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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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6. 토. AM 12:00.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소설가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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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래빗홀로부터 샘플북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게시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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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이 되었고, 맛보기 책이 배송됐다. 아주 얇은 책이어서 홍보 책자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샘플북 앞 부분에 작가 소개와 글을 읽은 분들의 소감과 소설 내용에 대한 질문들이 적적혀있다. 나는 소설을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31쪽부터 55쪽으로 제공된 소설 샘플을 먼저 읽었다.

읽은 후 앞 부분부터 다시 읽고 소설을 다시 읽었다. 아무래도 맛보기 샘플이라 31쪽부터 55쪽까지 내용 만으로는 이해가 다 되지 않았는데 앞 부분의 글을 읽고 나니 전체 맥락이 어느 정도 잡혔다. 소설만을 처음 읽었을 때 단순한 현대물인가 하고 읽었다가 금세 현대 과학물이면서 미래 세대의 사랑과 외로움, 노인인구의 증가로 인한 문제, 물질 만능주의, 돈으로 보이는 젊음과 실제 젊음을 살 수 있는 미래의 모습과 부의 양극화 등 다양한 소재를 한데 제대로 버무려놓은 소설이라는 걸 알게 된다.

소설은 미래 세대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늙어가며 치아를 임플란트로 대체해 가는 것처럼 장기와 피부까지 하나 하나 대체해 나이와 상관없이 젊음을 살 수 있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부유하지 않아 구독료를 내기 위해 부유한 사람들을 찾아 애인 역할을 해주는 주인공 삶의 모습을 그린다. 초반부에서 주인공과 임플란트 구독으로 30대의 젊음을 유지했던 120살 서하(그녀)의 이야기로 시작해 독자를 소설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서하는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기억 속에 남겨진 과거를 주인공과 함께 되짚어가며 삶을 천천히 내려 놓는다. 그리고 주인공 곁에서 임플란드 구독료를 더 이상 내지 않고 심정지를 택하고 눈을 감는다. 그녀의 마지막 곁에서 함께 한 사람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주인공이었다. 서하(그녀)는 주인공에게 자신과 비슷한 다음 사람을 찾아 마지막을 지켜달라 부탁하고 자신의 남은 재산이 담인 상자를 주인공에게 건넨다.

지난 번 래빗홀 출판사에서 제공해 준 선녀를 위한 변론 책을 읽고 너무 재밌다고 생각했었는데 래빗홀이 또 대작을 물고 와서 내게 알려줬다. 소설일 뿐인데 잔잔한 마음에 파동이 인다. 다음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고 인플란트 구독 기간 만료로 인한 심정지가 된 사람들의 모습과 부유함으로 영생을 산 사람들, 영생을 산 사람들의 곁에서 영생을 함께 누리려는 주인공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부유하지 않으면 젊음과 영생은 이론이 될 수 밖에 없는 미래를 그린다.

나이가 들어도 감정은 늙지 않는다는 말을 소설 안에서 여실히 경험한다. 외모의 변화 때문에 늙음을 인식하고 노화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하는 건 이제 임플란트 구독 서비스 요금을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 과거에 대한 향수, 권태로움 등으로 오히려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갔고, 자신만 과거의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면서 누구도 채워주지 못하는 감정 속에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에게 주인공 같은 사람은 어쩌면 임플란트 구독서비스처럼 필수적으로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맛보기 샘플 북으로 받아 알게 된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소설은 미래를 살아갈 우리와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 소설 속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던진다. 얼마 전 봤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애니메이션이 줬던 묵직한 메세지가 소설 전반에 거쳐 다뤄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든다.

멋진 소설을 래빗홀 출판사 덕분에 즐겁게 읽었고, 새로운 작가님의 글도 재미났다.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면 앉은 자리서 일어나지 못하고 끝까지 읽거나 반드시 사들고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 소설이다.

샘플북을 보내주신 래빗홀 출판사님 고맙습니다.

래빗홀 @rabbithole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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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배진시 지음 / 책과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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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3. 일. AM 6:00.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를 읽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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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매일 마음을 정리했다.

2024. 3. 3. 일. AM 6:00.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를 읽고 기록

어떤 글들은 글 하나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의 밤이 필요했는지, 얼마만큼 가슴을 쥐어뜯어야 했는지 모른다. 지난 2년 동안 글을 적으면서 사실 나는 나를 완전히 내려놨었다. 어차피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고, 이제는 될 수 있는 것도, 가질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스스로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으로 시작됐고, 그 이후로도 인생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모든 것들이 내 잘못은 아니라고 다른 곳에 탓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2년 이내 내가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감정도, 몸도 망가진 상태였다. 간절하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 더 이상 스스로 벗어날 수 없고 일어설 기운조차 완전히 사라진 그때야 나는 정신과에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잠들면 꿈속에서 내가 내게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된 오랜 벗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살기 위해 그분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날들을 되밟아가며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세상에 가장 소중한 건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는 말로는 내가 소중하다고 하면서도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법을 몰랐고, 소중하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어릴 설정됐던 기본값 그대로, 가족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대로 나를 대했다. 오늘이 돼서야 나는 내가 소중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의 감정을 살피느라 나의 감정을 방치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됐다. 나는 차분하게 내 감정과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드디어.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책을 우연히 어떤 작가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선물 받으면서 나는 그에게 서평 안 써도 되냐고 묻고 선물을 받았다. 서평을 쓰는 일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요구되니까. 책 안에서 나도 모르게 내면의 소리를 찾게 되고, 그것들을 글로 적는 일은 책을 읽는 일보다 열 배 이상 노력이 요구됐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의 소리와 색감을 찾을 수 있어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작년을 서평단에 참여해서 글을 강제로 쓰면서 나름 치열하게 보냈다. 그래도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이 쉽지 않다. 없다고 생각했고, 있었더라도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내가 책과 글 속에서 천천히 살아난다.

이 책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표지를 살펴봤다. 거꾸로 그려진 소나무와 하얀색 배경 아래 여덟 명의 입양인 이야기라는 글을 보고 읽기 망설여졌다. 그들의 아픔들이 내 아픔이 될까 두려운 마음이 생겨서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책을 정말 아주 조금씩 읽었다. 책을 읽는데 무려 한 달이 걸렸다. 책을 다 읽은 날 새벽 나는 드디어 숱하게 마음에서 외쳐대던 소리를 찾았다.

