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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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자신의 실로써 공간의 자유에 이른다˝는 소설 속 문장이 잔잔하게 여운을 안기고 있습니다.작가는 글의 공간적 배경을 인도로 삼으면서 광활하고 다채로운 서사,흡사 쌍둥이와 같은 한 형제의 삶의 죽음을 그리면서,지난 삶은 소멸하는 것이 아닌 저지대에 웅숭 깊게 고여 있다고 말하고 있죠.


 
 
 
고구려 1 - 도망자 을불 고구려 1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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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소설은 언제 읽어도 재미와 유익함을 안겨 준다.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의 예리한 상상력과 통찰력은 독자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과 조화를 다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에 읽고 나면 어느 정도 지난 과거에 대해 반추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다만 '역사'라는 것이 당대를 이끌던 위정자와 주류 이데올로기에 의해 집필되었기에 객관적인 균형 감각을 온전하게 살릴 수가 없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특히 한반도의 역사는 매우 굴절되어 있고 온전하게 정착되어 있지 않아 청소년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시각,분별력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게다가 한국사에 대한 학습량이 적고 주된 과목이 아닌 탓에 설렁설렁 시험준비시에만 반짝하기에 지난 역사의 본류를 인식하고 통찰해 가는 것은 요원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사에 대한 학습은 고작 중.고교시절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당시(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에는 주로 사지선다형 문제를 내놓고 해답을 요구하고 암기과목에 속했던 만큼 벼락치기 공부가 대세였다.역사를 좋아한다는 동급생 중에는 대부분이 중국 《삼국지》 및 《수호지》 등을 즐겨읽고난 뒤 의기양양하게 그 내용을 재잘거리기도 했다.또한 고교시절 사회과 교사의 경우에는 중국현대사의 큰줄기인 《대장정》에 대해 실타래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매시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수업의 지루함을 달래 주기도 한 반면,흥미진진하게 한국 역사를 접할 기회는 극히 적었다.물론 1970년대 비민주적인 인권탄압과 억압된 정치상황도 한 몫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사설이 길어졌는데,이제 지나간 한국 역사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을 필요가 있다.지금은 물러난 후진타오 중국 서기가 재직하던 시절(2002~2012년) 중국 정부 및 사학계는 한국의 고대사 부분,즉 고조선과 고구려 등의 역사를 심히 왜곡하고 있으며,이를 흔히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고 부른다.특히 고조선과 고구려 등 고대사 부분에 대한 인식은 극히 한반도로 축소되어 있다.《사기》 등 중국 사료 연구 분석과 유물유적 분석에 의하면 고조선의 한부분인 한사군(漢四郡)의 지정학적 위치가 한반도가 아닌 중국 허베이성,랴오닝성 서남부에 산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역사학계와 연구원,한.중 양국간의 이에 대한 견해 차이가 크고 친일사관에 의해 축소된 고조선의 유역은 반드시 변경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김진명작가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예민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나간다.주로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드는 역사 인식과 작가만의 공들인 연구와 해박한 지식을 교묘하게 잘 풀어내 주고 있다.예리한 통찰력,번뜩이는 기발한 발상,초(秒)를 다투는 현장감과 스릴감,그리고 독자들에게 주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니 여운이 오래도록 남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역사 인식과 작가만의 소설 구상에 의해 《고구려》 시리즈가 독자들 곁에 다가섰다.고구려 시대에 대한 역사 학습이 일천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주로 광개토대왕,장수왕,영양왕 등 전쟁과 관련한 영웅담 및 영토확장 문제에 치중되어 있어,기타 고구려 왕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고 본다.중국의 동북공정 및 한국 고대사 부분에 대해 보다 더 자주적으로 살펴 보는 계기를 마련한 김진명작가의 선도적인 작품 구상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까지 들게 한다.

