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21
김이듬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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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난 이곳을 떠나고 싶습니다. 맞은편 검은 연기와 불길이 솟았던 빵집 건물을 잊겠어요. 작정한다고 잊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폭발 잔해가득한 이곳에서 가까스로 사계절을 버텼습니다.

이왕 간다면, 당신이 바라보며 그리는 숲을 보겠어요. 일찍 사라져버린 문양을 가진 의자에 기대 마주 보는 자리에서, 그리고 기다릴게요, 저녁부터 저물녁까지.

- 「사월에서 구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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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문학동네 시인선 118
박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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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시집이라면 조금 쉬울 줄 알았는데, 책을 펼치기 전에 비해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골몰했던 시들을 그가 떠난 뒤에 늦게나마 읽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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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21
김이듬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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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 봄, 새벽에 일어나 내게 찬합 도시락을 싸준 시인은 이제 음식을 드시지 못한다. 객지에서 잘 먹어야 된다, 이듬아. 사람이 먹어야만 산다는 것이이상하지 않니?˝ 그해 봄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나를 정류장까지 배웅하며 차비를 쥐여주던 시인은 앉아 누우셨다. 믿을 수 없다. 우리는 보리밭길을 걸어얼음 창고가 있던 산마루에 갔다. 산책 중에 언니가내게 물었다. ˝시인이 될 결심을 언제 했니?˝
˝결심한 적은 없지만 자연스레 이리되었네요. 이곳에 와서 언니를 만나겠다고 정한 적 없듯이.˝

나는 뮌스터에 있는 호스텔에서 사흘 머물렀다.
양철 식기에서 스프를 떠내다가 문득 하늘을 보았다. 하얀 침대, 넓은 책장은 없었지만 이젠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렇게 중얼거렸다. 속으로 몇 번 중얼거려보니까 진짜로 모든 게 허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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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21
김이듬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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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건 뜻하지 않은 여행 같다. 덧없는 순간, 아침이 온다. 비가 온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부르지 않아도 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때, 우리는 거꾸로 변할까? 빈 항구에서 물구나무서줄 거니? 끝없이 변하는 날 바라보는 것, 스쳐가며 사라지는 풍경에 관해 원래 없었던 거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 「너를 기다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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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젊었던 술집 여자의 등을 당신께 보냅니다 그 등에서 참았던 내 겨울도 보냅니다 나를 아들이라 부르던 손님들의 택시비와 이국땅에서 일요일마다 내게 주어지던 몇푼의 돈도 함께 보내지요 나는 꼭 저금을 하는 기분입니다 당신이 남기고 간 기록들을 한 줄 한 줄 짚어 봅니다만 아마 실수로 빠진 내 이름이 오늘도 없습니다 요즘 당신은 통 편지를 보내지 않지요
어릴 적 공터에 뛰던 플라스틱 말들을 당신께 보냅니다 그 위에서 견디었던 내 예감도 보냅니다 먼 나라에서 한번 당신을 본 적이 있지요 새벽이었고 당신은 내 가슴을 열고서 울기만 했습니다 결국 유사한 아침을 맞이하며 나는 사과나무 사이를 뛰어다녔습니다 종종 나무의 배후에서 당신을 봅니다만 그것은 비밀에 부칩니다 나는 말을 못하는 일에 익숙하지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금방 비밀로 삼았습니다

- 「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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