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샷 뒤의 여자들 -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
김지효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기심에 집어든 책입니다.
그리고 요새 젊은 여성들이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읽었습니다.

고백부터 하자면 사실 인스타그램이라는 SNS는 저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매체라서 20-30대 여성들이 ‘인생샷’이라는 스타일의 사진을 올리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남성입장에서 낯선 이런 시간투자는 한편 젊은 여성들에게 ‘외모’가 무시못할 자산이고 한편으로 사회생활의 방편이면서 성차별을 보여주는 기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당혹스러웠습니다.

어플로 보정된 사진이 자신의 또다른 ‘디지털 자아’를 대변한다는 인식도 그렇고 예전과 다르게 가족들만이 보는 전통적 사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전시’한다는 인식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책의 상당부분이 인생샷과 관련된 다양한 여성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경험상 인터뷰를 통한 연구가 생각보다 품이 많이들고 어렵습니다.

2010년대 이후의 새로운 사회현상이고, 사진 자체도 소위 ‘인스타그래머블’해지고 카페들도 이에 맞춰 인테리어를 바꾸는 마당이니 아마 인스타그램 인생샷의 경우 인터뷰말고 다른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기 어려웠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사회와 도시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이책에서 논의된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민감한 주제이고 섣부를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끝으로 책에 대해 소개를 덧붙이면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본문 329쪽입니다. 저자의 석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역사와 정치, 경제관련서를 많이 읽는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여성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보려면 별도로 여성에 대한 책이나 인류학 관련 책을 찿아야 봐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책의 여성주의 입장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여성들이 안전하고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결국 자연스럽게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생긴 일일 수 있다고 봅니다.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고 나의 어머니도 나의 딸도 여성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삶이 결국 여성들이 지향하는 삶이 아닌지 추측해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세대에서 빈곤을 연구하시는 인류학자 조문영 교수의 책입니다. 총 9장으로 본문 398쪽인 이 연구서는 저자의 지난 20여년간의 빈곤 연구의 중간결산 같은 성격의 책입니다.

한국과 중국의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들어가서 관찰하고 인터뷰한 연구로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취약계층에 대한 관찰기이기도 합니다.

보통 빈곤과 불평등 문제는 사회학이나 경제학 영역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인류학자가 빈곤의 현장에서 빈곤의 역사성과 관계성에 주목해 빈곤문제를 잘 설명해 준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의존(dependency)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통념에 맞서 사실 이 세상의 누구도 상대방에 대한 의존없이 살기 힘들다는 지극한 명제를 상기시켜주는 대목은 인상적이었습니다(p64).

개인이 가족에 의존하거나 속한 공동체에 의존하는 건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경제개발이 시작된 한국에서 스스로 살수 없는 사람들을 무능력하다고 ‘낙인(烙印)을 찍고 경멸해 온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마지막 9장은 코로나 19 팬데믹과 기후위기로 서구의 학자들이 개념화하기 시작한 인류세 (Anthropocene, 人類世)시대에서의 빈곤에 대한 담론으로 단순히 인간사이에서의 빈곤 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사이의 관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주장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빈곤활동가들이 현장에서 같이 살며 삶을 살아가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계몽이 아니라 활동가들이 사회의
일부에서 그 변화를 일으키고 스스로도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해봅니다.