그동안 썼던 글 중 어떤 글들은 그 글을 쓰는 데만 삼십 년(30)이 걸렸다. 누가 읽어줬으면 해서라기보다 이제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남기고 싶었다. 혹자는 과거 이야기를 할 때 너무 담담해 보이는 글 속 화자를 보고 내가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대로 밝혀두건대 나는 단단한 사람이라기보다 인내심이 병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었을 뿐 보통인 보다 감정적으로 아주 여린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나를 지키기 위해 인내심이라는 방패를 들고 오랫동안 나를 숨겨왔다. 그리고 어떤 글들은 정말 삼십 년이 넘어서야 가슴을 치며 쓴 글도 있다.

세상에서 완전히, 완벽히 보잘것없다고 스스로가 느낀 시점부터 완전히 나는 나를 내려놨다. 그제야 나는 드디어 글을 적을 수 있게 됐고, 그 순간부터 나를 천천히 찾아갔다. 영원히 감춰두고 싶었던 이야기, 감춰야만 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까지 천천히 뱉어냈다. 뱉어낼 수 있었던 건 그 누구도 내 글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믿음 <?> 덕분이었다.

글을 쓴 건 말로 뱉어내면서 상대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말하고 나면 목이 메고, 가슴이 답답해서 오히려 일주일 동안 앓아누웠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때마침 제대로 시작되려던 정신 분석 상담료도 낼 돈이 없었다.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해 준 사람이 있었음에도(아주 운이 좋게 이야기를 들어준 언니가 있었다. ) 나는 그녀에게 속 이야기를 하고 나면 너무 몸이 아파서 자고 또 잤고 죄책감까지 느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나를 숨기고 또 숨겼다. 그러다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었을 때가 돼서야 컴퓨터 앞에 앉았다.

책을 읽어가며 태어나서 처음 만난 사람들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잉태됐기 때문에 함께 살기 시작한 아빠와 엄마, 그래서 가족을 영영 잃었던 엄마를 생각했다. 아빠와 엄마의 결혼은 그 누구도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아빠를 만나면서 소중한 구 가족을 잃었다. 나는 엄마의 가족을 서른다섯이(35) 되어서야 만났다. 이 만남도 동생이 외가 식구들을 찾으면서 아주 잠깐 연결됐었다. 그 긴 기간 동안 외가 식구 누구도 우릴 찾지 않았다. 정말 당연하고,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우리는 스쳐 지나가도 모를 정도로 오랫동안 남처럼 지냈다. 그랬기 때문에 어쩌면 남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사실 친가도 남이라도 해도 무방할 정도니(차라리 남이었다면 더 다행일지도 모를 일이다.) 삼십 년(30) 넘게 만나지 않은 외가 식구들이래야 말할 필요 있겠나.

8명의 해외로 입양된 입양인 이야기를 읽어가며 다행이다 싶은 사례도 있고, 너무 아프고 속상한 사례도 있었다. 해외로 갔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겪게 되고, 만난 가족들이 좋은 사람들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래서 오히려 인생이 망가지고 감정까지 부서진 사례도 있다. 어떤 사례 중에는 정말 좋은 가족을 만나 좋은 교육을 받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분도 있었다. 정말 행운이라고 할 만큼 희소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가난했기 때문에 너만큼은 잘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낸 그들 부모님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도 어린 시절 보육 시설(고아원)에 있으면서 입양인으로서 살게 될 뻔한 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나의 입양도 막았을뿐더러 동생 입양까지 막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그 누구도 나의 생떼와 온갖 행동과 소리 지름을 보고 데려갈 사람이 없었다. 물고, 때리고, 소리 지르고, 바닥에서 구르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아마 나를 보고 나와 동생을 데려가면 인생이 망할 거라고 누구든 생각했을 거다. 그렇게 나와 동생은 무지막지한 내 성격 덕에 지켜지고, 지켜지다 각자의 집으로 배정됐다.

배정됐다고 한 이유는 새엄마가 되신 분이 아버지와 만나면서 네명(4)의 자식을 데려왔고, 그러면서 새엄마가 단 한 명만 키울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그녀의 입김으로 분리되어 자랐다. 내가 자랐던 아버지의 동생 집은 원래 동생이 자랐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동생이 사람을 너무 피해 다닌다며 나를 강제로 떠맡은 어머니께서 바꿔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번 운명이 바뀌면서 각자의 집에서 자랐다.

해외 입양을 가지 않아 다행이었던 건 타국의 인종차별을 겪지 않았다는 점과 언어로 인한 장벽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내 감정을 이야기하면 맞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 한국에서 언어장벽을 겪었다. 해외로 입양된 입양인들 이야기들 속에서 그들이 성인이 돼서도 자랄 수 있었던 대한민국이라는 곳의 향수를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뿌리를 갖게 해 준 부모님을 영원히 그리워하면서도 양가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버지 형제에게 입양되면서 타국살이의 외로움과 대한민국에 대한 향수, 언어장벽을 겪지 않아도 됐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책을 다 읽은 새벽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 동생은 나를 만나면 항상 자신이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엄마가 없는 건 매한가진데 동생은 그래서 당연하게 내가 자신을 챙겨야 한다고 말했고,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동생은 내가 그녀를 챙기지 않았을 때 내게 어렵고, 불쾌하고, 아픈 일들을 감당하게 했다. 그 일 중 몇 개는 정말 말도 안 되고,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는 당당하게 내가 그녀를 챙기지 않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그랬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했다.

나는 억울하면서도 동생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일들이 숱하게 반복되자 마음에 앙금이 남았는지 함께 같은 침대 위에서 잠들 때면 꿈속에서도 동생 앞에서 울고, 소리 지르고, 발로 차고 때렸다. 왜 꿈에서 동생을 만나면 때려야만 했는지 그때는 몰랐다.

‘나는 엄마가 없으니까. 언니가 나를 챙겨줘야지.’ 그 말을 들었을 때 예전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내가 동생을 챙기지 못해서 미안하고, 속상하고, 안쓰러웠다. 그래서 유난히 동생에게 약했고, 손해를 보더라도 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몇 년 전 그 말을 다시 들었을 때 (시험에 실패 후 방구석 폐인이 됐을 때) 나도 모르게 분노의 감정이 일어났다. 나도 저도 엄마가 없긴 매한가진데 왜 동생은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면서 내게 죄책감을 씌우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그제야 든 것이다. 오랫동안 종교 싸움으로 동생과 연락을 끊었다. 그러다 외가 식구들이 나를 만나고 싶다며 연락해 오면서 동생을 다시 만나게 됐고, 동생은 또 그 말을 내게 했다. 그 말을 다시 들은 날 동생에게 너도 해 준 것 없지 않냐. 내가 힘들 때 너도 마찬가지라며 화를 냈다. 그런 나를 보며 동생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며 나를 탓했다.

