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썰전 - 세계사를 움직인 사상가들의 격투
모기 마코토 지음, 정은지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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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마코토, <철학썰전> 리뷰

 

모기 마코토, 철학썰전

ⓒ 북 21


철학을 처음 접해본 때는 수능 준비로 한창 바쁠 고등학교 수험생 시절이었다. 어찌보면 철학이라 부르기에도 애매모호한 '윤리와 사상'이라는 수능 과목을 공부하면서였는데,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수능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고등학생에게는 꽤나 재미있는 과목이었던 것 같다. 인생을 고민하며 가끔씩은 비운의 삶을 살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배우는 일은 그 나이 또래들에게는 고고하지만 동시에 제법 멋져 보이기도 했을 테다. 각기 다른 가치관과 사상으로 맞부딪히는 철학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공통된 흥밋거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대학에 와보니 철학이라는 과목은 그 누구로부터도 쉽사리 환영받는 과목은 아니었다. 철학을 생각하면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을 떠올리며 괜스레 기겁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게다가 돈 안 되는 과목은 나중으로 밀려나는 요즘 같은 때에 철학은 그저 뜬 구름 잡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동시에 현실적으로 여유가 조금 있는 사람들이나 했을 법한 비현실적인 학문이 되어버렸다. 철학 같은 거 몰라도 당장 밥 벌어 먹는 일이 훨씬 '중허기' 때문. 게다가 어려운 말들로 점철되어 몇몇 개의 명언을 제외하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철학자들의 말은 사람들에게 기피대상 1호가 되어버린지도 모른다.


- 짜장이냐, 짬뽕이냐, 꿈이냐, 현실이냐

하지만 철학은 그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맞부딪히는 수많은 고민거리들을 반복하는 학문이다. 누구나 할 법한 고민들을 책에 나오는 철학자들도 똑같이 해왔다는 것이다. 이데아를 논했던 플라톤도, 현실론을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도 사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많고 많은 결정들을 논해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짜장이냐, 짬뽕이냐'부터 '대학원이냐, 취직이냐' '꿈이냐, 현실이냐'까지 살면서 수도 없이 마주하는 결정의 순간들을 철학자들은 각자의 가치관대로 주장하고 연구했고, 그간의 과정들을 문자로 담아낸 것이 오늘날의 철학이 아닐까. 고로 철학은 저멀리에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향만 따지는 학문이 아니라, 오랜 시간 모두가 공유했던 고민과 결정들을 담아낸 하나의 기록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역사상 비일비재하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독재자도 그들의 수족이 되어주는 관료 조직이 없이는 권력을 행사할 수 없죠.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 김일성 일족의 죄를 묻는다면, 그들의 수족을 자청하고 앞장선 관료들의 죄도 물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더 나아가 "법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인간을 심판하고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어떤 법률에 근거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과연 법을 초월하는 정의라는 것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 제 1전 법과 정의, p. 15

ⓒ google 이미지


​모기 마코토의 <철학썰전>은 이러한 고민과 결정의 과정을 역사의 흐름을 통해 풀어낸 철학 입문서다. 법과 정의, 전쟁과 평화, 이성과 감정, 그리고 '나'와 세계라는 크게는 네 개의 테마를 정해 두고 시작한 이 책은 현대 사회가 계속해서 직면하고 있는 정의와 윤리, 이성과 종교와 같은 보편적이지만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을 철학자들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내고 있다. <철학썰전>은 일종의 강의 형식으로 철학자들의 삶을 중심으로 역사적인 사건들까지 간단하게 요약 정리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주로 인용되는 철학자들이나 역사적인 사건들이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의 것들이라 읽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역사를 현재진행형으로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눈에서 지나 온 역사와 철학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동시에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일조한 아이히만은 유죄인가?' '미국은 왜 '정전'을 계속하는가?' 혹은 '어디까지가 '나'일까?' 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들을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일본에서 연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을 합니다. 현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물질적 풍요와 높은 학력만이 인생의 목표라고 가르치며 직업적인 성공과 출세에만 삶의 의미를 두고 있죠. 그들은 경쟁에서 밀리거나 불경기로 일자리를 잃게 되면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합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우리 현대인들이야말로 니체가 도달한 경지에서, 도달하고자 했던 경지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제 4전 '나'와 세계, p. 273


