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얇지만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문헌학(日本文獻學), 전쟁사(戰爭史)와 일본근세문학(日本近世 文學)을 공부하신 서울대 김시덕 교수가 쓰신 책으로 ‘근세 일본인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임진왜란을 바라본 책입니다.

근세라고 하는 시간적 배경과 당시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당시 쇼군(將軍) 및 다이묘(大名) 가문이 주군을 현양( 顯揚)하기 위해 쓴 여러 문헌들을 통해 에도시대 일본인들이 본 임진왜란을 다룹니다.

따라서 공식적인 사료와 역사서를 기초자료로 임진왜란의 역사를 서술하는 ‘임진왜란의 역사’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앞서 언급한 문헌들은 임진왜란에 참던했던 다이묘들의 가문에서 주군을 드높이기 위해 쓰여진 문헌들이기 때문에 주군의 업적에 대한 과장과 왜곡도 같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헌들은 전통적 의미의 사료는 아니지만 에도막부 당시의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했는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살펴보는 의의를 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간 한국은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를 이 전쟁의 국제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주로 한국의 사료,즉 선조실록과 징비록 그리고 난중일기 등을 기초자료로 바라보는 입장을 고수해 왔고 1970년대는 당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적 사실보다 ‘이순신 장군의 신격화’에 임진왜란사를 이용해온 ‘흑역사’가 있었습니다.

최근에 임진왜란에 대한 여러 책을 읽기 전까지 조선이 얼마나 전쟁에 무방비 상태로 있었는지 그리고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있었던 청일/러일전쟁과 유사한 점이 너무 많아 놀랐습니다.

즉 임진왜란이 조선 땅에서 일어났음에도 일본은 조선보다 명나라와의 화의교섭을 했고 조선은 전쟁의 당사자로 화의교섭에 참가조차하지 못한 사실이 그것입니다. 류성룡이 이순신을 천거해 수군통제사로서 호남과 영남의 수로를 방어하지 못했다면 조선은 명의 속방(屬邦)에서 일본의 속방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조선정치의 근간을 이루었다는 조선 사대부들의 ‘무능력’과 기득권 안주는 그래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를 느낍니다.

조선이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면서 친명사대주의를 지켜온 결과 임진왜란이후 거의 한세대만에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맞았고 병자호란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 서인 (西人)당파는 이후 조선을 신하들의 국가로 표방하며 왕권에 도전하여 영조시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 죽게 만드는 임오화변 (壬午禍變)을 일으켰으며 정조이후 서인의 당파인 벽파(僻派)세력은 순조이후 대한제국기까지 외척(外戚)으로서 세도정치(勢道政治)를 통해 100년간 국정농단(國政壟斷)을 자행해 조선의 국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켜 끝내 일본에 국권이 넘어가는 국치 (國恥)에 이릅니다.

근본주의적 성리학은 조선의 역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제정치에 있어 왕권보다 신권이 강한 것은 조선에 있어 국력약화의 결정적 요인입니다.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담론으로 돌아와 아무튼 임진왜란을 일본의 입장에서 본 저작이 여지껏 없었다는 건 역사학계의 나태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분명 임진왜란과 근세 일본을 연구하면서 저자가 소개한 자료들을 전문 연구자들이 보았을텐데 어떻게 수십년간 일본의 입장에서 서술된 임진왜란 전쟁사는 집필될 수 없었는지 말입니다.

아직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서를 충분히 보지 못해 저 자신 속단하는 것일 수 있겠지만 전쟁의 상대방으로 알려진 일본입장의 저서가 집필되거나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은 일반 독자로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P.S.

이 책은 에도시대 일본인들이 그들이 임진왜란을 접할 수 있었던 각종 정벌기, 소설 등 당시 사회에서 통용가능한 책을 통해 어떻게 임진왜란을 이해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더루었습니다. 따라서 인용된 문헌들의 내용이 늘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는 않습니다. 인용된 문헌의 상당 부분이 에혼 (絵本), 즉 그림책이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사진이 없고 문맹율이 높던 근세 에도일본에서 일반인들이 임진왜란을 인식한 것은 전문역사서를 통하지 않았을 것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김시덕교수의 글을 처음 본 것은 ‘전란으로 읽은 조선 (글항아리, 2016) 중 ‘4장 임진왜란, 동부 유라시아 대륙 플레이어들의 각축전_열국지적 질서와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한반도’라는 글을 읽은 것이 처음이었고 이후 이분이 쓴 임진왜란에 대한 책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반도가 ‘지정학적 요충지’로 동아시아 열강들 간에 최초로 인식되었던 전쟁이었다는 임진왜란의 정치적 의의가 이 글에서 소개되었습니다.

기타지마 만지 교수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경인문화사, 2008)’은 임진왜란을 조선침략으로 인식한 일본 역사학자의 책으로 일본입장에서 일반적인 시각이 아니고 상당히 한국에 우호적 입장에서 서술된 역사서입니다. 하지만 에도시대까지 일본은 자신들의 조선정벌의 원인을 조선에 돌리고 있었고 아마도 근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런 입장을 고수해왔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실제로 그런지는 추후 확인해 보면 알 수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역사저술가 이덕일씨의 ‘난세의 혁신리더 유성룡 (역사의 아침,2012)’은 한마디로 유성룡 선생 분투기입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만났음에도 도움이 전혀 되지 못한 국왕 선조와 사대부들을 대신해 국정을 책임진 영의정 유성룡이 홀로 명에 원군을 요청하는 역할을 하면서 명나라 원군들을 위한 군량마련에 거의 홀로 분투하다시피 합니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조선이 임진왜란 당시 사실상 망한 국가였다고 인식하는 것도 제대로 국정을 처리하지 못하고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전란을 맞을 수 밖에 없었던 조선조정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책은 임진왜란 역사서술의 전형을 보여주는 책으로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 및 징비록 등 임진왜란을 대표하는 사료들을 기반으로 서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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