이 책을 읽어가며 나는 동생에게 왜 죄의식을 갖게 됐는지 드디어 알게 됐다. 왜 나는 동생의 일과 말에 유난히 약하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드디어 찾았다. 책을 읽고 나는 동생과 보육 시설에 있으면서 나뿐 아니라, 동생의 입양까지 막았던 기억을 드디어 떠올렸다. 그 기억 속에서 드디어 죄책감과 죄의식의 근원을 찾았다. 동생이 좋은 곳에 입양됐더라면 지금처럼 이상한 <?> 종교에 심취할 일도 없었을 거고(동생은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친척에게 작업 돼서 오늘도 그 종교에 속해있고, 같은 종교를 가진 가족 구성원과 결혼까지 했다. ),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부모님을 만나 좋은 인성을 가지고, 멋진 인생을 살게 됐을 텐데 내가 그 기회를 빼앗았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숱하게 당하면서도 내가 나쁘다고, 동생을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거라고 도리어 나를 아프게 했다.

동생은 내가 살인사건 피해자가 됐을 때도 응급실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젖어 서 있는 나를 보고 내가 이렇게 된 건 자신의 종교에 오지 않아서 이런 일을 당한 거라며 세 번이나 말했다. 그런 동생의 말에도 나는 오히려 동생이 아니라 내가 이런 일을 당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이해 안 되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인물 성격이다. 나는 그날 했던 동생 말들이 나를 걱정해서 그리 말한 거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오늘이 돼서 되짚어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걸, 그동안 동생이 나를 어떻게 나를 대했고, 생각해 왔는지 제대로 보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죄책감과 죄의식의 근원을 찾았고, 그 죄책감의 소지자는 내가 아니라 아버지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동생이 입양을 가서 그곳이 좋은 집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걸 이제야 인정하게 됐다. 그러니 동생에게 환상적인 인생이 주어졌을 거라는 것도 잘못된 판단이다. 그리고 성인이 돼서 지금의 삶들을 선택한 건 오로지 동생이었다. 운이 좋아 좋은 부모님이었을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쁘면 생부처럼 알코올중독에, 폭력적이고, 극단적 나르시시즘을 가진 가족 구성원이 됐을 수도 있다. 다행스럽다고 느끼는 건 오늘의 나도 그렇지만 동생도 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오랫동안 동생에게 느낀 죄책감만큼 아버지가 겪었던 어린 시절과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효를 다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받지 못해서 주지 못하는 거라고 내가 많은 사랑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말을 들어도 그에게 사랑의 말을 하고, 그가 원하는 것들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내면의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났을 때 나는 완전히 망가졌다. 그제야 아버지와 동생, 나를 키워줘서 고마워해야 한다는 친가 식구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드디어 남들이 보는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오랫동안 꿈속에 갇혀있는 것처럼 살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남을 위해 살았다. 왜 내가 그래야만 행복을 느끼고 살아있다고 느끼는지 알지 못하면서 멈추지 못하는 기차처럼 잘못된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오늘 완전히 모든 것이 멈춰진 오늘들을 살아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제야 숨이 쉬어지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는 타인의 삶과 감정을 온전히 타인이 책임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둘 수 있게 됐다. 누군가를 책임져야만 살 수 있었던 삶에서 이제는 나를 온전히 책임지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 오늘들을 살아가며 만난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책은 내게 죄책감의 늪에서 나올 수 있도록 밧줄을 던져줬다. 이 글을 쓰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이 생각만 정리하는데 2주가 걸린 것 같은데. 지금도 계속 정리 중이다. 가볍게 살자라고 매일 마음먹어도 정신과잉인인 나는 매일 혼자만 있어도 감당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삶을 음미하며 걷는다.

이제는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다. 이제는 나에게 내가 정말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니 천천히 내가 나를 아끼는 것만큼 아껴주고 사랑해갈 사람들을 삶에 들여가련다. 앞으로는 모든 선택에서 총체적으로 건강하길 기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앞으로 나는 나와 정말 잘 살아가기로 했다. 그런 오늘에 만난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책은 내게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줬다.

“당신들의 삶과 감정은 이제 당신들이 제대로 책임지고 살아가 주세요. 각자의 삶과 감정을 책임질 힘과 능력이 내게도 당신들에게도 충분히 있으니 까요.”


책을 보내주신 이시헌 작가님 고맙게 생각해요. 이번에 두 번째 책 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나는거꾸로된나무입니다
#배진시
#책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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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 - 의사, 환자, 가족이 병을 만드는 사회
최연호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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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 책을 글항아리 출판사로부터 무상 제공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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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2. 15. 목. PM 03:00.

<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
를 읽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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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2. 15. 목. PM 2:10.

<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를 읽고 기록


<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를 읽고 서평을 시작한다. 이 책을 신청한 이유는 2024년의 1월 한 달을(정말 거의 한 달이었다.) 여러 병원에 다녔고, 매우 아팠기 때문이다. 의료쇼핑이라는 말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좋은 병원이 어딜까를 무척 고민했던 1월을 보냈기 때문에 의료쇼핑이라는 단어가 반가웠다. 책이 도착하자 첫 장을 열어 최연호 의사 선생님의 약력을 봤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신 선생님의 약력을 보자 예전 소아과 전문의 선생님이 떠올랐다. 나의 20대 전체를 책임져주셨던 주치의 선생님이 소아과 전문의셨고 그분은 코로나 때 병원을 닫으셨다(사실 나이가 많으셔서 언제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 그래서 나는 다른 주치의 선생님을 찾기 위해 감기와 알레르기가 생길 때마다 병원들을 돌아다니고 있다. 약물 알레르기와 매년 늘어나는 음식 알레르기 등 잦은 질병 때문에 오랫동안 함께할 한 분의 선생님을 찾아다니는 중인데 아직 찾지 못했다.

