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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을 다녀온 지금, 2월을 돌아보고자 합산하는 문장을 이어갈까 한다. 얼마나 정신없이 흘러갔는지, 벌써 3월이 오고 말았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던 참이다. 지난달 1일부터 시작된 백수 생활은 몽골 여행으로 그 끝을 찍고, 이번 달은 일본 자유여행으로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어서, 몽골은 그래도 조금 무서워서 패키지로 갔다. (친구가 특가 떴다고 추천해준 건 안 비밀) 2월의 밤하늘이 그렇게 아름다운데, 은하수가 절정이라는 7월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환상만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런 밤하늘 밑에 앉아 책을 읽는 로망도 있어서 게르에서 펼친 ‘지지않는다는 말’의 아무 곳을 폈다.


이게 웬걸, 끊임없이 펼쳐진 몽골의 밤하늘을 보며 끝없는 고독을 느꼈다는 내용이 나왔다. 내가 있던 곳은 테를지 국립공원이었다. 그곳은 전화 서비스 불가 지역이라 주차장에서 간신히 문자를 보내는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름다운 곳에서 고독을 느낄 만한 감성은 없었다. 단지, 카톡 하나 더 보내고 싶을 뿐인데 그렇게 태초의 삶처럼 답답한 문명인의 무인도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게르 캠프의 체험은 하루였다.


울란바토르는 공기가 탁해서 밤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 하루의 밤하늘이 너무도 아름답고 마음속에 시리게 기억되고 있다. 때문인지 7월, 몽골의 밤하늘이 그렇게 황홀하다는 그때, 가보고 싶다. 비싼 성수기라도 좋으니 그곳은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번 여행은 그렇게 얻는 바가 많다. 오늘 오후까지 있었던 일본 여행도 아주 행복했다. 아쉬워서 미련이 남지도 않았고, 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미련 남는 것도 없었다. 2박 3일의 여행이었지만 알차고 깔끔한 무계획 자유여행이었다.


해외를 가면 계획적인 쇼핑은 하지 않았다. 살 건 없는데 친구가 사니까 나도 괜히 사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 때문에 무계획적인 지출을 해왔다. 그래서 내게 남는 건 없었다. 이번엔 내가 반드시 지출할 물건들이 있었다. 먹고 쓰고 먹고 쓰고 쓰다 보니 계획도 변경되고, 내가 생각했던 전형적인 관광지의 장소는 가지 않았다.

갔다면 도쿄도청 전망대 정도. 그곳에서 나는 코난 극장판을 생각했고 지쳐서 앉았다가 로손편의점을 가야 한다는 사명감에만 불타올랐다. 이번 여행은 타이밍이 좋았다. 지하철을 기다렸다가 타지도 않았고, 지도에 찍힌 로손편의점을 가는 길에 발견한 새로운 로손편의점에 들러 음식을 사기도 했다. 또, 서점을 들르지 못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걷다가 의외의 서점을 발견하고, 친구 추천으로 내가 공부하기 편한 에세이를 샀다.


모든 것들은 운이 이어진 황당한 에피소드도 많았다. 출국 전날 친구 집에서 자기로 해서 부산으로 넘어갔다.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실컷 떠들고 놀다가 집으로 들어온 10시 45분! 나는 여권을 안 가져 왔다고 소리쳤다. 벙찐 친구는 가방을 뒤져보라 했지만 난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부산이 아닌 우리 집으로 갔다가 새벽 1시 30분 가까이가 되어서 친구 집으로 다시 왔다.

그 시간에 그렇게 여권이 떠오른 것도 신기하다고 몇몇(2명)은 말했다. 당일 생각한 게 아니란 사실을 다행이라 여기라면서.


아, 일본에서 우리는 시간 배분을 크게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나오자는 친구 말에 난 11시 이후에 나가자고 외쳤고, 결국 둘째 날 그렇게 나와서 점심을 먹고 적당한 쇼핑과 적당한 휴식과 또다시 적당한 쇼핑과 적당한 간식과 적당한 저녁을 먹고, 도쿄도청 전망대를 가고 나서야 적당한 시간에 숙소로 들어왔다.


