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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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엇갈리는 것 같다.세속적으로 말하면 궁합이 맞는 사람,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삶의 동반자로서 관계는 깊어지고 소소한 행복은 적금 쌓여 가듯 풍요로워져만 갈 것이다.그런데 부부든 친구든 말다툼,싸움을 아니하고 지낼 수가 있겠는가.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뒤짚고 바꿔 나가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가.그러면서 '미운 정,고운 정'이 쌓여 가는 것이 인간관계일 것이다.

 

 여기 한 사형수와 사형수를 한때 나마 좋아했던 여자가 있었다.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사형수 윤수와 그 친구 은수 그리고 유정이,모니카 수녀,교도수 이주임,삼양동 할머니의 얘기가 교도소와 밖과 안에서 추운 겨울날의 을씨년스러운 공기와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의 공포와 삶의 희망을 잃은 사형수 그리고 그에게 영치금,먹을 것을 전하면서 회개를 하고 피해자에 대해 속죄하도록 수녀와 유정이 윤수를 자주 찾아간다.사형선고를 받은 몸이기에 언제 사형집행일이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녀와 유정의 방문은 윤수의 절망과 공포의 마음을 다소 누그러뜨린다.

 

 열일곱 살짜리 소녀를 강간살해하고 그녀의 어머니와 파출부 아주머니까지 살해했던 윤수는 알고 보면 친구 은수의 꾀임에 빠져 청부살해를 한 꼴이 되고,결국 사법의 잣대에 의해 사형수가 되고 만다.DJ정부 시절 사형수에 대한 사형집행은 없을 줄 알았는데 1997년 연말 사형집행이 이루어지고 말았다.사회적 불안과 물의를 빚은 중죄는 당연 죄값을 받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윤수는 결손가정에서 성장하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반항심이 증오로 변하면서 부자들의 사치와 방종에 대해 극한 혐오감을 안고 있었던 것듯 "더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다.잘 먹고 잘사는 연놈들,더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다!"라고 할 정도로 사회 소수층에 대한 염기(厭氣)의식이 강렬하기만 하다.사형은 이왕 받아 놓은 것이지만,수녀와 유정은 떡,내복,담요,약간의 영치금을 교도관 주임에게 맡기고 간다.사형수는 여섯 번 죽는다  한다.잡혔을 때,일심 이심 삼심에서 사형 언도를 받을 때,그리고 진찌 죽을 때,나머지는 매일 아침마다......이다.아침 기상종이 울리면 사형수들은 죽음을 준비한다.만일 운동이 있고 배식이 있으면 그날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그 아침운동이 시작되기 전 복도에 발소리가 울리면 사형수들은 하얗게 질린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파출부 어머니는 딸을 죽인 사형수를 만나겠다고 찾아 간다."왜 그랬니? 돈만 빼앗고 사람은 놔두지......돈만 빼앗고 사람은 그만 두지......돈은 또 벌면 되지만 사람은 다시는 돌아 오지 않는데....다시는 돌아오지 않잖니......살게 놔둬두 한 백 년 사는 것도 아닌데 라고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이 대목에서 내 마음도 착 가라앉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모진 것이 목숨인데 목숨을 파리만도 못할 정도로 잔인하게 죽이고 만 사형수에게 할머니는 그래도 자비와 용서의 마음으로 그를 찾았던 것이다.또한 유정은 집안이 짱짱한 듯 검사로 있는 큰오빠에게 윤수의 사형만은 막아달라고 애원하는데,그에게서 나오는 대답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어 다시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또한 판사에 의한 판결을 뒤집을 수 없기에 '집행'만이 최선이라는 대답이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법이 살아 있어야 한다.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이유로 사람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기는 세태는 법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도 경우에 따라서는 가정과 환경의 결핍에 의해 삐뚤어진 인성이 사회적 불만으로 연결되면서 각종 살인사고를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비록 윤수는 사형집행을 받고 죄값을 치르게 되었다.사형수 윤수와 모니카 수녀 그리고 유정의 인간미와 진실한 사랑의 메시지가 윤수의 마음을 되돌리고 가해자 및 사회에 대해 용서를 진심으로 구했을 것이다.나는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감싸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웠던가.변치않고 진실된 사랑의 힘은 상대가 어렵고 고난에 처했을 때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 철학자와 심리학자의 인생질문 20 Art of Lving_인생의 기술 4
줄리언 바지니.안토니아 마카로 지음, 박근재 옮김 / 글담(아날로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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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와 심리학자의 인생 향연

