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 작가는 임진왜란을 전공하신 문헌학자이신데 몇년전부터 도시관련 답사기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튜브 삼프로티비에서 도시관련 방송을 몇번 본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 내신 임진왜란 관련서적과 도시답사 관련 서적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추후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책은 2024년 1월 출간된 작가의 최신간입니다. 임장(臨場)이라는 일본식 한자어를 이책 제목에서 처음 보았는데 그 의미가 ’현장에 임하다‘ 즉 답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 책은 한국의 중요 3대 메가시티와 소권역을 저자가 답사해 미래를 예측한 책입니다.

몇가지 이전 저작과 달라진 점을 우선 말하고자 합니다.

저자가 현재 알려진 정보와 답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한 것으로 과거 저작에서 보여준 역사적 기원에 대한 언급이나 과거에 대한 언급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두가지 예측이 가능한데 일단 좀더 대중적인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점과 역사적 인문지리적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의 공간에 대한 가치가 중점이 된 것이 책의 서술방향을 정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두번째 남한 전역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전작에 비해 피상적으로 보입니다. 시간적인 측면에서 일본측 자료를 통해 접근하던 식민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 지역의 발달초기 모습 등에 대한 설명이 많이 약화된 걸로 보입니다. 저지의 강점이 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남한 전체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서술의 밀도가 낮아지고 깊이가 없어졌습니다.

한국의 도시개발계획과 산업화 경제개발을 흔히 박정희때부터 보는데 그 뿌리가 일제시대부터 이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도시답사가라고 생각했는데 특유의 관점이 이 책에서 많이 없어진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역사학자이자 문헌학자인 저자의 시각이 사라진 건 아니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는 경향은 알 수 있습니다. 각 장에 달린 미주에 보면 수많은 언론사 기사가 나옵니다. 도시계획에 대한 일차문헌이나 좀더 전문적인 자료가 인용되면 논의가 좀더 정밀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자가 삼프로타비에 출연한 이후 두번째 나온 책인데 아무튼 저자 입장에선 대중독자를 위해 노력한 책으로 보입니다.

저자께서 삼프로 티비 출연 이후 처음 나온 책은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2022>인데 이 책은 어떤지 추후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저자의 도시답사기 중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은 서울선언 시리즈 첫번째 책입니다.

서울선언 ,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2018)

서울의 서민들의 살림집을 주로 살피면서 일제시대의 도시계획이 남긴 현대 서울의 흔적을 일제가 만든 경성지도와 일제시대와 현대 남한 군사정권의 연속성을 확인하면서 현재 서울에 남겨진 일제의 흔적을 찿아가는 여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관료들이 일제를 지운 체 조선의 지배층 건물들만을 중시한다는 관점을 보여준다는 것과 일제 당시 서울을 덥쳤던 ‘을축년 대홍수(1925)’ 에 대한 기록을 소개한 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강남을 개발한 영동개발계획이전 일제가 사대문 밖에 세운 이촌동과 휴양지로 만들었던 노량진 지역 그리고 공업지역으로 개발한 영등포 지역에 대한 설명도 매우 인상적으로 기억합니다. 잊고 있지만 사실상 최초의 서울근교의 신도시 개발이었습니다.

문헌학 연구와 함께 도시답사를 오래다녔던 저자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고 그 이후 나온 저자의 도시관련 책을 읽었던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메가시티에 대한 개념은 <대서울의 길,2021> 에서 처음 소개한 걸로 기억합니다. 서울이라는 지역이 단지 행정적 경계를 뛰어넘어 서울과 강원 일부까지 포함하는 생활권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이책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핵심입니다.

이책에서 정치인과 행정가들이 도시공간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과 다른 선으로 연결된 인접지역과의 교류여부를 중요하게 봅니다.

끝으로 이책의 구성을 살피면 본문 총 13장에 459쪽에 이르는 책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3대 메가시티 권력과. 지역별 소권역을 중심으로 설명되고 인구와 교통의 측면에서 해당도시와 도시의 미래를 예측합니다.