일상생활과 별다를 것 없는 움직임, 그러나 타국에서 낯선 언어를 만나며 헤매는 우리. 일탈 같은 현실이 너무도 즐거웠다. 그렇다고 이 즐거움이 미련으로 남겨져 또 오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우리는 하얗게 불태웠고, 미련 없이 깔끔한 결말을 도쿄에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앞으로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찾는 생활을 시작할 계획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까운 지인과 나를 동일시하는 습관을 버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으면서 주변에 휘둘리지 말자. 일본 여행의 교훈은 그렇게 내게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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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서 시작했다 좌절하는 것들. 그래서 손도 대지 못하는 이야기들. 손가락 빨며 구경조차 어려워 두려워지는 감정. 현실과 좋아하는 것은 이렇게 괴리가 크다. 좋다는 감정과 성취감만 느끼기엔 현실은 갖춰야 하는 구색이 많다. 타인과의 유대 거리가 그 원천인데, 여기서 뻗어 나가는 모든 구조적인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내가 느끼는 감정만 보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취미로 남아야만 즐거울 수 있구나, 라고 단념해버렸다. 그런데 단념하기엔 마음이 너무 쓰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한 치 앞도 예상하기 어려운 미래 덕분에 설마 하는 기대감으로 글을 놓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글쓰기와 글 읽기가 쳐다보기도 싫게 될 줄 몰랐다. 그래도 이런 경험이 있었으니, 앞으로는 현실과 좋아하는 것의 경계 사이에서 적당한 조절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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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서 시작했다 좌절하는 것들. 그래서 손도 대지 못하는 이야기들. 손가락 빨며 구경조차 어려워 두려워지는 감정. 현실과 좋아하는 것은 이렇게 괴리가 크다. 좋다는 감정과 성취감만 느끼기엔 현실은 갖춰야 하는 구색이 많다. 타인과의 유대 거리가 그 원천인데, 여기서 뻗어 나가는 모든 구조적인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내가 느끼는 감정만 보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취미로 남아야만 즐거울 수 있구나, 라고 단념해버렸다. 그런데 단념하기엔 마음이 너무 쓰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한 치 앞도 예상하기 어려운 미래 덕분에 설마 하는 기대감으로 글을 놓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글쓰기와 글 읽기가 쳐다보기도 싫게 될 줄 몰랐다. 그래도 이런 경험이 있었으니, 앞으로는 현실과 좋아하는 것의 경계 사이에서 적당한 조절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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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마음 다듬고 하루를 보내려 했더니 S극과 N극이 인간의 삶이라고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었다. 그리고 시공간의 흐름은 E극과 W극이어서 당최 계획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내겐 사실이라 말하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교차점은 정확한 지점도 없이 지진 탐지기처럼 미세하게 흔들린다. 세상은 정답이란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거다.


감정조차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잘 참고 있었는데 당황스럽게 눈물이 터졌다. 30분을 넘게 울었더니 가쁜 숨을 뱉었고, 가쁜 숨을 참았더니 몸이 떨고 있었다. 앞으로 진행될 내 감정은 끝없는 동굴 속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려니.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나를 잡지 않는 것은, 앞으로 남은 수많은 수일의 생 전체가 그 안에서 생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삶은 나 자체만으로도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없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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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요즘, 긴장이 조금이라도 풀리면 화기라던가, 눈물이 욱하고 터져 나온다. 다 똑같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도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그럴 때 어떤 것들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것이 뮤지컬 음악이 되었다.


이전엔 가까운 여행을 다니며 다녀왔다는 증거를 글로 남겼다. 그 흔적들이 나를 또 다른 방식으로 몰아가곤 했다. 그렇게 뚝, 멈췄다. 그러다가 정착한 뮤지컬 음악은 한 곡을 여러 버전으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좋았다. 모두 같은 음정, 같은 박자를 지키고 부를 줄 알았더니, 당장 모차르트 뮤지컬의 ‘황금별’만 들어도 신영숙 버전과 김소현 버전이 다르다. 모차르트만 하더라도 박은태, 규현을 유독 많이 돌려 듣는다.

규현은 목소리 그 자체에 미소년 미소년 한 느낌이 좋아서 심장이 녹는다. 박은태의 노래는 섬세하고 예민한 모차르트의 절박함이 내 머릿속을 파고든다. 어쩜. 연기는, 그리고 노래는. 어찌 이다지도 신기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가수들의 무대 영상이나 뮤직비디오를 돌려보는 재미로부터 시작하게 됐다. 여러 개를 모두 보기보다 한두 명의 가수들만 죽어라 파고드는 편이어서 선미의 가시나와 소녀시대의 홀리데이를 자기 전에 누워서 항상 보곤 했다.

하도 보다보니 홀리데이는 뮤직비디오 영상 순서를 기억하게 되면서 파트별 목소리를 구분할 줄 아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특유의 당당하고 상큼한 분위기에 노래의 중독성이 좀(은 아니지만) 더해져 홀려서 본다. 가시나는 뮤직비디오보다 선미의 표정 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일부로 노래 끄고 선미 표정만 보기도 했다. 내게 없는 다양한 표정들. 그래서 더 관찰하듯 읽었다.


뮤지컬 영상도 찾아보게 된 것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행동이 자연스레 이어진 경우다. 배우들이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내 표정이 얼마나 한정적인지를 느끼게 돼서 괜히 따라 해보곤 한다. 부엌과 거실에 누가 있나 없나 확인해보고 방문을 닫은 후, 거울을 보며 ‘나도 배우다!’ 뭐 이런 것들을 한다.

스트레스 해소 방식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친년은 더더욱 아니다. 누구나 한번 쯤 거실에서 연예인 해보다가 형제자매들이 친구 데려와서 들킨 바람에 부끄러워진 여러분들 있지 않나요.


배우들의 연기나, 가수들의 무대, 노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역시 갇힌 내 감정을 풀 수 있는 대리인처럼 여기기 때문에, 특히 뚫린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는 나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한다. 신영숙 배우의 황금별에서 ‘자 여길 떠나 저 성벽 넘어’와 ‘너 혼자 여행 떠나야만 해’ 이 부분을 정말 좋아한다(사랑해요 언니).


나는, 내 감정에 이입하기 싫어서 다른 감정에 이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시작이 소설이었다. 지금은 문장을 읽는 일에 지쳐서 영상이나 노래로 바꿨다. 노래나 영상은 내 머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감정과 인물의 움직임을 떠먹여 주기 때문에 머릿속이 덜 피곤하다. 인물의 표정이나 움직임, 카메라가 강조하는 구도의 시선을 보면 상상하기가 더 편해진다.


그래서 내 감정에 이입되기도 전에 정신없이 잠을 자고, 정신없이 움직인다. 그만큼 강렬하고 뇌리에 깊이 박혀서 내 감정을 쉽게 잊어버린다. 현실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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