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의 장편소설 「등대로」를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해서 읽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소설들이 그렇듯, 다 읽고 난 후에도 읽었다는 포만감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소설은 무언가 꽉 차오르는 듯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 쉽게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 잘 아는 감정의 파도들이 수시로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인생이라는 화폭 위에 사람과 삶, 예술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 넣은 듯한 이 소설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프루스트의 소설이 시각적인 감각을 집중적으로 자극하며 화사하게 만개한 꽃과도 같이 의식을 개방하게 만든다면 울프의 소설은 심연 속으로 깊이 잠기는 기분이었다. 마치 걸어간 자리들마다 깊은 웅덩이가 생기는, 인생이라는 습기 많은 길을 점점 더 묵직해지는 발걸음으로 내딛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끔 자신이 사람들의 온갖 감정으로 가득 적셔진 해면처럼 느껴졌다. " (p46)

 

 

 

이것이야말로 내가 너무 잘 아는 감정이 아니던가.. 기질적으로 예민한 아이였고,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감정 배출소가 되어왔던 나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자연스레 타인의 감정을 잘 듣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듣는다는 건 공감하고, 수용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원치 않아도 그 사람의 앙금을 고스란히 흡수해야만 하는 심리적인 노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까운 관계일수록 나의 감정과 분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 노동의 강도는 점점 더 강해진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라고 온몸으로 거부해 보지만 말하고 싶은 사람의 욕망 역시 점점 더 강렬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마치 말라버린 우물에 돌멩이라도 던져 넣듯이 나에게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야기를 마친 후에는 한결같이 만족해하며 돌아갔다. (...) 그 일은 정말이지 힘만 많이 들고 얻는 건 적은 작업이었다. " - 「1973년의 핀볼」,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들 중엔 이런 심리적인 노동에 소모되었던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에도 그의 성정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하루키 역시 듣는 사람이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타인의 감정을 듣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정작 자신의 감정은 상실해 버렸거나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는 것 말이다. 하루키의 소설에선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 상실감의 근원을, 심연의 우물을 찾아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하루키의 작법은 비교적 건조한 편이다. 번잡한 앙금들은 가라앉히고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무심한 듯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하루키의 문장을 걷는 것에 비유하자면 뽀송뽀송하게 마른 길을 산책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나의 무게나 타인의 무게를 거두고 부유하는 느낌, 그래서 나는 하루키의 글로 편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울프의 「등대로」가 불편했던 이유는 나의 무게에 타인의 무게까지 겹쳐진 느낌 때문이었다. 어떤 이들에겐 울프의 자전적 이야길 체험하는 수준에서 가볍게 읽어갈 수 있는 소설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들의 인간관계에, 생각하는 방식에, 감정의 무게에 쉽게 휩쓸릴 수 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 숨 막히는 느낌이 힘겨워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책은 읽히는 시기가 따로 있는 것 같다. 30대의 나는 '싯다르타'와 같은 글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고, 또 그때의 내겐 그런 글들이 꼭 필요했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때였고, 특정 분야의 전문서적이나 논문들을 읽어야 했던 30대의 나는 문학과는 잠시 결별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무척 힘들었기에 요가 수련과 더불어 명상이나 마음공부에 관한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읽는 '싯다르타'는 그저 좋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런 종류의 책으로 해소할 수 없다면 다시 「등대로」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물론 봄날의 햇살과 꽃망울을 돋우는 자연의 신비를 책보다 더 열심히 읽었지만 말이다. (이젠 새로운 계절이 주는 가르침이 여느 책 못지않다는 생각이다..)

 

 

 

"창문들은 열고 문들은 닫아야 하는데 ― 그 단순한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 (p40)

 

 

 

「등대로」는 울프 스스로 '소설' 대신 '엘레지'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부모님의 섬세한 초상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며, '내 영혼에 열린 어떤 열매에도 이제 손이 닿을 것 같다'고 했을 만큼 부모로부터의 고착에서 벗어나 자신에게로 가까이 다가섰던 작품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삶과 예술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어서 의식의 흐름을 나열하는 모든 문장들이 지극히 섬세하며 사색적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울프의 어머니로 짐작되는 램지 부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그들의 순간들을 마치 예술 작품처럼 한 곳에 모으고 정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창문은 열고 문은 닫아야 한다는', 램지 부인이 늘 되뇌는 저 말은 무심한 세월이 그런 순간들을 침범하고 흐트러 놓지 못하게끔 막으려는 주술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녀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적셔진 해면 같았던 램지 부인이 소진되고 기진하여 세상을 떠나자 거침없는 세월의 바람이 문틈으로 침범하고 만다.