경제현상과 경제정책의 역사, 정부와 정치의 역할, 민주주의가 어떻게 왜곡되어왔는지, 디지털 생태계가 사회와 경제구조를 어떻게 바꿔왔는지에 주로 주목을 한 반면 최근에 읽은 빈곤에 대한 이 책과 대한민국 초기 정치적 혼란으로 국내에서 난민으로서 삶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한국에서의 난민 을 다룬 연구서 , <난민, 경계의 삶, 역사비평사,2023>은 먹고 사는 문제와 사회와의 관계 그리고 정치권력의 통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책으로 생각합니다.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은 생각보다 매우 가까이 있는 분야고 둘다 사회구성원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밀접한 분야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사회정책을 너무 등한시하는 건 국가에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세금 낸 만큼 국가가 국민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특히 인류학(anthropology)은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경영을 위한 통치방식의 하나로 비서구사회를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온 서구학문인데, 그 방법론을 가지고 한국사회의 복지구조와 관료와 복지수급의 관계를 살핀다던지, 중국 선전(Shenzhen深圳)의 폭스콘 노동자의 삶을 추적해 노동자로서의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중국에 관심이 많은 독자로서 그리고 저자 자신도 중국학을 하는 정체성이 있어서 그런지 옆나라 중국의 사회에 대한 글은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라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국 하얼빈(哈尔滨)을 배경으로 하얼빈에 자리잡은 여러 한국인들의 다양한 삶의 양태와 중국과 한국의 수교이후 한국에서 돈을 벌어 신흥 부자가 된 소위 ’신조선족‘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조선족‘의 이미지와 매우 달라 매우 전복적입니다. 영화에서 보던 거친 조선족이 아니라 중국인으로서 하얼빈에 새로정착한 ‘찌질한’한국인의 서사가 소개됩니다. 이런 개별적 사례는 조선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에 대한 선입견을 무너뜨립니다.

연구서이고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학자들의 빈곤담론과 인류학자들의 연구인용(citation)으로 가볍게 읽기는 분명 어려운 책입니다. 하지만 사회를 접근하는 다양한 시각을 보고 인류학자들이 심층인터뷰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연구하는지를 볼 수 있는 좋은 책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민, 경계의삶 - 1945~60년대 농촌정착사업으로 본 한국 사회 역비한국학연구총서 42
김아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춘천의 한림대학교에서 한국현대사회사를 연구하시는 김아람 교수의 신작입니다.

2023년 3월 출판된 책으로 이 시리즈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또한 2023년을 대표하는 연구서로 선정된 바 있는 책입니다.

이책은 우리가 흔히 부모세대와 조부모세대 어르신들에게 들었던 피난민(避難民)에 대한 이야기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피난민이라고 하면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등지고 공산사회를 피해 월남(越南)한 북한출신 주민들을 이야기합니다.

이책에서 다루는 난민 중에는 물론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쟁난민 그리고 월남민도 있지만 한국전쟁이전 미군정 당시의 제주도 4.3 사건으로 인한 난민 그리고 여순반란 사건과 뒤이은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들도 포함됩니다.

모두 민간인들이 심각한 국가폭력(國家暴力)에 노출되어 삶의 터전을 벗어나 생존을 위해 고난을 감내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군정기와 한국전쟁 당시 정부는 발생한 난민들을 전쟁의 장애물로 인식했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해서 이렇게 발생한 난민을 감소시키는데 정책적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해방이후 만주와 일본에서 들어온 난민이나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내부난민 모두 체제 변동으로 발생한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부는 전쟁의 여파로 발생한 고아 부랑인 등을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방책으로 정착사업을 시행한 측면이 큽니다.

이렇게 체제형 난민이든 사회형 난민( 부랑아 깡패 고아 등)은 최초에 사회정책의 하나로 난민을 구호하기 위해 실시했던 농촌정착사업을 점차 농촌의 생산력향상을 도모하는 경제정책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러한 난민의 농촌정착사업의 정책주체인 정부의 목적은 1> 난민을 정착시켜 난민을 줄이는 것으로 이는 난민의 자발적 노력으로 실시한다(?)는 원칙입니다. 2> 농촌정착사업은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의 역할에 의존한다는 겁니다.

이상한건 중앙정부 관료들이 정책을 입안하면서 본인들의 책임을 모두 난민과 지방정부 지역사회에 전가시켰다는 겁니다. 지금처럼 그때도 고위관료들은 무책임하고 영혼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1960년대에 사회형 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농촌정착사업은 도시에 있던 고아 부랑아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간척사업과 농지개발사업에 투입하고 지방정부 그리고 심지어 중앙정보부까지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던 ‘동원’된 사업이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이렇게 몰상식하게 사람을 동원하고 노예처럼 강제노동을 시키는 정착사업이 성공할리가 없습니다. 이런 사례는 1960년대 이후 군사정부에서 국민을 상대로 폭력과 인권유린을 한 ‘범죄’지요.