책 내용을 보면 소아과에는 나이 불문하고 전 연령대가 다닐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다녔던 소아과도 한 살 아이부터 팔십대로 보이시는 어르신들까지 전 연령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의사 선생님과 긴 기간 동안 인연을 맺게 되면 가장 좋은 건 의사 선생님이 내 치료 내력과 성격, 성향 등을 보고 통합적인 처방을 내려주신다는 점이다. 그래서 약을 처방해 주실 때도 병이 아닌 증상만 나타나는 경우 그에 따른 처방을 해 주신다. 지난 10년을 책임져주셨던 박소아과 선생님을 생각하며 책을 열었다. 다시 박소아과 선생님과 최연호 선생님 같은 휴머니즘을 가지신 선생님과 간절히 만나고 싶다.

1. 의학과 인문학적 소양, 같이 늙어(가는) 의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머리 좋고, 공부를 잘하는 분들이 가는 의과대학에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신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치열한 입시 전쟁에 놓여있기 때문에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만한 시간이 부족하다(대학원 시절 몇 명의 고3 수험생 과외를 했기 때문에 그들의 하루들을 더 잘 알고 있다. ). 그리고 책에서 소개된 대로 의예과에 다니는 분들 역시 대학 생활과 자격증을 취득한 후 수련하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의학적 배움과 피로, 스트레스를 마주한다. 그 고생에 대한 대가 <?>로 높은 연봉과 명예가 주어지지만 10년의 고통에 비하면 다소 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대학 시절 우연히 내 주변엔 의예과에 다니는 분들이 다수 있으셨다. 그래서 그분들의 대학 생활과 평소 생활, 대학 졸업 후 생활들에 대해 알게 됐다. 그랬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기 위한 시간이 없다는 걸 안다. 물론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주변에 계신 분들은 엄청나게 치열한 하루들을 보내실 때가 많았다. 덕분인지 졸업 후에 좋은 곳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하셨고, 교수가 되신 분들도 있다. 그분들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한 만큼, 노력한 만큼 성과가 주어진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러울 때도 있었다. 직접 환자를 만나고 아픈 곳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멋진지 수포자 만(수학포기자) 아니었으면 나도 의사가 됐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월등한 수능성적이 필요하고, 의예과에 들어가서 엄청난 양의 공부와 기간,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도 고통의 수련 기간까지 거쳐야 하니 높은 급여와 명예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다. 그리고 의사는 아픈 환자를 만나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소명 의식이 없으면 오랫동안 하기 어려운 직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패치애덤스] 영화를 함께 떠올렸다. 그리고 지난날 만났던 의사 선생님들을 생각했다. 높은 급여가 보장된 직업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1%에 속한다는 분들이 과연 의사가 되기 위해 치열한 현장에 뛰어들까 (수험과 대학 생활, 수련의 생활 등) 생각이 들 정도로 인문학적 소양만으로는 되기 어려운 직업이다. 그렇다 보니 의학 전문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함께 갖춘 분들을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 <?>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환자는 너무 많고, 그에 비해 필수 학과 선생님들은 너무 부족하고, 업무량도 너무 많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마다 급여가 천양지차고, 어마어마하게 이상한 그레이 페이션츠(회색 환자)도 있다. 그러니 의사가 된다고 만고 땡(온갖 괴로움을 뜻하는 ‘만고’와 끝이라는 은어 ‘땡’의 합성어, 자신을 힘들게 했던 괴로움이 끝났을 때 쓰이는 말 : 네이버 국어사전)이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일부 의사 선생님들은 환자의 눈도 보지 않고 말만 듣고 1-2분 처방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나 보다. 나도 1시간을 기다려서 1분 처방을 받아본 경험이 있어서 차라리 AI 의사에게 처방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여러 번 약 부작용도 겪었다. 환자의 과거 병력 이력에 전혀 관심이 없고, 단순히 질병 증상 만을 보고 처방된 약에 부작용을 겪으면 고통은 온전히 환자 몫이 된다.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후 다행히 아주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그분과 10년 이상을 함께 했었다. 함께 늙어가는 의사 부분을 보면서 다시 함께 늙어가며 만날 수 있는 선생님을 고대하게 된다. 단순히 의학책에 나온 대로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에 따라 통합적인 처방을 내려주시는 진짜 의사 선생님을 다시 만나고 싶다. 이제는 은퇴하신 박소아과 선생님을 생각하며 나는 아직도 그분이 그립다.

2. 항우울제 실험

74개의 항우울제 임상시험에서 23개는 발표되지 않았다고 한다. 23개 중 22개는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낸 연구였다고 하니 효과가 있다고 발표된 연구 결과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고 믿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수많은 의학 지식을 유튜브와 인터넷 글들을 통해 찾아볼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정말 많은 소음에 노출된다. 어딘가 아프면 찾아보게 되고 스스로 처방을 내리고, 건강을 돌보게 되지만 그것이 정말 믿을 수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나의 질병에 대해 유튜브 50여 개 영상을 찾아보더라도 의사들의 말들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가끔은 완전히 반대되는 의견이 있을 때도 있다(비타민 C만 해도 그렇다. ). 그럴 때 환자는 자신이 믿고 싶은 편향대로 정보를 선택하고, 지식을 축적한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그렇다고 환자가 의사를 만난다고 해서 완벽한 방책 <?>을 찾을 수도 없다. 때에 따라선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고기 마냥 1시간 넘게 줄지어 기다리고 겨우 1분 진료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상에 따른 처방을 받고 오히려 건강을 망치신 분들도 다수 있다.

시대마다 의학과 과학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계속 바뀌고 있고, 의학과 과학은 끊임없이 전 세대를 비웃듯 새로운 치료법과 진실을 드러낸다. 그러니 오늘 건강에 좋은 것이라고 믿었던 것도 완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 먹었던 것들이 칼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 환자인 내가 건강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할 것에 대해 고민했다.

3. “아이 구토에 놀라 응급실에 갔더니 변비였다고?”