 

 인문학에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철학과 과학과 같은 학문의 융합이라고 생각한다.이것을 고급스럽게 말한다면 학문적 통섭(通涉)이 아닐까 한다.다르게 해석하면 문과와 이과가 만나 사실,현상,의미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게 된다면 인간의 삶을 더욱 통찰과 통합의 힘으로 이룩해 나가는 거대한 학문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복잡다단하고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철학적 사유와 심리학적 방법론 그리고 관찰과 사실을 중시하는 과학이 모여 거대 담론을 이루면서 인류는 가일층 문명의 발전,문명의 진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본래 철학과 과학이 두루뭉술하게 동거(同居)하다 연구하는 대상이 확연하게 달라지면서 철학과 과학은 분가(分家)를 하면서 딴살림을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이렇게 두 분야가 따로 제 갈 길을 오랜 세월 걸어가다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상황은 현 시대가 요구하는 필연적인 귀결인지도 모른다.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환영이고 마음 흡족하기만 하다.그것은 사회,문화,예술 방면의 전문가들과 과학 방면의 전문가들이 미디어를 통해 칼럼과 연재를 통해 두 학문의 통합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설파하고 있으며,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자기계발,실용서,무게감 없는 이야기에서 삶의 가치를 음미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와 같은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통찰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레임에서 학문 간 통섭과 융합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삶의 의미,가치에서 나아가 자기성찰,인간의 행동과 인지,뇌신경과학과 같은 분야가 통합적으로 변화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면서 현실감각과 미래 대응력 등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직관력과 삶의 경험을 통해 풀어내는 지혜의 힘은 개인과 사회,국가의 문명과 문화,예술과 같은 분야에도 두루 힘이 실어지리라 생각한다.

 

