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말
최강민 지음 / 작가와비평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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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는 겉무늬만 화려하고 요란만 잔뜩 풍기고 있음을 몸과 마음으로 뼈저리게 느낀다.그것은 물리적,환경적,정신적인 면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속칭 속 빈 강정과 같은 꼴이라는 것이다.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단면을 정밀하게 해부할 처지와 입장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되면서 사회는 소수계층 위주로 돌아가고 대다수 중산층 이하는 소수계층이 짜놓은 사회제도,사회시스템이라는 카르텔에 종속되고 말았다.정치 민주화가 되었으면 뭐 하냐,생각과 감정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사회의 약자를 배려하려는 상생의 설계도가 빈약한데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입에 담을 수 있고 보편적 복지시스템을 외칠 수가 있단 말인가.게다가 작금 세수(稅收)확보<우회 증세> 차원에서 물가를 올리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는 졸속 행정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어느 계층을 위한 일이고 어느 계층을 죽이는 일이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한국 사회와 국가가 발전하기 위한 길로서 흑백논리를 떠나 다양성이 존중받고 뿌리를 내리는 것을 마음으로 바란다.386세대로서 대학시절 4월만 되면 대학가는 정치민주화를 요구하기 위해 투석과 최루탄이 난무했다.간절히 바라면 된다고 하듯 결국 정치민주화가 대학생 및 뜻있는 사람들의 힘에 의해 성취되었다.어느 덧 27년이 흐르고 사회의 모습도 상전벽해와 같이 변했다.그런데 정치 민주화의 본모습은 어느 곳에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국가를 대표한다고 하는 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그 본모습을 찾을 수가 없으며,지역 일꾼이라고 하는 의원들 조차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도 하듯 색깔과 이념도 뿌연 안개 속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왜 이렇게 되었을까.모두가 자본의 권력 즉 '밥그릇 챙기기'라는 생존 본능으로 똘똘 뭉쳐져 있기 때문일까.그래서 정치하는 사람,정치 얘기는 신물이 날대로 나버려 아예 관심 밖이 되버렸다.김지하 시인이 1970년 발표한 오적(五賊) 즉,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將星),장차관이 생각난다.높으신 신분,지체로 조직과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오적에다 언론,사법권은 어떠한가.모두가 밥그릇 쟁탈전에 극(極)몰입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 평론계의 어제와 오늘의 풍조에 대해 분야와 사례를 밀도있게 그려내고 있는 최강민 평론가의 《고독한 말》을 읽으면서 한국사회의 힘은 자본에 있다는 것을 새삼 피부로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자본의 힘은 누구나 소유하고 싶은 선망이고 궁극의 목표이기도 하다.자본이 있어야 사람 행세를 할 수가 있으며 행복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실상이다.20세기 초반 한국 사회에 태동하기 시작했던 동인지,문학 평론지를 비롯하여 해방후 시대별로 평론지는 정권의 코드의 부합여부에 따라 생멸해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현재는 출판 자본을 기축으로 문예지는 난쟁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겨우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 평론지도 베스트셀러 위주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학창 시절 많이 접했던 월간지,계간지,주간지는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정도이다.설상가상으로 온라인 웹진 시대의 발흥으로 오프라인 평론지의 운명은 암울하기만 하다.

 

