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심장을 단 발레리나 1 - 깨어진 심장
아멜리아 카하니 지음, 진희경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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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이버 펑크에 대한 정의는 아니지만, 이 장르의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스티븐 킹의 전설적인 호러 소설 '그것It'에 나온다. 


...비벌리는 지저분한 통로처럼 생긴 자동차 사이를 사이버펑크 시대의 신부처럼 걸어가면서 새총으로 차량 유리를 깰 수 있을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파란색 치마주머니에 연습용 탄약으로 사용할 작은 쇠구슬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고물 자동차로 길을 낸 폐허. 그 사이를, 새총과 쇠구슬로 무장한 채 걸어가는 소녀. 


앤섬이 기계심장을 장착한 뒤, 베들렘을 질주하는 장면에서 자연스레 저 지문이 떠올랐다. 


13살 비벌리는 친구들과 함께 초자연적 괴물인 '페니와이즈'와 싸우면서, 훗날 말그대로 엽기적인 방식으로 괴물을 물리치지만 (섹스와 관련되어 있다.), 

앤섬은 보다 사이버 펑크의 사전적 정의에 충실하다. 



이 작품이 '배트맨'의 영향을 받았음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베들렘은 고담의 다른 버전이며, 악당들은 로보캅의 디트로이트에서 고담으로 원정와 마피아가 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한가지 아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기계심장을 단 발레리나의 히어로 ... 그러니까 끝판왕 히어로가 여자, 소녀란 점이다. 


그러니까 모든 요소들을 배트맨과 등가로 치환한다 해도, 앤섬 = 캣우먼, 혹은 앤섬 = 원더우먼 / 수퍼걸로 치환이 안된다. 


언젠가 혼자서 '딕테이커'라는 스토리를 구상한 적이 있다. 

몹시 19금 설정인데,   

세상과 격리되어 성장한 자매가 주인공이다.  

아이돌을 동경한 첫째가 세상 밖으로 나갔다가 실종되자, 쌍둥이 자매가 그녀를 찾아 나선다. 

주인공은 앤섬만큼 강인하며, 조커 저리가라 할 사이코패스다. 

그녀는 언니를 꽁꽁 숨긴 불온한 세력과 게릴라전을 벌이며, 추악한 남성 카르텔의 존재를 알게되는데, 

이 카르텔 멤버들을 겁주기 위해 그녀가 쓰는 방식은 희생자의 '딕dick'을 잘라 전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공포의 '딕테이커'라 부르기 시작한다. 




고담이나 베들렘처럼  21세기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극단까지 밀어 붙여 탄생한 괴물 도시의 성별은 분명 남성임에 틀림없다. 

이를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런 미래지향형 대도시에서 철저하게 찢어져 각개격파 당하는 중생들 중 최 하위 먹잇감은 여자 ... 아이이다. 


때문에 배트맨, 로빈, 슈퍼맨 등은 그토록 세상을 구하려 분투하면서도 

그토록 고통스러운가 보다. 


남자라는 원죄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 없다는 점. 

그들도 이 도시의 탄생에 일조했다는 죄의식. 


그렇기 때문에, 남자 히어로 끝판왕이 존재하는 세계관 안에서 여성 히어로의 존재는 다분히 기만적이다. 


오렌 이시를 보라... 

그녀의 잔혹한 애니메이션 성장사를 보고 나면, 그녀가 아무리 크레이지 88이란 극악한 집단을 통해 도쿄를 공포에 빠뜨려도, 식당에서 쿠니무라 준의 머리를 동강내 버려도, 

그닥 그녀에게 적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려니 ... 

블랙 맘바가 이기길 바랄지언정, 오렌 이시를 미친 ** 악당으로 증오하는 킬빌 팬은 별로 없다. 



사설이 길었는데, 


그런 면에서 앤섬은 (최상층 기득권이란 점만 빼면) 기만의 도시에서 악을 몰아내려 활약하는 어둠의 히어로로 더없이 적절하다. 


기계 심장의 빠른 심박수,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심장 ... 그 세팅 만으로 이렇게 초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요소가 덕후적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심장을 갈아끼우고 초인이 된다는 단순함은 이 작품의 장르적 성질을 결정하는데도, 액션 톤을 결정하는데도 효율적이다. 


