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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 ㅣ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6월
평점 :
1978년. 18년 동안 은둔 생활을 이어온 유명 작가 존 로스스타인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의 미완성 원고가 사라진다.
그 해. 로스스타인을 살해하고 원고를 훔친 미치광이 문학 팬 모리스
벨라미는 술에 취해 여성을 성폭행하고 거의 죽게 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2009년.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폭주로 아버지가 불구가 된 피트는
집 뒤의 황무지에 파묻혀 있던 커다란 트렁크를 발견한다. 트렁크에는 거액의 현금과 존 로스스타인의 원고
뭉치가 잔뜩 들어 있다.
2014년. 오직 로스스타인의 유작(그 중에서도 러너 시리즈의 후속작)을 읽겠다는 일념 하나로 감옥 생활을
버틴 모리스 벨라미가 드디어 출소한다.
황무지에 묻어놓은 트렁크 속 원고가 통째로 사라진 걸 알게 된 모리스는 원고의 행방을 추적하며, 과거의 광기를 다시 일깨운다.
[‘파인더스 키퍼스’는 ‘미저리’ 팬들에게 큰 선물]이라는 언론사 서평은 독자들에게 이 작품의 윤곽을 순식간에 드러내 보여준다. 비록
은둔한 유명 작가와 광기에 사로잡힌 문학 팬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작품은 ‘미저리’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리시 이야기’와 좀 더 닮아 있다.
‘리시 이야기’에서 성공한 작가 스콧 랭던은 일종의 예지력, 영혼 소통 능력 등을 갖고 있는데, (그리고 영감의 원천인 ‘부야문’에 출입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죽고난 뒤 광적인 팬
‘짐 둘리’가 아내 리시를 위험에 빠뜨릴 것을 예견한다.
이야기는 스콧 사후 2년, 짐
둘리가 스콧의 유작을 내놓으라 협박하며 리시에게 전화하면서 시작된다. 짐 둘리는 소설가에 대한 애정과
증오 면에서 모리스 벨라미 뺨치는 인물이다. 짐은 리시에게 그녀의 젖꼭지를 따버릴 것이라 협박하는데, 불완전할 지언정 예언은 어느정도 실현된다.
한때 스티븐 킹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 ‘리시 이야기’라고 했다. ‘크게 성공했지만 정신적 결함이 많은 작가와 그를 한결같이 사랑해 주는 속 깊은 아내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의 애착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큰 애정을 가진 ‘리시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묻혀버린 아쉬움 때문인지 스티븐 킹은 파인더스 키퍼스에서 이 설정을 다시 한번 써먹는다.
덕분에 독자들은 [미스터 메르세데스 – 파인더스 키퍼스 – 엔드 오브 와치]로 이어지는 잭 호지스 3부작 뿐 아니라 [미저리 – 리시 이야기 – 파인더스 키퍼스]로 이어지는 ‘문학섬뜩스릴러’ 3부작도 갖게 되었다.
파인더스 키퍼스의 잔재미 중 하나는 스티븐 킹이 자신의 전작을 비트는 솜씨를 구경하는 것이다.
미저리와 리시이야기도 그렇지만, 모리스 벨라미의 감옥 스토리는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을 닮아 있다.
고약하게도, 희대의 미친놈인 모리스 벨라미가 작문 실력으로 감옥에서
독보적 지위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그는 쇼생크의 앤디 듀플레인과 닮아 있다. 심지어 가석방 기각이 이어지다가
행운의 출소를 하게 되는 에피소드로 장물아비 레드 캐릭터도 살짝 뒤섞는다.
존 로스스타인의 유작과 돈이 담긴 트렁크를 발견하는 행운의 주인공, 피트는
일견 ‘우등생’의 토드를 연상시킨다. 교외의
중산층 마을에서 뜻하지 않은 발견으로 탈선과 모험을 한다는 점에서 그렇지만, 다행히 피트는 문학과 가족을
사랑하는 사려깊은 소년일 뿐, 토드처럼 홀로코스트와 파시즘에 열광하는 살인마 꿈나무는 아니다.
