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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천재 작곡가의 뮤직 로드, 잘츠부르크에서 빈까지 ㅣ 클래식 클라우드 7
김성현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평점 :
잘츠부르크에서의 하루를 기억한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고, 우린 점심부터 독일 맥주에 취해 잘츠부르크를 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즉흥적으로 달려가 오분 남은 잘츠부르크행 기차를 탔다. 가는 두 시간 동안 우린 취기에 목이 말랐다. 기내에 물을 파는 곳이 없었기에 우리는 괴로워하며 잠을 잤다. 그래서 나에게 잘츠부르크에 대한 첫인상은 갈증을 해소해주던 탄산수와, 생각보다 쌀쌀했던 날씨, 그리고 미라벨 공원까지 길게 이어지던 지루한 길이다.
내가 맥주를 마시지 않고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면 잘츠부르크는 나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다른 도시처럼 조사를 꼼꼼이 하고 루트를 정해더라면, 반나절만에 서둘러 독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이틀 정도 머물렀다면. 계획없이 도착한 잘츠부르크는 노래가 흘렀고,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영화 세트장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잘츠의 건물들은 파리보다 아름답지 않았고, 잘차흐강은 인터라켄만큼 푸르지 않았다. 어딜 구경할지 정하지도 않은 채 기차에서 잠만 잔 우리는, 미라벨 정원을 돌아다니다가 젤라또를 하나 사먹고 모차르트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은 특별한 이유로 방문한 게 아니었다. 잘츠부르크 온 거리는 모짜르트로 도배되어 있었고, 여행지에서 제일 만만한 곳은 박물관이었기에 우리는 그곳에 간 것 뿐이었다. 아마 근래에 한국어 오디오 서비스가 도입되었다는 정보를 듣지 못했다면 우린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박물관은 생각보다 작았고, 한국에서 방문했던 여러 문학관과 다를바 없어 보였다. 나는 잠시라도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박물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오디오는 모짜르트의 어린시절을 한참 설명했다. 내용은 생각보다 자세했고, 그의 흔적이 담긴 소품 하나하나를 공들여 설명했다. 그의 누이, 그가 사용했던 피아노, 그가 작곡한 교향곡 등. 하지만 그 중에서 오디오 설명의 반을 차지한 건 모짜르트와 아버지인 레오폴트 간의 갈등이었다. 레오폴트가 아마데우스에게 얼마나 기대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부자 간에 오고갔던 여러 통의 편지에서 나는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라면 누구나 가졌을 레오폴트의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 두 부자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을 때, 오디오 서비스는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아직 한국어 서비스가 개발 중인건지 뒷부분의 배치되니 자료들에는 설명이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에게 모짜르트 아마데우스는 초콜릿과 잘츠부르크, 그리고 레오폴트라는 몇 가지 단어들로 조각조각 정리되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단편적으로 정리된 내 머릿속 모짜르트는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천재, 부모 말 지지리 안 듣는 천방지축일 뿐이었다. 그건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형성된 모짜르트의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서문을 읽은 나는 부끄러워서라도 이 책을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입견이나 고정 관념은 모차르트의 삶이나 음악을 접할 때 오히려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재능을 꽃피웠던 모차르트의 삶은 흡사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인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의 봉건적 질서에서 벗어나 빈의 프리랜서 음악가로 거듭나기까지 모차르트의 길지 않았던 35년 인생은 눈부신 성공과 쓰라린 좌절, 영광과 고통으로 가득했다. 그 결정적 단절의 지점을 살피는 것도 이번 여행의 목표였다.
당연시하고 지나치기 쉬운 모차르트의 재능에 대해서도 실은 수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는 타고난 천재였을까, 아니면 아버지 레오폴트 덕분에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고향 잘츠부르크의 봉건적 질서에 온몸으로 맞서고 저항했기 때문에 불멸의 걸작을 남길 수 있었을까.