 

 우선 1권~5권을 완독(緩讀)을 하게 되어 뿌듯함마저 든다.각권마다 주제 및 내용 전개가 조금씩 다르지만 고구려의 호방한 기상과 고토회복 그리고 주류 세력보다는 민본주의에 가까운 스토리 전개가 주인공 을불(乙弗)의 행적을 통해 전반에 깔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서천(西川)왕의 아우인 안국군(安國郡)이 숙신족(肅愼族)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자 봉상왕(烽上王)은 자신의 숙부 안국군과 아우 돌고(咄固)를 왕권강화 차원 및 그의 못된 성정(性情)에 의해 희생된다.안국군은 생전 종손자(從孫子) 을불에 대해 장차 고구려를 이끌어 갈 기재(奇材)로 삼는다.이러한 왕족 간에 불화(不和)가 계속되자 을불은 고구려 땅을 벗어나 안국군의 주무대였던 숙신 홀한주성으로 떠나게 된다.을불은 자신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기에 이웃 나라인 낙랑(樂浪)에도 들르게 된다.마침 동맹제가 있어 무사들의 무예를 겨루기도 한다.을불은 낙랑의 무예총위 양운거의 눈에 잘 보여 무예술을 전수받기도 한다.당시는 3세기 말의 고구려 상황이고,한사군 중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낙랑을 비롯하여 유목 민족인 선비(鮮卑)족이 서쪽과 북쪽에 포진에 있었다.진(晉)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낙랑으로 진의 유민,세력들이 유입되어 오고,낙랑은 태수 최비(崔琵)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되었다.선비족은 모용외(慕容嵬)를 주축으로 주변국과의 힘의 역학을 가늠하고 있던 시대였다.특히 진이 내전에 휘말리면서 유목민족인 선비족은 남하를 꾀하며 영토확장을 호시탐탐하던 시기였다.무예총위 양운거 부녀가 낙랑 태수에 의해 무참하게 버려지면서 둘은 잠시나마 을불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고구려로 피신을 하는 것으로 1권은 막을 내린다.

 

 안국군의 유지를 받들어 장차 고구려왕으로 나뭇꾼,소금장수로 와신상담을 하던 을불은 나름대로 자신의 힘을 키워 나간다.낙랑땅에 지천으로 깔린 철을 이용하여 전쟁에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마련하여 고토(故土)인 낙랑을 되찾는 것이다.무예총위의 딸 소청과의 만남,그리고 고구려 출신이면서 낙랑에서 주 대부와 그의 딸 아영과의 만남은 이후 을불에게 어떠한 관계로 발전되어 갈 것인지 무척 기대가 간다.단순한 로맨스로 흐를 것인지 아니면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 치밀한 지모(智謀)에 따른 정략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3세기 경의 고구려 주변의 나라들의 개요를 주요 인물들의 동태를 묘사하면서 을불의 향방이 어떻게 흘러갈 지가 관건이 아닐 수가 없다.1권이 고구려의 서막이니 버려진 왕족으로서 을불이 차지하는 역할은 점입가경이 되리라 생각한다.


 



 
 
