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 오빠네 상황이 심상치 않다. 


스찌바(오블론스끼, 스쩨빤 아르까지치)   안나의 오빠. 공직자.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스스로에게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속일 수 없었고,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킬 수 없었다.

서른네 살의 미남이자 곧잘 사랑에 빠지는 자신이, 살아 있는 아이 다섯과 죽은 아이 둘의 엄마이며 자신보다 고작 한 살 어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뉘우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지 아내에게 더 확실하게 숨기지 못한 것을 후회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에서 오는 온갖 고통을 절감했으며,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스스로가 가여웠다.

심지어, 심신이 쇠약해진 데다 늙고 이미 몰골이 추해진 여자이자 잘난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그저 한 가정의 순박하고 선량한 어머니일 뿐인 그녀가 당연히 관대해져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였다.

「그래, 엄마 기분은 좋아?」

딸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웠고, 어머니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으며, 아버지도 틀림없이 그 사실을 알면서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며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딸아이는 얼굴을 붉혔다. 그 순간 아버지 역시 그것을 알아차리고 얼굴을 붉혔다.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모자를 집어 들고서 무언가 잊은 게 없는지 생각하느라 잠시 멈추었다. 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잊고 싶은 존재, 다름 아닌 아내를 제외하고는.

「아아, 이런!」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잘생긴 얼굴에 우울한 기색이 드리웠다. - 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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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4-19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곡님, 편안한 한 주 보내셨나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기분 좋은 금요일 밤 되세요.^^
 

마키아벨리 동상 By JoJan, CC BY 3.0, 위키미디어커먼즈



르네상스기에 중요한 이론 철학자는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지만, 정치철학 분야에서 최고 명성을 누린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1469~1527)가 출현한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은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학설로, 사태를 직시한 자신의 체험에 근거하고, 선악 여부와 상관없이 정해진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성공의 과학은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죄인과 마찬가지로 성인에게도 유용하다. 성인도 정치에 관심이 생겨 참여한다면, 죄인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성공하기를 바랄 것이다.

문제는 결국 권력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종류이든 권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분명한 사실은 "정의가 이길 것이다" 혹은 "악의 승리는 오래가지 못한다" 같은 표어로 가려진다. 네가 옳다고 생각한 쪽이 이긴다면, 그것은 힘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사실 권력은 흔히 여론에 좌우되고, 여론은 선동에 좌우된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가 바로 정국이 혼란한 때였다. 혼란한 시대에는 냉소주의가 급속히 번지는 경향이 있고, 냉소주의는 사람들이 이익을 준다면 무엇이든 용서하게 만든다.

마키아벨리는 문명인이 비양심적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어떤 사람이 비양심적 이기주의자라면, 그가 따를 가장 지혜로운 행동 노선은 자신이 조작해야 할 주민의 수에 의존할 것이다.

세계는 마키아벨리의 세계와 훨씬 흡사해졌으며, 마키아벨리의 철학을 거부하겠다는 희망을 품은 현대인은 19세기보다 더욱 천착해서 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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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19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곡님 페이지에서 이 책 다시 보니 반가워요

서곡 2024-04-19 19: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그레이스님 댓글 감사합니다 ㅋㅋ 네 이 책 중세편까지 읽은 후 잊고 지내다가 다시 펼쳤습니다아!!
 

아래 옮긴 글은 허밍버드 '그림 형제 동화집'(허수경 역)이 출처. 

사진: UnsplashAndreas Brunn


https://youtu.be/x0bxWcys5sA 전영애 교수의 '라푼첼' 우리말 낭독을 들어보면, 라푼젤을 탑에 가둔 고텔을 '할머니' '요술쟁이 할멈'이라고 칭한다. 고텔을 '대모님'이라고 부르는 역본도 본 기억이 있다. '라푼젤'을 다시 쓴 '라푼젤의 머리카락'(얀 레티)에서는 고텔을 그냥 '어머니'라고 한다.







Gothel - Disney, Fair use, https://en.wikipedia.org/w/index.php?curid=45012493


영문 [‘He will love me more than old Dame Gothel does.’ ‘Tell me, Dame Gothel, how it happens that you are so much heavier for me to draw up than the young king’s son—he is with me in a moment.’] 출처https://www.gutenberg.org/files/2591/2591-h/2591-h.htm#link2H_4_0017 (Rapunzel)



왕자가 청혼을 하자, 왕자는 젊고 잘생긴 데다 늙은 여자 고텔보다 왕자가 차라리 나를 더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텔 아주머니, 말해 주세요. 왜 아주머니를 위로 끌어 올리기가 왕자보다 더 힘든지. 젊은 왕자는 내게로 순식간에 올라오는데."- 라푼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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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빌 부부 묘소 By Anthony22, CC BY-SA 3.0, 위키미디어커먼즈


김석희 역 '모비딕'(아셰트클래식판) 연보에는 멜빌의 '나와 내 굴뚝' 속 화자가 "혼자 사는 남자"라고 나오지만 아래 논문의 내용에 따르면 가족들이 있다.


