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마다 사나운 검은 개가 매여 있다. 이곳엔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는 길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자꾸 서성이는 사람이 된다.

한 걸음이 한 글자가 되도록, 하루가 한 문장이 되도록, 내가 걸어온 시간이 어딘가로 전송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바닷가 마을에 사는 파란 눈의 아이가 떠오른다.
그 아이가 읽고 있는 책이 나의 삶이었으면 좋겠다.

거인이라고 해서 마음까지 거대한 것은 아니어서 거인에게도 언덕은 언덕이어서

눈앞의 하루를 오르고 또 오르며 작은 집으로 들어갈 수 없는 스스로를 한없이 원망해야만 한다네

창과 방패, 창과 방패, 세상에는 평행선처럼 영원한 것이 아주 많다고 아침은 밤을 삼키고

나의 전생은커다란 식빵 같아
누군가 조금씩 나를 떼어
흘리며 걸어가는 기분

그러다 덩어리째 버려져
딱딱하게 굳어가는 기분

배고픈 개가 킁킁거리며 다가와
이빨로 살살 갉아댈 때까지
나는 있다. 최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갑겠지, 그렇게라도 말을 걸어주어서
심지어 사랑이라고 믿을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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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타인에 의해 한 번도 정확히 읽혀지지 않은 텍스트였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모독이었고 또한 아버지의 불행이었다.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 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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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는 단어 속에는 얼마나 많은 적의가 감춰져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풀과 나무들이 저토록 맹렬하게 자라날 수는 없다.

‘딛다‘ 라는 단어 속에는 얼마나 아픈 엎드림의 자세가 있는가. 한 인간을 담장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등을 밟고 가라고 끄덕이는 눈빛이 있었을 것이다. 담장 안이 불타고 있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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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비가 내렸다"라는 문장을 만났을 땐 이미 발이 물속에 잠긴 뒤였다

"건너왔어."

그렇게 끝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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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일은 괴물이 되려는 시간을 주저앉혀 가만가만 달래는 일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렇기에 ‘괴물‘이라는 단어의 문을 열면 연둣빛 새싹 하나가 빼꼼 고개를 내미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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