 권력에 저항했던 작가들의 쓴소리,바른 소리는 정권에 빌붙은 계층에 의해 흑백논란으로 번지고,우상으로 받들어졌던 인물들이 생각과 이념이 바뀌면서(개인적,사회적 환경) 변절(變節)로 개인의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다.또한 신자유주의가 기업의 유연화를 내세우면서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시대의 돌연변이를 낳았는데 그 피해자는 오갈데 없는 철거민의 참상이었다.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용산 철거민 대참사>의 처음과 끝 모두 철거민의 아픔과 고통,애환의 연속이었다.법정에서 언도된 판결도 철거민의 편이 아니었다.게다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거대 자본,인지도가 높은 출판 자본을 바탕으로 좋은 학벌 모시기에 급급하면서 작가의 잠재력,능력보다는 판매부수,영업력에만 모든 것을 거는 출판업계의 실상을 접하니 반신반의했던 마음이 전의(全疑)로 전락하고 말았다.이제 출판업계,평론지도 자본력,시대의 흐름에 맞춰 나가지 않으면 도태되고 사장될 것이라는 것이다.교수사회,작가 사회,출판 업계,현실 정치와 사회 모두가 현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부합되어야 하고 맞춰 나가지 않으면 토사구팽 당하는 것이 불문율이다.자신의 소신과 색깔을 낼 수가 없게 되었다.이에 굴하지 않고 소신과 색깔을 잃지 않고 대쪽과 같이 나가려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자본의 힘에 굴복하여 마지 못해 따라가는 천민(賤民)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이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초상화가 아닐까 한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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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및 식습관 패턴이 바뀌어 가면서 예전에 없던 질병 환자가 연령을 불문하고 늘어만 가고 있다.특히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외식를 자주 하면서 태운 음식,화학 조미료와 같은 첨가물이 잔뜩 들어간 음식을 섭취하고,운동량 부족과 마음의 근심,걱정,우울증과 같은 잘못된 생활 습관이 질병을 유발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인체를 갉아 먹는 암(癌)은 이제 나이 든 장.노인층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닌 소아에게도 발견된다는 점에서 암 예방을 위해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10대 청소년들이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마음 한켠으로는 짠하면서 동병상련의 정(情)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여 나가는 이야기를 접하니 신체적,물리적으로는 고통스러울지라도 마음과 마음을 잇는 든든한 다리는 마치 견우와 직녀의 사랑을 연상케 한다.팔팔하게 건강했던 사람이 어느 날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받게 된다면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는 정신적,물질적 공황(恐惶)상태를 맞이할 것이다.그러한 환자가 주위에 있다면 내가 그 질병을 겪고 있다는 입장에서 대하고 위로하며 심적인 고통을 덜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성을 알아 가는 한편 인생의 앞날을 설계할 꿈 많은 나이대인 십대 청소년들이 난치병에 걸리면서 의사의 충고에 따라 서포트 그룹 집회에 참석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주인공 헤이즐은 갑상선 암에 걸렸지만 폐로 전이가 된 상태에서 우울증까지 걸려 있고,친구가 된 어거스터스는 골육종(骨育腫)에 걸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어거스터의 친구 아이작은 안암(眼癌)에 걸린 상태에서 수술을 앞두고 있다.그 외 백혈병에 걸린 마이클,충수암에 걸렸지만 거의 나은 리다 등이 등장하고 있다.서포트 그룹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각자 소개를 하면서 가까워지게 된다.질병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가 위로가 되고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아이작에 의해 서포트 그룹에 참석한 어거스터스와 헤이즐은 서로의 안부와 생각,감정을 교환하면서 애정이 싹트기 시작한다.헤이즐은 폐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무거운 산소통을 휴대해야 하고 어거스터스는 부자유스러운 보행을 돕기 위해 수동조작기를 갖고 다녀야 하는 입장이다.둘은 독서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헤이즐이 어거스터스의 집을 방문하면서 더욱 친밀감을 느낀다.<새벽의 대가> <장엄한 고뇌>가 그들이 즐겨 읽는 책인데 <장엄한 고뇌>의 내용 가운데 미국에서 건너온 안나가 혈액암에 걸리고 안나의 엄마는 네덜란드 튤립 상인과 사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튤립 상인은 암 치료를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 글을 쓴 피터 반 호텐에게 메일을 보낸다.두 주인공이 난치병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암 치료를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소유하고 있는 튜립 상인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귀가 솔깃해지면서 암스테르담 방문을 실현한다.그런데 피터 반 호텐 작가는 별 볼 일 없는 작자로 드러나고 말았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집중치료를 받는 한편 삶을 정리하는 상황을 그리면서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든 남은 자가 먼저 떠난 이에게 보내는 추모 연설문을 작성하여 읍조리기도 한다.그 장면에서 둘은 불치병과의 싸움을 떠나 삶을 초탈했다는 점에서 마음이 짠했다.어거스터스는 선(先) 장례식 8일 후 결국 심장이 멎으면서 생을 마감하게 되고 헤이즐은 혼자 남게 되었다.블로그에서는 어거스터스를 추모하는 애도사가 넘쳐 났다.헤이즐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어거스터스,헤이즈은 어거스터스의 신이 되어 주고 어거스터스를 소유했을 정도로 영혼을 울리는 사랑의 고백을 쏟아 놓는다.국민학교 6학년 때 백혈병에 걸려 병마와 오랜 세월 싸웠던 그리운 친구가 생각난다.면 단위에서는 갑부로 소문났던 친구 집안은 친구가 종손이이서인지 논,밭을 팔고서라도 병을 낫게 해주려 힘썼지만 그는 두물 다섯 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나는 당시 군에 있었기에 운명 소식은 듣지를 못하고 휴가 나와서 겨우 알게 되었다.늦게나마 친구의 묘에 꽃다발을 꽂고 진심으로 명복을 빌었다.참 둘도 없이 지냈던 국민학교 친우였는데 그를 보내고 보니 몸과 마음이 그렇게도 허전할 줄 몰랐다.어거스터스를 보내는 헤이즐의 애도의 글귀를 접하니 백혈병으로 죽은 친구 묘 앞이 아득하게만 다가왔다.