 줄리언 바지니 철학자와 안토니아 마카로 심료치료사가 만나 인생 질문 20가지에 대해 질문을 하고 서로의 견해를 피력해 나가고 있는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는 인생을 부박하고 의미없게 살아 온 내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인생 탐구서'라고 자칭하려 한다.인생에 대한 질문 20가지에 대해 정답은 없다.20가지의 질문을 받게 되면 십인십색의 개성과 기질,생각과 감정,견해의 차이가 상존하기에 정답은 없지만 참다운 삶의 가치를 실현해 가기 위해 도(度)를 넘지 않은 삶의 표준을 살아가는 것이 기본이 삶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삶의 참다운 가치를 가훈(家訓)처럼 삼되 예기치 않은 상황과 사태에 봉착하게 되면 누구든 이성보다는 경험 속에 축적된 감정이 앞설 것이다.감정은 평온할 때에는 개인의 색깔과 무늬를 잘 반영하게 되지만 불상(不祥)시에는 날카로운 직관력과 감정이 상호작용하기에 자칫 문제해결이 복잡해지면서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그래서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예기치 않은 사태,상황에서는 한 발짝 물러서서 일의 진행상황을 이성과 지혜의 힘을 빌려 담대하고 논리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심리적,물리적 면에서 수월하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라는 사회적 환경과 개인의 심리적 기제라는 면을 살펴 보면 소수계층(10%미만)을 제외하고는 대개가 버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형국이다.겉으로는 '허허' 웃고 있을지라도 생계,건강문제,노후문제,자식들 교육문제와 같은 삶의 굵직한 현실적 과제가 만만치가 않다.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도덕 선생님에게 '된사람,난사람,든사람' 배웠다.된사람은 학문과 명예가 있는 사람,난사람은 물질적 부를 거두어 자본가와 같은 사람 그리고 든사람은 인격을 갖추고 세상을 이끌어 가고 교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그 중에 된사람을 마음 속으로 우상화했던 것 같다.시대가 바뀌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인식하면서 인간의 삶은 우선 의식주가 족(足)해야 주위,사회를 생각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든사람을 신주 모시듯 살아왔지만 덜 구워진 도자기처럼 쓸모없게 되어 내팽겨쳐 버렸다.사회 구성원의 1인당 소득은 그저 행정편의적이고 통계라는 기제에 의해 짜여진 수치일 뿐 삶의 질은 벼랑에 서 있는 기분이다.다달이 나가는 금전은 쓰면 쓸수록 더 지출을 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유혹을 하는 것과 같아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맨지 오래되었다.게다가 정책을 관장하는 정부 정책과 사회 시스템,의식 구조가 없는 사람을 위로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게끔 만들어 놓은 제도와 시스템으로 인해 일반인은 철학이 밥먹여 주고 심리학이 마음을 다독여 주냐 라고 빈정거릴 수 있다.괜찮은 사립초등학교 1년 교육비가 1,200만원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부대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일반적인 생활소득으로는 자식을 그 비싼 곳에 보낼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아예 생각에서 제외하는 것이 신상에 편할 것이다.그리고 국제중,외국어고,자사고와 같은(겉으로는 성적 우수학생을 선발하여 국가경쟁력을 제고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학교는 일반학교에 다니는 계층과의 위화감 조장을 하고 있다.또한 대학의 등록금은 어떠한가.나는 천문학적인 숫자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취직이 되는가.그렇지 않다.비싼 등록금을 받아 먹는 대학은 이제 학문의 전당이 아닌 취업을 위한 취업 대기소 쯤은 아닌가 라고 자조(自嘲)한다.참 힘들다,못해 먹겠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말을 못하고 본능적으로만 살아가는 동물과는 다른 것이 인간이 아니겠는가.사회제도와 사회시스템이 소수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차선책이라도 선택하되 자신의 재주와 능력,감당할 체력을 고려하여 꾸준히 인내력을 갖고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한다.아무리 불평.불만을 터뜨려 봤자 누구 하나 알아 주는 사람 없을텐데.사회 제도,시스템이 획일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짜여져 있을지라도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맞게 인생의 각본을 짜서 꾸준히 인내력을 갖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 불평등,부조리,잠재 능력도 현실에 어떻게 잘 대응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한다.인생은 짧다.장 폴 사르트는 잠재 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잠재 능력은 상황만 달랐더라면 어떤 일을 해낼 수도 있었을 거란 착각을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거짓된 위안을 준다.나아가 인간이란 "그의 행동의 총합(總合)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며,그가 살아온 삶이 곧 그 자신이다."상황이 좋았더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고 자신에게 말하는 것은 거짓된 위안이다. -P31

 