 
심리학 일주일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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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들 1차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 한 주,한 달,분기,연 단위로 살아간다.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이든 개별적으로 영위하는 자영업자이든 전업주부이든 모두가 자신과 가족 구성원을 위해 뛰고 또 뛴다.하루 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면서 시간도 하염없이 흐르건만 대개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삶에 대해 회의감,자존감의 결여마저 들게 한다.한국인은 전통적으로 근면,성실하다는 특장점이 있지만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격이 급해서 참을성이 없는 민족으로 전락되어 버렸다.흔히 '빨리 끓고 빨리 식어 버리는 냄비' 같은 속성이 있음도 부인할 수가 없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 가는 데에는 개인이 생각하는 삶의 목표 지향점보다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 및 외부의 의도와 계획에 의해 수동적인 자세로 움직인다.자신의 삶을 자신이 목표를 정하여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나야 삶이 삶답게 굴러 가기 마련일텐데 그러하지를 못한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OECD국가 중에서 주(週)당 가장 많이 일을 하면서도 삶의 질,행복지수는 거의 밑바닥 수준이니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제도,시스템이 속성(速成)주의에 입각한 날림공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일이 온전하지 못하니 사회구성원의 심성도 불안하고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든다.나아가 사회전반이 배려와 존중,보살핌과 같은 인간의 고등 욕구가 낮고,이해타산,소집단 주의가 강하다 보니 사회구성원간의 화합,단결력도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 하루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된 삶이고,살맛 나는 삶을 누릴 수가 있을까.엄벙덤벙 살다 가는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도태되고 만다.보다 나은 삶을 꾸려 삶의 질과 행복까지 몸과 마음으로 만끽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있겠는가.기존의 사회제도,시스템,조직의 생리 등을 수용하되 좀 더 자신을 통제하면서 일과 내면 모두를 잘 다스려 나가야 할 것이다.흔히 주일이라는 일요일이 지나면 낯선 세계로 향하듯 월요일은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어디론가 억지로 끌려 가는 마음으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기대와 설렘으로 충만한 사람은 일에 대한 만족과 성취도가 높을 것이고,그렇지 않은 사람은 일에 대한 불만족,상사.동료와의 원만하지 않은 관계로 실질적인 것보다는 형식적인 것이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요즘 주말은 금요일 밤부터 시작한다고 한다.'불금'이라는 말이 유행을 타고 있다.불타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경제적,심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잊고 잘 휴식을 취하여 다음 주에 대한 신체적,정신적 충전이 충분히 되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신체적,정신적 피로와 스트레스를 무위도식과 같이 뒹글뒹글 집안에서만 보낸다면 피로도 덜 가신 상태이고,일과 자신의 내면에 대한 통제,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한 주를 시작하니,일에 대한 의지와 효율성이 떨어지리라 생각한다.조직사회에서 직급이 어떠하든 자신의 업무분장이 정해져 있을 것인데,이왕 일을 통해 경제적 수입,자기계발,인간관계,사회적 성취도 등을 감안하여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사회는 코드가 맞는 사람,덤덤한 사람,껄끄러워 피하고 싶은 사람 등 다양하기만 하다.취향,성격,사고방식,지도력부터 생각과 감정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나와 비슷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와 맞지 않은 사람과 의도적으로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면 어떨까 한다.그렇게 하려면 우선 상대방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때와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가 있을 것이다.자신의 속마음이 들통나지 않도록 전략적이고 치밀하게 대할 필요가 있는 사람을 구워 삼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경쟁사회에서 요구되는 인물이기도 하다.평범하면 도태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생산성과 효율성 있는 한 주의 계획을 머리 속으로만 그린다면 오류와 실수가 많을 것이다.늘 핸드캐리용 다이어리,메모지를 준비하여 필요시 해야 할 일,예상치 못한 일,궤도 수정해야 할 일,점검,피드백 등으로 하루 일을 정리하는 습관이 몸에 배이고,주중,주말로 넘어 가게 되면 한 주의 일에 대한 계획과 생산성,효율성,성과 등의 윤곽이 잡힐 것이다.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윗선으로부터 강요받은 초과달성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과 현실성에 맞게 보고하고 연락하며 1:1 면담으로 끝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이 글이 《심리학 일주일》이라는 말에 전(前)직장에서 겪었던 악몽이 떠오른다.구체적으로는 밝힐 수가 없지만 윗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목표를 높게 잡아,부서원들에게 강요된 할당목표를 제시한다.부서원의 능력,시장상황,소비자의 니즈,지역주민의 호응도 등이 어느 정도 부합한다면 높게 잡은 목표달성도 가능하겠지만 주말 정도로 넘어 가면 목표 대비 70~80% 달성하면 양호한 편이다.그런데도 상사는 달성하지 못한 목표에 대해 인신공격,모멸감 등까지 안겨 주었던 시절이 있었다.그러한 악순환과 열악한 직장환경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비단 내 경우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거창하게 얘기를 하자면 한국사회의 조직문화가 좀 더 순리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기를 바랄 뿐이다.이러한 사회풍토로는 개인의 삶의 질,행복감은 고사하고 서로가 반목대립하고 불신의 연속일 것이다.자신을 되돌아 보고 내면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시간과 여건,마음의 준비는 빈사상태라고 보여진다.수직문화가 수평문화로 제대로 정착되어,소통과 대화를 통해 개인의 능력과 체질,재주에 맞게 업무분장이 되어,일과 내면이 모두 충일했으면 한다.1:1 독대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악습과 제도가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 조직을 떠나 자신에게 맞는 조직과 일자리를 찾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한다.수평문화는 수직문화보다는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 보다 긍정적으로 통제되고 동기부여가 될 것이며,낮기만 했던 자존감이 되살아 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아 외부에서나 내부에서나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한 주,한 달,분기,한 해가 살맛나는 시간으로 채워지지라 생각한다. 