웃픈 건 이런 농촌정착사업장에 부랑아들과 짝을 맺어주기 위해 도시에 있던 윤락여성들과 ‘합동결혼’을 시킨 사례까지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강제로 한 결혼생활이 원만할리가 없었지만 이 모든 게 정부가 정책으로 추진한 것이라는 데 그 ‘후진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당시 공무원들이 사회하층민들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볼 수 있는거죠. 사회악으로 척결대상인 부랑인들은 고위관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도시에서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였고, 이들의 노동력을 험하고 어려운 간척사업이나 농지개량사업에 활용하고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 마찬가지로 척결대상인 윤락여성들과 짝을 먖어주자는 기막힌 발상입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사람을 노동력으로만 보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으로 심지어 매우 계급지향적이기까지 합니다( 하류는 하류들끼리…). 이런 권력지향적 관료들이 추진한 정책이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건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아무튼 책에 실린 당시 간척사업 참가자들의 구술을 보면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들을 아무데나 묻고 장례식도 치루지 않은 경우가 많고, 식량도 충분히 주지 않아 허기진 상태에서 노역을 했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간척사업의 경우 간척이후 토지분배과정에서 나타났습니다. 애초 사업의 목적이 간척지를 농지로 만들어 간척에 참여한 난민들에게 토지를 무상분배하고 그 땅에 정착시키려는 의도였는데 문제는 간척이 끝나고 난민들에게 토지무상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겁니다. 농지에 대한 소유권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근거를 갖추지 못해 소유권 분쟁이 일어난 경우도 있고, 간척 후에 지주가 나타나 사유지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경우에도 한국정부와 사법당국은 마찬가지로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간척지에 대한 모든 부담을 난민들에게 돌리거나 지주의 손을 들어줍니다.

1960년대에 끝난 간척사업지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30여년을 끌어오다 1990년대에 마무리된다든지, 2010년대까지도 분쟁이 지속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개척한 간척지에서 자신 소유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소작을 하는 경우가 나타나거나 결국 농지를 유상매입하는 경우까지 나타납니다.

에 책은 해방과 4.3 사건, 여순반란 그리고 한국전쟁같은 격동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내전으로 황폐화한 땅에서 북한을 떠나 온 난민들, 해방이후 해외에서 들어온 난민들을 어떻게 정착시키고 먹고 살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정책과 당시를 경험한 난민들의 삶을 추적한 기록입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 농업생산력을 올려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출발점에서 시작한 사업이고 자본과 자원이 없었던 당시 미군정의 무상원조를 통한 잉여생산물이 일단 그 시작이었습니다.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기 이전이라 최초 사회정책적 측면이 강하고 구호사업의 측면이 강했지만 1960년대 이후 점차 경제정책적 측면이 부각되긴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고된노동에 비해 소유권 보장도 되지 않고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 난민 출신 정착민들은 살기 위해 다시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 따라서 생각한만큼 성과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체계가 잡혀있지 않던 전쟁이후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는지 알 수 있는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무책임’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특히 관료들의 무책임을 방기하는 듯한 정부의 조직문화는 심각하게 국격을 망칠 수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관료들은 본인들이 국민의 머슴( civil servant)이라는 생각을 안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의 봉급이 세금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이완출신 재미사학자 장융전의 책을 서울디지털대 중국학과 이화승 교수께서 옮기신 책입니다.

책의 원제목은 礎材晉育, 즉 ‘초나라의 인재를 진나라에서교육시키다’입니다.

춘추전국시대 강남의 한 ‘오랑캐’국가였던 초나라의 인재를 초기 춤추시대 강국인 진나라에서 교육시킨다는 의미로 산업화에 뒤쳐진 중국이 당시 선진국으로 발돋음하던 미국으로 인재를 보내 교육시킨다는 의미가 있는 제목이죠.