 
 
 
그날
소재원 지음 / 마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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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는 조선의 청년과 처녀들을 총알받이,노리개로 삼았다.인생을 멋지게 그려나갈 시기에 나라가 외세에 짓밟히고 대동아공영권이 기세를 부리면서 조선의 청년들은 강제 노역,강제 징용으로 끌려가게 되었던 것이다.게다가 꿈과 희망,이성을 알아가는 꽃다운 10대 소녀들은 돈벌게 해 준다는 감언에 속으면서 남양군도,만주와 같은 곳으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의 성적(性的)만족을 채워 주는 '위안부'생활을 해야만 했다.그들이 타지에서 겪었던 일상은 거의 인간 이하의 취급이었다.해방이 되어 비록 목숨은 부지할지언정 각종 신체적,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나간 과거는 후손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후손들은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가.

 

 서수철이라는 남자와 오순덕이라는 여자가 한 동네에서 자라면서 혼기가 될 무렵 삶의 동반자로서 미래를 언약한 사이인데,그들은 일제 강점기 간난신고와 같은 세월을 버티고 이겨내 사랑을 넘어 영혼을 담은 순정을 엮어 가는 이야기를 접하니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개만도 못한 일본군의 만행에 치가 절로 떨렸다.서수철과 오순덕은 달이 밝게 떠오른 저녁 무렵 우물가에서 '함께 살자'고 언약을 하면서 삶이 부풀대로 부풀었건만 그들의 언약은 누구의 해코지이고 장난인지 훗날 운명을 갈라 놓고 말았다.

 

 서수철은 대동아공영권 차원에서 일본 만주군에 합류하여 싸우다 총탄에 큰 부상을 입었건만 치료조차 해 주지 않아 상처 부위가 세균이 번지면서 그는 천신만고 끝에 남해안 소록도(小鹿島)에 몸을 내려 놓은 것이다.한편 오순덕은 동네 이장이 돈 버는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꾐에 빠져 만주로 가게 되는데,그곳은 일본 군인들의 성적 만족을 채워 주는 곳이었던 것이다.소록도는 1916년 일본 제국에 의해 자혜병원으로 설립이 되었지만 환자의 치료,재활,갱생의 목적이 아닌 죽음보다 더 공포스러운 노역과 생체 실험의 무대였던 곳이었다.만주 위안부는 조선 처녀들이 일본군의 성 노리개가 되었는데,자칫 매독과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곧장 수술(인체 실험)로 들어가고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소재원 작가의 작품을 《소원》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사회적 이슈,인간성 회복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인상에 오래 남게 되었다.이번 작품은 일제 강점기 두 남녀 간의 영혼을 울리는 '순정'을 그린 글로서 나라 잃은 슬픔과 비극,처참함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삶을 그린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을 함께 읽으면 소록도에서의 일본 제국이 한센병(문둥병)에 걸린 환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소상하게 인식할 것이다.일본 제국의 인간만도 못한 만행 앞에 오늘따라 절로 치가 떨린다.1900년대 당시는 위생환경,의료수준이 발달하지 못했지만 세균이 침투하여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불가마에서 구운 벽돌을 나르게 하고,젊은 남자의 성기를 거세하는 단종대(斷種臺),생체 실험,화장(火葬) 목적의 수술실,환자의 자녀들이 1달에 한 번 거리를 두고 만난다는수탄장(愁嘆場)이 역사의 비극이고 소록도에 그대로 남아 있다.일본군의 성적 해소 장소인 위안소는 말그대로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하루 수십 명도 넘는 일본군을 맞이해야 하니 몸과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면서 삶은 피폐되어 갔던 것이다.