* 아쉬운 점

<철학썰전>이라는 제목만 보고는 '철학서'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철학 + 역사학'을 다룬 책이다. 그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철학자들의 사상과 생애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뤘다는 점은 새롭지만, 때문에 내용이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단적인 예로, 법과 정의를 다룬 '아이히만은 유죄인가?' 와 같은 꼭지 또한 철학적 쟁점을 자세히 다루기보다는 비슷한 역사적 사례들을 나열하는 식이다. 때문에 역사보다는 철학적 토론에 관심이 더 많은 경우에는 그다지 흥미있게 읽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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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고양이들
짐 튜스 지음, 엘렌 심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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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튜스, <뉴욕의 고양이들> 리뷰

 아르테, <뉴욕의 고양이들>

ⓒ 북 21


세상에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만 있다고 한다. 개와는 달리, 고양이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유명한 소설 '검은 고양이'의 이미지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검은 고양이가 불행을 가져다준다는 미신을 믿는 이들도 적지 않은 건 사실이다. 전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검은 고양이들이 억울할 만하다.

어차피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검은 고양이나 하얀 고양이나 얼룩 고양이나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편이다. 마트에서 참치 캔 3개를 사면, 두 개는 우리 집 김치찌개에 넣고 한 캔은 꼭 길고양이에게 나누어 주곤 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 고양이, 매우 통통하게 살이 올라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귀가할 적마다 (시간을 어떻게 알고) 칼같이 오피스텔 현관 앞에 서서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야옹'거리던 그 아이는 어디서나 밥을 잘 얻어먹는 고양이였다. 길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교가 늘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애정을 많이 받아서 사람들과 친숙해진 건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분명한 사실은 이미 그 고양이는 내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딱히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도 아니었는데, 나는 이미 그 아이의 집사였다(...).



 ⓒ 아르테, <뉴욕의 고양이들>


- 고양이는 참으로 신기한 생명체입니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만, 아마도 이유를 한 가지만 댄다면 (물론 이유가 너무 많다.) 그건 예측할 수 없는 고양이의 행동패턴 때문일 것이다. 도통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데 비해, 간혹 바보같은 (하지만 지극히 사랑스러운) 행동을 연발할 때마다 인간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예쁜 집을 마련해줘도 굳이 다 낡아빠진 상자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일. 너무 좁아서 상식적으로 거기 어떻게 들어갔나 싶은 공간에 굳이 몸을 구겨넣고 인간을 부르는 일(네가 들어가고 왜 부르는데?). 죽었나 싶을 정도로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일. 이해하고 싶어도 가끔씩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고양이를 보며, 사람들은 그저 고양이를 바라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끔씩 손을 내밀어 줄 뿐이다. 인간과 함께 있지만, 그 어떤 반려동물보다 독립적이고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생명.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씩 스마트폰을 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그렇다고 게임이나, SNS나, 그런 걸 하지는 않을 거야.

시간 낭비 같거든.


그럼 어디에 쓰고 싶은데?


참치 캔 같은 걸 주문하는 데 쓰고 싶어.

