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다 자랐다. 방 안에 들여놓은 호랑가시나무 화분에 흰 버섯 하나. 나도 아내도 눈 동그랗게 뜨고, 딸아이는 손뼉까지 쳤다. 언제 누가 오지 말란 적 없지만, 언제 누가 오라한 것도 아니다. 잎 전체가 가시인 호랑가시나무 아래 흰 우산 받쳐들고, 오래전에 우리도 그렇게 왔을 것이다. 아내와나 사이 딸아이가 찾아왔듯이. 언젠가 목이 메는 딸아이 앞에서 우리도 그렇게 떠날 것이다, 잎 전체가 가시인 호랑가시나무 아래 살 없는 우산을 접고, 언젠가 한 번 온 적도 없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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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 봄날의책 한국시인선 1
성동혁 지음 / 봄날의책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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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럴 폼

커튼에 감겨 죽은 달은
어느 날 사 온 꽃 같다
홰에 올라앉아
청진기를 대고
사랑해라고 말해 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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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 봄날의책 한국시인선 1
성동혁 지음 / 봄날의책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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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인터폰을 누르고
바닥을 보고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은 풀지 않기로 했고
주인이 사라진 물건은 비닐로 싸 두었다

뚜껑이 열리지 않는 레몬청과
플라스틱 포크
마른 냅킨

성이 기억나지 않을 때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올까

홀연히 사라지는 사람과
뭘 그렇게까지 안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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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 봄날의책 한국시인선 1
성동혁 지음 / 봄날의책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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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이 첫눈을 이고 광장으로 향했다
눈과 평행으로 달리는 택시 안에서 문장을 썼다
나는 이 문장을 쓰기 위해 모스끄바에 왔다
첫눈이 오면 첫눈이 오면
돌아온 서울에도
첫눈이 오면
만나자 시차를 맞추며
짐을 다시 제자리에 풀고
오백 루블 짜리 마트료시카 앞에서
가을을 벗고 네가 나오길 바라며
이곳의 위도와 경도를 점성술처럼 외자
공항에서 헤어진 사람이
보호자처럼 캐리어를 세워 두고 한 인사였다
니퍼로 베어 낸 국경의 눈이
십일월에 도착하면
의자 밑의 발이
철사처럼 여물면
전기 없이는
흐르지도 않는 도시에서
모스끄바 동상들의 자세들을 연결하며
굳어 가지 않으려 무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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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 봄날의책 한국시인선 1
성동혁 지음 / 봄날의책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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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 가득 딸기 타르트가 묻은지도 모르고 먹다가
집에 와서 알았어 소매가 딱딱하고 향기로워
빨래통에 셔츠를 넣기 전 네가 웃던 모습이 생각나서
얼룩이 든 채로 두었어 
이월의 노을은 네가 으깨 놓은 딸기 같다

지나치게 슬픈 일들이 있었지만 
개중에 계획하지 않은 기쁨도 있었어
누군 햇볕이라 부르고 누군 함박눈 함박눈이라 불렀지만
나는 여전히 형민이라고 읽어
누구도 기뻐하지 않는 일을 기쁨으로 하는 자와 그가 기뻐하는 일을 근심으로 하는 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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