아이 구토에 놀라서 응급실에 갔더니 의사가 변비였다고 변비약 처방을 했다는 글을 읽고 생각했다. 나도 과거에 변비약 처방을 받고 1달 동안 열심히 내용물을 빼내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비가 아니라 다른 문제였을 수 있다니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심리적 원인으로 정말 화장실에 거의 가지 못해 심각하게 빼내야 할 상황이었다. 사진상으로도 들어찬 내용물이 단면과 양면으로 봐도 심각했다. 나는 화장실에 거의 가지 못했는데 그것이 심리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알게 됐지만, 그 당시엔 왜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장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문제 때문에 병원에 자주 갔고, 그 때문에 만성 장염으로 오랫동안 고생했다. 가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러던 중 만난 분이 박소아과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나는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만성 변비, 만성 장염, 만성 염증으로 인한 비염 등의 증상들을 모두 잡았다. 나처럼 운이 좋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일부 사람들은 최연호 선생님 같은 분들을 만나지 못해 오히려 더 큰 병을 얻게 된 경우가 많을 거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나도 종국엔 크론병을 앓게 됐을지도 모르니 정말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만성 알레르기 때문에 눈앞이 완전히 어둠으로 바뀌고 여러 번 쓰러지다 1차 의료원인 박소아과에 갔을 때 선생님은 당장 큰 병원에 가라고 하시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자네는 이렇게 심각한 상황인데도 웃고 있잖아. 그게 자네 성격인 거야.”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큰 어려움을 겪어도 웃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아무리 아프고, 슬퍼도 웃는 가면을 쓰고 살았다(지금도 나는 큰일을 겪어도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 그러던 중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나 질병이 아닌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난 많은 병들을 고칠 수 있었다. 배가 아프더라도 단순히 장 문제가 아니라 기능과 성격, 성향 전체적으로 봐주는 의사 선생님이 많이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할 때가 참 많았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장 질환이 단순히 장 질환 문제만 아니라는 것, 구토를 한다고 변비가 아니라는 것도 생각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4. 두려움에서 파생된 수많은 증상, 의원병과 신체화 증상

[신체화 증상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정신적인 문제가 신체적인 증상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123쪽]

질병이 아닌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겪어보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알게 된다. 질병이 아닌데도 증상들이 신체 전반을 침범해 환자에게 고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나도 질병인 줄 알았던 대부분이 신체화 증상이라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됐다. 과거 질병이라고 생각하고 병원들을 전전하면서 나는 정말 많은 약을 먹었다. 의사 선생님마다 만성 질병에 부신 피질호르몬제를 처방해 주는 바람에 나중엔 스스로 스테로이드를 제거하고 먹어야 했다. 항생제도 너무 많이 처방받아먹은 덕분에 간 수치와 신장 수치까지 높아졌다. 덕분에 방광염으로(이것도 신체화 증상이었다. ) 오랫동안 항생제를 먹어야 했을 때 신장내과 선생님께서 신장 수치 때문에 걱정하셨다. 그럼에도 일부 의사들은 항생제와 스테로이드 약만이 답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 질환들은 전혀 낫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졌고 몸이 항생제와 오남용 된 약들로 오염됐다. 만성 질환에 단기간만 먹어야 할 약을 무작위로 처방하니 의사는 화타가 되어 있고, 환자는 더 많은 질병의 늪에 빠지게 된다.


언젠가 피부 증상이 있어 피부과에 갔다가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를 받고 그걸 다른 약으로 대체해 줄 수 없냐는 말을 했다가 1시간 가까이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던 적이 있다. 그분께 나는 다른 병원에서도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를 받아먹고 있어 피부약까지 스테로이드를 먹는 게 부담된다고 했다 (거북목 때문에 받은 약 안에도 스테로이드제가 있었고, 장염, 감기약, 방광염으로 받은 약에도 스테로이드가 들어있었다. ). 의사 선생님은 자신이 준 스테로이드 약은 몸에 흡수되지 않는다고, 자기도 먹고 있다고, 종국엔 자기 권위에 도전한다며 화를 냈다. 나는 한참 그분이 하는 말을 듣다 화 한번 내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나왔다. 환자의 상황을 듣지 않고 자기의 권위만을 내세워 약을 처방하고 환자에게 강제로 먹이려는 의사를 만날 때 처방에 따른 부작용을 그분이 모두 책임져줄 거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신체화 증상이라는 걸 조금만 물어도 알 수 있었을 텐데(나는 모르더라도) 그분은 의예과 시절 배웠던 책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내게 더 많은 약을 처방했다. 물론 나는 그 약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분을 찾지 않았다. 그분이 그레이 닥터 건 말건 그레이 페이션츠가 되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의료 현실에서 마주하는 소수분들 중 내가 만났던 분과 같은 분들도 있다. 그리고 부작용이 나타나면 언제나 내 문제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한다. 처음부터 여러 가지를 묻고 환자에 따른 처방을 내려줬다면 모두가 윈 윈 했을 수 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환자는 다른 병원에 가면 되니까 상관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화려한 약력과 일부 좋은 소문만 듣고 그 의사를 찾은 환자들은 또 다른 질병을 얻어가게 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 그레이 페이션츠와 그레이닥터

[그레이 페이션츠 :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어서 본인의 손익 계산에만 급급함, 진료 행위를 도구 삼아 이득을 보려고 함, 의료를 자판기처럼 여겨 비용 대비 효율성만 따짐

그레이 닥터 :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어서 본인의 손익 계산에만 급급함, 진료 행위를 도구 삼아 이득을 보려고 함, 의료를 자판기처럼 여겨 비용 대비 효율성만 따짐, 의학 지식만으로 환자를 봄 – 256쪽]

그레이 페이션츠 내용을 볼 때 나도 충분히 경계선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레이 페이션츠 덕분에 좋은 의사 선생님들이 의료 현장에서 사라지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필수 의료 과에서 선생님들이 사라진 것도 그레이 페이션츠 때문이다. 의사의 권위에 도전하고 자판기처럼 자기가 원하는 결과만을 내놓으라며 소리치고, 안 되면 소송까지 불사하는 그레이 페이션츠는 어디에나 있고, 지금도 의료 현장에서 의사 선생님들의 목을 졸라댄다. 그레이 페이션츠 건, 그레이 닥터 건 사람이기 때문에 어디에나 있는 소수 사람들 때문에 의료 현장이 회색 제대로 변한다. 그래서 진짜 아픈 사람들에게 좋은 의료가 돌아가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참 안타깝다. 나도 어쩌면 소수 의사 선생님들에게 1분 진료를 받고 차라리 이러려면 AI에게 정보를 입력한 후 약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 그레이 페이션츠가 족히 되고도 남을 수 있겠다는 반성이 든다.

