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린디합을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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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이다. 첫째는 나와 제법 같이 다닐 수 있었고 세 살배기 둘째를 유모차에 태워 어린이집에 가는 길이었다. 우연히 만난 어린이집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고 가느라 골목에 들어간 첫째 아이를 놓쳤다. 큰 길에 빠른 속도로 차가 오고 있는데 어린이집 쪽 골목에 있던 딸은 엄마가 오지 않자 뛰어나왔다. 딸과 자동차가 만나기 직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리를 지르는 일밖에 없었다.
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차가 지나갔다. 그 뒤에 아이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서있었다. 찰나의 운명으로 차가 스쳐 지나간 것이다.
가끔 나는 그 순간을 생각한다. 그 당시 인기였던 ‘별에서 온 그대‘처럼 누군가 시간을 멈춰 애를 뒤로 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담요‘와 ‘애드벌룬‘은 그때 내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는 소설이다. 왜 하필 그곳이었을까?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담요를 통해 이별하지 못한 마음을 위로받는다. 반면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아버지 물건을 가차 없이 보내버린다. 그들에게 이별에 대한 대처 방식은 이리 달랐지만 빈 공간을 채우는 우울은 똑같다.

순경인 장은 죽을 것을 알고 아들을 낳은 아내를 뒀다. 아내는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8년 동안 유지한다. 충분한 준비를 한 이별이었다. 아니, 많이 기다렸던 이별인지도 모른다. 이에 반해 콘서트에 참석하며 ‘담요‘에서는 아들이 죽고 ‘애드벌룬‘에서는 아버지가 다리를 다친다. ‘담요‘에서는 어느 작가에 의해 사실이 이야기가 되고 ‘애드벌룬‘에서는 이 이야기를 아들이 번역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생명을 갖는다.

이 두 편은 많이 닮았다. 아니, 똑같은 내용이다. 아들이 죽었든 살았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이들이 만났다는 사실이다. 이 이야기가 탄생했다는 사실도 그렇다. 번역되어 타인에게 알려지든, 누군가 이 얘기를 주워듣고 천연덕스럽게 소설로 만들든 이야기가 ‘탄생‘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탄생에는 이별이 필연이다. 이별 없는 탄생도 탄생과 만남 없는 이별도 없다.
이 책은 내게 말한다.
그렇기에 사람은 사람과 만날 때 상처가 필수다.
상처받기 위해 우린 서로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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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20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진다면 서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게 되고, 이별 기간은 유예할 수 있어요.

책한엄마 2017-11-20 11:21   좋아요 0 | URL
생각만 해도 아름다워요.
이별을 유예할 수 있다니..

그런 삶을 살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