이 세 가지 가운데 무엇을 택하느냐에 따라 모차르트의 예술 세계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타고난 천재라면 유전적 요인이 필수적이고, 예술적 영재라면 조기 교육과 가정 환경이 중요하며, 후천적 의지를 강조하면 예술적 반항아이자 개혁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모차르트의 삶과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화두가 된다. 에필로그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30년에 걸쳐서 서서히 변화했다. (15)
나는 잘츠부르크까지 가서도 그곳의 초콜릿과 기념품에서 모짜르트의 초상화만 실컷 봤을 뿐,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천재라는 고유명사 안에 그를 가두고, 그의 인생의 서사를 지워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나처럼 노력하고 고민하고 좌절했던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게으른 천재'라는 말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백조가 잔잔한 호수에서 유유하게 노니는 것처럼 보여도 정작 수면 아래서는 부지런히 발놀림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재주와 노력을 상반된 자질로 간주하는 시각도 낭만주의 예술관의 잔재일 뿐이다. 타고난 재주와 후천적 노력은 결코 정비례하거나 반비례하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 별다른 잣대일 뿐이다. 천재나 신동이라는 단어가 지니고 있는 마력에 홀려서는 안 된다. (102)
누군가를 천재라는 이름 아래 가두는 건 너무 손쉬운 선택이다. 그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천재라고 설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의 삶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의 성공은 신이 정한 것이고, 그의 인생은 그러므로 평탄했을 거라 단정하게 된다. 그가 삶에서 겪는 굴곡은 성공을 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치 정도일 뿐이라며, 한 사람의 아픔을 배부른 자의 투덜거림으로 치부해버린다.
숨가쁘게 쫓아온 모차르트의 생애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그는 '타고난 천재'보다는 '만들어진 천재'에 가깝다. 그를 천재로 만든 건 우선 아버지 레오폴트였고 그다음엔 '18세기 유럽'이라는 드넓은 세상이었다. 아무리 타고난 재주가 뛰어나더라도 평생 타고난 재주로만 먹고사는 사람은 없다. 천하의 모차르트도 마찬가지였다. 모차르트의 '원천 기술'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재능이 아니라 오히려 거침없이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흡수력과 학습 능력에 있었다. (중략)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재능을 누구보다 일찍 발견했던 부모의 존재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알아보고 계발하고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분주하게 뛰어다녔던 설계자이자 연출가는 아버지 레오폴트였다. (중략) 만약 지금 우리가 자녀의 엄청난 재능을 일찍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영재 교육 기관에 입학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회사를 수년간 무급 휴가를 내고 세계 여행을 하면서 거장이나 석학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그들 앞에서 아이가 재능을 뽑낼 기회를 마련해줄 수 있을까? 문제는 부모의 안목과 추진력이다. 모차르트의 유년기에서 가장 특별하고 남달랐던 점은 레오폴트의 존재였다. 따라서 '우리 아이를 모차르트처럼 키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모차르트 같은 아이가 있다면 과연 우리는 레오폴트 같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316)
어릴 적 재능을 반짝 펼쳤다가 사라지는 신동은 적지 않다. 반대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예술적 거장도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조숙한 신동이 그래도 거장이 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중략) 하지만 여기서도 간과하면 안 되는 문제가 있다. 만약 모차르트가 레오폴트의 바람대로 어른이 된 이후에도 잘츠부르크에 머물렀다면, 하이든이나 베토벤과 함께 빈 고전주의를 완성한 삼총사로 평가받을 수 있었을까? (317)
세상에 당연하게 정해진 길은 없다. 그것은 천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걸어 온 길 또한 마찬가지다. 아마데우스의 천재성도, 그의 엄청난 노력도, 아버지인 레오폴트의 전폭적인 지원도 전후무후한 음악가로서의 '모짜르트 아마데우스'를 담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음악가로서 충실하게 살았다. 아버지의 인정을 위해서도, 대중의 환호를 받기 위해서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 닥친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하나하나 헤쳐갔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자신의 삶을 묵묵히 헤쳐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처럼 그를 존경한다. 천재로서의 모짜르트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모짜르트를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