- 허니듀, 로어 이스트 사이드


 


 ⓒ 아르테 <뉴욕의 고양이들>

- 세상에서 가장 쿨한 고양이들을 인터뷰하다

짐 튜스의 책 <뉴욕의 고양이들(FELINES OF NEW YORK)>은 저자가 뉴욕의 고양이들을 직접 만나고 취재하며(?) 작성한 인터뷰를 사진과 함께 실은, 재미있는 프로젝트의 기록이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뉴욕시의 집사들'에게 직접 연락해 고양이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자세한 사정들을 직접 글로 옮겼다. 우리에겐 다 똑같은 소리로 들리는 그들의 언어를 작가만의 관점에서 (작가도 사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다.) 재치있고 엉뚱하게 풀어냈다. 쿨하지만 나름대로의 사정과 사연을 간직한 뉴욕의 고양이들을 사랑스러운 사진으로 한 번 만나고, 그들의 짤막한 인터뷰로 두 번 만난다. 인터뷰 내용은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고양이에 매료된 집사들이라면 한 번쯤은 고개를 끄덕일지도.

너도 나처럼 고양이라면 사람들이랑 소통할 때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해야 해.

언제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하지.

"먹을 걸 얻기 위해, 사람이 하는 짓을 어디까지 참아야 할까?"

- 킵, 그래머시



 ⓒ 아르테 <뉴욕의 고양이들>


이 책을 빼곡히 수놓은 100여 마리의 고양이들은 제각기 다른 삶과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놀랍게도 고양이 특유의 도도함과 단순함이 가져다 주는 '통찰'은 이 책의 또 하나의 매력이다. 자기계발하는 고양이, 대학에 다니고 싶었던 고양이, 집을 나온 고양이, 그리고 사랑에 빠졌지만 실패한 고양이까지. 그들의 눈과 입을 통해 들려주는 몇 가지 말들은, 사실 작가가 다년간의 집사 생활(!)을 통해 고양이로부터 느끼고 배우며 마음에 담아두었던 소중한 기억들일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보는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랑을 표현하는 건 뭔가를 해 주기보다 뭔가를 안 해 주는 거야.

예를 들어 내가 널 사랑한다면, 난 네 침실 문 앞에 똥을 안 싸겠지.

- 롤로, 파크슬로프



 ⓒ 아르테 <뉴욕의 고양이들>


꽃이 먹고 싶으면, 꽃을 먹을 거야. 꽃을 먹는 나를 이상하게들 보지만, 뭐 어때.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냥 해 버려.

꽃을 먹고 싶으면, 그 망할 것들을 냅다 먹어 버리라고.

- 노먼, 부시윅



* 덧붙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당연히 권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책을 유쾌하게 읽고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꿀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사진이 사랑스러운 것은 물론, 인터뷰도 무척이나 재밌다.

아쉬운 건 표지가 생각만큼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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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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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가만한 당신> 리뷰

 가만한 당신, 마음산책

Ⓒ 네이버 책 정보


태어나서 장례식장에 가본 일은 단 한 번뿐이다. 가까운 친척 분이 돌연 돌아가셨을 무렵이었다. 인근 병원의 장례식장에 내가 발길을 돌리게 될 줄은 그 때 처음 알았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나는 새삼 무감각했다. 식장에 들어서서 조문객들을 받으면서도 어린 나이였던 탓인지 놀랍거나 슬프지 않았으니까. 그냥 사진을 가져다 놓았을 뿐, 누군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버렸다는 게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듯 싶다. 내게도 죽음은 아직까지 비현실적이다.

떠난 사람의 빈 자리를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주어야 죽은 이의 가는 길이 외롭지 않다고 했는데, 막상 그 장례식은 쓸쓸하기만 했다. 생각만큼 많은 이들이 찾아주지 않았고, 형식적인 조문 행렬이 이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엄마와 할머니가 오래오래 우는 것을 바라보며,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은 마지막까지도 이렇게나 평범하기 그지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태어난 줄도 모른 채 스러져 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이 많으며, 나 또한 언젠가는 그 행렬에 함께하겠구나. 이런 생각.

