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켠 티브이에서 박지윤 아나운서와 패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토론 주제는 결혼 5년 차, 두 아이의 엄마이자 여러 프로그램 MC로 활발하게 활동중인 박지윤 아나운서가 내놓은 안건, 일도 아이도 포기 못 하는 나, 비정상인가요?”였다.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절대적이기에 엄마의 커리어를 포기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시각부터 일을 포기하고 불행해하는 엄마보다 일도 육아도 열심히 행복하게 하는 엄마가 낫다는 엄마 중심적인 의견, 아이의 아빠보다 수입이 더 많으면 일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현실적인 접근까지, 각자의 경험과 문화에 따른 다양한 생각이 오고 갔다. 보고 있자니 슬슬 화가 났다. 왜 엄마라는 역할과 여성의 직업이 토론거리가 되어야 할까? 도대체 왜 이것이 고민거리가 되어야 하는 걸까?

 

열받긴 해도 육아와 커리어는 나 또한 항상 고민하는 문제다. 당장이라도 구직에 성공하여 원하는 일을 실컷 하고 싶으면서도, 막상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육아가 걱정이 된다. 친정엄마에게 아기를 맡기기는 죄송하고, 시댁은 멀고, 보육 기관에 보내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고, 베이비시터를 두자니 비용이 적잖이 부담스럽다. 한창 엄마를 찾을 시기에 아기를 두고 반나절 이상을 밖에 있어야 한다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고 육아에 전념하자니 한 해가 가고, 또 두 해가 가다보면 영영 사회 진출이 막히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지금 당장 취업에 성공한 것도 아니면서 언제, 어디서, 어느 정도의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일지 고민이 된다.

육아와 커리어라는 두 마리 토끼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요즘, 나는 종종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1841~95)를 떠올린다. 그녀는 대학시절 여성과 예술이라는 강의에서 처음 알게 된 화가이다. 이 수업에서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여성 화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 나는 특히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을 제일 좋아했다.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화가, 모리조

 

<요람>은 파리에서 있었던 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걸린 유일한 여성 화가의 그림이었다. 작품에서 보이는 파스텔 톤의 색감이나 다소 거친 마무리 등과 같은 특징은 당대 파리의 인상주의자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베르트 모리조, <요람>, 1872

 

다만, 소재는 사뭇 다르다. 남성 인상주의 화가들이 도시화되어가는 파리의 모습이나 도시인의 여가 생활, 또는 여성의 누드를 주로 그린 데 반해, 모리조는 대개 가정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화폭에 담았다.

 

<요람> 역시 그녀의 언니인 에드마가 갓 태어난 딸 블랑시를 바라보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여성 작가 특유의 소재로 보이지만, 이는 사실 19세기 프랑스 사회가 암묵적으로 여성 화가에게 부여했던 제약을 극복하는 그녀 나름의 방법이었다.

 

모리조는 로코코의 거장 프라고나르의 증손녀로 어릴 때부터 심도 깊은 미술 수업을 받았으며, 인상주의 그룹전에도 유일한 여성 멤버로 참가하여 많은 양의 작품을 남긴 화가이다. 그녀는 1세대 페미니스트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새로이 발굴, 남녀 불평등을 극복한 인생의 롤모델이었다.

 

화가의 언니로 남은 에드마

 

그런데 요즘 나는 모리조가 아닌 <요람>의 모델, 에드마 쪽에 시선이 간다. 동생인 모리조와 함께 미술 수업을 받았고,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지만, 결혼과 출산 이후 예술가로서의 삶을 접었다는 에드마. 이십대 초반의 내 눈에 에드마는 한심해 보였다. 자기 일을 그만둔 그녀는 의지도, 열정도 없다고 생각했다.

 

베르트 모르조, <화가의 언니: 에드마 퐁티용 부인>, 1871

 

그런데 지금의 나는 온갖 상상을 더해서라도 이십대의 나로부터 에드마를 변호하고 싶다. 어쩌면 에드마는 자기 일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남편의 이해나 주변의 협조를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모리조의 남편 외젠 마네-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동생-는 그녀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대신 아기에게 젖을 물려주는 유모도 있었다.) 에드마는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다시 붓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연이은 임신으로 다시 그림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후대 페미니스트 미술사학자들의 연민 어린 시선과 달리 에드마는 더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에드마보다 모리조 같은 삶을 꿈꾼다. 일도 육아도 전부 잘하고 싶은 욕심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렇지만 더이상 모리조의 삶이 위대하고 에드마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삶의 가치는 꼭 눈에 보이는 성취나 업적에 있지 않다고 믿게 되었다. 또한 이제는 여성마다 추구하는 바가 모두 다를 수 있다는 여성 안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각자의 최선이 있다

 

이십대 초반의 나는, 모리조의 작품을 보며 그녀처럼 일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하는 멋진 삶을 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요즘 그 다짐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육아와 커리어, 분명 이 두 가지는 양립 가능하다고 배웠는데 실전에서 자꾸 부딪친다. 능력의 문제인지, 사회를 좀더 탓해도 되는 것인지. 더 이를 악물고 덤벼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제 적당히 해야 하는 건지. 예전에는 확신했던 문제들에 지금은 그다지 자신이 없다.

 

내 주변,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모두 고민한다. 더러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고 더러는 더 공부하겠다는 계획을 접기도 했다. 아이를 조금만 키워놓고 다시 일을 갖기를 꿈꾸기도 하고 동시에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의심도 한다. 어찌어찌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경우에도 육아와 일을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남들처럼 아이를 위해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루에도 여러 번 고심한다. 나 역시 내 일에 대해 어디까지 욕심을 내고 얼마만큼 타협해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한다.

 

아마 정답은 없을 것이다. 아니, 무수히 많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거다. 각자의 상황과 성향, 가족의 형편에 따라 최선이라는 것은 모두 다를 테니 말이다. 답이 많은 만큼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그 답을 줄 수 없는 만큼, 고민은 더 깊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지금의 이런 고민을 돌아보며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오리라 믿고 싶다.

모리조와 같은 삶을 살게 되든지 에드마와 같은 삶을 살게 되든지 상관없이, 나중에 나의 딸이 지금의 나와 같은 시간을 지날 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고민들은 충분히 값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간절히 바란다. 내 딸이 살게 될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를. 그래서 우리의 딸들은 더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기를. 당연히 꿈을 꾸고 이룰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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