기들을 꼼꼼히 읽고 변용하여 사용할 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희소식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종려나무 꽃이랍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칸느영화제)을 받았다. 트로피의 상징은 종려나무 잎이다. 다른 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사자상의 경우처럼  '황금'은 '최고'를 뜻하겠지만 사자는 황금색과 연관이 있다. 종려나무는 지중해 일원에 많기도 하고, 최근에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서도 이국적인 느낌을 주겠다면서 가로수로 종려나무를 심기도 한다.

최근에 종려나무 꽃을 보고 아 황금색이구나, 하고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인데, 마침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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