단순한 지역별 부동산 투자유망지 예측을 원한다면 다른 책을 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이 책은 저자의 답사와 언론의 보도 그리고 과거의 도시계획 등에 근거한 지극히 상식적인 예측을 할 뿐입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담백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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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미국인으로 러시아사를 공부한 저자가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게되는 과정을 미국과 소련의 패권다툼과정으로 설명한 책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특히 아시아 태평양 전쟁( Asia Pacific War)의 종전과정을 연구한 국제정치사입니다.

본문이 보론포함 총 628쪽에 달하는 책으로 일본출신 러시아사 연구자답게 미국 일본 러시아의 일차사료를 인용해 논지를 전개합니다.

논지는 간단명료합니다.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한 이유는 통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발의 원자폭탄 때문이라는 것이 이제까지의 설명이었습니다. 연합국은 1945년 7월 열린 포츠담 회담( Potsdam Conference)에서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고, 원폭을 맞은 일본이 결국 무조건 항복하게 되었다는 설명이죠.

하지만 저자는 연합국이 포츠덤에서 요구한 무조건 항복을 천황의 통치권을 의미하는 국체(國體)를 수호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거부하고 조건부 항복을 요구했고 원폭을 맞은 이후에도 종전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소련의 극동전선 참전 ( 만주와 랴오뚱 반도 침공, 사할린과 쿠릴열도 침공 및 홋카이도 침공계획)이 일본이 무조건 항복에 계기( momentum)를 제공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제국주의 일본의 무조건 항복( unconditional surrender)는 조선의 식민지해방과 관련이 있기때문에 한국현대사에서도 끊임없이 논의되고 재해석되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논의 자체를 한반도에 좁혀서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독립은 분명 제2차세계대전 종전과 관련되어 발생했고 국제정치와 외교 전반에 걸친 맥락( context)를 이해하지 못하면 편협해지거나 반쪽짜리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의 항복에 앞서 유럽전선에서 나찌 독일이 먼저 항복을 했고,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등 열강은 이미 패전한 독일을 분할점령하고 통치하려 했다는 선례가 있었다는 걸 간과하면 안됩니다.

거기에다 소련은 결국 나찌 독일을 패전으로 이끈 독소전쟁를 이끌었고 그 유럽전장에서 싸웠던 적군 ( Red Army) 지휘관들이 만주와 일본을 공격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스탈린은 얄타에서 연합국이 약속한 다렌항의 실질적 점유를 위해 그리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뺐겼던 사할린을 되첯기 위해 1945년 8월 아시아전선에 참전합니다.

위의 세가지 선행조건( pre condition)때문에 소련은 미국과 일본을 분할점령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사할린과 쿠릴열도 점령 후 홋카이도에 진격하려 했습니다. 연합국이 유럽전선에서 독일을 분할점령한 선례가 있는데다가 독소전쟁에서 가장 큰 인명피해를 본 소련이어서 소련이 생각한 일본의 분할점령은 그 연장선에서 일관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소련군의 만주진격이 부담스러웠고 중국공산당과 협력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에 소련의 일본 분할점령구상을 거부하게됩니다.

조선의 해방이후 소련군이 현재 북한지역인 청진 등으로 미군보다 먼저 진주하게 되는 이유도 소련군의 만주침공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사항입니다. 미국과 38도선을 경계로 선을 분할점령하기로 합의한 후 소련은 관동군의 퇴로를 막기 위해서라도 북조선 점령이 불가피했던 겁니다.

그리고 미국은 소련이 조선의 남쪽으로 진격하지 않을까 매우 불안했습니다.

미국의 트루먼과 소련의 스탈린은 아시아전선에서의 종전을 둘러싸고 서로 각축을 벌였고, 미국은 독일에서와 달리 일본을 미국 홀로 단독점령하기를 바랬고 실제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일본이 미소 양국간 분할점령될 수 있었는데도 조선이 분할점령된 이유는 결국 미국 정책당국의 의지 때문인 것이었습니다.

독일의 분할점령과정은 다시 살펴봐야하겠지만 미국이 소련과 여러면에서 갈등을 빚지 않았나 추정합니다. 그리고 독소전쟁이후 소련이 동유럽 국가들을 영향권에 넣어 위성국가로 만든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미국은 일본을 점령하면서 전쟁책임이 있는 히로히토 천황의 지위를 유지시키고 그를 폐위시키지 않았습니다. 일본 본토탈환작전을 세우면서 일본군이 오키나와와 이오지마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드는 경험을 해서 천황의 폐위를 너무 큰 위험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해야한다는 미국의 여론이 비등했는데도 내려진 결정이었습니다.