 

 

 

"그녀가 그렇게 뒤뚱거리며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하는 모습은 삶이 그저 기나긴 슬픔이요 고생임을,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눕는 삶, 물건들을 꺼내고 치우고 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 주는 듯했다. 일흔이 다 되도록 그녀가 아는 세상은 수월하지도 아늑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지쳐서 굽어졌다. (...) 그러나 뒤뚱대며 다시 일어나 자신을 추스르고는 여전히 곁눈질로, 자신의 얼굴, 자신의 슬픔조차 비스듬히 건너다보는 눈길로, 거울 앞에 서서 입을 헤 벌린 채 망연히 미소 지었다. " (p175) 

 

 

 

이 소설은 생각할만한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문장들을 옮겨와 감상을 적고 싶어졌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는 소설의 매력이란 문장 속을 기꺼이 헤매고, 음미하게 만드는데 있는 것 같다. 특히 이 소설의 2부는 추상적인 묘사만으로 10년이란 세월의 경과를 보여주는데 읽을 때마다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것 같았다.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 주던 램지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빈집이 세월에 스러지는 과정은 우리의 내면이 황폐화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내는 힘이 있었으니, 간간이 찾아와 빈집을 청소하는 맥냅 부인의 움직임이었다. 풍랑에 몸을 맡기는 배처럼 뒤뚱거리며, 세상의 냉소와 분노를 무시하듯 흘금거리며, 세월의 웅덩이와 망각으로부터 부패와 부식을 막아내었고, 삶의 위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죽었노라, 제각기 홀로 / 그러나 나는 더 거친 바다 밑에서 / 그보다 더 깊은 심연에 잠기었노라 " - 윌리엄 쿠퍼의 시, 「익사자」의 마지막 구절

 

 

 

램지 부인이 살아 있던 시절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등대의 불빛이 아름다웠다. 문을 닫아 세월이 흩트리지 못하게 막아주던, 혼돈의 와중에 형태와 의미를 부여해주던 동안엔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나자 드러난 등대의 실체는 그저 헐벗은 바위 위의 삭막한 탑일뿐이었다. 그런 등대의 실체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끊임없이 아내에게 동정을 구함으로 위안을 얻으려 했던 램지 씨는 결국 그녀를 소진시키고 기진하게 만드는 감정의 폭군이었지만 인간의 삶이나 지식을 대면하는 시선만큼은 거짓 없이 초연했다. 그가 늘 읊조리던 쿠퍼의 시는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 소설에서 '등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역자 해설에선 '등대는 잡히지 않는 모든 것이자 세월이며 인생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라고 말한다. 내가 느끼는 등대는 사람과 삶과 추구하는 지향과 예술, 그 모든 것들을 관조하는 내면의 시선인 것만 같았다. 우리에게 보이는 정경이란, 어떤 것이든 거리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거리감이 있을 땐 무언가 있을 것만 같은, 상상과 동경으로 그 대상이 아름답게 포장되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폐허가 드러나며 공허함을 가져오는 것 같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서로를 아름답게 여기고 사랑하게 만드는 것 역시 바로 그 거리에 있는 것 같다. 램지 부인이 했던 역할은 사람들 사이에 아름다움과 친밀감을 선사해주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의 유지가 아니었을까.. 그 마법과 같은 균형을 위해 그녀 자신은 소모되고 탕진되었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이제 그 순간이, 새벽이 몸을 떨고 밤이 정지하는 주저의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깃털 하나만 저울에 내려앉아도 무게가 기울어 버리는, 그런 순간이. 깃털 하나에도, 집은 주저앉고 무너져서 어둠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칠 것이었다. " (p185)

 

 

 

