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치유 그림 선물
김선현 지음 / 미문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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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치유 그림 선물'이 내미는 주제는 어쩌면 평범하다. 요즘은 힐링과 치유를 다룬 내용의 책들이 이미 많이 나왔었기 때문에 좀 늦은가 싶은 등장이긴 하지만, 다른 책들보다 기대가 된 데에는 봄과 함께 어쩐지 수런해진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과 함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개성에 있다. '자기 치유 그림 선물'의 인상은 그림의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책이라 여겨졌다. 실제 작품을 봤을 때보다는 덜 하겠지만, 책 안에 담겨진 그림만으로도 때로는 한동안 가만히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치유라는 키워드가 있다고 해서 무거운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주제들도 있고, 글의 호흡이 무겁지 않아 읽기에 좋았다. 사랑에 대한 그림이야기(141)를 읽는 것도 좋았다. 봄은 봄이라, 밝고 귀여운 분위기의 그림이 눈에 잘 들어오고 피어난 봄꽃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에도 좋은 부분이었다. 다만 때로 그림보다 설명이 더 먼저 등장하는 부분들이 있어 편집을 좀 더 신경써서 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들었다. 여백이 부족하게 들어간 책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을 더 살려서 글과 그림을 배치했다면 감상하는데 더 수월했을 것 같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된 물방울과 비움(15)의 이야기는 요즘 깊이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에 잘 맞아 그림도, 글도 한동안 반복해서 바라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분야의 사상과 어우러지는 면이 있어 마침 책을 읽는 환경과도 잘 맞아 떨어진 참이었다. 특히나 '수행하는 여술이 아름답습니다(65)'의 내용은 책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림을 소개하는데, 이 그림의 소개마저도 "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면서 종일 염불하는 것과 같이 수없이 반복해서(72) "라는 표현이 나와 책을 읽는 상황과 잘 맞닿아있었다. 같은 흐름으로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215)'라는 주제를 다룬 내용도 좋았다.

 

 얼마 전 템플 스테이를 다녀오는 길에 이 책을 가방에 넣고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는데, 멀리서 피어나는 향냄새와 경을 외는 소리가 오가는 정갈한 방에 앉아 가만히 책을 읽고 있자니 더할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그림과 함께하는 시간을, 그리고 찾아보기 어려운 미술 특히나 한국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제공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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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한수산 지음 / &(앤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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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무렵 그가 겪어야 했던 고절과 영광 그리고 도피를 그는 상실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썩어가고 있던 뉴욕에서의 나날, 침대에서 눈을 뜨는 아침마다 자신의 손목시계는 '상실. 상실. 상실.'하며 재깍거리고 있다고.(28) "

 

 이 감성을 내가 헤아릴 수 있을까 막연한 한계를 재보았다. 유럽에서도 울고, 호주에서도 앓는 섬세함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떤 문장들은 조용히 나를 두드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으며 나는 참담히 자신과 마주해야 했다. 어쩌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 앞에서 한동안 멈춰서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가슴을 맴돌고 있는 상실이라는 소리를 혹시 모른척하고 있지 않을까.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 자신이 결국은 딸인지라, '딸이 떠난 방'이라는 부분을 한동안 읽었다. 책을 읽을 적에는 대부분 말이 없지만, 몇 페이지의 글을 읽으며 침묵했다는 것에 더 가까운 문장들이었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다른 우주라는 말이 공감되지만 때로 나는 어떤 딸이었나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한없이 가깝지만 결과적으로는 타인인 부모님과 나의 사이, 결국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사람사이의 거리에 대해 조금은 먹먹하게 읽어냈다. 선생과 같은 글재주는 없으실지라도 아버지로서 가지는 비슷한 마음이 아버지에게도 있지 않을까 가만히 가늠해보았다.

 

 " 나무를 심을 때마다 똑같은 생각을 한다. 이 나무는 나보다 더 오래 이 세상의 햇살과 바람 속에 살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심은 나는 떠나도, 남아 있는 나무는 살아서 나를 그리워하려나.(215) "

 

 요즘 식물을 키우는 일에 관심이 생겨서, 비록 제대로 잘 키워내지 못하고 있어서 꽤 조바심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생명을 들인 탓에 나무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키우고 있는 이 식물들이 사실 잘만 키운다면 나보다도 훨씬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이른 봄을 맞으라고 일찍 추위에 내놓는 바람에 냉해를 입어버렸다. 앞으로는 과연 내가 키울 수 있을까, 같은 비관적인 생각을 품지 않고, 저 문구처럼 더 오래도록 살아있으리라 하는 생각으로 식물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그리워하지 않더라도 어찌되었든 가능한한 길게 살 것이란 마음으로.