1945년의 역사를 복기하는 건 불편하지만 2024년 현재의 한국과 북한의 기원이기때문에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국일본의 내각과 관료제가 얼마나 더 유유부단하고 종전을 미루었던 경과를 보면서 이미 일본이라는 나라의 비효율성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원폭을 맞고도 천황의 통치권을 부르짖고, 법률의 합법성을 따지는 전근대적 충성과 조직의 경직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합리적으로 보여도 국민의 목숨을 하찮게 여긴다는 점에서 매우 야만적입니다.

옥쇄(玉碎)를 각오하고 무모하게 전쟁을 계속하려던 군국주의 일본 육군을 내각은 전혀 통제하지 못했고 관료제의 기제하에 결정을 미루던 내각은 결국 히로히토 천황에게 종전의 결단을 요청합니다.

무모함과 비효율은 현재 일본 조직을 대표하는 특징이라고 보고 있고 이 책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체론으로 설명되는 일본의 천황제에 대해 언급하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의 패전 이전의 천황제는 신정일치 정치제도로 전혀 근대적인 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원시적이고 고루합니다( archaic). 1945년 9월 패전 이전까지일본인들은 천황을 현인신(現人神), 즉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으로 여겼습니다. 일본의 전후는 신이었던 천황이 인간이 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서구의 어느국가도 전근대시기 왕이 신의 은총을 받고 신권을 행사한다고 생각했지 왕을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낡은 개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시대 이런 국가의 체계를 만든게 조선초대통감이자 일본 초대총리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입니다. 애초 근대적 민주주의와 관계가 없는 절대왕권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봉건적인 제후국들의 느슨한 연합체였던 에도막부가 명실상부한 신정일치 철대왕조국가가 되도록 개조한 정치인일 뿐입니다.

따라서 패전이전의 천황제 즉 메이지헌법하의 천황제로 회귀를 주장하는 전범의 후손 출신 일본의 국우정치가들의 국가 인식방식도 지극히 전근대적이고 고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서구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일본의 신정잂치정치체제눈 중동의 강국 이란의 신정일치정치체제와 매우 유사합니다. 따라서 일본의 정치체제가 근대적이고 서구적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본 의회에 아직도 메이지유신 당시의 정치 지도자의 자제들이 대를 이어 정치를 거의 세습적으로 하고 있고 상당수 전범의 후손들이 정치를 대대로 하고 있는 걸 보면 껍데기만 민주주의일뿐 사회 자체가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2006년 미국에서 영어판으로 발표되고 이후 일본에서 일어판으로 새로 쓰여졌습니다.

Hasegawa Tsuyoshi, Racing the Enemy (Harvard University Press,2006)

또 한가지, 이책은 2023년 출간된 이화여대 정병준 교수님의 신간 <1945년 해방직후사>의 참고문헌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의 국제정치적 배경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책입니다.

정병준, 1945년 해방직후사 ( 돌배게,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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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출간된지 20여년이 지난 책을 읽은 것을 자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책을 처음 접한 건 이책을 기반으로 영화 ‘Adaptation (2003)‘를 먼저 보고 원작이 어떤지 궁금해서 책을 구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Movie Tie-in 표지의 책을 구입했었지만 서재에 처박혀 존재를 모른 체 시간이 흘렀습니다.

난초(Orchid)라는 식물자체도 미지의 세계이고( 정원이나 조경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한사람으로 말이죠), 책의 배경이 되는 미국 플로리다의 늪지Florida Swamp)도 생경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우선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존 라루쉬( John Laroche)라는 주인공이 플로리다의 늪지에 불법으로 들어가 야생난초를 불법채취해서 재판에 넘겨지고 그 이야기를 추적하는 것이 이야기의 큰 줄기입니다.

주인공을 비롯해서 난초에 미친 여러 사람들이 책에 나옵니다. 대부분 난초를 기르는 이들이지만 난초애호가 중에서도 가격과 상관없이 원하는 난초를 구하려는 이들이 보이고 과거에도 자신의 저택에 온실을 꾸미고 난초를 수집하던 귀족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이기에 집착(obsession)이라는 말이 선택되었겠죠.

