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네 살 아이는 밤 9시면 방에 들어가 한 시간 정도 뒤척이다가 10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잠에 든다. 그 한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고, 몸을 구르며 장난을 치고, 이불을 뒤집어 썼다가 벗었다 반복하며 혼자 즐거워한다. 나는 아직 혼자 잠들지 못하는 아이 곁에 누워서 한 시간 동안 하는 일 없이 함께 있어주었다. 어느 날은 아이가 10시가 지났는데도 영 잘 기색이 없었다. 누워서 자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눈을 오히려 빛내며 계속 굴러다녔다. 11시가 다 될 무렵 이제는 재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불쑥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그만 자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흔히 듣지 못하던 낮은 목소리에 입이 나왔고 샐쭉해졌고 이내 풀이 죽었다. 아이는 그제야 하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 누웠는데, 벽을 보며 등을 돌리고 한 마디를 던진다. “아빠는 왜 나한테 화가 났어요?” 아이의 무심한 한 마디는 나의 밤을 길게 만들었다. 아이는 금방 잠들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아빠는 왜 나한테 화가 났냐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물음은 아빠와 나는 서로 어떤 존재이기에 당신이 나의 행동을 강제하고 규율 할 권리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지 묻는 것과 같다 여겼다. 아버지와 딸의 혈연 관계가 아니라, 개인 대 개인의 서늘한 사회적 관계 또한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그런 생각에 잠에 들지 못했다. 고작 딸 아이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크게 마음을 쏟는 것 아닌가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김희경 작가의 <이상한 정상가족(동아시아, 2017)>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정상적인 가족, 정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한 것들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생각의 경직을 만들어냈고, 이 경직된 생각이 나는 정상적이고 너는 비정상적이라는 경계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내가 정상적이라고 믿을수록 나는 완고해지고, 나는 내 아이를 타자가 아닌 소유물로 간주하고, 나에게서 네가 멀어질수록 나는 너를 체벌을 통해 다시금 내게 길들일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나, 비정상적인 사람들 모두 스스로 정상적이라고 여긴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관계를 객관적으로 환원하기 쉽지 않다. 너는 나의 누군가이며 나의 무엇이지, 너와 나 서로 양립하며 감정과 정보를 교류할 개별적인 존재로 너를 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해야만 한다. 누군가 나를 소유할 수 없듯이 나 역시 타인의 행위를 소유할 수 없으며, 타인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 나의 아내, 나의 딸, 나의 부모, 누구든지 말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밤 11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 날을 다시 떠올려보자. 나는 아이를 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어는 나였고, 동사는 재우다였고, 목적어는 아이였다. 아이는 나의 행위의 목적지였다.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지향하는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라는 것, 공동체는 누군가가 누군가의 목적어가 아니며 스스로 주어가 되어야 했다. 내가 아이를 재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 시간을 보내다가 잠에 드는 것,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며 배우고 감탄하고 삶을 익혀가는 것 …… 그것이야말로 함께 만들어가는 지극히 정상적인 공동체에 부합하지 않을는지. 나는 나의 방식대로 너를 길들일 수 없다. 아니, 길들여서는 안 된다.


https://blog.naver.com/marill00/221443058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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