 

 아주 길게 늘여 읽은 책이다. 금방 읽으려면 읽을수도 있었겠지만 한껏 게으르게 읽었다. 언제 읽어도 좋은 책장들 사이를 한가롭게 거닌 느낌이다. 꽃을 보러 갈 수 없는 봄날, 책으로 봄을 대신 맞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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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홈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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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필립이 자신의 의지로 과거로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해에서 눈을 뜬 격이라 어떤 흐름으로 일이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필립이 모르는 것은 철저히 독자도 모를 뿐더러, 어떤 때는 필립보다도 더 주어지는 정보가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지루함 없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으로는 이런 빈칸들이 흥미진진한 뒷 얘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주었다. 필립과 정림은 왜 과거로 돌아가게 된 것일까? 과거로 돌아간 시간 여행자들은 어떻게 다시 원래의 삶을 돌아갈 수 있을까? 필립과 정림이 과거에서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누가 그들이 찾는 밀정일까?

 

 일제강점기 무렵의 근대로의 타임슬립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고잉홈'의 등장이 꽤 반가울 것 같다. 상해와 동경, 경성을 오가는 과거의 배경과 누구도 믿을 수 없이, 작은 단서와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여,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평범한 남녀의 모험을 다룬 이야기는 300쪽이 넘는 내용을 순식간에 읽어버리게 만든다. '만약 과거로 간다면, 당신을 독립운동을 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로 시작한 '고잉홈'의 내용은 가끔은 너무 무겁게 느껴졌고, 가끔은 너무 가볍기도 했다. 주제와 배경이 무거운데에 비해 가끔 내용의 짜임이 좀 헐겁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필립과 정림의 관계가 어떤식으로 깊어지는지, 또 필립이라는 인물이 변화해가는 과정, 그 외의 인물들이 어떤 면모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촘촘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중요성과 역사의식이 가장 뜨거운 화두로 솟아오르고 있는 요즘, '고잉홈'의 내용은 독자에게도 질문을 던져준다. 필립의 모습을 보면서, 또 책 전반의 질문을 떠올리면서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지금 나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개인의 선택 문제이지만 한동안 침체되어 있던 극장가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예매 1위를 하는 등 거세었던 불매 운동의 여파도 점차 옅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고잉홈'을 읽고나니 더욱더, 역사를 그리고 지금까지의 양국 관계를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해야할 것인가 입장을 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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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까짓, 털 - 나만 사랑하는 너 이까짓 1
윰토끼 지음 / 봄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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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까짓 털은 재미있는 책이다. 사실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금 심각한 문제제기를 한다. 여성과 여성의 털에 대해 드러내고 의문을 던진다. 사실 그동안 털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다. 털이 많은 편이 아니라 오히려 숱없는 머리가 아쉬웠는데, -어쩌면 이것도 털에 대한 고민이었을지 모르지만.. 어째서 다른털과는 다르게 머리털은 많을수록 미덕인 것인가- 윰토끼라는 이름답게? 털이 많아 슬픈 저자의 경험담이 그동안 궁금했던 털의 세계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려나 싶은 생각에 읽어봤다.

 

 솔직히 몸에 난 털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타인과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어쩐지 쉽게 물어보기 어려운 내밀한 이야기인 것 같고, 꽤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인 것 같은데 나는 잘 몰라서 그러는데 어떻게 처리해?하고 물어봤을때 자랑하냐며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순수한 호기심이었지만 상대방에게는 예민한 문제일수도 있었다. 그런데 부끄러움은 자신의 몫을 남겨둘테니 용기만 얻어가라는 작가의 말이 고맙기도 하고,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말자고 응원하고 싶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 다양한 부위의 털이 우리의 고민이 되었구나 싶었다. 예물상점 편(123)이 그랬다. 제목으로 예상이 가능할까? 어느 부위의 털이 주제인지. 바로 손가락에 난 털이었다. 세상에 손가락에 난 털을 신경써가며 반지를 껴야 하다니. 이건 예상치 못한 털의 등장이었다. 반지를 끼워보는 상황에서 신경쓰인 것이라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털마저 관리의 대상이었다니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한번 신경쓰이니 자꾸만 손가락을 살펴보게 되는 불상사마저 벌어졌다. 아, 손가락 털. 이까짓 털도 털이라고 신경쓰이다니.