 

 서수철 할아버지는 소록도에서 오순덕 할머니는 나눔의 집에서 각각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면서 두 분의 스토리는 흘러간다.비록 이것은 두 분의 비극이 아니다.당시 일본군,일본군 앞잡이(조선인)들에 의해 인권과 생명이 유린당했다.두 분의 순결한 사랑 이야기는 비주권국가로 있다 보니 사랑은 결실을 보지 못한 채 긴긴 세월을 한(恨)을 보듬고 살아야만 했다.소록도에서의 노인,아낙,강학순의 따뜻하고 넉넉한 정과 위안소에서 만난 하춘희 처녀와 같은 동료애가 있었기에 두 분은 비통함과 절망을 딛고 꿋꿋하게 삶을 유지하지 않았을까 한다.게다가 위안소에서 치외법권자로 나섰던 적십자사 간호사의 직업정신과 인류애가 일본 제국의 만행과 대조되었다.두 분의 지난 시절 얘기를 부부기자인 한기준과 유소영의 인터뷰에 따라 소록도,나눔의 집을 교차하면서 당시의 죽음을 넘나드는 처참하고 기구했던 삶을 잘 조명했다.두 기자의 안내에 따라 두 분은 긴 세월 생사도 모르는 체 지내다 극적으로 해후하게 되었다.풋풋하고 젊었던 시절은 온데 간데 없고 하얀 백발로 변한 두 분의 만남은 또 하나의 한국 역사의 비극이 아닐 수가 없다.

 

 



 
 
 
페이퍼 엘레지 -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이언 샌섬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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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삶에서 4대 요소라고 하면 물,공기,땅,불이다.이 모두는 인류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이며 고마운 존재일 뿐이다.물,공기,땅,불이 한시도 없다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이고 지탱해 줄 것인가.그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고 만일 4대 요소가 사라진다면 인류도 자연 절멸될 것이다.그런데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일상과 사건,사고,소소한 일들을 그림이나 글로 기록하여 후대에 남기려는 문명의 진화가 있었다.이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획기적인 문명의 획을 그었던 것이고,동식물과 같은 지능이 낮고 말을 못하는 생물들은 본능에 의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그림과 문자,글로 기록하려 했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되었다.고대 중국,메소포타미아,이집트 등지에서는 거북의 등껍질,소 어깨뼈,죽간,파피루스 속껍질 등을 이용하여 그림과 문자를 새겨 넣었던 것이 중국 채륜(蔡倫)이 종이를 발명하면서 종이는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게다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직지,쿠텐베르크에 의한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불에 기름을 끼얹듯 종이와 인쇄술의 발달은 경이로울 정도의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던 것이다.그런데 모든 자원이 그러하듯 종이의 원료는 대부분 나무로 구성이 되었는데 산간에 식재되어 있는 목재를 벌목하다 보니 이제는 산림이 황폐될 지경에 이르렀다.산림자원의 부족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 일으킬 것은 뻔하다.

 

 내가 근거리에서 보았던 종이 만드는 과정은 닥나무를 베어 삶은 뒤 껍질을 벗기고 말려서 제지공장에 보낸 후 제지사에 의해 전통 한지를 만드는 것을 보았던 것이고,일반종이에 대한 것은 책자 및 주워 들은 것이 전부이다.종이가 인간에게 주는 편리함과 고마움은 물,불,공기,땅의 존재만큼 불가분의 관계를 띠고 있는 것이다.종이로 만든 물건은 셀 수도 없고 기억할 수도 없을 정도로 지천에 깔려 있다.그런데 생활 수준이 높아져 가면서 종이를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특히 1회용 물건에 쓰이는 종이,화장지,사무용 서류 등이다.그린벨트 해제,도시화,산업화로 인해 심하게 훼손.파괴되고 있는 와중에 절약해야 할 종이마저 함부로 쓰게 된다면 이는 사회적,경제적 타격과 함께 대재앙을 초래할 것이다.요근래에는 종이의 재활용이 활성화되면서 이미 사용한 종이를 재생산하게 되어 다행이지만 나무는 자원이면서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자원빈국인 한국은 나무를 비롯하여 에너지 자원에도 모두가 신경을 써야 할 때이다.