부모에게서 적당히 고립된 아이들이 그들 만의 세계에서 온갖 곤경에 부딪쳐 가며 성장한다는 테마는 ‘하트 인 아틀란티스’ ‘그것’ 등에서 스티븐 킹이 줄곧 다뤄온 단골 설정이다.
피트가 어린 주인공의 몫을 충실히 하는 까닭에 우리의 늙다리 탐정 잭 호지스는 이번 작품에서 조연의 역할에 머무른다. 덕분에 독자들은 제대로 미친 모리스 벨라미와 문학소년 피트의 정면 대결을 어떤 보조 장치 없이 즐길 수 있게
됐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신선한 플롯이나 의외성을 기대하긴 힘들다. 캐릭터와
상황 설정은 ‘스티븐 킹 변주곡’인데다, 주인공 피트의
가족을 미스터 메르세데스 사건의 희생자로 설정함으로써 전작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진다.
스티븐 킹은 그 대신, 필연성의 교차로 마법을 부린다.
트렁크를 발견한 뒤, 피트가 가족을 위해 벌이는 위험한 곡예는 비록
그는 모르고 하는 행동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리스 벨라미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행위다.
모리스 벨라미는 항상 간발의 차로 피트에 의해 그의 꿈을 유린당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과정을 세세히 목격해야만 하고, 그 때문에 모리스가 얼마나
미쳐 폭발할 지 미리 충분히 인지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시한 폭탄의 타이머는 점점 짧아지고,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서는 헐리우드
영화의 현란한 교차편집을 감상하는 수준이 된다.
스티븐 킹은 이제는 완숙의 수준을 넘어, 독자에게 어떤 잔인한 긴장감을
마구 집어던지고도 눈도 꿈쩍 안하기에 이르렀다.
체육관 지하실에서 모리스의 눈에 뻔히 보이는 장소에 원고 박스를 가져다 놓고, 피트
어머니가 총격을 당하는 장면에는 어떤 다른 묘사 없이 ‘양배추 터지는 소리’만 배치해 놓는다. 조마조마한 채 그저 파국이 아니기만 비는 몫은 100% 독자 몫이다.
60대의 스티븐 킹은 서스펜스 쪽으로는 일말의 자비를 잃었고, 농담
쪽으로는 표현의 한계를 확장한 듯하다.
스티븐 킹 월드에서 80세 노인이 세게 얻어 맞으면, ‘혈액 순환제를 충실히
챙겨 먹은 덕분에 퍼렇게 멍이 생기게’
된다. 의견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점에서 ‘똥구멍’과 같다.
긴장한 인간의 얼굴은 ‘5리터 짜리 봉투에 10리터 짜리 똥을 담으려는’ 놈처럼 보인다.
사실 스티븐 킹은 데뷔 무렵부터 언제나 무자비한 호러와 서스펜스의 제왕이었고, 어떤
세대와 성별의 캐릭터를 묘사하든 충실하게 그 인물의 심연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가 68세의 나이로 생애 최초의 탐정 추리 소설을 쓰면서도
여전히 큰 힘 안들이고 그럴 수 있다는 점은 경이로우면서 그저 감사할 뿐이다.
좋은 책은 언제나 독자를 다음 책으로 인도한다.
파인더스 키퍼스를 읽은 뒤, 책 속에 잠깐 인용된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를 집어들었다. 필립 로스가 존 로스스타인과 상당히 닮아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그리고 미국의 목가가 발표된 1년
뒤에 나온 스티븐 킹의 ‘하트 인 아틀란티스’가 ‘미국의 목가’와 남매처럼 닮아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베트남 전쟁 반대, 폭탄테러 모티브가 특히 그렇다.)
스티븐 킹은 점점 미국 현대 문학의 커다란 한 덩어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납량특집으로 딱인, 정신을 못차리게 할 정도로 재밌는 추리 소설을 두고
할 말은 딱히 아니지만 …
(황금가지 서평단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