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의 메아리 - 우주가 빛에 새긴 모든 흔적 우주배경복사
이강환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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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곱 마리 눈먼 쥐가 있어. 일곱 마리 쥐는 노란 색, 파란 색, 초록 색, 빨간 색 …… 저마다 다른 색으로 물들여져 있는데 어느 날 이들 앞에 아주 커다란, 낯선 존재가 등장한단다. 책을 읽는 우리는 그것이 어떤 존재인지 손쉽게 알 수 있었지만, 일곱 마리 눈 먼 쥐에게 그 존재란 너무나 거대한 질량과 부피에 불과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눈먼 쥐들은 한 마리씩 거대한 존재 위로 올라타서는 그 존재를 알아내고 이해하느라 바빴어. 저마다 거대한 존재의 아주 작은 일부분을 더듬어보고는 그것이 무엇인지 단언하고 다른 쥐들에게 자랑하느라 바빴지. 하지만 그 누구도 그 거대한 존재가 회색 빛의 코끼리인 걸 맞춘 이는 없었단다. , 마지막에 그것이 코끼리임을 눈치챈 한 마리 쥐가 있긴 있었지. 그리고 책은 이렇게 끝나버려. “참된 지혜는 전체를 보는 데서 나온다. 어제 밤 아이가 잠들기 전 읽어준 그림책 <일곱 마리 눈먼 생쥐>의 이야기야.
 
참된 지혜는 전체를 보는 데서 나온다. 그 말은 전체가 무엇인지 알기에 말할 수 있는 것일 테지. 내가 마주하고 있는 존재, 나를 둘러싼 세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전체가 무엇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조차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없겠지. 아주 당연한 그림책의 마지막 문구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건 최근 몇 년 직장에서 내가 맡았던 업무 때문이었을 거야. 나는 석유 제품을 만들어 파는 석유 회사에 다니고 있어. 올해 벌써 9년차라지. 지난 3년 동안은 우리 회사의 원가를 예측하고 전망하는 업무를 맡았단다. 원가. 그러니까 내가 다니는 회사가 빵집이라면 밀가루와 계란 가격을. 자동차 제조 회사라면 철강의 가격을. 핸드폰 제조 회사라면 반도체의 가격을 미리 예측하고 전망하는 일을 3년 동안 했단다. 그 일은 꽤 어렵고 무엇보다 끝없이 방대했어. 혜안을 갖고 가격 결정 시장의 전체를 내다보기는커녕, 백 분의 일에 해당하는 것도 알기 어려웠단다.
 
나를 둘러싼 전체의 세계를 석유시장에서 확장해서 지구, 아니 우주로 넓혀볼까. 지구의 아주 작은 일부분인 석유시장조차 정확히 손에 쥐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탄생한지 137억년이 넘은 우주라면 과연 자신 있게 참된 지혜는 우주의 전체를 보는 데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알아가야 하는 세계가 넓고 깊을수록, 그래서 내가 알아갈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는 존재 앞에 마주할 때 우리의 태도는 한 없이 겸손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 우주는 그런 걸 가르쳐 주는 것 같아. 우주에 대한 경애심, 존재에 대한 겸손함, 그리고 경애심과 겸손함 끝 찾아온 이타심 …… 지금까지 우주를 다룬 책은 대부분 그랬단다. 그러니까 우주의 진리를 향해 지혜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지혜라는 단어를 꺼내어 보여주는 셈이었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창백한 푸른 점>이 그랬듯이 알고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았어. 이만큼이라도 알 수 있어 다행이라는 투였지.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한 학자가, 비록 순수한 천문학자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지만 우주에 대한 동경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한 것을 기록한 이 책도 우주에 대한 경애심, 조금이라도 우주의 진리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선배 학자들에 대한 존경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적 탐사의 결말은 이제 완결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겸손함. 이런 것들이 숨길 수 없이 전해져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한 편이 따스해져 오는 것이 느껴졌어. 이 책을 쉽게 말하면 이런 걸까.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고 하는데. 빅뱅이 발생하고 태초의 파동을 간직한 우주배경복사가 전 우주로 팽창해가며 뻗어갔다고 하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팽창 속도는 계속 빨라져서 우주는 오늘보다 내일 더 멀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바로 이 한다고 하는 것들을 지난 수 십 년 동안 과학자들은 믿음을 진실로 증명하기 위해 분투했는지. 그러니까 이 책은 우주만큼 지혜로워지고 싶었던 인류의 분투에 대한 기록이겠지.
 
뉴욕에 가본 적이 있는지. 뉴욕 현대미술관에 가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마주한 적이 있는지. 어지럽게 흩날리지는 않더라도 수 없이 많은 별을 머리 위에 이고 누워 본적이 있는지.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 활동을 했던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밤 늦게 동네 야산에 올라 텐트를 치고 머리 위에 가득한 별을 본 적이 있어. 하늘에 별이 가득했지. 진실로 별이 가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몇 십 미터 아래 도시에서 올려다본 하늘과 산 속에 스며들어 본 하늘은 정말 달랐어. 가지고 간 미놀타 수동 카메라 조리개를 수 십 초 동안 개방해서 별의 움직임을 필름에 담았어. 인화된 사진에는 수 십 초 동안 장엄하게 움직인 우주의 움직임이 경이롭게 기록되어 있었지. 별도, 빛도, 어둠도, 우주배경복사도, 빅뱅의 흔적도 사진 속에 담겨 있었겠지. 우주가 움직이고 회전하고 이동하고 있다. 나를 둘러싼, 어쩌면 나의 존재를 탄생시킨 그 무엇이 검은 심연의 너머에서 끝없이 울어대며 몸부림치고 있으면서.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數千年 前)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 김수영 시인의 <달나라의 장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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