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어느 날 종로의 한 심야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그가 떠나고 두 달 뒤에 나온 이 시집은 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되었네요. 그가 보낸 청춘과 불안의 이십 대가 허무와 두려움의 다른 이름임을 이 시집에서 고스란히 드러낸 것 같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에 읽는 데 너무 좋았습니다.

담아봤어요.~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8-10-24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형도의 시집은 슬슬 추워지기 시작하는 가을에 읽으면 좋은 것 같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8-10-25 11:13   좋아요 0 | URL
아~그러네요. 후음 뭐랄까. 시에서 낙엽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