 무신론적,실존적 관점에서 니체와 사르트르,카뮈의 사상을 흠신(欠身)한다.그러한 차원에서 사르트르는 내게 삶에 커다란 의미가 무엇인가를 교교한 빛깔로 내 마음을 휘어잡는다.사르트르는 "믿을 수 있는 것을 실재뿐이며 꿈,기대,희망이라는 말은 그저 거짓된 꿈,실현되지 않은 기대,무산된 희망을 통해 한 사람을 정의 내리기 위해 사용될 뿐이다"라는 대목도 현실적인 면에서 냉철하게 수용해 나가고 있다.요즘 자기계발서,실용서로 긍정적,낙관적,힐링과 같은 말과 관련도서들이 속출하고 있다.이를 수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자기계발서의 코드가 부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Flow』에서 "우주는 인간의 안락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다."하고 밝히고 있다.그렇다.인간의 일상은 트라우마의 연속이고 불편함과 개척의 길이라고 새삼 깨닫게 된다.부모의 슬하(膝下)를 떠나게 되는 순간부터 '나'라는 우주의 원자는 대항해 위에 둥둥 떠 있는 부평초일 뿐이다.내가 배우고 익히고 소통하며 축적한 경험과 직관에 의해 내 삶은 조종되어 가는 것이다.연령대에 따라 해야 할 일,상황에 따라 기민한 직관력으로 선택.결정해야 할 사안,비과학적인 일상 속에서 얻어지는 예기치 않은 행운,소소한 성취로 인해 맛보는 행복감 모두가 인생의 길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들이다.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남에게 사랑을 받으려 몸과 마음을 애태우지 말고 내가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말과 행동에서 사랑스러울 정도의 실루엣과 착한 선행을 쌓아가는 것이 최상일 것이다.사람이 끄는 사람과 끌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자신을 기만하고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위선적 행동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일관적이고 능동적이며 공동체적인 삶의 자세,태도의 차이를 보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이렇게 모나지 않고 원만하면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 보면 삶의 통찰력은 더욱 빛나리라 생각한다.그러한 삶이라면 삶이 끝나고 육신이 사라지는 죽음도 아름답고 고귀하게 맞이할 것이다.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삶은 순간 순간 선택과 도전의 연속이다.누군가 삶의 멘토가 되고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손 치더라도 실천으로 옮기는 주체는 자신이다.삶은 무한히 펼쳐져 있는 한 장의 설계도이다.그리고 지우고 첨삭하는 과정 속에서 인생의 레벨,동기는 제고되어 갈 것이다.매슬로우가 말한 욕구 단계 가운데 사회적 욕구 단계를 넘어 존경과 자아실현의 단계까지 도달했으면 한다.그것이 삶다운 삶의 실현이고 행복과 상생을 위한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내면을 살찌우고 삶의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명상,요가,독서와 같은 영적인 삶을 지속시켜 나가고 외적으로는 살아 있는 지식과 돈오점수(頓悟漸修)의 깨달음과 지혜를 타자와 소통해 나가야 할 것이다.'인생 별 거 있어?'라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신이 나를 탄생시킨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지만 삶의 이치,가치를 깨달으면서 내 뒤를 잇는 자식과 사회에 조그만 밀알이라고 남겨 보라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삶 속에서 부딪히고 느끼는 온갖 요소들 모두 지나가는 것이다.영원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다만,불충하고 미련하며 아둔하여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의식구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인간만이 갖을 수 있는 특징이고 우월함이라고 생각한다.



 
 
 
포로수용소 - 내 이름은 르네 타르디 슈탈라크ⅡB 수용소의 전쟁 포로였다
자크 타르디 지음, 박홍진 옮김 / 이미지프레임(길찾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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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쟁은 개인에게 무엇을 남길까.두말할 나위없이 외상후 심한 트라우마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전쟁의 명목이 다양하지만 대개는 국가 지도자의 영웅심과 민족의 우월성 그리고 배타적 종교관을 넘어 자원전쟁과 같은 것이 군사적,경제적 우월성을 앞세워 약세국에게 총탄의 세례를 안길 것이다.청년층은 국토 방위를 위해 의무적으로 전쟁에 나가야 한다.전쟁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는 예측불허가 될 수도 있으며 전쟁 상황에 따라서는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면서 물적,인적 피해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것이다.이것은 전쟁 역사를 통해 얻은 값진 교훈이다.그렇다면 전쟁으로 인해 과연 승전국은 어느 나라이고 패전국은 어느 나라인가 라는 원초적인 물음도 있겠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해당 국가 모두가 상처와 후유증을 앓게 마련이다.상처와 후유증은 전장(戰場)의 중심부에서 총부리와 총탄의 세례를 간신히 피해 가면서 운좋게 살아 남은 자라고 생각이 든다.

 

 

 20세기 세계는 양차(兩次)대전을 겪으면서 두 축의 이념을 형성하고 경제회복이라는 대과제와 경제중심축의 이동을 들 수가 있다.양차대전에서 독일은 전쟁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1차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가 사라예보에 전쟁을 선언하면서 독일,이탈리아가 동맹국으로 참전하게 되고,2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이 폴란드를 침공하고,일본이 1937년 중.일전쟁(난징 대학살)을 일으키면서 2차 세계대전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특히 독일은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총리가 되고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 및 유대인 말살을 기화로 독일,소비에트 연방 대(對) 영국,미국,프랑스와 같은 나라가 연합국이 되어 한치의 양보도 없이 피말리는 싸움이 이어져 갔다.히틀러가 유대인을 무차별 학살 자행했던 게슈타포 수용소를 시작으로 유대인의 씨말리기 작전은 쥐불놀이와 같이 번져만 갔다.참으로 골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안긴 희대의 만행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프랑스 군인이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4년 8개월)에서 직접 체험했던 굶주림과 학대,불명예의 시간을 망각되기 전에 아들에게 구술 및 회고담으로 남긴 《포로수용소》는 그래픽노블의 전형(典型)으로 삼을 만하다.타르디 저자는 할아버지의 1차 세계대전의 경험담,그리고 아버지의 포로수용소의 생생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사실에 가깝도록 포로수용소의 실상을 재현하고 있다.군복무를 한 나는 이렇게 피말리는 생존의 한계를 경험하지 못해 그저 마음으로만 공감할 뿐이다.잿빛을 띤 어스름하고 괴기스러운 분위기의 포로수용소의 거리는 획일적인 바둑판 모양의 천막과 파놉티콘을 연상케 하는 감시탑,철조망,감시병은 포로병사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넣었던 천형이었다.르네 타르디는 포로수용소 생활의 산증인이면서 전쟁이란 무엇이고 국가란 무엇인가를 냉엄하게 시사하고 있다.