아프지 않은데도 아프다며 병원을 쇼핑 삼아 다니고, 자신의 목적에 의해 주변 사람들을 아픈 사람으로 만드는 뮌하우젠 증후군과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의 사람들을 의료 현장에서 마주하는 전문가들은 의료 현장이 짜증 날 법도 하다. 그리고 그레이 닥터를 만난 환자들 입장에서도 의료 현실이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조심하면서 경계를 넘어서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언제든 그레이 페이션츠가 될 수도 있으니까. 좋은 환자가 되기 위해 마음을 곱게 다져야겠다. 그레이 닥터를 만나더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많은 분이 그레이(Gray)가 아닌 그레이트(Great) 닥터라는 믿음을 갖고 나는 오늘도 병원에 간다.


6. 의학의 미래

어쩌면 가까운, 먼 미래에는 AI 닥터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그레이트(Great) 닥터는 더욱 존귀해서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AI가 제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증상에 따른 처방밖에 할 수 없을 거고, 책에 서술된 대로 오히려 병이 아닌 것까지 짚어내 병으로 만드는 일도 생길 테니 말이다. 그레이트 닥터는 AI를 지도하고, 인공지능이 볼 수 없는 환자의 신체화 증상, 의원 병 등 성격, 성향, 정신적 문제에 따른 증상까지 모두 볼 수 있다. 그러니 그에 따른 진정한 처방을 내리고, 인공지능을 지도하려면 그레이트 닥터는 먼 미래에도 필수적인 인력으로 남아 미래 의료를 이끌어나갈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의료 질과 서비스가 높아질 거라는 기대도 든다. AI 가 볼 수 없는 부분까지 볼 수 있는 의사라니 얼마나 멋진 의사 선생님들이 더 많아질지 기대된다.


책을 읽고 나는 최연호 선생님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분의 전작들을 찾아봤다. 이 책을 읽고 전작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 가까운 미래, 먼 미래에도 최연호 선생님 같은 분들이 의료 현장에 많이 계시길, 그레이트(Great) 닥터이신 최연호 선생님께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책을 보내주신 글항아리 출판사, 저자이신 최연호 선생님, 서평단에 선정해 주신 인디캣님 고맙습니다. 좋은 책을 만나 즐거운 배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끝.

#글항아리
#최연호
#의료쇼핑
#나는병원에간다
#의료쇼핑나는병원에간다
#인디캣
#인디캣책곳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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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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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을 읽고 기록


<흐르는강물처럼> 책을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무상 제공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고 기록

1. 무지개 빛 감정 스펙트럼

감정의 빛깔의 종류는 몇 개나 있을까. 나는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고 감정의 종류에 대해 생각했다. 기쁨, 슬픔, 미움, 분노, 환희 등 셀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책을 통해 흘러 들어왔다. 나는 이 책을 2023년 11월에 만나 2024년인 1월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생각했다. 주인공에 감정 이입된 것일까. 주인공의 감정들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진짜 일어났던 일인 것처럼 내 마음에 파동을 일으켰다. 참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책은 개인적 소망으로 꼭 영화로 나왔으면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윌슨 문을 만나 사랑에 빠진 여린 소녀가 단단한 여인이 되기까지를 그린 소설이다. 윌슨 문(윌)을 만나 사랑에 빠진 소녀의 이야기를 볼 때 내 마음도 복숭아 겉에 있는 솜털처럼 가슬가슬하게 일어났다. 사랑에 빠져 사랑을 전하는 서로의 모습에서 간질간질한 기분 좋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윌슨 문은 자신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소녀와의 사랑을 위해 마을에 남았고 얼마 후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윌슨 문의 참혹한 사망을 마주하면서 소녀가 느꼈을 분노를 함께 느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소수 민족이 지나왔을 진짜 역사를 알게 됐다. 마음이 아프고 분노가 느껴지고, 속이 타들어 갔다. 이 소설은 그냥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윌슨 문의 참혹한 사망을 그리는 부분에서 알게 됐고, 나는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을 약간 후회했다(원래 나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책의 짧은 소개글을 읽지 않는다.). 오랫동안 윌(윌슨 문)의 사망이 내 안에서 재생되고 또 재생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윌의 이야기는 소설 속 하나의 장면이지만, 실제 소수 민족이 걸어왔을 역사 속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아픔을 딛고 살아야 했을까 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소설은 윌을 통해 내게 새로운 생각거리를 선사해 줬다. 그리고 그 둘의 만남이 아주 짧게 끝나서 아쉬웠다.


2. 복숭아와 소녀 그리고 여인

<흐르는 강물처럼> 소설은 복숭아를 매개로 많은 것들을 그려낸다. 복숭아의 겉면은 부드럽고 달콤하지만, 콱하고 그냥 베어 물면 안에 씨가 팍 하고 치아에 걸리는 것처럼 복숭아는 소설 속 주인공인 소녀와 닮았다. 부드럽고 유하기만 했던 소녀가 복숭아가 자라 열매를 맺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단단한 씨앗을 가진 여인이 되어간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복숭아와 복숭아나무는 중요한 장치다. 가족을 연결해 주는 소중한 나무면서 소녀가 여인이 될 수 있도록 해 주고, 잃어버렸던 아들과의 연결도 복숭아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복숭아와 복숭아나무는 정말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에 눈 여겨봐야 한다.

가족들이 삶이 복숭아나무를 통해 시작된 것처럼 복숭아나무는 소녀가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의존적인 성향과 성격을 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완전히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존재기도 하다. 복숭아나무와 함께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면서 소녀는 진정한 독립된 여인으로 거듭난다. 복숭아가 몇 년 동안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자리를 잡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여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리고 복숭아나무를 통해 여인은 새로운 친구와 인연들을 삶에 들이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헛헛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존재가 복숭아 나무라는 라는 생각을 하며 소설을 읽어갔다.

