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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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상을 처음 만난 건 4년 전 센트럴시티 고속터미널의 영풍문고에서다. 그때 난 지방으로 내려갈 교통비와 5000원 남짓의 밥값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책을 살 돈은 없었지만 커다란 대형서점의 서가 사이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었다. 5000원으로 무얼 먹고 버스에 탈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때 발견한 게 2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단돈 5500원에 김애란을 비롯한 여러 소설가들의 젊은 소설은 물론 그에 딸린 해설까지 읽을 수 있는 엄청난 기회였달까. 굶주린 배를 안고 그 책을 샀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던 고등학생 때였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독서등에 비춰가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출간 후 1년 동안은 5500원인 이 수상 작품집은 올해로 6회째를 맞는다. 매해 4월 말이면 서점을 기웃거리곤 했는데, 그때의 바람과 온도, 습기, 서점에 가던 상황 같은 것이 작품집마다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것 같다. 올해는 무척 바쁠 때 책이 배달되어 왔다. 바빠서 정신도 없는데, 대상작이라는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내 정신을 더욱 혼미하게 했다. 그래서 표제작이자 대상작인 이 낯선 작품 이야기는 일단 미뤄둬야겠다.

 

먼저 눈에 띠는 건 손보미였다. 2012년 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4년 연속 수상이라는 점은 이 작가의 역량이 젊은 작가라는 나이제한을 뛰어넘고 있다는 증명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소설엔 모든 일이 괜찮을 거라 믿는, 실제로 겉보기엔 아주 괜찮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거기엔 모든 것을 베어 버릴 만큼 날카롭고 미세한 균열이 조금씩 손아귀를 뻗쳐 나간다. 이번 수상작 임시교사에서도 폭우산책에서처럼 자식을 사랑하고 가정을 화목하게 유지하는 것에 민감한 중산층 부부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 초점이 조금 다르다. 본래의 균열이 내부에서 일어나고, 그것을 감지하는 인물 또한 울타리 속 균열의 희생자가 될 내부인이라면, 임시교사에서는 철저히 외부인일 뿐인 P부인의 초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게다가 P부인은 그냥 외부인도 아니고 임시적인 외부인이다. , 내부인의 말 한 마디에 외부인조차 할 수 없을 수도 있는 완전한 타인인 것이다. 경계와 배제, 임시적인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임시교사는 이 작가가 비슷한 어법과 소설 세계에 머물면서도 끝도 없이 넓어지는 시야와 예리해지는 시각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의외의 작품은 윤이형의 루카였다. 꿈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말 그대로 이형(異形)’적인 소설을 내놓던 그녀의 이번 작품은 지나치게 멀쩡하다. 이전의 소설에서 기이한 소재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따스한 문장들을 눈여겨볼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물론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동성애라는 소재적인 측면에 머무르지 않고 아름답고 평범한 두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써냈다는 점도 이 작품이 지니는 가치가 될 것이다. 해설에서 오해진 평론가는 소설의 오독을 막기 위해 직설적으로 외친다. ‘누가 봐도 엄연히 동성애서사를 써놨는데 그게 동성애서사로 읽히지 않아서 좋다니, 그게 무슨 미덕이고 칭찬이겠는가.’(159) 재밌지만, 그냥 웃고 넘길 그런 일침은 아니다. 이런 지적이야말로 이 작품을 다시 읽어 봐야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품은 김금희의 조중균의 세계였다. 김금희라는 낯선 작가의 낯선 세계를 역시나 낯선 인물인 조중균씨와 함께 엿보니 그 낯섦은 어느새 친근함으로 바뀌어있었다. 빈 종이에 이름만 쓰라는데도, 그럼 점수를 주겠다는데도 기어코 이름을 쓰지 않는 인물, 점심을 먹지 않고 점심값을 돌려받기 위해 본부장에게까지 불려가는 그런 인물을, 현실세계에서 우린 어떻게 대해왔던가. 별종이라 여기며 피곤해하고 배척해왔다. 함께해서 득 볼 게 없는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조중균의 세계는 피곤할지언정 정직하고, 드라마틱할지언정 이율배반적이지 않다. 그들만의 지나간 세계의 바랜 빛을 소설 속으로 끌어와, 현실의 우리에게 소개하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표제작이고 대상작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건축이냐 혁명이냐에 대한 짧은 소감을 적어볼까 한다. 실존 인물 이구와 그와 관련된 혹은 전혀 관련이 없더라도 그의 소설 속에선 관련이 될 수밖에 없는무수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이력과 이야기를 마구 쏟아낸다. 기존의 소설 문법을 해체하는 실험적인 소설들이 재미가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존의 소설 문법을 지키더라도 재미없는 소설은 무지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게 소설인가?’라고 묻게 만드는 소설은 흔치 않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별 의미 없이 나열되다가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내가 뭘 읽었지?’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독자들이 심사위원만큼 이 소설을 읽고, 분석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이 작품의 진가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래야만 대상작 선정에 공감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그 작품은 우리 모두의 젊은 작가, 젊은 작품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건축이냐 혁명이냐가 문학사적으로, 실험적인 시도 면에서 아무리 좋은 작품일지라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의 당대성, 신선함에 열광할 수 있었던 나를 포함한 일반 독자들을 소외시킨다면, ‘우리가 소설을 찾는 이유와 동떨어진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늘 젊은 작가상에게 고맙다. 가장 책 읽기 좋은 봄날에 출간되는 5500원의 선물. 매해의 추억을 껴안고 책은 일 년 사이 점점 부풀어간다. 그러다보면 내년엔 7회가, 내 후년엔 8회 수상 작품집이 나오겠지. 10회 수상작이 나올 때 난 무얼 하고 있을까? 20회 때는? 나와 함께 같이 자라는 소설집, 그래서 늘 젊은 작가상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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