 

 

 당시 독일은 주변 동유럽 국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 모아 세를 불려 나갔다.독일에 패한 프랑스 병사들을 강제 집결시켜 독일 트리에로 간 다음,발트해 연안의 포메라이아의 수용소에서 인간이하의 취급을 당했다고 한다.독일 제국은 포로수용소를 일반병과 장교,임시수용소로 분리하여 차별대우했는데,그 실상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이다.모포가 없어 짚더미에서 잠을 청해야 하고,몇 백 명의 음식을 여우 몇 마리를 잡아 떼우기도 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노역은 죽도록 시키면서 먹는 것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은 판국이었으니,꾀를 낸 병사들은 화장실에서 취사용 도구와 식재료를 구해 허기를 채웠다고도 한다.더욱 황당한 것은 포로병들에게 커피를 제공하는 척 하면서 떡갈나무 잎이나 도토리를 끓여 내었다는 것으로 생색은 낼대로 낸 셈이다.감자캐기 한 바구니 당 담배 한 개피를 얻는데 이것이라도 받을려고 포로병들은 감자캐기 속도를 내었던 것이다.과연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르네 타르디 탈출을 감행하기 위해 철조망 아래를 파내려는 계획도 세웠지만 철통같은 감시망에 그저 상상으로만 끝나고 만다.동료 샤르도네는 '탈출을 시려하려던 자"라는 이어령비어령식의 보고로 숙소에서 무참히 사살당한다.다행히도 전황(戰況)은 연합국의 편이었는지 1945년 1월 29일 수용소를 떠나라는 명령과 함께 지긋지긋한 수용소를 뒤로 하게 되었던 것이다.포로수용병들에 대한 프랑스 정부가 독일 제국에 보인 무능력과 안주는 포로수용병들이 국가에 대한 신뢰와 떨어뜨렸을 것이다.르네 타르디는 패전국의 포로수용병으로서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강인한 자세가 가상스러웠다.『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가 말한 비극적 낙관주의로서 고통,죄책감,죽음에 직면했을 때 닥치는 모든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아는 능력도 르네 타르디에게서 엿볼 수가 있다.르네 타르디는 작가인 아들에게 전쟁의 참상과 포로수용소에서 겪었던 실상을 후세들에게 남겨 전쟁이 주는 교훈을 잊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다.개인이 전쟁을 겪은 뒤 안고 살아가야 할 트라우마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국가가 치료하고 보상해야 할 사안이다.이 글을 통해 국가와 전쟁이 갖는 의미와 후유증을 곰곰히 새겨 보았다.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 끝까지 가본 사람, 달마의 인생 공략집
웅연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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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마의 용기는 욕망의 부속이자 체제의 파편으로 살아가는 오늘날 인간들이 바라는 용기와 곂쳐 있다 - P4

 