서지, 포드, 자라 등 선하고 그녀의 능력에 못미치면서도 어떻게든 도움을 주는 조력자의 배치도 좋았음이다. 


그밖에 할 말은 많지만,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  4부작 영드 한 시즌 때리는 기분으로 1, 2부 완독할 수 있다는 점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최근 트렌드를 따라, 극장 개봉 말고 넷플릭스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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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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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18년 동안 은둔 생활을 이어온 유명 작가 존 로스스타인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의 미완성 원고가 사라진다.


그 해. 로스스타인을 살해하고 원고를 훔친 미치광이 문학 팬 모리스 벨라미는 술에 취해 여성을 성폭행하고 거의 죽게 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2009.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폭주로 아버지가 불구가 된 피트는 집 뒤의 황무지에 파묻혀 있던 커다란 트렁크를 발견한다. 트렁크에는 거액의 현금과 존 로스스타인의 원고 뭉치가 잔뜩 들어 있다.


2014. 오직 로스스타인의 유작(그 중에서도 러너 시리즈의 후속작)을 읽겠다는 일념 하나로 감옥 생활을 버틴 모리스 벨라미가 드디어 출소한다.

황무지에 묻어놓은 트렁크 속 원고가 통째로 사라진 걸 알게 된 모리스는 원고의 행방을 추적하며, 과거의 광기를 다시 일깨운다.



 

[파인더스 키퍼스미저리 팬들에게 큰 선물]이라는 언론사 서평은 독자들에게 이 작품의 윤곽을 순식간에 드러내 보여준다. 비록 은둔한 유명 작가와 광기에 사로잡힌 문학 팬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작품은 미저리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리시 이야기와 좀 더 닮아 있다.

 

리시 이야기에서 성공한 작가 스콧 랭던은 일종의 예지력, 영혼 소통 능력 등을 갖고 있는데, (그리고 영감의 원천인 부야문에 출입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죽고난 뒤 광적인 팬 짐 둘리가 아내 리시를 위험에 빠뜨릴 것을 예견한다.

이야기는 스콧 사후 2, 짐 둘리가 스콧의 유작을 내놓으라 협박하며 리시에게 전화하면서 시작된다. 짐 둘리는 소설가에 대한 애정과 증오 면에서 모리스 벨라미 뺨치는 인물이다. 짐은 리시에게 그녀의 젖꼭지를 따버릴 것이라 협박하는데, 불완전할 지언정 예언은 어느정도 실현된다.

한때 스티븐 킹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 리시 이야기라고 했다. 크게 성공했지만 정신적 결함이 많은 작가와 그를 한결같이 사랑해 주는 속 깊은 아내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의 애착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큰 애정을 가진 리시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묻혀버린 아쉬움 때문인지 스티븐 킹은 파인더스 키퍼스에서 이 설정을 다시 한번 써먹는다.

덕분에 독자들은 [미스터 메르세데스 파인더스 키퍼스 엔드 오브 와치]로 이어지는 잭 호지스 3부작 뿐 아니라 [미저리 리시 이야기 파인더스 키퍼스]로 이어지는 문학섬뜩스릴러 3부작도 갖게 되었다.

 

파인더스 키퍼스의 잔재미 중 하나는 스티븐 킹이 자신의 전작을 비트는 솜씨를 구경하는 것이다.

미저리와 리시이야기도 그렇지만, 모리스 벨라미의 감옥 스토리는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을 닮아 있다.

고약하게도, 희대의 미친놈인 모리스 벨라미가 작문 실력으로 감옥에서 독보적 지위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그는 쇼생크의 앤디 듀플레인과 닮아 있다. 심지어 가석방 기각이 이어지다가 행운의 출소를 하게 되는 에피소드로 장물아비 레드 캐릭터도 살짝 뒤섞는다.

존 로스스타인의 유작과 돈이 담긴 트렁크를 발견하는 행운의 주인공, 피트는 일견 우등생의 토드를 연상시킨다. 교외의 중산층 마을에서 뜻하지 않은 발견으로 탈선과 모험을 한다는 점에서 그렇지만, 다행히 피트는 문학과 가족을 사랑하는 사려깊은 소년일 뿐, 토드처럼 홀로코스트와 파시즘에 열광하는 살인마 꿈나무는 아니다.