 



 
 
 
자존감 교육
이명경 지음 / 북아이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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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중요하다'라는 말이 있다.그만큼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양육과 훈육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또한 부모 역시 부모 및 사회생활 속에서 받은 양육과 훈육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자연스레 자식들에게 전수(傳授)되어 가는 것이기에,부모가 자식에게 보여 주는 말과 행동,정신적 가르침과 유산은 풍요로운 물질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그러한 맥락에서 요즘 유아.청소년을 두고 있는 부모는 자식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좋을까를 생각해 본다.

 

 세대별 소득수준,생활수준의 차이는 있어도 자동차,아파트(전세 포함),빌라 등 공공주택 속에서 대부분 살아 가고 있다.개인주의적이고 사생활을 중시하다 보니 주거의 형태가 이러한 꼴로 변해 가고 있는 세태이고 부모의 경제력은 대부분 맞벌이가 대세임을 발견하게 된다.남편의 신분과 경제력이 안정되어 있는 집안은 그나마 아내가 가사와 양육,훈육을 도맡게 되어 집안이 어느 정도 질서와 정돈이 되는 편이다.하지만 남편과 아내가 밖에서 주된 생활을 하다 보면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과 온기,애정을 느끼며 자라날 수가 없고,부부간의 사이가 좋지 않아 늘 무언(無言)과 언쟁이 잦아들기라도 하면 자녀는 무엇을 보고 자라겠는가.자녀는 당연 성격과 인성이 올곧게 자라나지 못하는 것은 뻔한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이러한 가정에서의 영향은 학교 생활,급우 사이에서도 원만하지 못할 것이다.유아.청소년은 자아관념이 뚜렷하지 못한 관계로 사물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게 마련이므로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아이의 행복과 성공을 위한 첩경은 바로 자존감을 드높이는 것이라고 이명경저자는 자존감의 이해,자존감의 발달,자존감 교육법,부모 및 자녀의 자존감,자존감 교육의 효과를 순서에 따라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청소년을 두고 있는 학부모의 한사람으로서 내용 하나 하나가 가슴에 와닿는다.단지 100퍼센트 내 자식에게 애정과 사랑을 쏟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하고,양육과 훈육법이 고정관념과 우리 부부의 (낮은)자존감 탓인지 아이들에게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하지만 이 글을 읽고 강하게 인식을 했으니 실천을 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역할이고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흔히 자존심,자존감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네이버 지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자존심은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타인에게 보여 주려는 작위적이고 의도적인 꾸미기가 포함되어 있는데 반해,자존감은 자신을 사랑하고 통제하며 주도적으로 살아 가려는 의지가 강한 것이 특징이 아닐까 한다.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믿기에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한국 교육풍토상 언제 자존감에 치중하면서 학창생활을 보낼 수가 있을까.좋은 성적,좋은 대학,괜찮은 직업을 갖어야만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한국 사회전반에 흐르는 기류이고 한국인의 강렬한 의식구조이기에,부모로서는 없는 돈 있는 돈 다 긁어 모으고,그것도 모자라 학자금 대출,아파트를 팔아 반은 자녀의 교육비,반은 전세로 나 앉게 되는 것이 실상이다.유아.청소년은 자연의 동.식물과 같이 놀 때는 놀고,공부할 때는 공부하는 것이 신체적,심성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가 있다.하기 싫은 공부,과외,원치 않은 다양한 레슨에 이르기까지 정신적 피로를 누적시켜 가고 있다.매우 안타깝고 비극적인 한국 교육풍토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아이의 자존감을 되살려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일단 부모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성격상 내성적이고 타인과 교류가 적은 부모는 당연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다.자녀가 학교,학원,보습 등에 관해 돈으로 투자만 했지 관심과 점검이 희박하고,자녀의 친구 부모들과의 유대관계도 낮기에,자녀가 학교 행사와 관련하여 느끼는 소외감과 결핍감은 클 수밖에 없다.이제부터라도 부모의 자식이 동일한 인격으로서(자세를 낮추어) 자녀의 말과 행동을 존중해 주되,선을 넘는 행위는 그에 따른 벌칙과 책임감을 부여하면서 신뢰관계를 쌓아 나가야 한다.나아가 학교 생활,학원,보습 등과 관련해서도 담임교사,학과별 교사,운영자들과도 소통과 대화를 나누고 문제점을 발견하여 수정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아이는 부모의 말과 행동 등 태도와 자세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향후 어른이 되어서도 고스란히 정신적 가치로 남게 마련이기 때문이다.아이에 따라 학습의 성취도,발달상황이 천차만별이기에 수준에 맞게 학습을 진행시키는 것이 차례이다.현행 교육시스템상 독서교육이 취약한 것으로 보이는데,가정에서는 부모가 솔선수범하여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을 들려 주기도 하고,독서계획을 짜서 아이에게 읽히고 그 내용과 감상을 아이의 입장에 맞게 정리해 나가는 독서습관을 함양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학벌과 물질,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풍토상,아이는 당연히 이에 따라 가려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누구나 좋은 학벌,경제적 풍요로움,얼짱과 같은 외모를 겸비할 수가 없기에 최소한 아이의 미래를 위한 성공과 행복을 위한 길로 안내하려면 높은 자존감이 우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아이들에게 물리적,환경적 요소를 모두 만족시킬 수도 없는 문제이다.그래서 자존감을 높이려면 사회우등생을 목표로 방향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학습 능력,외모 및 운동능력,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경제적 수입을 떠나 사회생활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인성과 관련한 좋은 성품을 갖추도록 부모가 자식에게 지금보다 더 인내력과 책임감,애정과 사랑,헌신과 희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아이에게 다가서야 하지 않을까 한다.말은 쉽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자신의 부모에게 물려 받은 정신적 가치,유전적인 특성에 따라 아이에게 재전수한다면 아이의 자존감은 낮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낮은 자존감이 어른이 되어 또 다시 후세에게 물려 준다면 그 집안의 자존감은 악순환의 연속일 것이다.그만큼 정신적 유산이고 품성인 자존감은 돈과 물질,주어진 유전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자녀를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지 않고,세찬 폭풍우 속에서도 굽히고 꺾이며 주저 않지 않는 강하고 독립적인 자기주도적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 부모의 양육법이고 훈육법일 것이다.그것만이 자녀의 자존감을 되살리고 사회우등생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한다.