하지만 여기에 플로리다에서 언제부터 난초를 재배해 왔는지, 플로리다 늪지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인디언 (Seminoles)의 이주사, 그리고 플로리다 법원이 이들 인디언의 권리와 백인 정착자들의 권리를 늪지 자연환경과 관련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흥미로운 관점들을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난초라는 관상용 식물을 중심으로 17세기 이후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이 어떻게 야생난초를 채취해 관상용 재배를 시작했는지 주로 영국의 경우를 들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난초의 새로운 종이 발견되면 영국에 학명을 등록한다고 합니다.

이책은 본문 282쪽의 작은 책이지만 난초를 중심으로 한 식물학(Botany)적인 내용이 들어가고 앞서 언급한 야생난 수집과 재배에 대한 기록이 나오며 미국에서도 외진 곳 중 하나인 플로리다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어찌보면 지역색이 무척 강한 마이너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닌 것이 쉽게 읽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말미에 저자가 20여년이 지난 후 쓴 후기가 있는데 조자 역시 이 책이 좋은 평가를 받고 헐리우드에서 영화로까지 만들어질 줄 생각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저자 후기는 논픽션 작가가 어떻게 우연히 소재를 발견하고 몇년동안 이야기를 추적하고 책으로 펴내는지 쉽고 압축적으로 설명해주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만약 책과 영화 중 고르라면 우선 영화를 먼저 보실 것을 권합니다. 메릴 스트립과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한 영화이고 난초의 아름다움을 화면에서 구현한 꽤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다만 내용 자체는 이 책과는 상이하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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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3-04 0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네 작은 도서관으로 달려가야 겠어요. 난 영화보다는 오히려 책파이니까요.ㅎㅎ
 

이화여대에서 한국현대사를 연구하시는 정병준 교수님의 최신작입니다.

2023년 12월 출간된 책이고 이책에 대해서는 역사학자 심용환 선생님의 방송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본문 425쪽으로 전체 4장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언론에는 ‘아무도 아닌 자‘인 미국인들이 미군정 치하에서 어떻게 한국의 정치과정에 개입했는지를 최초 발굴했다고 소개되었고, 실제 1945년 9월 미군의 남한 진주이후 통역과 문고리권력의 등장에 대해 이 책 2장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책의 내용 중 1장의 미군 진주 전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총독부의 공작에 대한 내용은 전에 소개해드린 다른 책에서도 상당부분 내용이 겹칩니다. 즉 일제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한 이후 권력의 진공 상태에서 유일하게 정권인수를 준비하던 리더가 여운형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패망이후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습격할까봐 두려워 치안대책을 여운형과 논의하려 했습니다. 이 당시 친일세력이던 한민당과 우파는 패전이후 친일행적에 대한 처단이 두려워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해방 후 첫 26일동안의 행적을 그린 르포로 한겨레 길윤형 기자가 아래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길윤형 지음, 26일 동안의 광복 (서해문집,2020)

이 책은 8월 15일 해방이후 미군이 진주하기 직전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고 사실상 한국이 일제 패망이후 실질적인 해방을 만끽했던 짧은 26일간의 이야기입니다.

1945년 9월 미군정이 시작되고 야전군인 출신으로 행정과 정치경력이 전무한 하지 중장 (General Hodge)가 미군정을 위해 남한 땅에 들어옵니다.

이미 카이로회담, 테헤란 회담 그리고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은 연합군( 미 영 중 소)측과 패전국에 대한 전후처리를 합의한 바 있고, 그 원칙은 어느 특정세력에게 권력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한국의 경우 신탁통치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한에 진주한 미24군단장 하지는 미국 국무부 전쟁부 및 도쿄에 주재하는 맥아더 장군의 명령에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한국의 전후 정치와 정부에 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미국이 독일과 일본의 전후처리에 골몰해 한국에 대한 훈령을 내리지 않고 방치하면서 이런 월권행위를 일으킨 겁니다.

통념과 달리 미군정의 하지장군은 미국의 전후처리 방침인 한국의 신탁통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과거 친일전력이 있는 한민당 세력과 김구의 중경임시정부 세력을 간판으로 활용하여 과도정부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현재 국우진영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이승만은 귀국조차 하지 않던 시점이었습니다.