- 평범한 이들의 죽음은 덧없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면, 가끔씩은 문득 '왜 유명한 이들의 죽음만 주목받는가' 라는 회의감이 든다. 우리네 삶을 평생에 걸쳐 열심히 살아내는 이들의 거의 대다수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인데. 누군가의 죽음이 평범하기 그지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일생을 헛되이 산 것도 아닌데. 특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삶의 숨은 구석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들 또한 셀 수도 없이 많은데, 라는 생각.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인생에 있어 한 명 한 명의 주역이라는, 생각.

최윤필의 <가만한 당신>은 여태껏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평생에 걸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해 온 사람들의 일생과 그 죽음까지를 다룬다.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했던 이들의 죽음을, 짧지만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글들이 빼곡하게 실려있다. 작가는 일간지 '한국일보'에서 2년 남짓한 시간동안 외신 부고를 읽고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내는 코너인 '가만한 당신'을 맡아왔다. 책 <가만한 당신>은 그 중 서른 다섯 명의 부고를 추려 묶었다.


이 책의 어떤 대목이 읽을 만하다면, 책 속 그들의 삶과 그들이 추구한 세상이 아름다워서일 테고, 책 바깥 독자들의 세상이 너무 고약해서일 테다. 그 간극을 메우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란다.


- 책 머리에, 최윤필

- 다양한 시대, 서로 다른 자리를 맡아 묵묵히 살아온 자들의 이야기​

다양한 시대, 서로 다른 자리를 맡아 묵묵히 자신만의 일을 해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편안하고, 동시에 얼마나 어렵게 얻어낸 소중한 것들인지를 깨닫게 된다. 60년대의 흑인 인권 투쟁에 나섰던 한 청년의 일생부터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위해 평생을 싸운 운동가, 성폭력 피해자에서 조력자로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갔던 젠더 운동가의 삶까지. 어쩌면 유명하게 이름을 떨친 몇몇의 인사들보다 훨씬 더 힘들고 값진 삶을 살았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을 돌아볼 수 있다. 동시에 '조력자살'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에 뛰어들고, 마리화나 합법화, 수형자 인권, 여성 오르가슴 해방 운동에 몸을 던진 자들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하나의 논쟁거리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주제들도 빠짐없이 엿볼 수 있다.

영국 존엄사 운동에 앞장섰던 '데비 퍼디'

Ⓒ 한국일보

지금이라도 누가 다발성경화증 치료법을 발견한다면 나는 환자 대열의 맨 앞에 서겠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문제는 내가 내 삶을 끝내고 싶어 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과 같은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죽을 권리 : 궁극의 자유를 찾아서>, p. 228 

 

수형자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앨빈 브론스타인

Ⓒ 한국일보


"압제는 힘센 자가 아니라 가장 힘없는 이들을 짓밟는 데서 시작됩니다."

변호사 앨빈 브론스타인에게 약자는 남부의 흑인도 이주 노동자도 도시 빈민도 아닌 옥에 갇힌 이들이었다. 그는 1972년 미국시민자유연맹의 '국가감옥프로젝트'를 만들어 23년간 이끌며 재소자 인권과 수형 제도 개선을 위해 헌신했다.

- <폭동 아닌 봉기 : 수형자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 p. 283

 

 

* 덧붙임

사람이 중심에 자리한 책을 찾는다면 이 책만한 게 있을까.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은 책으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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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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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네이버 책 정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 당길 때 허겁지겁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반대로 좀처럼 마음이 끌리지 않는 일에는 손길조차 대지 못하는 편이다. 이는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인데,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놀랄 만큼(!)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그렇지 않은 일에서는 마치 '부진아'처럼 빌빌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이제는 좀 알아두어야 겠다 싶어 이것저것 일을 벌려놓기는 하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끝은 좋지 않다. 사실 그 끝이 기억이 안 나는 적이 더 많다. 제대로 끝을 본 적이 없으니.

