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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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너무 예의발랐고, 너무 경직됐고, 너무 소심했고, 까치발을 든 채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고 속삭이고 부탁하고 동의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침묵에 가까운, 사교적인 배려라는 담요가 그들을 결속하는 만큼이나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리고 그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었다. " (p174)

 

 

 

스물두 살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결혼 첫날밤에 파경에 이른다. 1960년대 초반이었던 그들이 결혼할 당시는 성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했고, 둘 다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 연애 기간부터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던 에드워드는 어떻게 하면 민망하지 않게, 성공적으로 해낼 것인가에 만 몰두해 있었고, 플로렌스에겐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 듯했다. 바로 성행위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혐오의 감정인데, 이언 매큐언「체실 비치에서」를 통해 그들이 소통할 수 없었던 이 민감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묘사해 나간다.

 

 

 

"그들은 어떻게 만났고, 왜 이다지도 소심하고 순진했을까?" (p48)

 

 

 

정신착란을 겪는 어머니를 보호하느라 부조리한 판타지 속에서 자란 에드워드는 자존심 강하고, 자기방어적인 청년이다. 그는 결혼과 함께 자신의 인생이 어서 시작되기를 바라며 그저 앞으로 내달리고 싶어 한다. 그런가 하면 플로렌스에겐 아버지와 관련하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치부해버린 어떤 기억들이 있다. 에드워드를 사랑하며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스스로 유폐시켜 놓았던 어린 시절의 수치스러운 기억은 그와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성행위에 대한 혐오와 공포의 감정이 되어 그녀를 위협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열망 외엔 무엇이든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플로렌스는 사랑에 따른 의무감을 앞세워 자신의 두려움을 회피하고 있었다. 에드워드의 서툰 열망과 플로렌스의 공포는 그들의 첫날밤이란 긴장감 속에서 급기야 폭발하고만 것이다.

 

 

 

"그녀는 늘 서툰 대답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간단한 심리적 반응, 너무나 평범한 것이라서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감각을 통해 사람과 사건, 그리고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즉시 인지하는 능력이 자신에겐 결핍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데 이렇게나 오래 걸렸던 것이다. " (p77)

 

 

 

이 소설의 뛰어난 점은 두 사람의 첫날밤에 일어난 일은 생략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반면, 간간이 반추하는 그들의 성장과정은 적당한 생략을 통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공백으로 남겨둔 것들은, 특히 플로렌스가 애써 덮어두었던 기억은 글로 설명하는 것 이상의 암시를 주어 그녀의 혐오와 수치심을 헤아리게 한다. 스스로 정확히 바라보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미 문제가 아닐 테지만, 무거운 침묵으로 남겨진 것은 한 사람의 평생을 지배하기 마련이다. 쉽게 말할 수 없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대상이 그녀의 아버지였기에, 스스로의 기억을 더더욱 깊고 어두운 곳에 봉인해 두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유폐시켜 놓았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녀에겐 시간이 더 필요했다. " (p167)

 

 

 

그들이 머물던 호텔의 해안가엔 수 천 년 동안의 폭풍으로, 마치 체로 쳐서 골라낸 듯한 조약돌이 십팔 마일에 걸쳐 크기별로 깔려 있었다. 동쪽으로 갈수록 큰 돌들이 놓여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지역 어부들은 한밤중에 육지로 올라와도 조약돌의 크기를 더듬어 그들의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이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사실 진작부터 이 해변에 나가고 싶었다. 같이 걸으며 돌들을 주워모아 그 크기를 비교해보고, 폭풍이 정말로 해변에 질서를 가져다주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나 순진하고 소심한 그들은 각자의 불안에 휩싸인 채, 비공식적인 관습에 매여 남편과 아내로서의 의식에 집중해야 했다.

 

 

 

달그락 거리는 조약돌을 밟으며 발끝에서 전해지는 느낌에 몰두할 수 있었다면 플로렌스는 자신의 두려움을 털어놓았을지도 모른다. 에드워드 역시 그녀의 몸짓과 반응을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지 않고 좀 더 기다려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이 해변에 나온 건 두 사람의 사이를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늦은 때였지만 플로렌스는 어떤 면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 지나친 예의로 경직된 그들의 관계에서 벗어나 비록 그를 향한 진심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오랜 분노를 배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전설 속의 어부들처럼 폭풍이 만들어 놓은 해변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소통하지 못 했던 그와 그녀의 차이를 말이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 (p197)

 

 

 

좋은 방법을 찾지 못 했을 땐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것보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더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 에드워드가 깨달은 것도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자신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스물두 살의 나이엔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기도 하다. 소설의 결말은 뒤늦게 깨달은 에드워드의 회한으로 마무리되지만 사실 나는 그들의 결말이 나쁘지 않았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플로렌스는 일상생활에선 서툴렀지만 음악과 관계된 일이라면 언제나 자신 있고 유연했다. 그들이 헤어진 이후로 급변하는 사회의 분위기를 타고 개방적으로 살아가던 에드워드는 그가 결심했던 일에서 멀어졌지만, 플로렌스는 그녀의 꿈을 이루었다.

 

 

 

"평론가는 리뷰 끝부분에 사중주단의 리더인 제1바이올린 주자를 부각시켰다. (...) 이렇게 표현해도 좋다면, 그녀는 비단 모차르트나 음악뿐만이 아니라 마치 삶 자체와 사랑에 빠진 여인 같았다. " (p193)

 

 

 

어차피 인생이란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다. 상처를 주기만 하는 사람도, 받기만 하는 사람도 없으며, 어떤 인생이든 이야기의 끝에는 회한이 남기 마련이다. 자신의 두려움은 그 존재 자체를 회피하려 할 때는 문제가 되지만 스스로 바라볼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플로렌스는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기 시작했고, 이후의 선택은 에드워드와 상관없이 그녀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결혼이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가장 큰 행복을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혐오와 공포를 극복해나가는 플로렌스의 이야기보단 그녀 자신의 꿈을 이룬 결말이 더 좋았다.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서툰 사랑은 갑자기 성숙해지기 어렵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건 성숙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낳는다. 타인과의 소통 이전에 자기 자신과의 소통이 먼저이고,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개인이 많아질 때 더불어 행복한 우리들도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의 미덕은 에드워드와 플로렌스가 서로를 '사랑'으로 기억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서로 함께 했더라면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언 매큐언의 글이 매력적인 건, 어느 한 쪽으로 둥글리지 않는 이런 예리함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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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7 0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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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7 16: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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