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무참한 쾌락의 흔적 위에 할머니와 대고모할머니와 엄마와 절름발이 여자와 이모와 수희 언니의 얼굴을 뒤죽박죽으로 섞어서 떠올렸다. 그것은 하나같이 여자의 삶의 뜻을 오직 여자가 남자에게 줄 수 있는 쾌락에 걸었다가 거기 실패한 여자들의 얼굴이었다.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아 핸드백에서 아침 차를 탈 수 있는 기차표를 꺼내 확인을 하고 나니 약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난이란 건 그렇게 단순한 단색이 아녜요. 제각기 개성이 뚜렷하죠. 『안나 카레니나』의 선두였던가요. 이런 말이 있죠? 행복한 사람들은 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각기 제 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이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소리죠. 각기 제 나름대로 가난하거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한 건 언제나 그 값어치를 모르는 자와 만나 유린당하게 돼 있으니까.

우린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악은 우리와는 상관없이 미리미리 마련돼 있었고 악을 기다린 이들끼리 지금 마음껏 악의 향연을 벌이고 있을 뿐이었다. 

몹쓸 일은 꼭 사람이 못 돼서만 일어나는 게 아냐. 알고 있을 걸 모르고 있어서 일어나는 몹쓸 일이 더 많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자유를 빼앗긴 고장에서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 만나기 싫은 사람의 면회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란 얼마나 찬란한 것일까. 우리가 누리고 있다고 믿고 있는 자유가 말짱 헛것인 것이, 보기 싫은 사람을 안 볼 자유나마 제대로 누려본 적이 언제 있었던가.
저 높은 담장 속엔 그게 있고 구주현은 그걸 행사했고, 담 밖의 한 자유로운 여자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지 않나. 그 자유 하나만 움켜쥐고 있으면, 담 밖의 세상의 자유로운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온갖 자유를 조소하고 깔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현재 담장 속에 갇힌 구주현이 누리고 있는 유일한 자유에 황홀한 선망과 찬탄의 시선을 보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첩의 머리채는 곧 엄마의 손아귀에 휘어잡혔다. 엄마는 첩의 몸을 마룻바닥에 힘껏 태질하기 시작했다.
첩의 몸이 한 조각 젖은 걸레같이 된 후에야 엄마는 승리의 미소를 띠고 걸레쪽으로 화한 첩을 굽어봤다.
그런데 굽어보고 있는 건 엄마가 아니라 첩이었다. 걸레쪽으로 화한 건 첩이 아니라 엄마였다. 층층다리는 바스러진 게 아니라 더욱 요망하게 몸을 틀고 집 한가운데 있었다.
첩이 회심의 미소를 띤 채 다리를 매혹적으로 절름대며 층층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와 첩과의 관계의 부당한 역전을 목이 메여 통곡하다가 깨어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