3. 구 가족과의 이야기

항상 이기적인 동생 세스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든 집안일을 어린 딸에게 맡겼던 의존적인 아버지, 그리고 절망스러운 현실을 피하려고 자신의 진짜 구 가족과 인연을 끊고 어린 조카에게 의존했던 오그 이모부를 보면서 내 원 가족의 모습을 봤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많은 감정과 이야기들을 해소할 수 있었다. 가족이지만 남보다 더 못하고 삶을 갉아먹었던 가족들을 떠나는 일은 소녀가 아이를 낳기 위해 집을 떠나면서 일어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모든 역할을 당연한 일 인양 떠맡았던 소녀의 모습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존하며 지속하는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녀는 책임감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남겨진 다른 가족들을 돌보면서 자신의 의존적 성향을 발휘했고, 소녀의 의존적 성향에 나머지 가족들은 최선을 다해 의존하면서 건강하지 못한 가족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당연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던 소녀의 돌봄 무료 서비스가 아이를 낳기 위해 잠시 집을 떠나면서 완전히 부서진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소녀의 아버지는 혼자서 모든 집안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독립된 존재가 됐고, 갈 곳 없이 보였던 이모부는 자신의 원래 가족을 찾아 떠났으며, 동생 세스는 일거리를 찾기 위해 집을 떠났다. 소녀가 모든 돌봄을 중단하자 자연스럽게 각자는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독립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소녀가 여인이 되어가는 모습 속에서 가족들도 독립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고, 당연한 건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됐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서적 폭력을 정당화하고,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무료 돌봄 서비스를 요구하는 일들이 많은데 그 모습을 소설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이 부분을 보면서 설사 가족이라도 각자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야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오히려 소녀가 집을 떠나자 다른 가족들도 진짜 자신의 삶을 제대로 직면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소녀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누군가의 자식으로 편입시킨 후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던 여인의 이야기 속에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를 뒤로 미뤘을 때 오히려 아픔보다는 슬픔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늘만 눈 감으면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라며 우리는 오늘의 감정과 상황을 마주하길 거부하고 아주 먼 시간으로 옮기거나, 깊은 감정의 계곡에 묻어버리곤 한다. 그런 상황이 오히려 더 큰 사건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삶에서 마주한다. 소녀의 아이를 맡아 키웠던 여인이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며 합리화했던 감정과 상황들을 처음부터 해결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현재와 진짜 현실을 사는 나의 삶에서의 결정들을 생각했다. 피하지 않는 것, 묻어버리지 않는 것이 진짜 나와 나의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책을 읽어 갔다.

4. 감정의 선택은 상대의 몫

여인이 나이가 들고, 복숭아나무도 새로운 곳에서 완전히 정착했을 때 여인은 드디어 아들(루카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소녀의 아이를 키웠던 여인이 아들과의 만남과 삶의 이야기를 편지를 통해 전달했을 때 나는 마음이 싸르르하며 아팠다. 소녀의 아들이 걸어야 했을 길에서 소녀의 아들 역시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며 살아야 했던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마음이 먹먹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소녀에게서 옮겨진 아름답지만 건강하지 못한 의존적 성향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어쩌면 아들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지만 가족 속에 편입될 수 있다고 느꼈던 건 아니었을까. 가족을 지속하기 위해 아들 역시 가족 구성원들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책임지며 의존해 살아냈다. 편지 글들을 그냥 읽으면 막연히 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존재이며, 가족 내에서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된다. 그러나 진짜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서로가 또 서로를 의존하고,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는 행동을 지속하며 가족의 모습을 유지해 왔음을 볼 수 있다. 소녀의 아들 역시 소녀처럼 구 가족을 벗어나 군대로 떠나게 되면서 아들(루카스)과 가족들의 진짜 삶이 시작된다. 아들(루카스)의 두 번째 어머니는 두 아들이 떠나면서 드디어 오랫동안 마주하길 거부했던 상황과 감정을 마주하기로 했다(소녀를 만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직면하게 됐으며, 소녀의 아들(루카스)도 자신만을 책임지게 되면서 진짜 삶이 시작된다. 마지막에 두 명의 여인이 만나 아들(루카스)에게 덮어뒀던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고민하는 부분에서 소설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그렇네요. 우리가 아니겠죠. 루카스의 인생은 루카스의 것이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루카스가 어디에서 왔는지 말해주는 것, 그리고 항상 사랑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그게 전부일 거예요. 우선 그 얘기만 해주면 어때요? 나머지는 루카스가 선택할 수 있도록.” - 426쪽.]

아들의 감정까지 책임지려고 했던 두 여인이 드디어 아들의 감정을 아들에게 오롯이 선택할 수 있도록 아들의 감정을 아들에게 돌려준다. 이로써 진짜 건강하고 독립된 가족이 만들어졌음을 알게 됐다. 혈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우연한 집단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독립된 존재로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모여 사랑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여인이 된 소녀와 아들(루카스)이 만나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에서 나는 소녀와 윌슨 문이 만났을 때 느꼈던 가슬 가슬하지만 기분 좋은 부끄러움과 행복을 느꼈다. 소설을 보면서 나는 진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진짜 가족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울 수 있었고, 오래됐던 감정들을 직면할 수 있었다.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이제는 진짜 네 삶을 살아라고 맛있는 복숭아를 받은 느낌이었다. 힘들고 외로울 때 한 입 베어 물면 시원하고, 달콤한 육즙이 가득 입 안에 퍼지는 맛있는 복숭아의 향기와 맛이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오늘을 살게 할 힘이 되어줄 소설을 만나 정말 행복했다.

<흐르는 강물처럼>을 보내주신 다산북스 출판사님 고맙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소설을 읽었고,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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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강물처럼> 책을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무상 제공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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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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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책을 북하우스 출판사로부터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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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읽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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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세이란

드디어 책을 다 읽었다. 책을 다 읽고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에세이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요즘 한국에서는 에세이가 유행인지 에세이 작가가 많다. 일상적인 이야기와 공감 가는 글들을 담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어 공급만큼 수요도 많다. 나도 수요자 중 한 명으로 요즘 작가님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작가님들 만의 감정적 정취에 흠뻑 빠져 에세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며 나름 정리를 했었다. 그런데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읽었던 에세이와 다른 에세이를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행기록인 듯, 삶의 기록인 듯, 일상기록인 듯, 소설인 듯하면서 견문록인 듯한 글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태도로 읽어야 더 많은 것들을 내 것으로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을 하며 글을 읽었다. 그리고 살아생전 그가 썼다는 글들과 그가 궁금해졌다. 가볍게 소비할 수 있었던 소비물로서의 에세이가 아니라 진짜를 만난 느낌이었다.


