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언론이 파헤친 한국의 지식인 집단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왜 시장, 자본 그리고 서구편향적 일 수 밖에 없는지, 특히 서구 중에서도 왜 유독 더 친미적일 수 밖에 없는지를 경향신문의 기자들과 외부 필자들이 같이 집필했습니다.

외부집필자들 중에는 이번에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된 김상조 교수님도 있습니다.

지식인들이 왜 지식인들이 재벌 앞에서 ‘자기 검열 ‘을 하게되는지에 대한 글을 쓰셨더군요. 지식인들이 논문을 출판하면서 기업들이 스폰서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기업의 이익에 반하게 되는 결론을 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풍토는 공공의 자산이어야 할 지식이 스폰서인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면서 공공성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얼마전 인터넷 매체에서 읽은 단국대 서민 교수의 인터뷰에서의 그의 발언 내용이 생각나네요.

기자가 마지막으로 한 지식인에 대한 견해에 대해 그는 ‘지식인은 다른 이들이 No라고 말해도 혼자 꿋꿋이 Yes라고 말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자식을 자신의 출세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앞서 나가는 선구자로서 ‘등불‘의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책이 출간된 시기는 2008년으로 이명박 정부 초기입니다. 한국사회의 본격적인 퇴행이 시작되었던 시기로 사회 전반에서 새로 들어선 보수정권의 이해 못할 4대강 사업수행과 ‘싸다‘는 이유만으로 품질과 위생상태를 알 수없는, 심지어 사람이 먹어도 괜찮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개방 합니다.

권력자의 불통과 오만 그리고 일방통행이 지속되는데도 지식인들은 침묵하거나 권력의 입맛에 맞는 이론을 제공했습니다.

지금도 지탄받고 있는 많은 토목학자들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지지했습니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는 단순한 논리를 궤변으로 덮어버리고 말았죠.
결과는 강물 생태계의 변화와 ‘녹조라테‘로 대변되는 강물의 부영양화입니다.

이런상황을 지켜보게 되니 ‘지식인의 죽음‘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더군요.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이 한국에서는 희귀하기까지 한 ‘‘지식 사회학‘ 책이라는 점입니다.
더구나 한국의 지식인을 탐구한 책은 극히 접하기 어렵습니다. 이 역시도 한국의 지식인 사회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식인과 관련해 근래 읽고 싶은 책이 한권 출간되었습니다.
지식인과 미국과의 관계를 조명한 책입니다.

서점에서 보았지만 기회가 되면 한번 읽고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한국은 이상할 정도로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친미‘적인 성향이 있고 자신의 사회에 맞는 독자이론을 발전시키기보다 끊임없이 서구 특히 미국의 이론을 수입해왔습이다.

따라서 미국과 지식인의 관계가 과연 어떤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자기성찰로서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늦었지만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려고 합니다. 지식이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설명하거나 인간 자체에 대한 성찰을 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서도 단순히 지식의 흡수에민 그친다면 별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우리가 사는 현재와 연결해봐야 하고 그 책애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느냐를 고려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간‘을 읽는다는 의미이지요.


댓글(3)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qualia 2017-06-09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것들이 한국땅에서 실현되려면 무엇보다도 토론과 논쟁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어떤 분야든 토론과 논쟁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오히려 토론·논쟁을 금기시하죠. 한국인들은 논쟁꾼들을 백안시합니다. 미운털, 눈엣가시, 말썽꾼, 피곤한 불편러, 민폐꾼, 잘난척쟁이, 화기애애한 친목 모임의 안녕을 해치는 듣보잡스런 놈 따위 등등으로 낙인을 찍죠. 그러니 무슨 토론이 있고 무슨 논쟁이 있겠나요. 발전의 전제 조건이 토론과 논쟁인데요. 한국 지식계는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스럽습니다. 게으르기는 또 왜 그렇게 게으릅니까. 알라딘 새로나온책 코너를 검색해보면 일본인+중국인 책이 한국인 책보다 더 많이 번역·출간되고 있을 정도입니다(약간 과장이지만). 지식인들이 연구 안 하고 책 안 쓰고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인문학 위기라고 호들갑 떤 것은 걍 밥그릇 타령한 것이지요. 자기들이 논문 안 쓰고 책 안 쓰고 토론·논쟁 외면해서 위기가 온 것이지 누구 탓인가요. 입으로만 위기위기 떠벌리기만 했지 한 게 뭐 있나요? 여하튼 토론·논쟁 활성화하면 지식인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있고, 인문학 위기니 뭐니 하는 것도 사라지리라 봅니다. 쌈박질(토론·논쟁)처럼 재미난 게 없다고 봅니다. 대중들, 독자들의 관심도 끌고, 덩달아 관련 책들도 불티날 것이고, 출판계도 경기 살고, 이렇게 맞물리고 선순환돼서 전반적인 발전을 가져오리라 봅니다. 근데 논쟁거리가 뭐가 있을까요? 요즘 인공지능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데, 예컨대 강인공지능 실현 가능론자들과 볼가능론자들, 이렇게 편을 갈라 논쟁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근데 울나라 학자들은 뭔 놈의 사업에 골몰하는지 조용합니다. 물론 조용한 가운데 세상 눈치 안 보고 깊디 깊은 연구실에서 아주 심층적인 탐구에 매진하고 있을 몇몇 학자 또한 있겠습니다만...

[처음 댓글 올린 시각 : 2017-06-09 15:12]

Dennis Kim 2017-06-09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뿌리 깊은 순혈주의와 군대의 서열문화가 지식사회 전반에 만연해 자신과 다른 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못해서 논쟁과 토론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 아닌가 추정해 봅니다.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님에도 유독 그런 것들을 못참는 분들이 아직도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qualia 2017-06-09 19:48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순혈주의와 서열문화는 토론과 논쟁을 활성화함으로써 깨뜨려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토론과 논쟁 때 자기 오류가 드러나고 허점·약점이 까밝혀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어차피 누구나 오류를 저지르는 존재고 허점과 약점, 심지어 지독한 모순으로 뭉쳐진 존재라고 봅니다. 이런 사실은 자각한다면 겸손해질 수 있기 때문에 남으로부터 비판받거나 문제점을 지적당할 때 감정적 흥분을 조절할 수 있지요.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건 은연중 자신이 완벽하다고 잘못 믿는 빗나간 자존심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서 토론과 논쟁을 하자면 쌍방간에 약간의 감정적 부딪힘(부딪침)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해서 이런 소소한 감정적 충돌은 우리가 넉넉하게 받아넘길 줄 아는 여유로움과 포용성 또한 지닐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이런 좌충우돌의 과정을 거쳐야만 발전한다고 봅니다. 지식인이라고 해서 항상 고고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위치에 도달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모든 점에서 부족한 자신을 자각하고 지적 연습과 성찰로 그 부족함을 조금씩 극복해나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 지식인의 존재론적 지위이고 운명이라고 할 수 있죠. 해서 지식인은 끝없이 자신과의, 남과의, 외부 세계와의 토론과 논쟁으로써만 자신의 형상을 다듬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요컨대 토론과 논쟁 없는 지식인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