 인간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생계와 존재를 위해 살아간다.삶의 끝이 분명 있을텐데 영원히 살 것처럼 돈과 명예,권력을 향해 살아간다.돈,명예,권력을 모두 취하여 삶다운 삶을 누리고 행복까지 얻게 된다면 그러한 무능도원이 어디에 있을까.현실은 냉혹하고 매정하기만 하다.그렇다면 모두가 돈,명예,권력을 누리지 못할 바에는 어떠한 삶의 목적과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야만 할 것인가.그리 길지도 않은 삶의 길이 속에서 아둥바둥 살 필요가 있을까.삶의 길이가 길지도 않은 현실 가운데 삶다운 삶을 살아가고 후회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고 몰입하면서 즐기는 것이 삶의 지혜를 넓혀 가고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선불교,선문화,간화선,선서화 등을 창시한 보리달마의 방랑 인생을 제대로 접하게 되었다.'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그가 동쪽으로 간 곳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일이다.기원후 527년 당나라 양문제를 만나고 소림사에 머물면서 『심경송』을 비롯하여 여섯 가지 법문을 남겼다.그는 중국 교단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 독살당해 죽었다고 하는데 이는 낭설인 것 같다.그가 중국에 머물면서 면벽수행과 같은 벽관(壁觀)생활 9년을 했다.그가 몰입한 견인(堅忍)과 감내(堪耐)의 깊이가 독보적이었다는 것이다.

 

  참다운 삶이란 무엇인가,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삶다운 삶인가를 다양한 법어로 전하고 있다.돈과 물질의 거센 세파에 휘청거리는 내게 있어 현실은 있는대로 수용하되 달마의 말씀은 고이 간직하면서 몸과 마음으로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업보가 무거운 것은 업장이 두터워지게 마련인데,그것은 누구에게도 통용되는 점이기도 하다.살기 위해서 지저분하게라도 살기 위해서,너무 많이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한 탓의 소이일지도 모른다.돈과 물질,권력을 향유하는 계층은 업보가 일반인보다 몇 배 이상 무겁고 업장도 정비례하여 두터워지게 마련이다.비록 사회에서 신분,위치가 높고도 높아 무리를 이끌기도 하지만 영원한 법은 없다.즉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고통과 트라우마,울화와 우울증으로 점철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업보가 무거워졌되 요령이 부족하고 줄을 잘못 서서 대오에서 이탈되어 우울증,무기력증,삶의 포기,자살과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이다.세속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은 더불어 사람과 사람을 겨눈 접선(몸)과 협상(말)과 계산(뜻)이 다양하고 정확한 것이다.일종의 기민성과 영리함이 겸비되어야 하는 것이다.

 

 속칭 '먹고 사는 것은 타고난다'는 말이 상기된다.가정의 경제환경,부모의 양육의 질,교유와 사회와의 관계,학습과 경험을 살려 거대한 사회라는 대해 위에 고독한 모습으로 조타와 항해를 하면서 삶을 다양하게 조리를 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인간은 완벽하지도 않은데 완벽하려고 기를 쓰면서 자신의 한계상황까지 가려고 한다.실수와 오류,상처와 트라우마의 연속이 인생이라면 업을 줄여 나가는 것이 속 편한 것이 될 것이고,업을 늘려 업장이 광대해진다면 그에 대한 책임과 의무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요즘에는 사회의 정의와 상식을 외치고 있다.나 또한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자들에 대해 분노가 일어난다.특히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층에서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위가 판을 치고 있는데,이들은 법도 무서워하지 않는다.'유전무죄,유권무죄'라는 말이 버젓하게 횡행하는 바 이들은 겉으로는 경제와 민심을 살린다고 주구장창 착한 마음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서서 간과 쓸개를 다 내줄 듯 하지만 일단 권좌(權座)에 앉게 되면 권력의 파이를 어떻게 분배해야 할 것인지,권력의 코드는 어떻게 짜맞출 것인지와 같은 극히 세속적인 문제에만 몰입하고 아귀다툼을 일삼고 있다.목불인견이다.

 

 빨갱이몰이가 오히려 더 빨갱이스럽다.애당초 출발이 공정하지 못했던 점이 계속해서 대한민국의 원죄로 남아 있다.인과응보가 정의의 본체라면,이익의 합당한 분배가 정의의 작용이다.도덕보다 중요한 것은 상도덕이다.상도덕을 못 지키겠으니까 불신지옥이나 종북척결과 같이,이상한 데서 정의를 찾는 것이다. - P150

 