부모에게서 적당히 고립된 아이들이 그들 만의 세계에서 온갖 곤경에 부딪쳐 가며 성장한다는 테마는 하트 인 아틀란티스 그것 등에서 스티븐 킹이 줄곧 다뤄온 단골 설정이다.

피트가 어린 주인공의 몫을 충실히 하는 까닭에 우리의 늙다리 탐정 잭 호지스는 이번 작품에서 조연의 역할에 머무른다. 덕분에 독자들은 제대로 미친 모리스 벨라미와 문학소년 피트의 정면 대결을 어떤 보조 장치 없이 즐길 수 있게 됐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신선한 플롯이나 의외성을 기대하긴 힘들다. 캐릭터와 상황 설정은 스티븐 킹 변주곡인데다, 주인공 피트의 가족을 미스터 메르세데스 사건의 희생자로 설정함으로써 전작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진다.

스티븐 킹은 그 대신, 필연성의 교차로 마법을 부린다.

트렁크를 발견한 뒤, 피트가 가족을 위해 벌이는 위험한 곡예는 비록 그는 모르고 하는 행동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리스 벨라미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행위다.

모리스 벨라미는 항상 간발의 차로 피트에 의해 그의 꿈을 유린당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과정을 세세히 목격해야만 하고, 그 때문에 모리스가 얼마나 미쳐 폭발할 지 미리 충분히 인지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시한 폭탄의 타이머는 점점 짧아지고,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서는 헐리우드 영화의 현란한 교차편집을 감상하는 수준이 된다.

스티븐 킹은 이제는 완숙의 수준을 넘어, 독자에게 어떤 잔인한 긴장감을 마구 집어던지고도 눈도 꿈쩍 안하기에 이르렀다.

체육관 지하실에서 모리스의 눈에 뻔히 보이는 장소에 원고 박스를 가져다 놓고, 피트 어머니가 총격을 당하는 장면에는 어떤 다른 묘사 없이 양배추 터지는 소리만 배치해 놓는다. 조마조마한 채 그저 파국이 아니기만 비는 몫은 100% 독자 몫이다.

 

60대의 스티븐 킹은 서스펜스 쪽으로는 일말의 자비를 잃었고, 농담 쪽으로는 표현의 한계를 확장한 듯하다.

스티븐 킹 월드에서 80세 노인이 세게 얻어 맞으면, 혈액 순환제를 충실히 챙겨 먹은 덕분에 퍼렇게 멍이 생기게 된다. 의견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점에서 똥구멍과 같다.

긴장한 인간의 얼굴은 5리터 짜리 봉투에 10리터 짜리 똥을 담으려는 놈처럼 보인다.

 

사실 스티븐 킹은 데뷔 무렵부터 언제나 무자비한 호러와 서스펜스의 제왕이었고, 어떤 세대와 성별의 캐릭터를 묘사하든 충실하게 그 인물의 심연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가 68세의 나이로 생애 최초의 탐정 추리 소설을 쓰면서도 여전히 큰 힘 안들이고 그럴 수 있다는 점은 경이로우면서 그저 감사할 뿐이다.

 

좋은 책은 언제나 독자를 다음 책으로 인도한다.

파인더스 키퍼스를 읽은 뒤, 책 속에 잠깐 인용된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를 집어들었다. 필립 로스가 존 로스스타인과 상당히 닮아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그리고 미국의 목가가 발표된 1년 뒤에 나온 스티븐 킹의 하트 인 아틀란티스미국의 목가와 남매처럼 닮아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베트남 전쟁 반대, 폭탄테러 모티브가 특히 그렇다.)

스티븐 킹은 점점 미국 현대 문학의 커다란 한 덩어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납량특집으로 딱인, 정신을 못차리게 할 정도로 재밌는 추리 소설을 두고 할 말은 딱히 아니지만



(황금가지 서평단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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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메르세데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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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장르소설을 탐독하면서도, 유독 멀리했던 스티븐 킹. 변명하자면, 그의 원작으로 만든 온갖 영화와 드라마를 익숙하게 접하다 보니 그의 작품은 왠만큼 알고 있는 것 같은 지독한 착각 때문에 책을 읽지 않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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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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