다행히 책읽기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나는 모든 사물에 감정이입하기를 좋아한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공부하라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는 것조차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던 선생님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면학 시간마다 소설책을 꼭 한 권씩 들고 오곤 했다. 뭐든지 시키면 하기 싫은데 하지 말라는 건 더욱 더 하고 싶었던 게 그 시절 학생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었을 테지만. 그렇게 공부보다 더 재밌는 세상이 많다는 걸 학창시절부터 조금씩 알아갔다. 독서를 방해하는 누군가가 부재한 대학에 와서는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읽을 수 있는 때가 왔다. (지금은 또 다시 약간 부진해졌다...) 주로 맞는 건 문학이다.

© 김영사,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작가의 무성의함이 돋보이는 에세이집​

웃긴 건 이상하게도 에세이류를 기피했다는 점이다. 지금에 와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뭔가 작가의 노력이 덜 들어갔다'는 실로 위험한(!) 생각에 빠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에세이는 감성에 젖어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이에게나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와서는 (조금 늦은 것 같지만) 그 때의 내 어린아이 같은 생각에 대해 수많은 에세이집 작가 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리려 한다(...). 물론 대부분의 유명 에세이집은 내가 읽지 않아도 이미 잘 팔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특별히 '작가의 무성의함'이 돋보이는 에세이집이다. (또 다시 폭탄발언을 하게 되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원래 작가도 친절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는 하다. 놀라운 걸작 소설들로 유명한 작가의 조금은 까칠한 일기장을 읽어보는 느낌이라면 그래도 조금 정확할까.

물론 <앙앙> 독자가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만약 "이 아저씨는 무슨 소릴 하는 지도 모르겠고 완전 시시해. 종이가 아깝다니까" 라고 생각하셨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나 자신은 상당히 재미있고 즐겁게 썼습니다만, 미안합니다.


- 첫머리에, p. 10


작품이 아닌 어떤 아저씨 한 명을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무튼 재미있는 책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이번 여름 휴가에 동행할 책으로 골랐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글의 분량은 에세이 한 꼭지당 칼같이 3페이지다. 투박한 일러스트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여름 풍경과 아주 잘 어울린다. 다만 의식의 흐름대로 작가의 글이 흘러가니까 논리정연을 따지는 건 조금 미뤄두는 게 좋겠다. 하루키의 작품이 아닌 하루키라는 어떤 아저씨 한 명을 만나보고 싶은 팬이라면 더욱 좋은 선택이다.


그런데 늘 희한하게 생각하는 것. 언제부터 소설가를 '작가님'이라 부르게 된 걸까? 옛날에는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채소가게님' '생선가게님' 같은 느낌이다.

뭐 사운드 면에서 편하기 하지만, 그렇게 불릴 때면 이따금 "아, 예, 예, 어서 옵쇼"하고 두 손을 비비며 나가야 할 것 같다.

- 일단 소설을 쓰고 있지만, p. 83


© 김영사,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그러나 그 맛 이상으로 내 속에 '좋은 토마토'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아저씨가 자신이 키운 토마토에 긍지를 갖고, 그 신선한 성과를 나와 나누고 싶다고 생각해준 것이었다. 뙤약볕 아래를 걸으면서 그 토마토를 우적우적 통째 먹으니, '세상에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네' 하는 실감이 들었다.

- 제일 맛있는 토마토, 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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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김하나 지음 / 김영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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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리뷰

김하나, 김영사,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 네이버 책 정보


시키면 뭐든지 하기가 참 싫어진다.

철이 없다. 청개구리같은 심보라서 시키는 일은 재미가 없고 스스로 찾아서 하는 일에만 몰두하기를 좋아하니 말이다. 때문인지, 전공 성적은 이것저것 들쑥날쑥하다. 좋아하는 수업은 점수도 수월한데, 그렇지 않은 과목은 수업 일수를 간신히 채우기가 다반사다. 이렇게는 도저히 어른이 못 되겠다 싶은 때도 많다. 어느 잡지에서 읽었다. '성공하는 비결은 내 관심의 30% 정도는 내가 관심 갖지 않는 분야에 꾸준히 투자하는 거'라고. 그렇게 되면 정말, 나는 성공하기 글렀다. 내 관심의 거의 99%는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만 쏠려 있기 때문에.


