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옆에 자는 막내 발차기에 또 일어났다. 아이 이불을 덮어주고 내 눈은 다시 잠으로 빠져들지 않았다. 그러기엔 나이가 들어가나?

 

그 날 따라 부지런을 떨어봤다. 아침에 배추를 잘라 소금을 뿌렸다. 둘째 아이가 일어났다. 빙그레 웃으며 아프단다. 자기 체온을 재라고 한다. 그러기엔 시간이 없다. 꾀병을 부리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은 저려진 배추에 가서 둘러앉는다.

 

이상하게 아이 등교 시간은 항상 촉박하다. 새벽 2시에 일어나도, 오전 7시에 일어나도 그렇다. 그 때마다 아이 체육복은 보이지 않고 아이들은 그 때마다 모른다.’는 말을 당연하게 내뱉는다. 분노가 터져 올랐다. 네 체육복을 왜 나한테 물어. 나는 너의 체육복 말고 내 옷과 아기 옷과 네 동생 옷까지 신경을 써야 한단 말이다. 하필 지금이냐. 나는 그렇게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누가 아침부터 안 하던 김치를 담그래!!”

 

 

남편의 소리가 내 신경질적 목소리를 삼킨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니 일단은 휴전. 아이 노란색 폴로 티셔츠를 몽롱한 정신으로 건조기에서 세탁기에 넣고 다시 빨기를 눌러버렸다. 결국 우리 아이들 교복이 없어 체육복 폴로셔츠를 입혀 스웨터로 감춰본다. 남편이 차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왔다. 기다리듯 나는 막내 플레이그룹에 데리고 가라고 아이를 넘겼다.

 

원래 너가 갔잖아. 왜그래?”

피곤해. 잠을 못 잤어.”

 

또 아까와 같은 소리가 퍼진다.

 

 

누가 김치를 담그래? 하필 바쁠 때?”

 

 

남편과 나는 우리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소리 지르며 싸웠다. 아이는 울고. 결국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적막하다. 청소를 한 후 나는 리디페이퍼프로를 켜고 이 책을 읽었다. 일본 부엌에 대한 소소한 인터뷰가 담겨있었다.

 

마치 내가 남편과 싸운 걸 알았다는 둣 여러 부엌에서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혼자 살지만 힘을 내기 위해 부엌에서 음식을 해 먹는 1인 가구에서부터 오래된 부부의 익숙하고도 따뜻한 부엌, 바쁜 맞벌이 부부의 부엌, 그리고 나처럼 한시도 심심할 새 없는 많은 가족들이 복작거리며 사는 집까지.

 

 

이들은 내게 외로움을 이기는 음식을 힘을 이야기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식구의 중요함을 알려준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과 관계가 깨진 후 치유하기도 전 남편의 엄마와 동거나 레즈비언 커플이라는 동거에서 나오는 특이한 관계가 알고 보면 너무나 평범하다는 걸 조심스레 알려 주기도 한다.

 

 

책을 덮고 만든 양념에 저린 배추를 같이 넣어 버무렸다. 딱 맞는 김치 통에 보기 좋게 담아 넣었다. 그 사이 남편이 들어왔다. 아기들 노는 공간에서 우리 아기가 잘 놀았다는 얘기, 거기서 우연히 동기인 아빠를 만나 펍에 갈 약속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따뜻한 밥에 새로한 김치를 담아 먹는다.

 

 

, 소금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

그래?”

훨씬 낫네.”

그렇네.”

 

밥을 한 공기 다 비우더니 말 한다.

 

 

김치 잘 했네.”

같은 식탁에서 다른 음식을 먹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마음도 조금씩 멀어져요.

나에게 주어지는 것
내게서 떠나가는 것
모든 것이 나를 이루고 있네.
_미나가와 아키라,<진자>

대개 행복이라는 것은 그 한복판에서는 실감하기 어렵고,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행복이었음을 깨닫는 법이니까.

"다시 한번 혼자만의 생활로 돌아와 땅에 발을 붙이고 현실을 살아가요.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생활에서 최저한의 부분은 지키고 싶어요. 힘차게 살고 있는지 아닌지. 요리는 제게 그 입지를 확인하는 일이에요."

"꼬마 때는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큰아들의 한쪽 손을 잡고 있으면 둘째는 칭얼거리고, 큰아들은 가게 물건에 손을 대려고 해서 장하나 보기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저 혼자예요. 하나가 편해진다는 건 하나가 품을 떠난다는 뜻이에요. 그리 생각하면 힘들었던 일도 행복이었구나 싶어 애틋하게 느껴져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도구도 인생의 통과점이었나 봐요."

사실은 남편과 내가 팀을 이뤄야 하는데, 딸에게 남편에 대한 푸념을 하면서 딸과 팀을 이루고 말았죠. 그런 식으로 남편을 알게 모르게 소외시켰어요. 그러니까 닫힌 건 제 쪽이었어요.

여성끼리든 남녀든 부부가 하루하루 맞닥뜨리는 문제는 같으며, 해결법도 하등 다르지 않다.

아아, 밥이구나, 남자에게 엄마란 그런 존재구나. 그래서 죽기 살기로 요리를 한 걸지도 몰라.

아무리 다퉈도 조금 있으면 손을 잡고 있거나 해요. 어, 싸운 거 아니었어? 싶죠. 그 관계의 진폭이 몹시 신기했어요. 아직 저희도 부부라는 팀을 운영하는 요령을 모르던 때였죠.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돕고 싶어도 상대방의 마음속을 100퍼센트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고, 만약 이해했더라도 자신을 희생해서까지 그를 돕기란 불가능하다. 서로가 자신의 발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인디펜던트하게 살 수밖에 없구나.

"전 술도 그다지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지만 설암에 걸렸어요. 인생에는 자기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도 일어나더군요. 고민해봐야 별수 없는 일이 있어요. 그렇다면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자, 무리하지 말자고 결심했어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9-01-29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꿀꿀이님, 사진 보니까 셋째 많이 컸네요.
재작년 9월이었는데, 이렇게 볼이 분홍빛 꼬마가 되었군요. 멀리서 세 아이와 함께 보내는 날들이 매일 무척 바쁘실 것 같아요. 그래도 잘 지내고 계신 것 같고요. 그리고 거기서도 배추가 있는 것이나 김치 담그기 같은 것들 조금 신기했어요.
꿀꿀이님, 따뜻한 하루되세요.^^

책한엄마 2019-01-29 07:33   좋아요 1 | URL
네~^^
타국이라도 입맛은 바뀌지 않아 한식을 먹게 되네요.쌀도 종류가 많은데요.찰기 가득한 동아시아인들이 먹는 쌀을 찾는 것도 일입니다.마트에서 급한대로 쌀을 샀다가 날리는 인도식 쌀이라 많이 당황했네요.

아기는 정말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요.빨리 스스로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19-01-29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한엄마 2019-01-30 14:30   좋아요 0 | URL
와~선배님이시군요!
이미 그 혹독한 시간을 통과하셨다니 정말 존경 존경합니다.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고 공감해 주시는 것 만으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제 종착지가 되어주거든요.
그래도 이미 5개월을 버텼고 슬슬 양가 부모님도 오시니 독박의 굴레는 슬슬 나아지고 있습니다.
설날 잘 보내시고 자주 놀러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