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네가 아닌 병원 책상이 있고 책상에 누가 누운 흔적이 있고 수백 개의 창이 있고 거기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는 이곳은 네가 아닌 병원 

조용히 움직이는 초침이있고 망상과 전망을 혼동하는 시인이 있고 점차로 찾아드는 들숨과 날숨이 있는 이곳은 네가 아닌 병원 낮과 무관한 밤이 있고 눈뜨지 않는 육체에 갇힌 영혼이 있고 창밖으로 무수하게 펼쳐진 마지막 잎새가 있는 이곳은 네가 아닌 병원 

자주 아픈 사람은 병원에 자주 가고 계속 아픈 사람은 병원에 계속 있고 아프지 않으면 오지도 못하는이곳은 네가 아닌 병원

아무런 비밀도 없는데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계다

영화를 보는 장면이 갑자기 끼어든다 영화 속에서는 사람들이 죽는다 원래 죽기로 되어 있던 사람들이 죽는다 영화 밖에서도 사람은 죽지만 거기에는 자막이 없다

이 시에는 다른 어떤 시들처럼 사람이 등장하고,
그 사람이 아프거나 슬프거나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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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너무 어린 나는 땅바닥에 물을 쏟아 버렸다 할머니는 너무 어린 나에게 이 망할 것아 말씀하셨다
쏟아진 물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아직도 나는 망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쯤 망할까? 그것이 언제나 가장 궁금했다 사람들은 세상이 망하기를 언제나 바라고 누군가 망하기를 언제나 바라지만

개가 태어나고 나무가 자라고 건물은 높아지고 있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해와 달이 뜨고 지고 운석은 충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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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에 오직 두 사람만 있다는 것, 영원한 행인인 두사람이 오래된 거리를 걷는다는 것, 오래된 소설 같고 흔한 영화 같은, 우리는 그러한 낡은 것에 마음을 기대며, 우리 자신에게 위안을 얻으며,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지 너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잡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손이 있으니 손을 잡고 어깨가 있으니그것을 끌어안고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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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그릇들이 부엌에 가지런히 놓여 있을 것이다 찬장에는 말린 식재료가 담겨 있을 것이다 식탁에는 평화롭게잠든 여자가 있을 것이고

"상황이 좀 나아지면 깨워 주세요"
그렇게 적힌 쪽지가 있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너는 이 모든 것이 옛날 일처럼 여겨질 것이다 밝은 빛이 부엌을 비추고 있고, 먼지들이 천천히 날아다닐 것이다 그런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여기에서 일어났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선하고 선량한 감정들이 너의 안에서솟아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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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끝나도 나는 살아 있구나

숲길을 걸으면서 그가 결국 벌집을 깨트렸던 것을 떠올렸다 
걸어갈수록 숲길은 더 어둡고
가끔 무슨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는 시간이 오래 흘러 내가 죽는 장면으로끝난다

그때는 아름다운 겨울이고
나는 여전히 친척의 별장에 있다

잔뜩 쌓인 눈이 소리를 모두 흡수해서 아주 고요하다

세상에는 온통 텅 빈 벌집뿐이다 그런 꿈을 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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