2. 작가에 대한

2020년까지 살아있었다는 작가를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글들이 얼마나 섬세하던지 처음에 그가 여성작가라고 생각하며 나름 이미지를 마음에 그렸다. 그러다 그의 아픈 사연을 담은 글을 읽을 때에서야 그가 그(He)라는 것을 알았다. 남성 작가를 여성 작가라고 착각하며 읽을 만큼 그의 글은 섬세하고, 정갈하고, 온전하다. 그동안 내가 작가 님들의 성별로 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부끄러웠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읽으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작가로 살다 간 그가 너무 멋졌다.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 80여 개국을 여행하며 쓴 글들을 죽기 전까지 남긴 그의 모습에 감탄을 감출 수 없다.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작가는 죽어서도 이름과 글을 남긴다는 사실이 한층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가가 되고 싶어 하고,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구나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배리 로페즈가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의 대화, 만난 동물, 직면한 자연의 이야기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래서 함께 여정을 떠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어린 물개들을 구하기 위해 칼을 들고 밧줄을 끊어낼 때 나도 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어린 물개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가 평생 동안 두 번 경험했다는 신의 성배가 내 마음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그중 하나의 성배인 "너는 여기서 죽지 않을 거야."라는 말이 아직도 마음에 생생히 울려 퍼지는 기분이 든다. 그와 신의 만남을 묘사하는 부분들에서 나도 신의 성배를 본 때들을 떠올렸다.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오랫동안 마무리 하고 싶어했던 무의식 속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3. 고통에서 치유로

아동 성범죄자로부터 오랫동안 성폭력을 겪으면서 그가 감당해야 했을 분노, 수치심, 불안, 무기력, 아픔 등의 감정이 내게 너무 무거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그 부분을 읽고 내리 3일을 아팠다. 경험자가 말하는 고통과 현실, 심리치료사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을 아주 정확하고 적절하게 그려냈고, 설명해 낸다.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 가슴에 품었을지도 모를 수치심을 그는 55년 간 80여 개국의 여행들을 통해 게워내고, 해소하고, 치유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범죄자가 가진 높은 신분과 능력, 돈 때문에 그의 범죄를 희석시켜 버리는 오류까지 그는 정확히 짚어낸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줘야 했을 어머니조차 자신의 불안과 고통을 대면하지 않기 위해 아들을 외면한 모습에서 아동 성범죄의 진짜 민낯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느낌처럼 그의 어머니는 알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그녀 자신을 위해, 현실을 위해 모른 척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직접 피해 상황을 귀에 듣고서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방어 기제를 확실하게 펼쳐 마지막일지도 모를 아들과의 화해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을 글을 통해 보고 나도 모르게 분노했다. 그리고 그 글들을 모두 읽고서야 배리 로페즈가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숱하게 떠나고, 돌아오고, 느끼고, 게워 내고, 모으고, 흩어 냈고 그것들을 담아내기 위해 작가가 된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을 한 순간 나도 죽는 순간까지 글을 쓰고 싶다고,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잘못 없이 벌어진 엄청난 상처 앞에서 그를 지켜줘야 했을 어른들이 저지른 실수와 2차 가해가 폐부를 찌르듯 아픈 마음을 느끼게 했다. 어른들 때문에 잃은 그의 선택권이 가슴 아팠다.


4. 가장 길게 하는 대화 여행

<364쪽 - 현장 조사와 글쓰기를 하며 80개국 가까이를 여행했는데, 세 상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 대답은 늘 동일하다. 여기. 이곳이 내가 나 외의 바깥 세계와 가장 길게 대화하는 곳이다. 이곳이 내가 그 세계의 깊이를 시 험하고 여전히 나 자신의 무지를 발견하는 곳이다. 이곳은 나에 게 친숙한 숲이자 무한히 새로운 숲이다.>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자신과 대화를 나눴을까. 그리고 그가 떠난 곳에서 만난 많은 것들과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눴을까. 그가 나눈 대화들이 고스란히 글에 담겨 있어 그의 삶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가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의 생각에서 끝났을 것들이 모아졌고, 나눠졌고, 이뤄냈다. 그가 떠난 여정을 통해 우리도 함께 치유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그러니 이제는 닫아뒀고, 묻어뒀던 치유로 떠나도 된다고 그는 이 책을 통해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더 깊은 치유의 차원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나를 묶고 있던 오래된 감옥으로부터 벗어났다.


5. 그의 다른 글들도 궁금해졌다

<387쪽 - 돕는 삶을 사는 것이 자신의 진정한 염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배리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한 우리에게 당신의 삶 자체가 도움이었습니다.>

최근에 들은 강연 중에 히어로와 빌런의 처음은 같다는 말이 떠올랐다. 둘 다 시작은 아팠고, 어두웠고, 미약했다고 말이다. 히어로와 빌런의 처음 모습은 같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과 마지막은 결코 같지 않다. 일어설 수 없을 만큼의 상처를 받고 아팠지만 히어로는 그것을 통해 치유를 만들어내고 세상을 바꾼다. 반면 빌런은 자신이 너무 아팠고 힘들었기 때문에 세상을 더 어둡고 아픈 세상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 생각을 하면서 그의 글을 들여다보니 그는 히어로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글을 통해 자신을 돕고, 사람들을 돕고, 사랑을 나누려고 했으니 말이다. 상처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의 마음을 갖는다고 했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훨씬 쉽고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팠으니까 너도 아파도 돼, 네가 아픈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빌런 <?>스러운 마음이 세상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럼에도 배리 로페즈 같은 사람들이 구석구석에 존재하면서 세상을 밝게 물들인다. 깜깜한 동굴에 빛 한 조각만 있어도 출구를 향해 걸어갈 수 있는 것처럼 배리 로페즈 같은 빛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밝혀 낸다. 나는 <여기 살아 있는 것 등을 위하여> 책을 읽고 배리 로페즈 작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지만 아주 오래전에 알았어야 했고 만났어야 했을 사람을 이제야 만난 듯 아쉽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정말 즐겁게 잘 읽었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빛으로 걸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가 생전에 남긴 글들을 천천히 찾아봐야겠다. 마지막 데브라 과트니가 말한 것처럼 그는 삶 자체가 사랑이었고, 도움이었다. 나도 배리 로페즈 같은 삶 자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책을 덮었다.

책을 보내주신 북하우스 출판사와 인디캣 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정말 고마운 여정을 책을 통해 경험했습니다. 책과 함께 떠나본 55년의 여정은 내게 큰 모험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도 이 책과 함께 멋진 여정이 시작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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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책을 북하우스 출판사로부터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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