중국출신이 아닌 타이완출신 학자의 책이고, 역자분도 타이완에서 공부하신 분입니다.

미중갈등이 첨예한 2024년 현재 중국인 엘리트들이 미국유학을 열망하고 심지어 미국인처럼 되려고 했다는 지난시절 중국의 이야기는 매우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접하는 공산주의 중국의 모습만으로 중국의 실체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전 만주족이 지배하던 전제주의적 중국이 있었고, 개항이후 나름 서구화 근대화를 이루려고 발버둥치는 중국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서양의 중국진출에 어떻게 대비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결과의 일부가 이책에 있습니다.

책은 1872-1931년까지 19세기말에서 중일전쟁 전까지의 중국인들의 미국유학사를 다루고 있고, 청대 말기부터 위안스카이의 독재정치, 군벌정치와 중화민국의 개국시기까지를 포괄하며 당시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국의 엘리트 학생들이 중국과 미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두 나라를 바라보았는지 이들이 쓴 논설과 여러 글들을 분석하며 이들의 생각을 되짚어 봅니다.

이시기는 미국에 아직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던 시기로 유학생들은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면 영주권을 얻을 수 없어 중국으로 귀국했어야 하던 시기였습니다.

대부분 중국의 부유한 상류층 출신으로 남자들은 대부분 국비로 장학금을 받았고 10% 남짓한 여학생들은 대부분 상류층 출신의 자비유학생이었습니다.

책을 보면 미국은 매우 배타적인 인종주의 국가로서 심지어 중국 국적의 유학생과 결혼한 미국 출생의 화교들마저 미국 국적을 박탈할 정도로 중국인들의 이민을 혐오하던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상당수의 미국출신 회교들이 중국인과 결혼 후 중국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차별이 완화된 시기가 1960년대라고 하니 미국 주류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그 역사가 꽤나 깊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에 유학하던 중국인들은 대부분 중국의 동부 해안지대 출신으로 광동성(廣東省)출신이 가장 많았고 죽경등 동북부 출신들은 광동, 장쑤, 저장성 등 중국 남부출신들을 업신여기고 심지어 이들이 쓰는 언어가 달라 중국어로 의사소통이 되기 어려워 영어로만 소통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원래 중국에서도 대부분 상류층이거나 광동의 부유한 성인집안의 자제였던 이들은 미국 유학으로 배타적인 엘리트 의식을 더 키워 갔으면 중국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에 따라 많이 배우면 출사를 하는 그래서 정부의 고위관료가 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중국의 과거 사대부들이 유학공부를 한후 과거시험에 합격후 관직에 진출하는 출세경로가 20세기가 된 후에도 전혀 바뀌지 않은겁니다. 그래서 초기 유학생들은 청 정부에 자신들을 임용하라고 요구하는 문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기득권 층에 속했던 중국의 미국유학생들은 대부분 보수주의적이었고, 이건 그들이 향후 중국의 관료가 되기 위해서도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미국 유학출신 중엔 20세기 초반을 휩쓸던 사회주의에 경도된 이들은 극히 소수였습니다.


책은 본문 475쪽으로 약간 부담될 수도 있는 두께이고, 상당부분 중국 유학생 관련 통계자료 등이 나오고 여러장의 20세기 초 중국 유학생들의 동창회나 여름캠프 사진 자료가 나옵니다.

심지어 초기 유학생들은 중고등학교부터 대학 또는 대학원까지 미국에서 나와 심지어 대학을 세곳 정도 다닌 이들도 많습니다. 지금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으로 유학을 가는 코스가 아니라서 당시 중국유학생들이 ‘미국화’된 정도는 현재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굳이 분류를 하자면 중국인들의 미국 유학의 역사 혹은 유학생들의 사회사 내지 사상사라고 볼 수 있고 이렇게 근대화 초기 일부 학생들을 뽑아 선진국에서 교육을 시킨 경우는 물론 중국만 있는 건 아닙니다.