 
 
 
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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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 등에서 행해지는 재판은 민사와 형사로 나뉘며,헌법을 위시하여 형법,형사소송법,민법,민사소송법,상법을 육법이라고 한다.한국은 1948년 7월 17일을 제헌의 날로 제정하면서 사법체계가 거듭나 왔다고 생각한다.기초질서를 훼하고 사회질서,치안을 뒤흔드는 사건에 이르기까지 범죄의 요건은 다양하기만 하다.구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법조계에서 일하는 검사,변호사,판사들은 상기 육법에 관한 법조항을 꿰차고 필드에서는 판례 및 심리(審理)를 종합하여 판결을 내리지 않을까 한다.단 사법권이 정치권력에 예속되기라도 하면 사법권의 고유권한은 퇴색될 수도 있다.특히 돈과 물질,정치권력과 영합하는 일부 법조계 인사들로 인해 사법계에 대해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사회발전,시민중심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법의 생리를 너무도 잘 알아서 이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런데 사회가 복잡다양해지면서 범법,범죄행위가 늘어만 가고 있다.이데올로기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한국사회는 남북이 분단된 상태이기에 안보에 관련한 법으로 인해 개인의 사상과 이념의 표현은 국가의 주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행동에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개인이 모르는 상태에서 법에 저촉되는 행위도 있기에,민사,형사,상법 등에 관련한 기초 법조항은 상식의 수준에서라도 공부를 해 놓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속칭 '알아야 면장을 살아 먹는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한다.

 