통념과는 다르게 1945년 후반기까지 이승만은 조선에서도 미국에서도 모두 잊힌 인물이었고, 미국조야와 사이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승만을 과도정부 수반으로 세우려고 했던 건 하지장군의 독단적 결정에 불과한 것이죠.

미군정은 조선총독부로부터 사실상 행정권을 회수하여 서울과 지방에서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던 건준과 인민위원회를 ‘공산주의’로 몰아 사실상 배제한체 일제시대 친일을 했던 한민당 세력과 구한말부터 한국에서 교육사업을 했던 개신교 선교사 세력을 우대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보수주의적 과도정부를 독자적으로 수립하고자 한 겁니다.

일제시대 미국에 유학할 정도면 조선총독부와 관계가 원만했을 것이고 또한 집안의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미군정 초기 고위직을 차지했던 대부분 인사들은 미션스쿨( 연희전문, 숭실전문)출신에 미국 유학파로 영어에 능통한 이들이었습니다. 하지장군의 전담통역이던 이묘묵(李卯默)은 연희전문 출신 미국 유학파로 일제말기 유명한 친일파였습니다.

하지만 미국 일리노이 출신 야전군인인 하지는 그의
이력따위는 관심없었고 덕분에 이묘묵은 통역이자 문고리 권력으로 일제시대 이후에도 권력을 누렸습니다.

이묘묵을 포함한 초기 미군정 고위직들은 대체로 미션스쿨출신의 미국 유학파였고 지역적으로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서북지역( 평안도) 출신으로 이들은 반공주의로 무장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책을 보면서 인지하게 된 사실은 현재 기득권의 일부가 된 보수 기독교 세력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반공주의의 산실이 된 영락교회도 신의주 출신 한경직 목사가 미군정의 후원으로 세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1945년 이후 서북출신 보수 기독교의 원류를 찿아보는 건 정치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로 보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아무것도 아닌 자’로 영향력을 행사한 윌리엄스가 일제하 조선에 거주했던 기독교 선교사 출신 자손이라면 하지장군의 정치고문이던 버치는 미군 하급장교이지만 해방정국 막후에서 활약한 인물입니다.

버치가 남긴 문서에 대해서 이 책은 말미에 약간 언급하고 있지만 버치문서에 대해서도 별도의 책이 출판되어 있습니다.

박태균 지음, 버치문서와 해방정국 (역사비평사,2021)

영관급도 아닌 일개 위관급 미군장교가 해방이후 남한정국에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을 보면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끝으로 이 책의 단점을 하나 말하려고 합니다.

역사서가 대체로 사료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시기가 겹치는 경우 동일한 설명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좀 더 간명하게 설명되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느낀 건 미군정 시기가 전문 연구자 이외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체 보수세력들의 설명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대중에 유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장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고 이 책에서 언급했다시피 아직도 미군정에 대해서는 미스터리한 부분이 남은 불완전한 시기라는 점입니다. 친일세력이 일부러 당대의 역사를 왜곡시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시기는 좀 더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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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잘못 없다 - 신민재 건축가의 얇은 집 탐사
신민재 지음 / 집(도서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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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남아있는 작고 비정상적으로 잘린 필지에 들어선 얇은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건축가이신 신민재 작가가 서울의 이런 특이한 건축물을 답사하고 쓰신 연재물을 책으로 엮어내신 결과물입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건물이 들어설수 없을 것 같은 작은 필지( 대체로 삼각형모양으로 잘리거나 지나치게 얇고 좁게 남은 자투리 필지) 에 지어진 건축물을 보고 작가께서 그
건축물이 그 자리에 들어선 사연을 옛지도와 건축물 대장을 토대로 설명을 해주고 계십니다.

건축물이 들어설 공간의 자연지리적 환경과 경제적 입지가 건물 자체만큼 중요하지만 쉽게 중요성이 간과되곤 해서 설명이 생략되거나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는데 이 책은 건물을 둘러싼 여러 환경적 요인들을 설명해주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책에 소개된 이런 작은 필지들은 대체로 복개된 옛하천의 지형에 영향을 받았거나 옛시가지의 길이 새로 나거나 확장되면서 기존의 건물들이 헐리면서 생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이책에 소개된 건물들 자체의 특이한 외관에 일차적 관심이 쏠리지만 결국 그 건물의 입지와 필지에 대한 추적이 이어지면서 지난 시간동안 서울에서 일어난 도시계획과 개발의 역사를 되짚어보게 됩니다.