 

 인중에 있는 털, 팔, 다리, 눈썹, 손가락 그리고 또 다른 부위들까지! 수많은 털털한 이야기를 읽다가 별 생각 없던 털들이 갑자기 눈에 잘 띄게 되는 부작용도 생겼지만, 혹떼러 왔다가 혹 붙인 느낌이 좀 있지만! 그래도 새롭고 독특하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우리 몸에 대해서 알고 터부시되는 것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가볍고 재밌게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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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S. K. 본 지음, 민지현 옮김 / 책세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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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회하지 않느냐고?" 메이가 눈알을 굴리며 대신 말했다. "미안. 이제 더 이상 묻지 않을게." "내 대답은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야." 메이가 스티븐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후회하지 않아." "좋아." 스티븐이 키스를 한 다음 다시 몸을 눕히자 메이가 일어났다. 그러고는 물속에 반짝이는 생물체를 내려다보았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말하고 싶었지만 스티븐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차마 말하지 못한 진실을 생각했다. 후회는 없지만 내 평생의 꿈을 잃어버린 아쉬움은 영원히 가시지 않을 것 같아.(318) "

 

 책을 읽으며 상상력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웠다. 그동안 영화를 볼 때 스페이스 오페라 류를 그다지 챙겨보지 않았다. 자본이 많이 들어간 오락 영화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 의외로 '스타워즈' 같은 우주 배경 미래 물이 힘을 못 쓴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게 아닌 것처럼, 어쩐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할까. 최근 승리호를 비롯한 몇몇의 작품들은 즐겁게 봤지만 가지고 있는 배경으로 '갤럭시'의 공간을 설계해내기에는 어려웠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우주선 공간을 잘 구현해낼 수 있는 바탕이 있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메리엄이 정신을 차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2067년 12월이라는 숫자는 멀고도 가깝고 상상이 잘 되질 않지만 영 허무맹랑하지도 않다. 인공지능과 유로파 탐사 미션, 탐사선이라는 다소 미래적인 요소들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어린시절부터 보고 자란 2020 원더키디도 1989년의 상영작이었다. 그 사이에 원더키디의 미래 배경까지 30년의 시간이 있는데, 2021년인 지금, 갤럭시를 읽으며 약 40년 후의 미래도 상상해 볼 법 하다. 인공지능에게 이브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메리엄의 모습을 보면, 빅스비나 시리와 대화를 시작해나가는 지금 상황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메이와 이브의 조각난 기억들을 통해서 탐사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살펴보는 과정은 험난하다. 몸상태는 엉망이고, 탐사선은 파손되었다. 동료들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끊어진 기억들 속에서 남편인 스티브와 이혼 준비중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임신 중이라는 것, 그리고 탐사선 내의 모든 동료들이 사망했다는 것, 이 상황이 우연히 벌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차례로 알게 된다. 이대로 우주 미아가 되버릴 것만 같은 위기 상황에서 메이는 침착하고 유연한 대처를 보인다. 메이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보일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매력적인 인물이고, 메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포인트가 된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배우가 메이를 연기하게 될지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풀리지 않는 부분들이 답답하기도 했는데 메이 이외의 생존자와 만나게 되는 부분부터 내용이 더욱 흥미로워졌다. 일의 전모를 알게 된 메이는, 그리고 그녀의 무사귀환을 도와야 하는 스티븐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깨어진 사이를 회복하고 두 사람은 새로운 생명을 지킬 수 있을까. 책의 출간과 함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영화화 확정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영화로 개봉하게 되면 꼭 보러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별이 박힌 우주 공간의 모습과 탐사선의 구조 등 상상으로 미흡했던 부분들을 잘 채워넣은 화면으로 보고 싶다. SF물을 좋아하거나, 특히 마션을 재밌게 봤다면 갤럭시도 마음에 들 것이니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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