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인물들은 다 같은 겨울에 살고 있다.
누가 봐도 이 인물들이 존재하는 세계는 봄이 아닌 겨울이었다.
겉보기에 이 들은 자신을 어디에 쳐박아둘지 모르는, 매섭게 들이닥쳐오던 눈보라를 극복하고 누군가에게 부러움 또는 동경이나 사랑을 받으며 그럭저럭 행복하게 사는 것 같지만 이들은 아직도 겨울의 눈보라 속에 있다. 거기로부터 나는 많은 동질감과 왠지 모를 안정감을 얻었다. 어찌되었든 마음 속에 눈보라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봄으로 가지 못하고 겨울에 머물러 있다면 이러한 면에서 우리는 눈송이와 같다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나중에 어딘가에 떨어져 녹아버릴지 아니면 웃고 있는 눈사람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를 눈송이로 비유해 봤을 때 아마 나는 아주 작고 가벼운 눈송이일 것이다.
남들보다 똑똑하지도 않고 둔한 나는 항상 내가 우성보단 열성 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같은 열성 쪽은 애초에 우성을 띄고 태어난 이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어쩔 수 없게도 세상은 우성을 띄고 태어난 이들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는 것이다.
하루종일 참 열심히 놀던 베짱이는 어찌 되었든 겨울이 와도 죽지 않고 살아 남았고 다음 봄날에도 또 그 다음 봄날에도 열심히 놀며 열심히 빛날 것이다. 베짱이 밑에서 열심히 일하던 개미는 다음 겨울에도 그 다음 겨울에도 베짱이가 죽지 않고 계속 빛나도록 도와주는 들러리인 샘이다. 죽어라 노력하다 죽어봐야 누구나 대신할 수 있는 개미1,개미2 말이다.
나는 이러한 현실의 틀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불만스러웠다. 내가 죽어라 노력해서 얻어낸 것을 누군가는 너무 쉽게 얻어내는 것을 보며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보이고 한심해보였다.
하지만 이 책은 불만을 가진 나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냈다.
지나치게 가볍고 작은 눈송이는 다른 무겁고 크고 빠른 눈송이들을 이길 수는 없겠지만 작은 눈송이보다 먼저 도착한 그들이 착지한 땅에서 녹지 않고 살아남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땅 위에 쌓여 눈사람이 될 눈송이는 아직 누가 될지 모르는거라고.
끝날 때 까지는 정말 끝이 아닌거라고.
아직 끝이 안났으니 끝까지 해봐야 한다고.
나는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아주 가벼운 단 하나의 눈송이. 그치만 전혀 비슷하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