조선사대 이래 서울의 각 입지의 경관이 변해온 상황을 살펴보지 않고는 각각의 건물들이 왜 현재의 상태로 남아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건축에 대한 이야기의 상당수가 아파트, 재개발, 부동산 등 주택시장에 대한 담론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주거생활이나 공간 자체의 역사적 맥락, 그리고 한말이후 일제를 거쳐 이루어진 서울의 도시개발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답사지역을 중심으로 설명한 게 이 책의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 서울이라는 공간의 변화요인에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겠지만 경제적 요인만으로 공간변화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니다.

도시는 이전 시대의 흔적을 이 책에서 소개한 이런 좁고 기형적인 필지와 건물형태를 통해 남기고 있는 것이죠.

저자가 책이름을 ‘땅은 잘못없다’라고 지으신 건 그래서 이런 정상적이라고 볼수 없는 작고 좁은 팔지들의 입장을 대변한 센스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가 있었던 파트는 서울에 흐르던 작은 하천들이 복개되어있는 지역들을 소개한 ‘물길의 흔적’입니다.

현재 한강의 지류로 탄천이나 중랑천 그리고 얼마전 인공적으로 복원된 청계천 정도만 알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용산과 마포, 서대문 등에도 한강의 지류인 만초천과 후임천(용산) 그리고 홍제천과 세교천( 마포), 월곡천( 강북)주변과 복개후 달라진 도심의 이야기는 처음 접해본 이야기라 흥미로웠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적 동네에 있던 개울가가 복개되어 도로로 변하던 모습을 목격했던 터라 이 책에 보이는 여러 하천들이 도시개발을 이유로 모습을 감춘 이유는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아 알수가 없었다고 해야겠죠.

서울은 지난 40여년간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이 급격하게 변화해 과거의 흔적을 거의 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보통 사람들이 살던 일반적인 주거형태의 흔적을 찿기는 더 어렵습니다.

일제시대 지어졌던 적산가옥부터 1960-70년대 지어졌던 수많은 양옥집들이 대부분 없어지고 초기 서울개발 당시 지어졌던 자층 아파트들이 헐린 자리에 위압적인 20-30층 짜리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것도 경기침체( recession)과 고물가 시대를 맞아 과연 아파트만 주택으로 지어서 공급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증폭되는 상황입니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 그리고 아파트 살 사람도 없는데 건설사가 PF끼고 고분양가를 내걸고 후분양 장사를 하는지 맞냐는 겁니다.

초기 아파트는 서울에 인구가 폭증하고 주택문제가 심각했을 때 고육지책으로 나온 정책으로 압니다. 1970년대만 해도 대부분 가정에 아이들이 최소 2명에서 3명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자녀가 1명이거나 아이가 없는 딩크족도 많고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 1인 가족도 많습니다.

인구감소로 주택수요가 줄었는데 건설사가 예전 사업방식을 고수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개발시대 주택건설모델은 이제 시장에서 더이상 통용될 수가 없다고 보는데 답답합니다.

물론 이 책이 가정집에 국한된 건축물을 보는 건 아니었지만 상당수 주택가에서 도시개발이후 남은 자투리 땅에 지은 건물이라는 점이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시간의 흔적을 모두 밀어버리고 그저 새것만을 쫓아 크고 비싼 건물만 지으려는 풍토는 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물러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여러 도시의 건축물들에 대한 그리고 도시계획에 대한 다양한 책이 나왔으면 합니다. 너무 조선왕조에만 매몰되어 있는 건축문화유산에 대한 관리는 바뀌어야 합니다.

눈앞에 남아있는 우리 당대의 멀지않은 과거 ( 예를 들어 1980년대)의 건축물이 없으면 지금 세대들은 그 당시의 삶을 직접적으로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망한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건축물보다 일제가 이땅에 세운 건축물이 더 중요하고, 그보다 개발시기 한국의 건축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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