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창비시선 198
조용미 지음 / 창비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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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 찾았다. 서점의 벽 한 켠은 시집을 취급하는 다양한 출판사와 수 많은 시집들로 가득했는데, 수 많은 시인들은 놀랍게도 저마다 다른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어떤 이의 시어(詩語)는 투명하고, 혹은 언어유희적이고, 고요하고, 현실에 전투적이고, 生에 초연하고, 서정적이고, 혹은 우울하다. 놀랍게도 – 놀랍다는 표현을 한 번 더 반복해야 할 정도로 – 하나의 표현은 딱 하나의 시집에만 허락되었다. 여기 조용한 느낌의 시어가 쓰인 두 시집이 있다고 하자. 두 시집은 일견 조용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세세히 파고 들면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니까 시인들의 세계에 표현과 감정의 중복이란 없었다. 비슷한 듯 보여도 읽다 보면 그 시인만이 전달하는 고유한 감정은 각자 다르다. 시인을 정의하는 고유한 단어, 그걸 찾아내어 명명하는 것은 시집을 읽는 우리들의 몫이었다. 

그 날 서점에서 시집 두 권을 샀는데, 하나는 조용미 시인의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였다. 지금까지 여섯 편의 시집을 펴낸 시인이 두 번째로 발표한 작품이다. 2000년에 발표했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의 작품이며, 1962년 生인 시인에게는 나이 마흔을 앞두고 쓰여진 것이기도 하다. 조용미 시인은 <종교적 인간>이다. 조용미 시인이 종교적 인간이라는 말은, 그녀의 시가 종교적 정취로 가득하다는 말과 같았다. 종교라는 단어는 태생적으로 독실한 신앙, 나직한 기도, 조용한 묵상, 경건한 성상(聖像), 이런 감각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시인이 창조한 종교적인 공간에 신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현실만 가득하다. 낙선사 뜨락, 남양주 석화촌, 옥룡사터, 대원사 다층석탑, 능내리 ...... 시집에서 발견되는, 시인이 경험하는 공간은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런데 현실의 공간 위에서 종교적 정취가 느껴진다. 의아했다. 

M.엘리아데의 <성과 속>구절을 인용해보자. 종교적 인간에게는 공간이 균질하지 않다고 했다. 종교적 인간에게는 현실 속에 성스러운 공간이 있어 그것만이 실재적이고 현실로 존재한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성스러운 공간은 머리 속에, 하늘 위에, 형이상학적인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서 창조된다고 했다. 그 이외의 공간은 무가치하다. 때문에 종교적 인간에게 공간은 균질하지 않게 다가온다. 반면 속세의 인간에게 모든 공간은 평등하며 균질적이다. 특별히 성스러운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모든 공간은 동일한 군상이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무대다. 종교적 인간은 성스러운 공간을 과연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소실점을 계속 노려보고 있으면 소실점 이외의 지점은 까맣게 덮이고 오직 소실점만이 시야에 담기는 무아지경의 세계, 아마 그런 것과 비슷한 시선일 테다. 

조용미 시인은 <종교적 인간>이다. 시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혹은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 위에 성스러운 공간을 새롭게 창조하여 계속 그것만을 응시하고 있다. 폐허가 된 거돈사의 천 년 묵은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한밤의 진불암에서 마주한 대숲을 보며, 점봉산 단목령까지 산을 오르며 시인은 현실 속에서 영적인 시간을 경험하고 공간을 창조한다. 시집을 읽으며 나도 거돈사에 가면, 진불암에 가면, 점봉산에 가면 시인이 만들어 놓은 성스러운 시간과 공간을 체험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궁금한 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왜 시인이 그토록 종교적 인간을 갈망하는지, 왜 시인이 현실 위에 성스럽고 영적인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지 묻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시인은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이곳 저곳 남겨 두었다. 시인은 “불행이란 몸을 가짐으로써 시작되는 것, 그래서 몸이 없다면 어디에 불행이 있을 수 있을까” 라며 노자의 <도덕경>한 구절을 읊조린다. 

몸이 없는 곳, 그래서 불행이 없는 곳. 고통이 없는 곳. 마음의 생채기가 없는 곳. 그런 곳이 있는지 시인은 끊임없이 현실 위에 영적인 경험을 덧대려는 것 아닐까 싶었다. 하늘에 떠 있는 일만 마리의 물고기가 적멸(寂滅)하며 폭우가 쏟아지는 곳이 있어 그곳에 서 있을 수 있다면, 그런 곳에서는 어떠한 불행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없고 싶다는 마음, 이게 시인이 남긴 단서였다.

조용미 시인이 부러웠던 건 아니다. 나는 시인 그 자신이 되고 싶었다.

(2018. 12. 13.)
 

어비산(魚飛山)에 가면 물고기들이 날아다녔던 흔적을 볼 수 있을까
산에 가는 것을 미루다 물고기의 등을 뚫고 나온 사리를 본다 물고기는 뼈를 삭여 제 몸 밖으로 산 하나를 밀어내었다 

날아 다니는 물고기가 되어 세상을 헤매고 다녔다
비가 쏟아지면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정에서 푸덕이며 금과 옥의 소리를 낸다는 만어산(萬魚山)과 그 골짜기에 있는 절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일만 마리 물고기떼의 적멸, 폭우가 쏟아지던 날 물고기들이 내는 장엄한 풍경소리를 들으며 만어사의 옛스님은 열반에 들었을 것이다 

- 조용미 시인의 <魚飛山>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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