 지당한 말씀,체증이 쏵 아래로 내려가는 시원한 느낌이다! 달마는 "오직 본래의 성품을 보라"고 강조했다.목에 칼이 들어와도 견성성불(見性成佛)하라는 것이다.삶을 삶이게 하는 것이며,어떻게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견성성불이다.우리는 맨발로 왔다 짚신으로 삶을 꾸리다 다시 맨발로 영겁의 명부로 돌아갈 중생일진대 우리네 삶은 아귀다툼으로 영혼이 편안할 날이 없다.자신의 현 입장으로 돌아가 욕망을 내려 놓고 체제의 파편에 이끌려 살아가되 부정의와 불상식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하고 또 구하면서 정의와 상식이 넘치는 멋진 사회가 정착되었으면 한다.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달마의 말씀을 따라가 보는 것이 불행인지 아닌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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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 노통브 작가의 작품을 몇 권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일본에서 겪었던 일본인의 관료주의적인 조직문화와 남과 여의 소소한 사랑 싸움과 같은 이야기들이었다.그런데 남과 여의 사랑 싸움과 같은 이야기는 노통브 작가만의 유머와 재치가 중간 중간 섞여 있어 독자들에게 지루함은 사라지고 대신 미소가 잔잔하게 입술을 움찍이게 한다.그래서 그녀의 작품이라면 가볍지만 인간사는 세상이란 무미건조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파리 7지구 호화 저택에 발을 들여 놓은 여주인공 사튀르닌 그리고 방을 세를 놓아 먹고 사는 돈 엘레미리오가 이야기의 전반을 이끌어 가고 있다.사튀르닌은 벨기에 피가 흐르는 이방인이고,돈 엘레미리오는 스페인 귀족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다.파리 7지구 호화 저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인 돈 엘레미리오의 눈에 들어야 하는데 사튀르닌은 호화찬란한 저택에 압도되고 돈 엘레미리오의 눈 화살에 꽂혀 입성하게 되면서 둘의 이야기는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도 때에 따라서는 맞장구를 치기도 하는 등 깃털보다 더 가볍고 유치하지 않는 농담(弄談)에 나도 글 속으로 빠지게 되고 말았다.

 

 사튀르닌이 호화저택에 면접보러 가던 날,그녀는 주인 돈 엘레미리오의 과거 행적을 귀띰을 받게 된다.이미 호화저택을 들어 왔다 증발된 여자가 무려 여덟 명이나 된다니.과연 돈 엘레미리오는 세로 들어온 여자들을 어떻게 했길래 증발되어 버렸던 것인다.게다가 돈 엘레미리오는 외출도 하지 않고 집안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 방콕인데 말이다.그에게는 두 명의 남자 비서가 딸려 있기도 하다.돈이 많아 남에게 꿀릴 것 없는 돈 엘레미리오는 손수 요리도 하는데 그 요리실력이 아마튜어 수준을 넘어선 듯 사튀르닌의 입을 황홀케 하면서 돈 엘레미리오에 대한 이질적이고 혐오스러웠던 선입견이 차츰 사그라든다.

 

 그러면서 지난 중세 역사를 끄집어 내어 얘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살인과 고문에 대한 문제,돈 엘레미리오의 조상이 프랑크 총독을 급진 좌파로 취급하다 프랑스로 망명해야만 했던 사연,면죄부 밀매가 허용되지 않는 프랑스 법규,카톨릭 교리에 대한 문답형식과 같은 얘기를 주고 받는다.그들은 직설적인 화법을 주로 사용하지만 이야기들은 매우 위트와 유머가 동시에 숨어 있다.특히 돈 엘레미리오는 사튀르닌이 계란 노른자와 금의 결합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자 그녀에게 반하고 만다.돈 엘레미리오의 과거 자신의 집에 세들었던 여자들의 행불의 비밀이 밝혀지는데,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에서 그 사실이 밝혀지고 만다.

 

 돈 엘레미리오가 숨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사튀르닌은 금으로 변했다.  - P187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그리고 돈 엘레미리오가 찍은 초상화를 보면서 사튀르닌은 앞서간 여자들의 정령에 휩싸여 돈 엘레미리오와 사튀르닌은 서로가 마음으로 사랑하게 승화된 것이다.사랑은 이러한 환경,이러한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노통브 특유의 문체에서 새롭게 발견하였다.소소하면서도 다양한 에피소드를 활용하고 그 속에는 유머와 위트가 다양한 재료로 버무려진 달콤한 샐러드를 맛보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