[“만약 나의 이 굴뚝이 나에게 땡땡치는 일종의 종각의 크기라면, 내 아내와 딸들은 항상 한꺼번에 울리는 한 벌의 종들이거나 매 번 쉴 때마다 서로의 음을 이어 받는데, 내 아내는 그 중 가장 큰 소리를 낸다.”

 

‘나와 나의 굴뚝’에서 나이 들어가는 화자는 여성 가족 구성원들과,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정력이 넘치는 아내와 충돌하는데, 그의 아내는 그 집의 거대한 구식 굴뚝을 무너뜨리고 그 대신 복도와 “현대적이고” “장식적인” 몇 개의 작은 굴뚝들로 대치하여 “건축가”이면서 “대 석공”인 스크라이브씨(Mr. Scribe)의 우아한 현대적인 저택 양식으로 바꾸기를 원한다.

 

화자는 “나와 내 굴뚝”이라는 어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더욱 자주 굴뚝을 자신의 또 하나의 자아로 대우한다. 처음부터 화자는 굴뚝이 그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화자의 말로 굴뚝은 집을 구성하는 풍경이 되기보다는 집의 “귀족 . . . 단 하나의 위대하고 오만한 물체”이다.

 

다시 말해, 굴뚝은 단순히 집안의 한 부분이 아니라 집안의 가장인 화자보다 더 우위를 차지하는, 집안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존재로 화자에게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굴뚝을 개조하려는 과거의 노력 때문에 상처를 받고 원래의 높이에서 낮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뚝은 나이 들어가는 남성 화자의 삶에서 여전히 중심적인 관심사로 남아있다.

 

그가 홀로 그의 굴뚝을 방어하는 것은 멜빌의 잡지 소설에서 작가의 모습으로 나오는 다른 인물들의 고독을 상기시키는데 그 중에 특히 월(Wall) 가의 변호사 사무실이라는 테두리 속에 갇혀 있는 바틀비(Bartleby)의 고독을 상기시킨다.]출처: "잘려나간" 굴뚝과 남성 작가의 좌절: 멜빌의 단편소설 연구 (박연옥)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288464595




1856년 몇 편의 단편을 발표. 그중 「바틀비」는 걸작 중편으로 평가된다. 혼자 사는 남자가 병적으로 자기 집 굴뚝에 집착하는 「나와 나의 굴뚝」에는 사회체제 순응주의나 효율성, 기술, 진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태를 통렬히 비판하며 인간 실존의 문제를 탐구한 멜빌의 고뇌가 묻어 있다. -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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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현대지성) 저자연보로부터

노년의 허먼 멜빌 -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


1882년(63세) 10월 뉴욕작가협회가 결성되고 멜빌을 초대했지만 ‘오랫동안 은둔자로 살아와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가기 힘들다’는 이유로 참석 거절함.

1885년(66세) 12월 31일 뉴욕 세관 부두 검사관 퇴직함. 이 즈음 멜빌을 추앙하는 몇몇 독자들이 집에 찾아왔으나 멜빌은 소설 이야기 대신에 철학과 종교 이야기만 함.

1890년(71세) 가을 뉴욕 앤더슨 서점에 들름. 다음은 당시 그 서점에서 견습 점원으로 근무한 오스카 베이걸린이 1935년 여름 『콜로폰』 잡지에 기고한 글.

무더운 어느 오후, 한 노신사가 나소 스트리트 99번지의 존 앤더슨 서점에 들렀다. 원래 다른 서점에 갔으나 찾는 책이 없자 앤더슨 서점에 그 책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왔다고 했다. 신사가 찾던 책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바다와 관련된 책이었던 것 같다. 어느덧 신사와 사장인 앤더슨 씨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바다와 선원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너무 흥미진진해서 가게 손님들은 물론이고 점원들도 다들 귀를 쫑긋 세웠다. 신사는 뱃사람들과 그들이 타고 다니는 배에 대해 누구보다 상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앤더슨 씨가 우리 모두의 궁금증을 대신해 물어보았다.

‘선생님, 아직 성함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가게를 방문한 분은 누구신지요?’

‘내 이름은 허먼 멜빌입니다.’ 앤더슨 씨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아, 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는군요.’ -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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