밥을 벌어 먹기가 불가능하진 않아도, 시간은 좀 오래 걸릴 것 같아 문제다.

이렇게 내 고민을 털어놓으면 누군가는 와서 참 행복한 고민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얼마나 복 받은 일인 줄 아느냐고. 나도 안다. 내가 복 받았다는 걸. 하지만 좋아하는 것만 해서는 밥을 벌어 먹기까지는 불가능하진 않아도, 시간은 좀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그게 문제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토익 점수도 올릴 수 없고, 면접관 앞에서 유려하게 말솜씨를 뽐내기도 그다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열심히 좋아하는 게 이토록 죄책감이 들어서야 되겠나.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건 이미 당신 안에 있다. Everything you need is already inside.'

​참 좋아하는 나이키 광고의 카피다.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 꼭 무언가를 갖추고 마련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이미 가진 것에서 창의성은 시작된다.


- <Everything you need is already inside>, p.69

모든 이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은 거룩할 것이나 모든 이에게서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은 욕심이나 아둔함에서 비롯된다. 전지전능하지 않은 우리는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배제할 수밖에 없다. 배제해야 집중할 수 있고, 집중해야 비로소 어떤 색깔이 생기기 시작한다. 만둣국도 하고 아구찜도 하는 집보다는 만둣국만 하는 집이나 아구찜만 하는 집이 더 맛있는 법이다.


- <커플을 받지 않는 게스트하우스>, p. 17



 


나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열심히 좋아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하지만 내가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서도 나는 또다시 나만의 좋아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다시 알아가고 있다. 아마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일에 빠져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내 전공인 프랑스어에 푹 빠져있는 날이 늦게나마 올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들을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늘려가는 기쁨을 알아가는 것도 요즘의 즐거움이다. 물론 아직 철이 들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코미디언 중 하나일 엘렌 드제너러스는 2007년 제 76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를 맡아 시작하면서 이런 농담을 했다.


"저에겐 참 대단한 밤입니다. 전 요만한 꼬마일 적부터 언제나 아카데미 시상식을 진행하고 싶어 했어요. (...)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카데미에서 상을 타기를 원하지만 저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진행하기를 원했지요. 그러니 어린이 여러분, 여기서 교훈을 얻으세요.

'목표를 낮춰 잡을 것 Aim lower.'"


- <어깨에 힘 좀 빼고>, p.236


거창한 관심사 하나도 중요하지만, 가볍게 시작한 이야깃거리들이 우연치않게 우리 삶을 안내할 수도 있다. 김하나 작가의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이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작 이 책은 광고나 홍보와 관련된 이야기는 채 10%도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일상 속의 크고 작은 소소한 이야깃거리들과 관심사를 두고 작가만의 생각으로 풀어낸 에세이집에 가깝다. 아이디어가 매일매일 번뜩이며 떠오를 것 같은 광고인들도 보통 사람과 별다르지 않은 삶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다는 점. 그럼에도 삶의 작은 부분들을 눈여겨 보는 그들의 습관을 자연스럽게 관찰해볼 수 있다는 것은 이책의 장점이자 요지라고 봐도 되겠다.

삶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순간, 우선 농담부터 시작할까요?

공갈빵을 씹다가도, 대중가요의 노래 가사를 듣다가도 시작하는 각각의 에세이들은 가볍고 담백한데, 이렇다 할 진지함도 크게 묻어나지 않는다. 정말 별 것 아닌 이야기로 시작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의 작은 꼭지들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디테일한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 적당히 가르쳐주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이 아니라, '정말 별 것도 아닌 것 같고 이런 생각까지?' 싶은 글도 많다. 편하게 읽되, 조그마한 것에서 넓은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잠시나마 길러볼 수 있다. 작가의 일러스트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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