책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당시 청말의 중국의 경우도 두가지 유학경로가 있었는데 그중 한곳이 일본( 매이지 일본)이고 또다른 곳이 미국입니다. 비용면에서 일본이 저렴해 집안 배경이 낮은 많은 이들이 일본을 택했다고 하고 그중에는 현대 중국문학의 비조로 불리는 루쉰(魯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도 일제시대 많은 수재들이 일본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조선땅에 1925년까지 제대로 된 대학이 없어 많은 조선 유학생들도 일본에서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다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국의 초기 미국유학의 경우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조선의 초기 일본유학생들도 일본에서 10여년씩 공부를 하다보니 지나치게 일본화되는 경우가 속출했는데 중국의 초기 미국 유학생들도 지나치게 미국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근대화와 경제발전 초기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catch up)일정부분 선진국의 이론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건 불가피하겠지만, 이제 한국의 경우도 경제발전계획을 세우고 따라잡기 전략으로 경제정책을 세운지 반세기가 넘어가 이제는 따라잡기를 넘어선 뭔가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하고 또 독자적 사고체계와 이론체계를 갖추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틀을 서구에만 의존하는 건 매우 안이하고 위험한 발상입니다.

과거처럼 마냥 서양 이론만 수입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현대를 통틀어서 기득권을 구성하는 지식인들의 유학과 그들의 괘적을 추적한 책들이 몇권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중국지식인의 일본 유학에 관한 책으로는

옌안성, 한영혜 옮김, 신산을 찿아 동쪽으로 향하네 (일조각,2005)

오래된 책이지만 중국인들이 일본을 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책입니다.

다음으로 식민지 조선인들의 일본제국대학 유학에 대한 책입니다.

정종헌, 제국대학의 조센징 (휴머니스트,2019)

이책은 일재강점기 일본의 제국대학에서 공부한 엘리트들이 해방이후 박정희 정권 당시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하는 등 그들의 졸업 후 행적이 초기 대한만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돌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이책에는 일제시대 조선인 법조인들이 왜 공인된 친일파였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문학가 이광수의 일본유학과 그의 일생에 대한 책입니다.

하타노 세츠코, 최주한 옮김,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 ( 푸른역사,2016)

최초의 근대문학가 이광수가 일본 유학이후 어떻게 찬일파로 변해가는지를 일본의 이광수 연구자의 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려대에서 중국사를 연구하시는 조영헌 교수의 연구서를 읽었습니다. 서문에서 저자께서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책을 집필하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이책의 자매편과 같은 좀더 대중적인 책이 얼마전 나왔는데, 지금 소개하는 책과 어떤면에서 다른지 아래의 저자의 최근 저작도 시간이 되면 읽고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조영헌, 대운하 시대 1415-1784 ( 민음사,2021)

아무튼 이책의 물리적인 외관을 좀더 정리하면 본문이 423쪽으로 통상의 300쪽 내외의 연구서보다 분량이 조금 됩니다. 그리고 각주와 참고문헌 서지목록이 약 200여쪽을 차지합니다. 일단 책의 체제나 글의 밀도 면에서 깊이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특정분야에 깊이있는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기에 부담이 없지만 통사위주로 역사서를 읽어오신 분들에게는 책내용이 어려울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책 제목이 명시해주듯, 이책은 중국의 근세, 즉 명청시대 대운하와 두 왕조의 조운정책(漕運政策)과 그 참가자들인 상인계층 중 특히 양자강과 황하(黃河)와 회하(淮河)가 만나는 지역인 회양지역에서 활동하던 현재의 안후이성(安徽省)의 휘주(徽州)출신 상인들의 사회경제적 역할에 대해 연구한 연구서입니다.