그 균형이 깨어지고 나자 각자 자신에게 더 가까워지고, 상대에게 더 가까워진다. 폐허가 드러나고 불편해졌다. 하지만 가까움이란 연민을 만들어준다. 가까워지면 질수록 사람들 저마다는 홀로 외로이 죽어가는 존재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곁눈질로 흘금거리며 버티어 내든, 직시하고 파고들며 심연으로 빠져들든, 우리에겐 삶을 관조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깃털 하나의 무게를 알아차릴 수 있는, 나와 밖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말이다. 비록 깨달아지는 순간이 지극히 찰나적이며 짧게 반짝거린다 하더라도 나의 삶을 비추어주는 등대는 내 안에 있는 그 시선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멀리, 때로는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그 시선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게 다였다 ― 단순한 질문이지만, 해가 갈수록 죄어드는 것이었다. 위대한 계시는 결코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 대신에 사소한 일상의 기적들, 어둠 속에 뜻하지 않게 켜지는 성냥불처럼 반짝하는 순간이 있을 뿐이었다. " (p211)

 

 

 

예술이란 그런 반짝이는 순간들을 작품으로 남겨 영원히 고정시켜 놓은 결과물인 것 같다. 등대의 불빛은 어두운 가운데에서, 인생의 풍랑 속에서 그 가치가 드러난다. 위대한 작가들이 자신의 어둠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강렬한 빛은 우리의 삶을 여전히 비추어준다. 하지만 알아보기 힘든 희미한 불빛일지라도 나의 순간들 역시 빛으로 고정시켜 놓을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기록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이정표를 만들어 놓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나를 가장 적확하게 위로해주었던 것은, 나이면서도 동시에 나를 버릴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그런 찰나들을 기록해 두었던 나의 글들이었다. 에둘러 표현해도, 많은 생략이 있었어도 나 스스로는 그것들을 알아보며 그 순간들을 복기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터널에 들어섰을 때 예전의 지표를 확인하며 다시 빠져나올 수 있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쓰는 작가들도 있을 것이다. 울프는 「등대로」를 씀으로 그녀가 표현했던 대로 어머니에 대한 고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을까? 나에겐 벗어난 순간과 다시 되돌아가는 순간들이 여전히 반복 중일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거나 단련시켜 주는 것 역시 그런 반복에 있다. 제자리걸음 같으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완전함이란 없지만 매 순간 최선은 있다는 걸 믿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등대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약간은 자조적인 의문을 담은 눈길로, 왜냐하면 현실로 돌아올 때면 사물과의 관계가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그 한결같은 불빛을, 냉혹하고 사정없는, 그토록 그녀 자신이면서 또 자신이 아닌, 그토록 자신을 사로잡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혹되어 꼼짝할 수 없는 채로 불빛을 바라보면서, 마치 그것이 그 은빛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릿속에 밀봉되어 있는 어떤 것을 쓰다듬기나 하는 듯한, 그 어떤 것이 터지기만 하면 기쁨으로 넘쳐흐를 듯한 기분으로, 자신은 행복을, 절묘한 행복, 강렬한 행복을 맛보았었다고 생각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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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4-05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 전에 읽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물고기자리님 글 읽으니 살짝 떠오르는 것들이 있네요. 조만간 다시 붙잡아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물고기자리 2016-04-05 12:27   좋아요 0 | URL
저는 최근에 읽은 책들 중 가장 오래 읽은 책 같아요. 최대한 밀어내기도, 가까이 다가서기도 하면서요^^ 단번에 써 내려간 것 같은, 버릴 것 하나 없는 문장들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야나 님은 (잘 모르는 제가 언뜻 보기에도)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사랑하시고, 가꾸시는 분 같아서 참 보기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시이소오 2016-04-05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하고 고품격의 리뷰란 이런것이군요. `등대`와도 같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울프의 책이 저는 잘 안 읽혀요.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겠습니다^^

물고기자리 2016-04-05 18:28   좋아요 0 | URL
칭찬이 지나치게 후하신 것 같긴 하지만 봄꽃 향기처럼 감미롭긴 합니다 ㅎ

프루스트를 읽기 시작한 후론 만연체 글의 매력에 빠져든 것 같아요. 근데 이런 책들은 이젠 다 읽은 것 같다고 생각되는 시점이 어지간해선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무한 루프로 계속 읽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시이소오 님의 꼼꼼한 리뷰를 읽으면 책을 대신 읽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한 맘이 들어요ㅎ 리뷰도 어느 방향으로든 치우치지 않게 잘 쓰시고요^^

시이소오 2016-04-05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리뷰는 한쪽으로 치우쳐있고 편파적이고 편향적인데 너그럽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ㅋ ^^

물고기자리 2016-04-05 18:34   좋아요 1 | URL
헐! 아니에요^^ 만약 그렇다면 그 치우친 쪽을 제가 좋아하나 보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