 

 인공물이면서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는 종이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는 《페이퍼 엘레지》는 종이의 제작부터 나무,지도,책,돈,광고,건축,예술,장난감,종이접기,영화 및 그 외의 것들을 심층적으로 서술하고 있다.소설가이면서 비평가인 이언 샌섬 저자는 책에 대한 감식안과 탐구력을 바탕으로 종이에 대한 애정과 비애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종이를 통해 종이를 이용해서 현실 속에 나나타는 것들은 참으로 많다.바로 눈 앞에 두고 있는 도서를 비롯하여 신문지,연습장,포켓용 다이어리,달력,벽지,봉투,서류,공문서,골판지 종이,색종이,종이 인형 등 다양하고 다채롭기만 하다.종이로 만든 것들은 다양한 이야기와 사연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끝없이 종이가 되고,종이가 우리가 되고,우리의 인공 피부가 된다.우리의 존재가 곧 종이다.종이는 행동의 바탕이고 우리가 하는 일의 동반자고 과거를 이해하는 열쇠다. -P22

 

 나무에 의해 만들어지는 종이는 기계 및 화학이 발달하면서 펄프,표백 공정을 거쳐 제지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한층 종이 사용량은 증가하게 되었던 것이다.또한 손재주를 이용한 종이의 예술성은 종이접기,종이 인형,종이 오리기,종이 옷 등 다양한 쓰임새로 번져 나갔다.게다가 건축,영화와 같이 다양한 산업에도 두루 활용되는 종이는 디지털 문명이 발달하면서 위축되는 경향이 없지는 않다.특히 e-book이 도서시장에 침투하면서 페이퍼 북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고 있는 것도 근자의 풍속도이다.시시각각 속출하는 종이로 만든 책을 비롯하여 간행물,잡지,신문,홍보지,팸플릿 등까지 합하면 지구는 종이더미로 휩싸일 것이다.디지털 문화가 팽창일로의 종이 문화를 얼마만큼 잠재울지는 미지수이지만 (개인적으론)종이로 만든 도서가 전자책보다는 더욱 애정이 간다.물론 전자북을 일부러 구입하지는 않았다.종이책을 넘기는 손놀림 속에서 육감을 느끼고 살아 있는 활자체를 몸과 마음으로 체감할 수 있어 생전에는 종이 책과 함께 하는 삶을 누리려 한다.

 

 종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사연이 담겨져 있는 《페이퍼 엘레지》는 인간의 이기적 본능과 영리함에 의해 삶은 비록 풍요로워졌지만 산림의 훼손.파괴 등 자원 부족 현상을 초래하는 부정적 요인도 많다.종이는 인간의 삶에 필요하지만 함부로 쓰고 버리는 무절제하고 무책임한 행위는 성숙된 시민으로서 지양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마운 존재이지만 무심코 지나치고 있는 종이를 통해 쓰임과 용도를 정확하게 해야 할 필요성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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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기회에  움베르토 에코를 만나다

 

 현대사회 사상가이면서 수많은 저술을 남기고 있는 움베르토 에코 24세부터 저작 활동을 시작하면서 팔십이 넘은 지금도 왕성한 저작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뒤따른다.글을 쓰는 소설가를 비롯하여 사상가,기호학자,철학자,역사학자,미학자가 바로 그것이다.평소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움베르토 에코는 일명 공부벌레,언어의 천재이기도 하다.내가 볼 때에는 언어의 연금술사 이상이 아닐까 한다.그의 작품은 많이 접하지는 못했다.《프라하의 묘지1,2》,《젊은 소설가의 고백》을 읽었을 정도이기에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그의 명성에 걸맞는 작품들을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향후 시간이 주어지는데로 움베르토 에코의 철학과 사상,미학과 관련한 작품도 접하려 한다.

 

 어느 시대,어느 나라에든 '박람강기(博覽强記)' 같은 간서치들이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다.동.서양의 역사,철학,사상,미학 등을 섭렵하고 해박한 지식을 정교하게 필터링하여 대중 및 독자들과 소통과 대화를 이끌어 가는 인물들을 접하게 되면 절로 탄식이 나온다.인간의 머리로 저렇게 해박하고 통찰력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한편 박람강기의 힘을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부단한 연습과 연마를 쌓아가면서 오로지 한 길을 걷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삶의 이력에 점과 선,원으로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움베르토 에코 저자는 이번 글에서 무엇을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일까.