따라서 책은 중국의 명청시대 사회경제사이자 명과 청이 주면의 국가와 각 지방으로부터 조공(朝貢)과 세금을 납부하는데 꼭 필요한 대륙운송로인 대운하의 역할에 대한 물류( logistics)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근대 시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황제에게 진상되는 각 특산품이 현물로 조달되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곡물과 소금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회안과 양주에 거점을 둔 휘주상인들은 특히 소금거래를 장악했던 이들로 명 청 두 왕조를 대신해 소금을 운반하는 사업을 해왔습니다.

이 책이 커버하는 15-18세기는 서양에서는 ‘대항해 시대’를 알려진 시기와 겹치는데, 중국의 경우 명초기 영락제(永樂帝)가 수도를 남경(南京)에서 북경(北京)으로 천도한 이후 수당 시대 이미 건설해놓은 대운하를 이용하기 위하여 그리고 강남지역의 풍부한 물산을 수도 북경으로 운송하기 위해 대운하를 준설하고 확장했습니다. 그 결과 이 운하는 강남의 항주(杭州)에서 시작하여 북경까지 중국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중간에 중국의 큰 강인 양자강과 황하를 가로질러 건너갑니다.

조세를 징수하기 위해 거대한 물길을 뚫은거죠.

명나라 중기때인 15세기, 명은 동쪽해안에 나타난 왜구로 인해 해상교역을 원활히 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한 영향으로 항행을 금지하는 해금(海禁)정책을 펼쳐 원나라 당시만 해도 바다를 통해 각종 세곡을 받았던 해운정책을 폐기하고 모든 조세물품은 전적으로 대운하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바닷길을 통해 강남의 세곡과 물산들이 이동하지 못하게 되자 대운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고 왕조의 관려들이나 대운하의 수운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상인들 역시 대운하의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명과 청 조정은 특히 양주와 회안 지역에서 3가지 중요한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것은 조운( 즉 소금을 북경까지 운송하는 것), 하공( 운하 관리, 운하의 범람을 대비해 운하 준성과 제방을 쌓는 것) 그리고 염정( 국가의 전매품인 소금에 대한 통제)입니다.

북경이 북쪽에 치우쳐 대운하를 통해 올라온 곡식과 소금 등 먹거리에 대한 수급은 황제를 비롯한 지배층의 지대한 관심을 끄는 문제였고 이는 청나라 시기 강희제(康熙帝)와 건륭제(乾隆帝) 두 황제가 친히 대운하를 타고 남쪽에 내려오는 남순(南巡)을 행했다는 사실로 그 중요성이 입증됩니다. 두 청의 황제는 재위기간 중 각각 6차례나 대운하를 타고 강남지역 시찰을 했고, 특히 대운하의 중간에 해당하고 수해에 취약한 지역인 회양지역의 치수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농공상이 분명하던 근세시기 회안과 양주에 자리잡은 휘주상인들이 염업으로 사업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공공사업에 참여하고 운하와 관련된 고위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문사계층인 신사(紳士)층과 거의 동등한 사회적 위상을 가진 건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휘주출신 상인집안 중에서 과거 신사로서 문인계급이었던 자손이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자 객지로 나가 장사를 하는 건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중국적 특징으로 보입니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유교사회인 명나라였지만 조선처럼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추종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책에서 잠깐 언급이 나오지만 조선에서 금기시된 양명학(陽明學)의 영향을 받은 신사와 상인계층이 있어서 문사계층이 상업활동을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최근에 국제정치학자인 미국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교수의 중국에 대한 언급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두 전쟁에 직면해 있으면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는 실수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전략적 우위는 아시아에 있고 미국의 가장 큰 라이벌은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기 때문에 아시아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로 유명하신 이 분이 중국의 중요성을 이토록 강조하셨는데 최근의 한국의 중국 경시풍조는 임계점을 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국익을 생각하면 중국을 무시하는 무지한 행태를 그만두어야 하고 중국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굳이 병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 중 하나인 중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게 당연하고 국가전략을 짜는 고위관료라면 중국을 무시하는 행위 그 자체가 국익훼손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중국을 경제에서 배제하고자 하지만 이건 미국의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한 일이죠. 그 레토릭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