 다카기 아키미쓰(高木彬光)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다카기 아키미쓰는 공학부 출신으로 항공사에 취직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실업(失業)자가 된다.일본 추리소설의 시조인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의 추천에 의해 추리소설계에 발을 내딛는다.그는 불우한 개인사와 일본 사회의 불안상을 작품을 투여하는 것이 주특기로 알려지고 있다.또한 그의 작품 속의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고고로,요코미조 세이시의 간다이치 코스케와 더불어 일본 3대 명탐정으로 알려져 있다.이번 《파계재판》은 99% 법정물로서 법에 문외한인 내게는 법원 재판정의 돌아가는 상황을 긴장감,흥미진진함으로 가득 매꿔 주었다.사건.사고가 발생하면 1차적으로는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수사기록이 검찰로 넘겨진다.검찰의 검사는 수사검사와 공판검사로 나뉘어지고,피고인에 대한 억울함과 인권을 보호하고,재판의 공정성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변호사,그리고 피고와 관련한 증인을 거쳐 최종적으로 판사에 의한 판결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여진다.한국에는 성문법에 의한 법조항에 의해 판사가 판결을 내리지만 영미법계는 불문법으로 되어 있기에 배심원 제도가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특이한 것은 다카기 아키미쓰작가는 법률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작품을 구상하고 작품화하기 위해 형법,형사소송법,법정 드나들기에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주된 인물은 다음과 같다.연극과 연극 매니저,선물 거래(팥) 등을 하다가 도조 야스코 여성을 알게 된 주인공 무라타 가즈히코,잠시 연극계에 몸담으면서 무라카 가즈히코를 알게 되면서 연인관계로 발전한 도조 야스코 그리고 그의 육촌간인 쓰가와 히로모토,야스코의 남편 도조 겐지가 나오며,법조계에서는 무라타를 변호하는 햐쿠타니 센이치로,어떻게든 피고를 구속하려는 아마노 검사,그리고 요시오카 재판장을 비롯한 3명의 판사가 주된 인물이다.변호인측,검사측의 증인과 발언을 허락받은 사람들은 엑스트라이지만 사건심리에 어느 정도 참작이 된다.재판정에서 돌아가는 상황은 신문사 법정기자의 눈과 귀,생각과 감정,논리에 의해 기록되고 있다.무라타 피고는 살인,사체유기 이전에도 공금 유용,사기,군대에서의 영창 등 전력이 있었던 사람으로,이번 법정에서 그는 어떠한 판결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 이목이 쏠렸다.

 

 무라타 피고에 대한 죄목은 네 가지인데,살인 사체유기,살인,사체유기이다.연극배우로서 내연녀의 남편을 살해하고 육교에서 기차 선로에 시체를 유기한 죄,그리고 내연녀마저 죽이고 똑같이 시체를 유기한 죄를 놓고 법정은 작은 불에서 큰 불로 번져 나간다.재판장은 이 사건을 '집중심리방식'으로 열공모드에 들어간 수험생과 같이 집중과 몰입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고,찬 물을 끼얹은 듯한 고요하고 적막감이 감도는 분위기를 연출한다.독자인 나도 무라타 피고는 과연 어떻게 될까.판결은 어떻게 나올까 를 놓고 손에 땀이 밸 정도였다.그런데 무라타는 내연녀 도조 야스코를 유기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그러한 바가 없다고 항변한다.마침 증인으로 나온 야스코의 육촌 쓰가와 히로모토의 알리바이와 변호인 햐쿠타니 부인 및 부인의 친정아버지가 무라타의 무혐의를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것이 무라타에게는 좋은 종국판결을 받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무라타는 선조가 부락민(部落民:일본에서 천민출신으로 부자가 되어도 좋은 집안과 결혼할 수 없는 제도이지만,현재는 폐지되었다) 출신으로 자격지심,열등감,심리적 위축 등을 부지불식간에 많이 느끼고 살았을 것이다.

 

 사람의 행동을 지해하는 것은 선조의 유전이다. - 본문 -

 

 일반인이 어떠한 사건과 재판의 결과를 기억하는 것은 주로 피고인의 이름과 사건 이름으로 불리는 법이라고 생각한다.한국에서도 제법 널리 알려진 사건,재판의 결과는 이름,사건 이름을 기억하고 세세한 것은 관심이 없는 편이다.총 22장으로 엮어져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행적과 내면심리,법조계의 인물들이 변호하고 공격하는 가운데,이를 취합.정리.판결로 이어지는 법정물로서 보기 드문 역작(力作)이라고 생각한다.형사,형사소송에 관한 법률 용어도 인식할 수가 있어 좋은 독서 시간이 되었다.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한 때의 오류와 실수로 인해 씻지 못할 죄를 범한 무라타,그에게는 햐쿠타니 변호인과 햐쿠타니 부인이 있었기에 법정 구소만은 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실로 수임료만 급급한 변호인이 들끓는 세태에서 햐쿠타니의 법정 역할은 커다란 반향을 안겨 주었다.또한 이 글이 1960년대에 쓰여졌고,일본 사회는 전후(戰後) 불경죄와 간통죄를 폐지했기에 다카기 아키미쓰는 이를 교묘하게 소재로 삼지 않았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