 

 이 글은 총 열 네 편의 글 모음집으로서 10여 년에 걸쳐 쓰여진 것이다.특정한 주제에 대해 요청 받은 담화나 칼럼이 위주가 되고 있는데,사물,사건을 일방향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다양한 방식과 사고로 짜여져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다.저자의 말대로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이 주제가 되어야 하지만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적을 만들다>로 결정되었다고 한다.담화,칼럼,즉석 발표,강연,고찰 등은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을 애독하는 분들,인문학을 소중하게 여기는 분들에게는 기웃거리지 않고 느긋하게 읽어 가면서 내용을 음미하고 사유를 함양해 가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적(敵)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우리의 가치 체계를 측정하고 그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그것에 맞서는 장애물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P13

 

 나와 너,조직과 집단 간에는 생각과 감정,의식과 이데올로기와 같은 코드의 여부를 갖고 있다.이 문제는 역사적,문화적인 면에서 오랜 세월 정착하여 내면에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서 자신을 둘러싼 자연적 현상을 규명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닌 적(Enemy)으로 규정하여 악마로 여기고 있다.인간의 속성상 또는 정글의 법칙을 놓고 볼 때 이데올로기가 해체된 오늘날 적의 개념은 경제적,금전적 이해 상충관계를 놓고 규정된다고도 생각이 든다.또한 경제적 소득과 사회적 신분,소속 종교 문제를 놓고도 적이냐 아니냐를 가리고 대처해 나갈 것이다.나아가 도덕적,윤리적인 차원에서도 인습 및 의식기준에 맞춰 호의적으로 대할 것이냐,아니면 적대적으로 대할 것인가를 따질 것이다.결국 이것은 국가와 국가 간으로 비화되어 자칫 소소하게 여겨지는 문제로 크게 불거지면 외교적,군사적인 대립과 대치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 글을 읽어 가면서 크게 느끼는 것은 인류역사의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면서 통찰력과 해석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역사와 문화,신화에 대해 무지하게 되면 이 글을 읽는 데단어와 문장의 난독증으로 유익한 시간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또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고 풍부한 어휘력이 필요하다.저자는 모국어인 이탈리어를 비롯하여 유럽각국의 다양한 언어를 습득하면서 해당 국가의 역사,문화에 이르기까지 꿰차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해박한 지식,논리적이면서 통찰력을 갖춘 그는 일종의 '걸어다니는 사전(辭典)'은 아닐런지.

 

 철학 사전에 따르면,절대라는 말은 연결이나 경계에서 자유로운,<얽매이지 않는>모든 것을 뜻한다.즉 다른 것에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로 이유와 근거를 가지며 설명되는 무엇이다.절대는 신와 매우 유사한 무엇이다.그 외의 나머지는 모두 우연적이며 그 자체로 존재의 필연성,이유와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 -P42

 

 절대와 상대라는 의미의 차이를 놓고 그는 신과 유사한 무엇이다,우연히 생긴 존재는 반드시 순환논리에 따라 죽어야 할 운명이다,(현실을 떠나) 이상주의 철학자들과 만나면 절대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난해하면서 심오하게 다가온다.나아가 진리에 대한 개념도 상반성을 띠고 있다고 한다.논술의 의미론적인 특징과 같은 것과 신성(神聖)의 특성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즉 진리는 말하는 것과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의 일치를 의미한다.예를 들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는 <내가 말하는 것은 사실>이라는 의미이고,<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것은 신성의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 지구천체,물리학,생물학,시사문제 등의 주제와 관련하여 저자만의 담론을 밀도 높게 설파하고 있다.특히 4대 원소이면서 잊히기 쉬운 <불>에 대한 담론은 식을 줄 모를 정도로 깊이 있는 사유를 오롯이 쏟아 붓고 있다.역사,문화,예술,일상에서 불의 쓰임과 생명력,파괴력을 적나라하게 들려 주고 있다.<사순절 설교집> 가운데는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하는 죽음의 광경을 지켜보게 된다.내 자신은 경악스러움과 소름이 끼치면서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감각연구.PP 124∼125)

 

 

 

 

 

  생식력은 왕성한 정자의 힘에 있다,빅토르 위고 문학에 대한 평가(과잉의 시학!),흥미진진한 상상의 천문학,지혜와 교훈을 안겨 주는 속담 따라 살기,아일랜드 작가 조이스의 작품에 대한 저평가성 논조,역사의 장을 새롭게 펼친 위키리크스의 첩보 활동과 같은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기만 하다.이 글의 초반부보다는 중.후반부로 들어가면서 독자의 시선을 끌게 하는 이야기들이 꽤 많았다.논조 면에서 전문가는 편협적인 시각으로 흐르고 박학다식한 사람은 오류가 많을텐데 움베르토 에코 저자는 전문가인지 아니면 박람강기 그 자체인지 내가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다양한 분야를 다이제스트식이나마 새롭게 인식하고 폭을 넓힐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